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맛 말맛 | 배움 기억 망각 발설
대학교 삼 학년 한 학기 동안 선택언어를 네 가지로 해서 배웠다. 프랑스어, 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고등학교 선택 언어였던 일어는 배운 것을 마스터하겠다는 일념과 학점을 따기 위해 선택했다. 한자문화권의 특성상 발음만 빼면 배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프랑스어 역시 발음상의 차이 때문에 머리 저장고에서 분류하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가 문제였다. 두 언어의 글자 형태가 비슷해서 분간이 가지 않았다. 기초과정이었으니 발음이나 신경 쓰면서 기본 글자와 대화를 배우는 것에 집중했으나, 시험시간에 같은 의미의 단어를 놓고 이탈리어인지 스페인어인지 헷갈리는 동시에 어디로 배치해야 할지 몰라서 머리의 회로가 엉켜버렸다. 언어를 배우면서 라틴어에서 파생된 단어를 사용하는 영미문학권의 사람들은 같은 계열의 언어를 못 알아들으면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를 말하는 것에 대한 욕심은 소통에 대한 욕구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간이 이렇게 지나고 나니 언어는 자주 쓰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잊어버림을 알게 된다.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해외에서 자라면 쓸 일이 없는 한국말을 잊는다고 하듯이 일할 때 국제공용어인 영어 빼고 쓸 일이 없는 외국어는 글도 보지 않고 언어도 쓰지 않으니 아예 들리지 않는다. 문장도 영어로 유추하는 실정이다. 스페인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이탈리아어도 아예 잊어버려서 출장 가서는 영어로만 대화했다. 고급과정까지 배운 일어도 써먹을 일이 없으니 꿀 먹은 벙어리만이 아니라 말소리를 들으면 귀에서 웅웅 거리다 만다. 일본 사람 하고도 영어로 대화한다. 중국어는 대학을 졸업하고 별도로 공부했다. 중국은 중화중심주의라 중국어만 하면 세상에서 다 통하는 줄 안다. 영어가 제일인 줄 아는 미국인 못지않다. 중국인들은 미국인한테도 중국어를 하는 입장이라서 중국의 관계적 문화 덕택에 중국어는 필수가 되었다. 물론 일반화를 피해야 할 것이 엘리트 중국인들의 영어실력은 출중하다.
심도 있는 생각 전달체로서의 언어기능을 지속하기 위해선 언어회로가 계속적으로 운동하여야 하고,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기억을 유지할 수 있는 심도를 갖추어야 한다. 언어는 한 인간을 규정짓는 성격의 스피커이며, 사고와 감정을 해석하게 하는 형태불형의 창구이다. 한국말을 하면 사람들은 초기엔 음성이 좋다고 했다가 점차 말이 길어질수록 말하는 내용과 담긴 어투에 필이 꽂히면서 날카롭고 냉정하고 카오스적인 사상에 근접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영어권 사람들은 언어 구사방식을 시적이며 추상적이라고 표현한다. 중국인들은 말투가 부드럽고 나긋하며 호방하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지 나 또한 궁금하다. 아마도 한국말처럼 다른 나라말을 구사한다면 적절한 고급 언어를 배치하지 못하는 제2 외국어의 특성을 벗어나 그들도 한국인들과 동일하게 나를 분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라권마다 동일한 내용이지만 어감 때문인지 그 의미조차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 어순이나 강세, 성조, 말투에 따라 변하는 것이 언어적인 감각이고, 언어는 배우고서 말을 하지 않으면 잊히는 것이 순서인가 보다.
주변에 언어가 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발음에 엄청 신경 쓴다. 발음이 정확한지 따진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는커녕 말 한마디 못 하는 사람이 많다. 반기문 전 유엔총장이나 유발 하라리의 영어 발음은 좋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구사하는 단어나 내용은 고급 수준의 문장에다 의미로운 구성을 갖추고 있다. 가끔 발음에 환장해서 버터 바른 말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상대의 언어적인 감도를 이해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말해도 생각만큼 완벽하게 외국어로 의사 표현이 안될 때는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한국말이라면 이렇게 떠들 필요는 없는데!”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자유롭다고 해도 실제적인 행동이 요구되는 순간에는 언어 이상의 판단력과 결정력을 갖고 있는지가 앞으로 나아가는 관건이 된다. 글도 그렇고 언어도 그렇고 생각이 흐르는 연결성 속에서 스스로의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는 간단한 언어능력과 만국 공통어인 바디랭귀지로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능동적이면서 창조적인 삶, 희비와 굴곡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는 글과 말로 표현하는 것에 정성을 들이고 신중해야 한다. 말이 많아질 때마다 침묵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엄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