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SONG TO A FRIEND

친구에게

by CHRIS
[SIMPLE SONG TO A FRIEND] PHOTOGRAPH by CHRIS


시로 만나 본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는 날카로움 속에서도 부드러움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푸른 잎새처럼 곧게 살아가며 스쳐가는 바람처럼 마음이 따스한 사람. 밤하늘 별처럼 정히 굽어볼 줄 알고 폭력과 유혹 앞에선 의연한 사람. 거친 삶의 벌판에서 한 마리 사슴처럼 청순한 마음으로 살아가며 삶의 굴레에서 비굴하지 않고 평화로운 얼굴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 척박한 땅 위에서도 이런 한가로운 마음을 가진 이들도 있을까? 소박하지만 제 갈길 묵묵히 가는 사람 곁에 있다면 그 온화한 미소를 받은 하루는 참으로 따뜻할 것이다. 다시 양껏 숨을 쉬게 된다면 이런 사람이 되고프다. 친구에게 투정 어린 속내를 전한다.



달빛 받은 몸이 푸르도록 시리고 까맣게 퇴색한 하늘이 그물 어진 밤이다. 화살이 되어 흐르는 인생을 내가 어찌 잡을 수 있겠어. 날카롭지 않은 눈에서 빗긴 흐름은 애석하진 않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이 마음도 갈무리해 보자고 다듬질해 보았건만 기대를 저버렸던 지난 시간, 매번 새로운 마음으로 도량석을 밟아 보아도 어리석게 떠나갔던 사람들의 마음만은 돌리지 못하였다. 길게 봐서 삶의 말미에 두 다리 퍼지르고 앉으면은 잃고 얻은 것, 이루고 놓친 것, 모두가 의미 없겠지. 진지하게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을 거라며 위로해 봐도 남들의 슬픈 사연은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고 튼튼하고 용감했던 심장은 둔탁한 노랫소리로 싸움에 지친 짐승의 울음을 낸 지 어언 십 년이 넘었다. 인생의 한 토막, 가슴을 꿰뚫었던 정적과 침묵은 성난 파도보다 음울하게 먹구름을 뿌려대더군. 담벼락에 지친 몸을 기대며 내뿜던 불평들은 야트막하게 내리쬔 태양에도 눈이 시리다고 고함질렀다. 모든 사람의 운명에 얼마의 비는 내린다 해도 어찌하여 나의 처마엔 이토록 장대비가 그치지 않는가. 한 포기 풀 속에 사랑을 품었던 아이는 봄의 한숨을 받았다고 하던데 땅거미는 어느덧 산을 넘어가고 하루 내 풀무질을 끝낸 귀가에는 행복도 야단맞은 양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이제는 어찌하면 좋을까? 내년 또한, 그리고 그다음 해 또한, 헛수고가 될지 몰라서 더 이상의 인생계획은 세우지 않기로 했다. 그저 깊게 잠이 들 때까지 지금을 살아갈 뿐이다. 쾌히 웃으며 다시 볼 날까지 잠시 눈 감도록 하지. 그대는 이번 해를 접고 새해엔 어떤 꿈을 꾸는가?


친구에게, 롱펠로우

하루는 또 저물고, 어둠은 다시 밤의 날개를 타고 내리는데,
마음의 등불들은 비와 안개를 헤치고 밝아오누나.
이 슬픔과 괴로움은 어인 것인가.

나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다오, 친구여
자리를 잡지 못해서 방황하는 영혼을 잠재워주고,
하루의 악몽을 몰아낼 수 있는 소박한 노래를 불러다오.
결코 시대의 위대한 시인이나,
거룩한 이름을 남긴 대가들의 노래만은 들려주지 말아 다오.
왜냐하면 대가들의 위대한 업적들은 마치 군대의 행진곡처럼
인생의 끊임없는 노력과 피나는 고통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지.

오늘 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소박한 휴식
나에게 들려다오, 좀 더 소박한 노래를.
여름의 구름 사이에서 소나기가 내리고 눈에서 눈물이 솟듯이,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솟아 나온 그런 소박한 노래
이런 노래는, 나와 같이 근심 걱정이 많은 사람들의
잠 안 오는 밤을 쓰다듬어 잠들게 해주는 힘이 있다네.
기도를 올린 후 찾아오는 신의 은총과도 같이.


