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인 흔적들, 지난 단상들
밥 대신에 차
밥 대신에 커피
밥 대신에 들깨
밥 대신에 땅콩
밥 대신에 김
밥 대신에 술
밥 대신에 생강
밥 대신에 곶감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먹는다. 주전인생 벗어나 부수적으로 곁들여지는 주전부리에 탐닉한 식성. 표현을 해야 이번 한 해가 좋아질 거라던데 마음껏 표현하는 것에도 때가 있다. 성격상 미뤄두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그 사람들 앞에서 참아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며칠, 그것이 이어져서 오늘.
제철의 흐름을 아는 그때, 비로소 어른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한다. 바람의 날개와 별의 하품과 하늘의 기지개와 달의 비명과 해의 탄성을 느끼는 식물들의 교감. 철이 들지 않아 겁 없는 행동을 저지르는 아이들은 혼자 서기에 부족함이 많다. 육체와 정신이 병들수록 어지러운 주변과 망가진 길을 보수할 건강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나는 더 이상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어른도 될 수 없지만 철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면 무서워서 지레 몸을 움츠린다. 그들의 팔은 넓고 강해서 내가 속한 계절을 물리치고야 만다. 바른말로 가장된 입김에서 겨울을 느끼는 나는 강하지 않다. 철을 안다는 것이 힘든 것임을 철 모르는 사람 곁에서 속앓이를 하며 배운다.
떠나자. 우울한 몽상의 눈아!
네 손을 잡고 너른 들판을 보여줄게.
겁으로 쪼들린 폐부를 펼쳐라.
너를 맞이할 구수한 옥수수의 향기.
나는 수직인간이다. 편히 떠날 수 없는데, 훌훌 떠날 것을 권유하는 사람 앞에서 욕심 많게도 만물이 익어가는 늦여름과 시들은 가을바람 냄새를 상상하고 있었다. 들판을 보여주겠다는 말에 마음이 설렌다. 어떤 선물보다 반갑고도 고마운 상상.
물질에 헌신하는 당신들의 기대에서 하나둘씩 멀어져 갈 때쯤을 그리면 희열이 솟는다.
단시간에 느끼는 오르가슴보다 더 희망차고
규칙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스포츠 경기보다 더 흥미롭다.
그러나, 물끄러미 나는 당신을 본다.
불쌍한 몸빼바지 두고 갈 수 없어 이유 없이 화가 솟는다.
이기적인 당신들에게, 너무나 개인적인 내가
벌써 들판이 그리워져요.
마음이 몸을 배반하네요.
내 가는 길 막지 마세요.
다운증후군처럼 들리는 다방증후군은 '그'의 지긋지긋한 ‘그들’을 만나면서 생긴 결핍성 신경증이다. 칡차, 쌍화차, 율무차, 냉커피. 옛날 노래가 궁금히 흐르는 밀폐된 공간에서 맛보게 되는 각양각색의 봉지차는 쉽게 안정을 찾게 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일 새 없이 쿰쿰한 냄새로 뒤덮인 소파에서 곧게 앉아있기 위해 버둥거리는 자세싸움은 온 신경을 후각과 시각에 집중하도록 몰아간다. 귓가로 들려오는 오늘의 사건에 대한 평가는 가슴의 수평선을 급격히 언짢게 만듦과 동시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입가를 힘들이지 않고 씰룩이게 한다. 부정맥의 동통에서 고생하는 환자들은 환경이 변화하면 급격히 소심해진다. 다방 마담이 신문을 읽고 있는 계산대 앞에서 동행한 이들보다 먼저 지갑을 열고 돈 내고 싶어 달음박질치는 것도 다방증후군의 한 증상이니. 누구 껌 값이나 될까? 자잘한 푼돈을 먼저 내는가, 별 거 아닌데 신경 쓰게 되고 돈을 내는 것에 실패하면 중대한 업무에서 제외된 양, 침울해지는 반응이 뒤따른다. 한국문학선집에서나 봄직한 소곳하고 정겨운 다방의 모습은 다방증후군에 걸린 사람에겐 별천지처럼 생각되는 이상향이다. 열렬히 문학과 예술을 논하고 다정히 안부를 묻는 사람을 그곳에서 만날 수 없다. 남을 등쳐먹을 궁리에 눈 시뻘겋게 뜬 불쌍한 오지랖의 인생들과 돈장난하는 꾼들에 휘말려 시간을 팔아먹은 한량들이 빈 물잔을 기울이며 앉아있을 뿐이다. 속이 어찌 타는지 물을 두 동이나 마셨다.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눈가가 부어서 스팀찜질을 했다.
