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SIMULACRES et SIMULATION》은 출장 기간 붙들고 있었던 사념이었다. 조각조각 나버린 문장 속에서 시간과 공간, 사물의 정의와 표면적 현상들, 죽음과 실재, 공상과 허구, 관념과 행위에 대해 생각하다가 다른 길로 새어버리는 상상을 붙잡지 못하는 경험이 반복되었다. 흩어진 이미지를 구축함에 있어서 자신만의 관점과 해석이 필요하여 이미 길을 떠났던 니힐리즘(Nihilism)을 소환하면서 보드리야르의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이미지는 실재의 반영이다. 이미지는 실재를 감추고 변질시킨다. 이미지는 실재의 부재를 감춘다. 이미지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어떠한 실재와도 무관하다. 이것이 바로 지시 대상도 테두리도 없는 끝없는 시뮬라시옹의 순환 속 시뮬라크르이다. 무언가를 감추는 것으로부터 아무것도 없음을 감추는 것으로의 결정적인 전환이 시작된다."
이미지와 실재, 본질, 본성과 진실에 관해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내거나 현상을 분석하고 발견해 내는 작업은 존재가 위치한 시간과 공간에 대해 재고를 거듭하게 한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은 관념이며,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재한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존재란 생성과 동시에 자기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질서가 파생되고 무질서와 질서에 대해 도덕적 규칙을 부가한 사회는 비정형의 의식까지 조절한다. 시뮬라크르를 따라 하는 행위적 시뮬라시옹의 세계는 스스로 이미지를 생성하고 가상의 행위에 몰입하는 시뮬라크르의 자전을 따라가며, 가지고 있음의 부재적 현상으로 신성한 비지시성에 몰두한다.
근대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문학과 예술, 과학, 영화는 자기 자신을 기술하기 시작했다. 외부로부터의 지시된 주제는 그 주체적 대상에서 멀어져 있음을 인식한 이래, 내적순환에 의해 독립적으로 변모했고 특수한 언어를 사용하여 자율성에 집중하였으며, 하나의 어휘에서 자기 내부로 기술되어 가는 형태로 회귀되고 있다. 환상과 공상이 가득한 유희의 가상 세계를 현실에 건설한 디즈니랜드에서 다양함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키고 잡동사니들의 나열 속에서 실제 허구의 저지기계에 매달린 인간들은 극단적인 기호와 정보코드로 전환되는 함열과 쇠퇴로 접어든다. 동시에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제시하는 해답에 의지하여 지식을 뽐내며 그들이 그린 그림에 상상을 덧댄다. 자신을 재현하는 실재로서 열정적인 유희와 죽은 시간을 육감적인 수사로 설명하던지 혹은 조작적인 시나리오로 만들던지 간에 곧 의미 없는 영화적 시대에서 기하학적인 종합기계의 단위로 접어든다. 환영의 부활 속에 스스로를 상실하는 영화의 모습은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차이가 없다. 피곤하게 직접 그림을 그리고 순간의 장면을 찍으며 회상을 통해 스스로를 설명하는 일은 대중적 생산의 빠른 길을 선택한 타인과 동일한 행보를 거부하는 시간역행인 셈이다. 시뮬라크르의 미혹 속에서 시스템의 권력이 행사하는 무감각한 냉소를 지닌 사회적인 것들의 종말은 실재가 없이 만들어진 실재에 불과하며, 우리는 실제가 없는 허구 속에서 살고 있다.
“학살의 망각도 학살의 일부이다. 왜냐하면 학살의 망각은 또한 기억의 학살이며, 역사의 학살이고, 사회적인 것 등의 학살이기 때문이다.”