한 순간의 해일에 모든 게 떠내려가 버린 남쪽나라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한꺼번에 악몽이 밀어닥칠 때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한동안 스스로 해결하긴 불가능하다. 고통의 시간에 부르는 노래는 서글프나 언젠가 모든 이에게도 소박한 휴식이 내려앉을 것이다. 그들에게 의미가 넘치는 쉼이 가득한 날이 오기를, 그리고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길 바란다. 모든 것을 시간이 해결해 주진 않는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불가능한 일도 있기에 미래에 대한 소망과 희망 같은 바람도 생겼을 것이다. 연말이라 그런지 기억하는 것과 지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이 이야기도 세 번째인데, 돌리다가 자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자동 테이프가 된다. 그렇지만 반복해서 들었던 신화라도 언젠가는 잊을지 모르니까 기록으로 남겨본다.



스틱스(Styx) 강으로 내려온 한 여인에게 저승의 뱃사공 차론(Charon)이 배를 저어왔다. 어둠의 사제는 죽음을 침착하게 맞은 그녀를 태우고는 물병을 하나 건네며 말했다.


"이 물을 마시면 살면서 겪은 고통스러운 일들을 모두 다 잊을 수 있네."


여인은 슬프고 괴로웠던 기억을 잊을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고 물병에 손을 댔다. 순간, 차론은 덧붙였다.


"고생스러운 기억을 잊기 원한다면 밧줄처럼 매여있는 행복한 기억도 사라지게 됨을 명심하게."


여인은 물병을 내려놓고 힘들고 아프고 사랑을 주고받았던 모든 기억을 태운 채로 망각의 강 위를 흘러갔다.


상처와 사랑, 슬픔과 기쁨은 분리되기 어려운 샴쌍둥이처럼 가슴에 새겨진다. 자주 듣고 보았던 이야기여도 들을 때마다 꼭 처음 알게 된 것처럼 마음 한쪽이 저민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망각의 물을 마시고 말았을까? 아니면 기억을 쓸어안고서 지나갔을까? 쉽게 물병을 받아 든 사람은 모든 것을 잊고 신이 정해준 위치로 새로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운이 나쁘면 아주 비참한 모양새로. 하지만 그만큼 뜨거운 사랑을 느낄 상태로 원점에서 인생을 시작한다. 그리고 물병을 거절한 이는 지우지 못한 겁을 안고 내세에 태어날지 아닐지를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권리만큼 커다란 힘은 없을 것이다. 같은 원점이라 해도 모두와 똑같은 출발선은 아닐 것이라서 망각과 기억의 선택에 관해 하루종일 고민했다.


2004. 12. 28. TUESDAY




소리는 묵음인 채 자막이 가득한 뉴스가 한쪽에서 흘러나오고 밝게 웃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연말이다. 죽음을 엄숙하게 받아들였던 어렸을 때 장례식장에서 제삿밥을 먹는 게 죄스러웠다. 숨이 끊어지고 갑자기 정지되어 버린 관계 앞에서 곡소리와 슬픔이 공기 중에 가득한데 웃는 것은 당연히 예의가 없고 목마르다고 물도 마시는 것도 안 되는 것이며 더군다나 배가 고프다고 밥을 먹는다니 기초적인 대사와 감정에 끌려다니는 사랑과 존경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까이 있던 사람을 떠나보내기 위해 얼굴이 발그레질 때까지 술을 마시고 푹 쪄낸 고기도 먹고 주정을 부리며 울고 웃다가 허기지다고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시퍼렇게 누워있는 과거를 딛고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선 평소처럼 일을 지속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일이 필수적임을 알게 되었다. 언제나처럼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많은 것들이 예전과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책임 있는 어른들이 할 일은 믿을 수 없는 신념을 향해 모두가 나락으로 떨어져도 좋다고 종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수습하고 오판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여서 어제의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망각과 기억의 선택 속에서 고통스럽더라도 모든 것이 혼재된 기억을 지속하기로 했다. 삶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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