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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CH POINT

<매치 포인트> 바람은 금물?

by CHRIS
[Match Point. Woody Allen. 2005]


“미안해서 결혼하지 않으려는 것 아닌가요?”

“뭐가 미안한데요?”

“처녀가 아닌 것.”

‘.. 제길..’


깨끗하다는 기준이 처녀와 비처녀인가? 자신도 즐겼으면서! 그는 나의 욕망에 대하여 고려하지 않는 순도 0.4%의 이해를 표하고 있었다. 타인의 현재와 미래의 판단을 조절하는 잣대가 어떠한 시기에 누구에 의해서 육체적인 컷팅 테이프를 끊었느냐는 단순한 분석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에 마시던 물이 씁쓸해졌다.


‘당신은 앉는 폼조차 딱딱해. 네모나고 경직되어 있어.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아가시지.’


머릿속 뚜껑을 닫고 자신의 편리로 시각적 감상을 충족하기 위해 쉽게 사랑하려는 사람들이 싫다. 그에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은 개인적인 가치를 부여해서 함께 지내기엔 스스로를 매듭지을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보편적인 증거를 덧붙이지 않고 한 사람으로서만 이해하기엔 상상이 부족한가? 내가 나 아닌 상태로 움직인 원인이 무엇이건 간에 나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망가지고 싶었다.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책임을 수반할 필요가 없는 선상에서 평소의 나라면 할 수 없었을 판단에서 해방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몸부림이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생각을 검불처럼 얽히고설키게 만드는 것이 문제이다.


바람 부는 날이면 극장에 가야 한다. 우디 앨렌 감독의 <매치포인트>는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어젯밤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생활과 사랑의 차이에 대해 질문하던 내가 바보처럼 그려지는 영상이었다. 그는 영화 속 남자처럼 생각했을까? 상대의 입장이나 생각을 알지 못하는 나로선 한 편의 연극을 보듯이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기법은 80년대 프랑스 영화처럼, 주인공들은 신중한 스릴러와 엉뚱한 식은땀을 농담처럼 흘리며 ‘인생의 승패를 가르는 공’이 귀가 어두운 할머니의 서랍장에서 훔친 금붙이와 같이 치정자의 손에서 계획적으로 혹은 실없이 벽을 가로지르며 바닥에 덩그렇니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종일관 영상은 자책하는 실소를 짓게 만들었다. 운에 의해서 결정되는 행복과 진로. 공이 나의 네트 안으로 넘어오는가, 너의 네트 속으로 넘어가는가, 그게 중요하단 말이지? 마지막 한 점으로 낙찰되는 인생! 공이 어디로 구르는가는 철저히 운에 의지한다는 말이 싱겁게 긍정을 끌어내었다. 운대로 살아가지 않으리라 다시 발악하며 버팅겨 볼 요량이다. 누군가를 만날 때 포인트를 계산하며 승자를 가리는 게임의 방식은 그다지 매력 없는 것을. 친구는 혀를 차며 일반적인 결혼조차도 장사인 거라고 말을 건넸다.


“결혼도 따지고 보면 장사야. 너의 가치를 말해주는. 옆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더 근사해 보일 수 있고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 너 도대체 왜 그런 건데?”

“경제학도가 아니라서 장사라는 말이 듣기 싫다. 꼭 팔려가는 기분이야.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면 안 되나?”


결혼생활을 다룬 영화들을 보면, 결혼은 매력 없는 산물이다. 사랑이 의미 없어지는 불륜도 역시. 가슴에 멍울만 남기고 끝낸 영화 <매치포인트>. 나를 추스를 때까지 뜻하지 않게 불어온 바람을 종식시켜야겠다.


"넌 그를 사랑했어?"

"아니."

"함께 있는 건 좋았어?"

"몰라."

"그럼 왜 만났어?"

"상황이.. 미련하지만."


2006. 4. 19 WEDNESDAY



시간과 기억은 강렬한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한번 망각의 길로 들어서면 당시의 내가 다른 이였던 것처럼 존재적인 탈 특성으로 전이되면서 당시의 경험들과 사람들과 시간들, 더불어 장소들까지 전혀 기억해 낼 수 없는 소구점으로 접어든다. 가죽 위에 뜨거운 인두로 불박을 박고 이름을 새겨놓으면 살아있을 때까지 문신처럼 남아있는 기록도 있지만 색종이 위에 딱풀로 반짝이를 뿌려놓은 낙서들은 세월을 따라 접촉점이 상실되면서 바닥으로 쏟아져 내릴 하나의 소실될 자세가 되기도 한다.


가끔 재능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표현하는 사랑, 사회의 기준과 용납되는 관념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만들어가고 설명하는 것들이 얼마나 가볍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 우디 앨렌과 미아 패로우, 순이와의 관계는 한때 그가 만드는 영화보다 더 흥미로운 가십거리였다. 타인과 결합하여 가족을 만들고 외부로부터 수혈되어 온 줄기가 생산자적인 가족이 되고 가족의 테두리 속에서 씨앗이 성장하여 한쪽에서는 불륜으로 한쪽에서는 사랑이 별개의 관념으로 성립하며 원래 평화로운 가정을 만들겠다는 이상은 상실된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은 해석되는 자에 의해 그 의미를 달리 하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이 만들어놓은 결과물은 그것이 불륜이었든 불법이었든 자기 해석을 거부한다. 타인의 선택이 오직 나와 마찰되는 시점에서 모든 일의 문제는 시작된다.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내가 나였는지 아니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오직 기록 속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가벼운 시절의 습관과 엇나간 감정들을 바라보면서 대상의 의미와 무의미 사이의 관념은 지속되지 않는 감정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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