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하면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물었던 것은 내가 직접 디자인을 하는지였다. 사회적인 위치와 직업적인 매칭에 대한 의문들, 언어의 표현 상태, 화려하기보다는 검은색의 옷만 줄기차게 입는 무채색의 냉소적 이미지, 살뜰한 아첨 한마디 없는 직설적인 말투. 일반적인 사고로 봤을 땐 나는 그들이 흔히 알고 있던 패션 디자이너는 아니었다. 사근거리는 맛도 없고 화려함도 없고 매사가 시니컬하고 옷이나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잘 꺼내지 않고 개인적인 이상과 미래의 꿈을 늘어놓는 사회 비판적인 디자이너는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정말 그림을 그리는지, 바느질은 하는지, 가위질은 하는지, 외국어는 하는지, 숫자는 셀 수 있는지, 외국에서 공부했는지, 혼자 하는 건지, 사람들한테 시키는 건지, 결혼은 한 건지, 어디 사는지, 사업은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건지, 뭐 그런 사소한 질문들을 들으며 왜 그런 쓸데없는 것들을 타인에게 공개하면서 신뢰를 얻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시콜콜한 사생활과 잡기들을 밝혀가며 사회적 지위와 평가를 얻은 들 그것이 현재의 감정과 발전적 태도에 어떠한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대충 둘러대곤 돈을 어떻게 벌지 고민을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돈을 버는 것에는 소질이 없다. 처음 회사를 열었을 때도 디자인을 하고선 어떻게 작품을 팔지 고민한 뒤 종이에다 몇 가지판매를 고무시키는 글을 적어보았다.
스님한테 빗을 팔고
북극에서 냉장고를 팔고
아프리카에서 난로를 판다.
역설의 마케팅은 모순되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메시지나 정상적인 조건이 상실되는 접근을 통해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하여 판매를 기획하는 역발상 전략인데, 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공략하기로 했다. 별나라 생각에 독특한 것을 찾아다니며 직접 돈을 버는 경험을 가진 소위 자립형 사람들. 나란 인간은 어떤 포인트에서 돈을 쓰는가. 고객들하고 부딪히면서 그들의 반복된 이야기는 한결같았다.
"자긴 판매는 꽝인 거 같아."
"어쩌면 다른 사람처럼 팔 의지가 없어?"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고. 그래서 신뢰가 가."
결론을 들으면 이건 무슨 말인가, 카드 단말기로 계산을 하면서도 생각해야 했다. 처음부터 나의 옷들은 고가로 팔렸다. 고(故) 앙드레 김 선생님이 국회청문회에서 옷로비 사건의 증인으로 섰다가 애꿎은 김봉남이란 실명이 화제가 되고 고가 옷을 만들어 팔았다고 사죄하는 전 국민 코미디 프로가 펼쳐졌듯이, 옷이든 가방이든 가구든 자동차든 집이든 비행기든 우주선이든 제작자가 작품을 만들어서 고객에게 직접 팔고서 값어치의 돈을 회수할 수 있으면 그때부터 명품 타이틀을 얻는다. 아무런 연고와 알려진 이름도 없는데, 기회를 얻게 된 백화점 전시장에서 고객들이 천만 원짜리를 샀다. 그 이후에는 나의 손길이 들어간 디자인 제품들은 다른 업체의 사람들 것보다 두 세 배 이상은 받았다.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딜을 해서 샀고, 몇 천만 원을 넘어 억을 넘는 디자인도 주문받았다.
VIP들이 몰려들자 백화점에선 브랜드 규모를 늘리고 확장을 하라고 권했다. 한 번씩 불거지는 처리할 일들에 시간이 안 돼서 거절했다. 보통 기회를 잡기 위해 사람들은 노력하지만, 나에게 작품의 복제를 실행하는 외형적인 확장은 새로운 세계를 여는 기회의 의미는 아니었다. 맞춤형 DIY와도 비슷한 비스포크(BESPOKE) 디자인 개념이 한창 유행이었을 때, 프리오더는 확실히 사람들에게 권위를 거들먹거릴 수 있도록 매력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 디자이너를 하수처럼 부리면서 자유롭게 지시하고 제작한다는 개념은 듣기에도 그럴싸하다.
