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XANDER, WHAT IS A DREAM?

<알렉산더> 전설이 된 꿈. 꿈은 무엇일까?

by CHRIS
ALEXANDER THE GREAT, 2004


꿈을 쫓는 이여!
거친 야만과 뜨거운 야망의 분열,

지상의 몸을 빌어 고귀한 혈통을 잉태하였으니
천상의 神 제우스는 독수리의 비상과 함께

문명의 시작점에 눈부신 황금깃발을 던졌다.

뱀의 살갗이 물로 변할 때

질긴 네 어미의 기다란 혀,
포효하는 아버지의 허벅다리를 물었고
배꼽을 지나 심장을 관통한 뒤 태양신의 머리로 파고들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수십만 사람들의 피는
끝도 없는 포보스 강을 따라 떠돌았네.
전설의 바빌론 탑을 무너뜨렸다가
고산의 메마른 서식지대를 넘어
해 뜨는 고향에서 장렬한 피를 토해낸 푸른 혈관.
울어대는 대지의 칼부림으로,
바람을 닮은 명마의 그림자로,
폭풍으로 변한 먼지의 손짓으로,
세계에다 한 점 지도를 펼친 젊은 장수의 원대한 꿈은
이민족 통일에서 위대한 왕의 웃음을 지었구나.
그러나 미소는 짧다, 형제여!
사랑했던 친구가 열병 걸린 손으로
너의 발목을 잡은 순간
여린 아킬레스건은
오래된 약속처럼 붉은 반점을 온몸에 뿌려대었다.
불사의 꿈은 천상으로 날아가지 못한 채
깊은 계곡을 향해 고개를 떨구네.
심장을 질렀던 태양은 커다란 눈물을 흘린다.
너의 꿈은 두려움을 부르고
나의 암묵적인 동조로 지펴진 불은 서서히 꺼져간다.
재로 화했다가 바람에 날리길 수 천년,
이름 모를 자리에 홀로 서서 너의 목소리를 낸다.
모든 꿈이 경계선을 지울 때까지.


역사는 꿈을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꿈! 그 광활한 믿음을 향해 달려가기엔 우리의 발걸음은 허무하다. 투철한 신념으로 세상을 휘저은 오합지졸의 꿈. 그들이 벌인 철없는 짓을 해결하러 방구석에 처박힌 작은 꿈. 꿈을 던지느냐 마느냐, 내 어머니 바다와 거리를 두는 벼랑에서 긴 시간을 보냈던 나로선 신화를 역사로 만들기 위해 대지를 누볐던 위대한 젊은이의 행로가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알렉산더, 운명의 포장을 푸는 슬픈 눈의 그를 보면서 초라한 나폴레옹이 떠오른 건 왜일까. 서른세 살의 나이에 세상을 휩쓴 젊은이를 바라보며 짧고 굵게 사는 것이 미덕으로 느껴지던 어린 날의 치기가 초라해졌다. 숫자로 치부할 수 없는 과거의 짧은 실선을 따라가며 생명의 줄을 늘려본다고 해도 현 자리에서 나의 꿈을 밟는다 한들 현세의 만족에서 그칠지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금요일 주말 심야영화,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 Alexander the Great>는 어릴 적 즐겨보았던 신화를 들추었다. 이젠 단맛을 포기한 어른이 된 것일까? 아니면 염세주의 철학의 탈을 뒤집어쓴 것일까? 관객이 별로 없어 로마의 귀족이 된 양, 옆 자리에 온몸을 누여가며 정복자의 말을 탔는데 비스듬히 누운 한 조각의 행복을 찾을 수 없게 비극의 통한이 두 눈을 통해 들어왔다가 심장에 머물렀다. 이미 사라져 버린 한 위인의 전기(傳記)를 어떻게 그리냐에 따라 지속자의 감상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고민을 들추어내는 감독은 내부와 외부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삶의 질문을 던진다.


"운명으로 덧칠한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태어났으며 어떻게 인생을 엮어가는가."
"사람들이 품은 꿈이 서로 간에 상치된다면 그 여정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한 인간이 역사에 묻히면 모호했던 꿈은 고통을 함께 했던 사람들의 가슴에선 살아남지만 육신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생명은 빨리 식고 적당하게 달궜던 평범한 생은 길게 이어진다. 이해할 수 없는 인간사는 행위의 도덕적 관점에서 보는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존재 속에 비존재를 인정하는 당위의 실행적인 문제에 놓여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삶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

역사가 장엄하면 장엄할수록 생은 비극을 그리고 피의 웃음조차도 허공에 강렬하게 뿌려진다. 그런데 피로 얼룩진 꿈, 그것이 역사에 뜨겁게 기록되거나 사람들의 입에 칭송과 비판의 주제가 되어 회자된다면, 또한 너나 나나 그 오판을 닮아가려 지나간 이름을 부르짖는다면 나 또한 역사에 기록되기 위해 나를 찔러댔던 창을 들고 내 옆구리를 관통했던 총을 뽑아야 하는가! 그건 어떤 의미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가? 그리고 왜 난 이 현상을 보면서 깊은 회의를 감출 수 없는가. 거대한 꿈이 가벼운 풍선과 같은 무게임에도 커다란 삶의 무게로 인식하며 힘겹게 잡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2005. 1. 15. SATURDAY




행사를 뛰는 내내 감기 기운에 목은 걸걸하게 쉬어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가 가득한 가운데 한 해가 바뀐 것을 감지하지 못하게 담담한 하루를 맞았다. 올해만큼 새해 인사의 반응도가 뜨거웠던 적이 없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아무도 전하지 않는 덕담. 차갑고 푸른 경계의 비늘이 사방에 오싹하게 깔려있다.


아무리 값 비싸고 좋은 물건이라도 쓰이지 않으면 썩어버린다. 사물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계속해서 사용하고 쓰임을 다해야 그 의미를 가진다. 자신의 쓰임을 알아 세상에 잘 쓰이도록 살아가라는 말씀을 듣고서 이틀 전 유심히 보았던, "단 한 권의 책 밖에 읽은 적이 없는 자를 경계하라"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경직된 사고를 답습하는 체제에서 옳고 그름에 대한 시비를 다투다 보면 결론은 한 길 밖에 없다. 하나의 생존을 위한 다른 하나의 사멸이다. 역사를 통해 한 인간을 세상의 입맛에 맞게 포장했던 위인들의 삶에 관한 동경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꿈을 쫓고 꿈을 먹고 꿈을 향해 살아가는 인간에게 꿈은 어떤 의미가 될까?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숫자가 눈앞을 채우고 있다. 조용히 가려두었던 기억의 시간 또한 나이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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