차이나 신드롬과 홀로코스트, 하리스버어그, 워터게이트와 네트워크는 모두 기호와 이미지 모형에 근거한 파생 실재이며 사건을 자극하는 잠재성에 미혹된 시뮬라크르들의 논리는 총칭적이고 보편적인 저지 기획의 전략적 원동력인 핵적 재난의 시뮬라시옹으로 변화한다. 정보는 담을 수 없이 가득하지만 실질적 의미는 적은 세계에서 의미를 연출하는 정보의 소진은 매체가 자기 메시지가 되면서 스스로 종말을 선언한다. 오늘날 체계의 명령은 의미와 말의 재상산과 과잉생산이다. 광고양식 속으로 잠재적인 모든 표현양식들이 흡수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잉발달한 특수한 광기에 사로잡힌다. 인간의 영혼이라든지 그림자, 거울 속의 이미지처럼 망령처럼 붙어 다니는 상상적인 형상은 동일 증식에서 비껴간 뒤틀려지고 변형된 자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보는 유혹적이고 치명적인 이미지가 된다.
나르시스가 살아 있는 입체영상적인 분신이 자신을 대체하는 상황은 우리 스스로가 현재에 존재하지 않으며 동일 증식된 인간이 완벽한 이미지로서 상상이 종말이 되는 시뮬라시옹의 추상적인 시뮬라크르로 간주된다. AI를 통한 상상의 확장은 인간의 죽음을 연장시키는 동시에 기계적인 충돌과 마찰 속에서 욕망의 인위적인 구멍들과 행위가 교차되며 상징적 교환의 은유적인 기능으로 대체되어 간다. 이미지, 모방, 위조 위에 세워진 시뮬라크르의 질서는 공상과학을 통해 거리감을 확연히 좁혀간다. 초월과 투영은 함열과 쇠퇴 속에서 실재에 대한 상상을 구성하지 않으며 광택이 사라진 형상으로 외향성을 상실하여 거울의 다른 편으로 갈 수 없게 존재를 고정시킨다. 사육하는 동물들의 심리적인 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공간의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동물과 다름없는 인간들의 관계는 심리학과 사회학과 성을 분석하면서 정신적 질환이 심리 질환에서 나아가 신체 질환으로 바뀐 운명과 동일시되어가고 있다. 미친 사람들의 침묵은 동물들의 저항과도 같이 무의식과 의식의 효과 저 너머에서 간단한 질문조차 봉쇄한다.
"탄생은, 만약 새로운 시작에 의하여 상징적으로 다시 취해지지 않으면 폐기물과 같은 것이다.
죽음은, 만약 장례 속에서, 장례의 집단적인 축제 속에서 해소되지 않으면 폐기물과 같은 것이다.
가치는, 만약 교환의 원 속에서 흡수되지 않고 기화되지 않으면, 폐기물과 같은 것이다.
성은, 성적 관계의 생산이 될 때 폐기물과 같은 것이다.
사회적인 것 그 자체도, 사회관계의 생산이 될 때, 폐기물과 같은 것이다.
모든 실재는 폐기물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모든 폐기물과 같은 것은 끝없이 환상 속에서 다시 반복되도록 운명 지워져 있다."
혁명의 환상은 정치적인 관계 속에서 이 세계에 대한 도전과 유혹, 죽음의 관계를 드러낸다. 사막과 시뮬라크르의 현기증 나는 유혹의 갈증은 죽음이라는 자기 부정성을 흡수하여 제거해 버렸기 때문에 우리를 영원히 산 채로 보존한다.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들의 형이상상학(Pataphysics)만이 시스템의 시뮬라시옹 전략으로부터, 시스템이 우리를 가둔 죽음의 막다른 골목으로부터 우리를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아무것도 자기가 있을 자리에 없는 곳, 이것은 무질서
아무것도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없는 그곳, 이것은 질서 : 브레히트"
허무주의자로서의 장 보드리야르가 유토피아를 꿈꾼다면 의미의 함열과 에너지가 막다른 골목에서 무기력한 운명과 정지된 형태들이 증식하는 세계 또한 사라지는 사막적이고 불안정하며 극적인 예견보다 더 단순한 소멸이 도래하는 그곳일 것이다. 패권적인 체계에서 죽음조차도 다시 부재되는, 결과 없는 사건의 시대에서 조작된 실체의 허구를 파악하고 허무가 완전한 죽음이 아님을 알아차리는 니힐리즘의 복층적인 계산은 사회적 현상을 독립적으로 보고 현재를 주입하는 사회의 음성이 아닌 가치 없는 세상을 가치 있게 파악할 시뮬라크르적인 실재를 형성하게 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