사업 확장을 거절하면서 나의 판매방식은 다른 브랜드에 알려졌고 그들도 모방하기 시작했다. 사전주문제작방식(MTO: Making to Order)인 <프리오더 PRE-ORDER>는 2013년 한국에서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해외바이어에게 대량 주문받는 오더시트를 변용해서 일반고객에게 적용하여 사용하다가, 2017년 2월 처음 백화점 내에서 마케팅 문구로 사용했다. 그때 큰 건을 몇 차례 수주받고 나니, 몇 달 뒤에 갑자기 백화점 내에서 프리오더 붐이 불었다. 당시에 내가 만들어낸 프리오더 개념은 대중적인 브랜드에서 일반인에게 적용하긴 무리가 있다.<주문자상표 부착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방식은 내 경험의 일부를 사용하였고, <생산자 개발방식 ODM·Original Design Manufacturing> 방식은 내 재능의 일부를 사용하였다. ODM과 OEM, 이 둘을 혼재한 프리오더(Pre-Order)는 제작자가 제품의 개발과 생산을 책임지고 만드는 방식인데, 고객과 디자이너의 인터렉티브 소통을 꿈꾸던 나는 이 둘의 복합적 개념을 프리오더(Pre-Order)로 명명했다. 거기에 난 고객한테 원하는 디자인을 자유롭게 주문해 보라고 한 뒤 가격은 옥션에서 이뤄지는 경매방식으로 '가격미정'으로 붙여놓았다.
진정한 <프리오더 Pre-Order>는 상대방의 주문을 실행하고 설계하는 디자이너가 현장에서 고객의 요구사항을 듣고 이를 해석해서 창조적인 변형 및 제작을 해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방식이 정착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전문 창작 인력이 부족한 일반 기업에선 디자인 개발이나 투자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실행이 불가능하며, 분할된 조직의 대기업 시스템에서는 고가의 창의적인 인력을 내부에 두기 어려운 상황에서 판매는 판매자가, 디자인은 디자이너라는 단선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로 섬세한 개인들의 요구를 실행하기란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얼마를 주고서 그들이 자신의 일처럼 남이 요구하는 사항을 실행하고 만족시킬 수 있을까? 나처럼 해외바이어와의 무역거래 및 회계정리, 제작팀들과 셀계기획, 오더지시 및 제작실행을 원스탑 시스템으로 만들어 본 디자이너는 한국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에서의 디자이너의 역할은 프로덕트 디자이너, 즉, 제품을 디자인하기보단 기존에 제시된 디자인을 경영적 논리에 따라 판매하기 위해 외주 생산지의 공장에서 실행하는 역할을 하는 정도에 머무른다. 디자인 개발비용에 들어갈 비용은 제품구매 및 생산하는 소싱인력에 투자를 하여 판매 효율을 높이고 경영의 활성화나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요즘 경영진들의 발상이다. 또한 판매원은 판매원, 개발자는 개발자, 회계부는 회계부, 경영자는 경영자, 디자이너는 디자이너 이렇게 분리된 시스템 사회에서 유기적인 연결을 이뤄내는 업체는 없다. 따라서 옷을 이해하지 못하는 판매자, 혹은 판매에 집중된 브랜드 매니저가 주문받는 옷을 어떻게 디자이너가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오더에 대한 개념을 실행하기 어려운 상품소싱 관리자가 어떻게 옷을 제대로 만들어내겠는가?