사람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렌즈로 담아내기 힘든 것들은 어디까지일까? 전화위복을 논했다가 시련의 세월들이 나를 값지게 변하게 할 거라는 이야기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힘이 날 것 같다. 나를 설명하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질 때, 상대방의 보따리 속이 깜깜하기만 할 때랄까? 사춘기 시절부터 시작된 혼란, 자석같이 들러붙는 나의 이미지. 감정이 텅텅 비어버린 듯한 얼굴로 가학적인 외면을 퍼부을 때서야 나답다고 평하는 관념적 태도는 흥미롭지 않다. 나의 매력이라 말해지는 것들로 사회적인 이익을 얻는 순간, 분명 상황이 다름에도 나는 자동적으로 그들을 생각한다. 정지된 몸뚱이 위로 궁핍한 한숨을 쏟아내는 그녀와 밀봉된 귀를 감싸며 밀실에 갇힌 그를. 나를 재단해 온 고통들이 거대한 이빨을 드러낸 지, 십 년을 꽉 채우게 되는 유월이 지나면 사건의 매듭이 응어리지리란 예감을 허리춤에서부터 느꼈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낡은 우울로 방만해진 숨통을 묶어 상해로 떠나야겠다. 그러면, 황금빛 성령이 왼쪽 눈으로 빠르게 흡착되었던 사월의 꿈은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는 눈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오색의 가을빛으로 변할지 모른다. 불치의 기억이 내가 손잡은 사람들의 그늘에서 쉬어갈 수 있다면 당신과 나의 거리는 멀지 않으리라.
작업의 묘미는 나를 잊는 과정에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게 빠져드는 황홀, 활기차서 숨이 막힌다. 두려움에 종종걸음 쳤는데, 뛰고 있다니.. 밀실에 가둬둔 심장이 두근거린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모델들과 신나는 대화. 스타일링이 짬뽕된 무대, 급조된 스튜디오에서 군기 잡기. 너무 알면 다치고 너무 몰라도 문제지만, 약간은 무지한 상태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이 많아서 즐겁다.
나에게 엉뚱하다는 말은 찬사와 다름없다.
한 템포 낮춰진 뜬금없는 탄성.
기발하고 엽기적인 발상.
과격한 발언 뒤에 예상치 못한 부드러운 다독임.
사랑을 받고 싶다는 기대 이상으로 사랑하고 싶다.
오랜만에 살아있다. 팔이 뻐근하고 허리가 아프고 목이 쉬고 다리가 저리지만 나는 시체가 아니요, 깨어있는 사람이 되었다. 눈에는 광채가 나고 살아있는 연유를 알 수 없음에도 오랜만에 살아있다. 그 원동력은 잠자던 상상들의 움직임 때문이다. 오랜만에 살아있어서 의미 없이 죽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상상력이 만들어주는 이미지가 있어야 살아있을 수 있고 이 세상에서 의미 있게 존재할 수 있다. 그림 그리는 일은 고기잡이와 닮은 데가 있다. 무엇인가를 깊은 바다에 던지고 다시 거둬들이기 때문이다."
<샘 프란시스 Sam Francis>
2006년 6-7월의 단상 모음
이전의 글들을 보고 있으면 친구에게 대화를 거는 기분이 든다. 그 친구에겐 무슨 말이든 해도 부끄럽지 않다. 어떤 이해도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시간의 노예였던 시절을 함께 겪었고 슬퍼했고 아파했고 힘겨워했다. 글을 적으면서 침묵을 깨고 말문을 트는 것이 망설여졌다. 그녀를 과거에 남겨두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살아야 했고 변해야 했다. 그녀와 나는 한 몸이었으되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헤어진 지도 이십 년이 넘었다. 지금은 각자의 자아로, 과거와 현재에서 미래를 향해 한 시절의 공통의 기억을 안은 채로 만나고 있다.
살기 위해서 삶의 방향성을 틀고 난 뒤 결정권이 쥐어지게 되었다. 점차 사람과 사건과 감정과 세월에 정신없이 휘둘리던 상태에서 벗어나긴 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상황은 유리해졌으나 책임은 더 무거워졌다. 부유하는 찌꺼기들과 섞여버린 감정들을 보면 우유가 들어간 카페 라떼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 까맣기만 한 맹물의 시간은 선명할 것이다. 그곳에 하얀 회오리가 섞인다. 부드러울 거라 기대한 것과 달리 혀 위를 맴돌며 설태를 끼게 만드는 날들이 뿌옇게 떠오른다. 회오리치며 기억을 표류하는 텁텁함을 맛본다.
발을 뗄 수 없었던 과거에 걸린 거미처럼 허우적거린다. 나는 공중에 매달려 있다. 그 상태로 과거의 그녀를 만나는 것이다.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지고 피가 땅으로 쏠리면서 정상적으로 인사를 나눌 수 없다. 뒤집어진 현재가 부끄러워진다. 곧 시간은 거꾸로 회전한다. 초침소리가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