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 Apr 13. 2024

SIDEWAYS

인생의 삐딱선을 타고

[SIDEWAYS: RIDING THE CROOKED LINE OF LIFE] 2024. 4. 13. PROCREATE IPAD. DRAWING by CHRIS


똑똑. 똑똑. 똑똑똑똑.

“제길.”

똑똑. 똑똑똑.
부스럭부스럭
끼익ㅡ
“미안하지만 댁의 차가 진입로를 가로막고 있어서, 차 좀 빼주시겠소?”

ZZZZZZZZZ_Z___크르릉__
따르릉. 따르릉. 따르르르릉. 찰칵.

“으으응. 어... 엉? 그럼! 벌써 일어났지! 당연히 준비 끝났지. 아? 지금 문 밖으로 나가려던 참이었어. 음흐흠. 아니라니깐. 알겠다구. 제시간에 도착할 거야. 걱정 마. 그-으래. 잠시만 기다려. 거기서 보자.”


전화기를 내려놓고 일어선 부시시맨의 다리가 꼬인다. 휘청. 꿈틀꿈틀거리며 화장실로 기어들어간다. 변기에 쭈그리고 책을 읽는다. 샤워와 면도를 한 뒤에 앙--- 양치질을 보글보글. 치실로 건더기청소. 침대에 앉아 책을 읽는다. 종이에다 이것저것 메모를 하고, 가방에다 옷가지와 집어넣는다. 두리번. 읏차! 구석에 놓인 박스를 든다. 오렌지 나인티(Orange Ninety)에서 도넛과 커피를, 가판대에서 신문을 한 장 산다. 차 안이다. 빵을 우물우물 거리며 핸들 위에다 신문을 올려놓고는 크로스워드(Crossword)를 푼다. 글적. 글적. 룰루. 해가 떴네. 컨버터블의 날개를 내린다. 핸들을 돌린다. 뿌으응. 뿌응으으응- 헉. 핸드폰에 불났네.


“... 반 정도는 왔다. 그래, 그래. 알았어.. 그래, 그래, 그래! 솔직하게 불면 어제 와인 시음회에 갔다 온 이후로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르겠다. 새벽부터 띵한 상태로 차를 빼고. 와인? 피노.. 헤헤. 죽였지. 좋은 소식 알려줄까? 짜잔! 지금 한 박스 뒤에 실려있어. 우하하. 그렇지. 피노는 맛부터 말이야...”


“어서 와요. 기다리고 있어요.”

거실에 사람들이 떼거지로 몰려 있네. 저 도끼짝 같은 눈들 봐.


“제가 늦었지요? 영.. 미안해서..”

들어서는데 손이 비비 꼬일 건 뭐람. 눈치 보긴 쪽팔리다니깐.


“저, 어제 자르고 남은 케이크가 있는데 잠시 드시고 가시겠어요?”

출출한데 당근이쥐, 먹는 게 속 편해.


“어제 술 퍼먹었다며? 너는..

짜식, 좀 늦었다고 불어있군 그래. 애인은 친절하구먼 퉁명스럽긴.


“오.. 맛이 아주 풍부하군요.”

냠냠. 숙취 뒤에 먹는 달콤한 빵 맛 거 죽이네. 하나 더 먹을까?


“이것도 드셔보세요. 그런데 이번 소설 출판하시기로 했다면서요?”

여기에 와인 한잔 곁들이면-


“아, 흥미롭구먼. 그렇다면 이번 것은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또롱 또롱. 지금 뭔 토론 중인가?


“자네 말일세. 대단하구먼. 일하랴 글 쓰랴 소설까지 내고.”

대단? 흠. 나?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아하, 아? 픽션입니다. 아니 달리 말하면 논픽션이 가미된 픽션이랄까요? 하하하..”

꼬이는군. 블라 블라 블라... 다들 소설가들 납시셨구먼. 소설 낼지도 안 낼지도 모를 판국에 염장 지르나?


“이보게. 근데 난 논픽션이 좋아. 현실적이고 배울게 많거든. 허구를 읽는 건 시간낭비야.”

