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N LINKED MEMORIES

열차와 기억

by CHRIS
[TIME WALK] 2025. 2. 24. HANGZHOU. PHOTOGRAPH by CHRIS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면 종착지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 도착하는 것일까. 몇 시간 가야 하는지 정확히 계산하지 않으면 시계 보는 것도 잊는다. 뒤로 젖힐 수도 없고 팔걸이도 없는 딱딱한 자리가 못마땅하다. 잘 땐 딱딱한 돌침대나 바닥이 좋은데 이동을 위한 좌석은 편안함과 익숙함 사이를 돌출한 불충분한 설명이 된다. 모든 것이 가깝다. 숨결도 시선도 접촉도 달음박질칠 수 없는 거리다. 앞을 향해도 옆을 향해도 좌석을 넘어 무한한 부딪힘이 껄끄럽다. 사람들의 호흡과 열기로 더워지는 무단장(牡丹江)으로 향하는 객차에 앉아 있으니 십칠 년 전 장춘에서 단둥(丹东)으로 가는 텅 빈 밤 열차가 다독여주던 규칙적인 맥동이 귓가에 퍼진다. 모르는 곳에 대한 기대감은 혈관을 따라 규칙적으로 상승한다. 세 명이 나란히 앉게 병렬식으로 연결된 좌석 위를 가로누워 창밖의 검푸른 풍경을 담았다. 푸르렀던 열차의 끝에는 아무도 없었다. 띄엄띄엄 모르는 익명의 채움이 마음을 부풀게 했다. 한밤을 향해가는 만석인 객차에서 답답한 부침을 밀어내려는 듯이 가쁜 호흡을 내쉬었다. 끓인 라면 냄새, 과자 냄새, 밥 냄새, 화학음료의 향과 각양각색의 몸냄새와 내뱉는 호흡들이 누군가의 경기 어린 기침과 섞이면 지레 코로나의 밀폐된 시간까지 연결된다.

모두들 고개를 떨구고 핸드폰을 들고 있다. 이십일 년 전 하이닝으로 가던 삼등석 열차에서 종이표만 쥐고 이국적인 풍경을 하염없이 보던 날이 뿌옇게 겹쳐진다. 들리지 않는 외국어로서의 대화는 짐승의 울음처럼 음률이 없다. 모든 말소리가 귓가에서 회오리치고 메아리로 울려 퍼진다. 표정만 있고 내용은 없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열차로 장시간 이동하긴 오래간만이다. 몇 달 전 탔던 고속열차의 일등석은 외국인을 위한 객실 안내 서비스도 있고 VIP 라운지에서의 휴식을 권한다. 시간이 없어 모든 것을 놓쳐버리긴 했지만 프라이빗한 객실 내부에는 웰컴 기프트, 쿠션과 모포, 슬리퍼, 통번역 서비스까지 편안함을 보장한다. 홍콩에서 북경으로 향하는 이등석 고속열차에선 스타벅스 커피를 서비스하는 승무원이 인상적이었다. 팔걸이로 구분된 넓은 좌석은 타인과의 거리만이 아니라 각자의 경계선이 얼마만큼인지 알려준다. 좌변기와 화변기가 둘 다 있는 객실은 비행기를 타는 듯한 쾌적함을 준다. 서비스만이 아니라 설비들이 좋아지고 있다. 전혀 발 디딜 수 없었던 화장실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지린 냄새를 흔들고 있다. 여전히 삼등석은 이십 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리를 가로질러 맞대어야 한다. 커다란 짐을 들고 이는 사람들을 보니 고향을 떠나야 할 때는 가볍게 떠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접혀있는 배가 불러오고 귀가 피곤하다. 눈을 뜨는 것이 힘들어 잠시 눈을 감았다. 잠이 들었는지 고개가 자꾸 옆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벌컥 눈을 뜨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한다. 나의 여행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알지 못하고 아직 마지막 종착지도 정하지 않았다. 머리로 회전하던 감상이 가슴에 닿기까지 인생 전체를 털어 넣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여행 중에 읽은 책에서 적어놓은 인상적인 글귀를 남겨본다.


"누군가에게 과거를 떠올려보라고 하는 것은 총을 겨눈 채 재치기를 하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비슷하다. 과거 속 기억과의 진정한 충돌은 시간적 거리를 뛰어넘어, 과거 속 장면이 우리 앞에 느닷없이 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속의 기억이 아니라 시간의 바깥에 있는 어떤 주머니 속에서 막 꺼낸 것 같은 시간이다. 진정한 기억은 자신과 현재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녹여버린다. 프루스트적인 시간은 불친절하게 불쑥 튀어나오고 어떤 우연한 주제를 여는 서막이 된다. 프라이팬에서 지글거리며 튀겨지는 요리가 아니라 다시 데운 음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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