나는 지금까지 오더를 받으면 고객과의 충분한 면담을 거친 뒤 한 땀 한 땀 까지는 아니어도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냈다. <프리오더>는 고객에게 돈을 미리 받고서 몇 달 뒤 상품을 내보낼 때 그 제품이 기대와 같을 거라는 신뢰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수선 정도의 수준에서 머문, 혹은 주문자의 의도를 적은 판매자와 생산자가 일치하지 않은 고가의 상품들은 모두 미끄러졌다. 도산하거나 사채에 물려 사라진 업체도 있다. 몇 번 프리오더로 돈을 미리 받았다가 물건이 나가지 못해서 크게 혼난 업체들은 프리오더의 본질을 바꿔서 아예 쓰지 않거나, 일반적인 마케팅 개념으로 변경해서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고가 상품 조닝에서 프리오더를 받는 제품은 현존하는 디자인을 변경 없이 그대로 만드는 수준의 소위 명품브랜드의 스테디셀러 제품에서만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아니면, 대기업 자본이 들어간 업체들의 저가 상품에서 웨이팅과 같은 개념의 <프리오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엉뚱하고 변덕이 심한 나는 누가 따라 하든지 말든지 자립적인 생활을 위해 돈을 벌긴 해야 했는데, 또한 돈만 따라가면 안 되는 경계성 발작장애가 있어서 먹고 살 정도만 작업을 했다. 잘 될 땐 함께 오래 작업했던 외국 친구들이 자신들의 브랜드를 한국에 풀어달라고 했다. 시간이 없기도 했고, 만드는 능력은 있지만 남의 것을 하느니 내 것을 하자는 주의라 모두 거절했다. 디자인 팁을 주면서 친구들은 도와줄 수 있는데, 그들의 브랜드 세계관은 연구할 시간이 없고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형태를 만들어야 하는 부담감이 어렵다. 돈에 대한 열망은 아주 많지만, 돈을 따라가면 안 되는 생활을 알기 때문에 그런 모순적인 감정이 일을 하는데 장애적인 요소로 단단히 뿌리내렸다. 마음 내킬 때만 일하는 까다로운 성격으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판매시기가 끝나면 한두 달은 생각할 시간이 생겼지만, 그냥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할지 고민되었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는 짧은 편이다. 단발성으로 끊기는 삶의 간섭 때문에 순간적인 아이디어로 연결되는 스케치적인 디자인에서 생활을 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원할까? 왜 그들은 예술을 원할까? 1억을 벌면, 그다음은 10억을 벌고, 그다음은 100억을 벌고, 그다음은 1000억을 번다. 그리고 부유해진 나는 돈을 쓰면서 나 자신을 물질세계로 가득 채우고 가난하게 살았던 날들을 비웃듯이 화려하게 치장한다. 그러면 나의 젊음과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힘들게 투자했던 시간은, 지금의 나에게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인가? 일에 매몰되어 스스로에 대한 고찰이 없었던 시간을 채우기 위해 돈을 가진 자들은 다시 예술에 몰입한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 속에서 작가의 아픔을 사고 작가의 눈물을 사며 작가의 선혈에 자신을 투영하는 것이다. 곧바로 금전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음에도 내가 선뜻 그 길로 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 생활에 몰입을 하고 난 뒤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람들을 봤기 때문이다. 나의 성향상 돌아올 수 있을까? 타인의 늪에서도 자각을 가진 내가 망각의 그들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시간과 정신을 쏟느라 방황하고 힘들었는데 나만의 늪일 때는 누가 나를 건져낼 것인가? 나는 알 수 없다.
유사함의 비동질성은 누구나에게 다른 삶의 강도와 다양성을 의미한다. 보이는 글자, 보이는 모습, 보이는 형태는 유사해 보일지 몰라도 보이지 않는 내부의 세계는 다르다. 그 안까지 꿰뚫고 파고드는 사람은 드물다. 한 곳에 머물러 나를 볼 수 있었던 아이러니한 젊은 시절의 경험 덕택에 누구보다도 늦은 나이에 나를 다시 보고 있다. 깊은 동굴 속으로 탐험을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직은 그곳을 향해 가는데 두려움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