컥!



주말이 열리는 금요일. 총각 아닌, 노땅 남정네들의 굼뜨고 철없는 일주일간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름만 작가이며 와인애호가이자 소심하고 냉소적인 영어교사는 포도주라면 붉던 희던 만사 오케이, OK이다. 일주일 뒤 결혼 앞둔 성욕 한번 대단한 무식 과감 배우는 무르익던 시던 여자라면 사족을 못쓴다. 엄마 생일날 서랍 뒤져 돈을 충당하는 꿀꿀한 녀석. 와인 마시며 껌 씹는 와인 쥐뿔 모르는 녀석. 치마 두른 여자만 보면 아랫도리가 불끈 솟는 놈과 쳐진 물건에 기름을 쳐야 될 놈이 붙어 다니니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포도원으로 들어가서 야외 시음을 한대도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빛나리는 삐딱한 세상에서 우울보다 깊은 사랑에 허우적댄다. 본능 빼면 시체인 연기자는 어떤가? 여행에서 만난 섹시한 동양여자에게 정착할 것처럼 배우 때려치우고 포도농장을 차린다며 얼렀지만 와인은 이해하면서 친구 성욕 이해하지 못하냐고 툴툴대던 배우는 결국 평생의 족쇄를 차고 만다. 거짓 관계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던 여자가 발가락 잡고 어제의 내일인 오늘에 자신을 깨워보지만 책 내고 자살하던 책을 내기 전에 자살을 하던 출판 못한 작가는 바다로 흘러간 똥 묻은 휴지신세. 평소보다 더 빈번해진 음주와 불장난 같은 사랑으로 마감한 7일간의 천지창조, 변한 건 무엇일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행을 가려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 된다니까요. 친구 녀석들 하고 가면 꼭 술판이 되더군요. 일단 여행을 시작한다고 합시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저녁 무렵이 되고 밥 먹자며 나갔다가 대포 한잔을 걸치게 되죠. 그러다 한 병이 두 세 병 늘고, 다음날 늦잠입니다. 정오가 돼서 부은 얼굴로 출발을 합니다. 오후쯤 목적지에 도착하나 볼 곳은 문 닫을 시각이고 배는 출출하니 밥을 먹어야 합니다. 자연스레 이야기를 하고, 또, 맨 속이 허전해서 반주를 하죠. 한 잔 두 잔. 이게 댓 병으로 늘면 취해서 자는데 그렇게 며칠을 반복하면 평소보다 더 피폐하고 걸쭉한 몰골로 귀향합니다. 후ㅡ 뭐 했나 몰라. 뭐 술만 대끼리 마시고 여행을 끝마쳤단 생각밖에 없네요.”


어떤 남자가 말한 여행기인데, 각종 와인이 음악에 찰떡처럼 붙은 재미있고 삼삼한 영화를 보면서 오버랩됐다. 한국 남자들 단체 여행은 정말 그런가? 원, 심심하고 재미없다. 물론 외국인이라고 다를 것 없고 여자들끼리 여행한다 해서 또한, 남녀를 섞어본다 해서 별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섞어 짬뽕은 너무 방만해지는 건 아닐는지 몰라. 잊지 못할 경험으로, 생각의 일대 전환기로, 죽도록 취하고 돌아왔다는 별 것 아닌 이야기로 마무리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취할 대상과 나, 장소, 순간을 돌릴 감상이 아니던가? 많은 이들에게 모든 걸 빨리 바꾸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던 여행이, 탈출의 마지막에서 몸만 취해버리게 만들고 속은 그대로인 채로 나를 현실에 세워둔다면 굳이 왜 시작하여야 하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병적으로 빠지는 행동은 정체된 생활에서도 충분히 더 과격해지라고 종용하는데 말이다.

웃긴 변수가 생기던 새로운 사람을 만나던 친구가 따라붙든 간에 여행을 통해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현실로 돌아올 땐 그 일상조차 그대로 진행됨을 적절한 농담과 대조되는 인물을 통해 보여줬던 여정, 영화 <사이드 웨이 SIDEWAYS>는 남녀가 술로 떡 칠한 홍상수 감독의 어떤 영화를 동시에 떠올릴 수 있겠지만 많이 달랐다.


자유로운 땅끝으로 가기 위해서 고속도로를 달리기보단 주변에 진동하는 술 지게미 냄새에 유혹당한 두 남자의 <사이드웨이 SIDEWAYS>는 불일치화음에다 박자로 치자면 한 박자 느린 유머로 뒤통수를 자극했다. 나는 문학과 영화, 와인을 사랑하고 눈치가 있는 듯 없는 듯 굼벵이 같고 소심한 작가의 취향이 좋았다. 육덕질에 삐끗한 뒤로 정신 차리게 보이는 남자보다는 구멍 난 상처를 그대로 보이는 게 맘에 들었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와 그것을 지켜보는 자신을 시점변환으로 투영해 아픔을 적었던 픽션과 논픽션의 결합! 비록 출판사가 난해하다며 거절해도, 잠시 알았지만 좋아했던 사람이 글을 보고서 인생을 이해해 준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껍질이 얇고 성장이 무척 빨라서 사소한 변화에도 쉽게 영향받는, 끊임없이 보살피지 않으면 맛이 변하는, 유리잔 같은 피노처럼, 섬세한 기질로 숙성된 생명을 찬미한 붉은 입술은 초라한 인생을 따스하게 안아주기에 그 감촉을 잊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포도밭에서 익어가는 포도를 입 안으로 급히 삼키지 않는다면 얼마나 깊고 은은한 향을 온몸에 가득 퍼뜨리던가.

벽장 속에 넣어두곤 생애 최고의 순간에 축배를 들려했지만, 미련스레 따지 못했던 슈발 블랑(Cheval Blanc). 남자는 여행을 함께 떠났던 친구가 총각여행을 잘 마무리하고 결혼하던 날, 그 소중한 걸 개봉했다. 기름진 햄버거와 포테이토 칩, 그리고 최고급 와인, 이거 정말 궁합이 맞는 거야? 번잡한 도시에서 홀로 취하는 서글픈 외톨이. 썩 어울리지 않는 궁합이지만 뭐 어떤가? 목을 태우는 깔끔함을 느끼자 부드러운 목소리가 맴돈다.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누구와 마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와인을 따는 순간이 특별한 거죠.”


입에 머금었다가 코끝을 통해 뇌로 전달되는 짙은 향기. 심장을 뛰게 하는 그녀가 생각날 수밖에. 그는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다.


“떠나야겠다. 다시 한번 제대로 된 사이드웨이(SIDEWAYS)를 만들기 위하여.”

그녀의 집 앞.
똑똑. 똑똑. 똑똑. 똑똑똑똑.


2005. 2. 22. TUESDAY.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제에 올릴 작품 준비에 시나리오부터 분석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은 거장의 반열로 올라선 감독들의 초창기 작품들을 대사하나부터 점검하고, 인물들을 파악하고 살피는 작업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웠다. 극장에 올라가기 전에 수반되는 번역, 조사, 맵핑, 도식하는 작업들은 나름 의미로웠다. 검은 장막 속에서 하얗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의식을 태우면서 나름대로 이야기들을 다시 재구성해보았다. 다른 버전의 말들을 만들어보았고, 그런 장소에 왜 인물들이 놓여있는지, 이 감정들은 무엇인지, 공간의 여백 속에서 화면과 맞춰가는 작업들과 동시에 이전에 읽었던 책들도 다시 조각조각 잘라낸 뒤 한바탕 퍼즐로 결합시키면서 새로운 이야기세계의 기초를 만들어냈다. 


영화사에서 잠시 일할 때 날고 기는 사람들을 봤는데, 의외로 나만큼 영화를 본 사람은 드물었다. '내가 진정 할리우드 키드네' 기분상 그랬다. 그러나 한 세기 가까이 기록물까지 합치면 워낙 많은 이미지와 영상이 생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자만은 금물이었다. 


하루에 30-40페이지 빡빡하게 작업을 매일 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 A4지 한 페이지도 쓰기 어렵다고 같은 말 반복하면서 엄살떠는 사람들을 보면, 단어 하나를 제시한 뒤에 자동머신처럼 줄줄이 글을 뽑아내지 않으면 재능 없음으로 치부하는 세계로는 오지 말라고 했다. 상업의 세계는 냉정하다. 간단히 브런치 조각이나 먹으면서 자신의 생각이 담긴 글도 아닌 잡다한 글을 쓰면서 유명해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유명과 부유함, 걸작과 감동은 같은 말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최고의 작품은 결핍과 가난에서 나왔다. 할 거 다 하면서 무슨 작가인가? 다만, 글의 속성상 자신에 대한 홍보는 가능하다. 자기 생각 지껄이겠다고 하는데 뭔 상관인가. 기자가 되어 대상을 아무리 홍보해도 그들은 현실을 보고하는 기자이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작가가 아니다. 따라서 먹지도 않는 브런치를 다루는 수준은 기자의 시선으로 진실을 보여줄 수 있는 정도가 최선일 것 같다. 


"워-워, 왜 그래? 원래 독설가로 돌아가는 거야? 정신 차리고. 애들 울겠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끼리 대화를 할 때 이빨을 깐다 했는데, 평론가든, 기자든, 작가든, 감독이든, 교수든, 제작자든 술에 인이 박힌 사람들과 술판을 벌이며 제정신으로 사상적 헤게모니를 펼치려면 별세계에 살아야 했다. 온갖 별나라 세계관과 정치적 이상과 상업적 논리와 감성적 편애와 변태적 기질이 섞인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하수구 밑바닥 생각이 나곤 했다. 술 먹으면 확실히 <저수지의 개들 Reservoir Dogs>이 걸맞았다. 그래서 창작적으로 쌍욕을 넘어 트리플 욕들도 많이 했다. 우리도 개였지만, 같은 개들끼리 욕해서 미안한 말이지만, 기자는 개라고 했다. 던져주는 글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받아먹고 올리는 것이 과연 기자정신일 수 있을까? <브로드캐스트 뉴스 Broadcast News>에서 그리는 방송국 사람들 정도가 돼야 삼십 년 정도 후에나 국립영화등기부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평론가들도 마찬가지다. 수십 페이지 제공되는 프레스킷(Presskit)에서 꼭지말 발췌해서 꼭두각시 인형처럼 이야기를 올리고 그걸 또 추종하는 무리들이 똑같이 반복한다면 거룩한 합창곡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영화가 추구하는 삶이 함께 녹아있는 영화평과 감상인가? 그냥 시간을 때우는 이야기일 뿐, 그런 영화를 만들고 돌고 돌리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다. 영화사를 나온 뒤로 영화를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기회가 돼서 영화를 볼 때는 영화 밖의 이야기, 혹은 영화 이상의 이야기를 상상하곤 한다.


사실 단어와 생각이 조합되는 극이 형성하는 모든 구조에서 앞선 말들은 영화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의 형성 구조는 비슷하다. 글만큼 진실한 것은 없고, 생각과 마음을 교류할 수 있는 귀중한 수단은 없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 고전적인 말투가 아니라 정말 그럴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사람들은 사고하지 않는다. 주어진 것을 흡수하기도 바쁜 시기에 자신의 생각을 펼친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바람일지도 모른다. 오늘을 뛰어넘어 미래의 세계에서 꿈이 현실화되기 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내일의 세계관을 명확하게 그려낼 수 있는 자립적인 삶의 단어와 낱말들이다. 그러면 잘못된 세계의 그림을 그렸을 그것을 미리 감지하고 되돌릴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림으로 감동을 주고 싶지만, 머리로만 연습이 되어 있어서 시간이 걸릴 같다. 모든 것을 거꾸로 돌려서 삐딱선을 타던 습관을 버린 지도 오래됐다. 멀리 가버린 현실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은 뒤 삐딱선을 다시 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LE DIABLE AU CORP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