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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13. 2024

THE ACT OF DRAWING

고암 顧菴 李應魯, 그림 그리는 일, 그것만이 나의 행복이다

한 달 전 한 사람 앞에서 나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뻣뻣하게 굳은 몸뚱이를 끌어안고 슬피 곡했다. 얼마의 숨통이 남아있지만 오히려 봉쇄된 자유를 인식한 그보다 더 많은 자유를 빼앗기고 있었기에. 그 사람은 철사 위에 먹다 남은 밥풀을 붙이며 울고 있었고 나무토막에 못으로 조각을 하고 있었다. 사지가 막히고 도구가 많지 않음에도 대낮에 뻔뻔하게 드러난 억압과 통로 막힌 답답함을 참지 않고 심장을 벅벅 긁었다. 산발된 눈물 자국을 보면서 나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고개 숙인 채 물었다.


‘네가 그보다 더 막혔다면 더 쏟아내야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고 들릴락 말락 미동하는 체온을 느끼면서 숨죽인 흐느낌은 계속되었다.


“그림을 안 그렸다면 미쳤을 거야. 밖에서 보다 더 많이 그렸지.”
“갖가지 화상이 떠올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어. 그래서 마구 그렸지.”


출옥 후 말문을 열었던 그의 입에선 갑갑증, 분노, 억울함. 아이들의 말처럼 터져 나왔다. 나는? 난?


"열일곱,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사람들은 방해만 하려 했지만 나는 고독을 몰랐다. 그들의 말은 그들의 것일 뿐이었다. 나는 몰래 그림을 그렸다. 땅, 벽, 눈, 담벼락에. 손가락, 나뭇가지, 돌을 가지고서. 가깝게 느껴지는 머나먼 미래, 그곳에 나의 눈은 고정되었다. 그때처럼 지금도 그림 그리는 일, 그것만이 나의 행복이다."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 1977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주고받은 평범한 말인데 내겐 너무나 갈구하는 언어다. 한두 작품 볼 기회는 있었다. 관련서적도 몇 편 보았다. 입으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정식 인사를 한 건 어제였다. 8개월 만의 8시간 외출. 문밖을 나오면서 그와 만나자던 약속을 기억했다. 반나절의 자유였다.


‘다시 얼마의 시간을 헛되이 그들과 싸워가며 속 태울지 모르지만 마음 터지게 써보자.’


그랬었다. 갈 곳은 도심에서 소외된 화방. 미술관. 영화관. 한적한 거리. 서점. 고궁. 언제나 그렇듯이 빈 고궁을 지나 미술관으로 걸어가면서 그리고 달과 해가 한 자리에 손잡던 오후로 발을 돌릴 때까지 나는 그와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고 소소한 이야기 그림을 그려가며 기쁨을 맛보았다.

2005. 1. 21. FRIDAY




1. 발현

매화 <每>
해도 산도 시들고 국화마저 꺾였는데
혼 돌아보게 하는 향기가 밭 언덕에 불어오네.
꽃다운 마음으로 우짖는 참새와 들판의 가게들
말문 열어 새롭게 준비하는 모습.
살짝 그려내어 먼지 털고 길에 나섬이
비녀 꽂은 여인 마주하는 듯,
매화 몇 가지 남은 푸른 기운
바람 먼저 죽엽주를 맛보네.

먹물 같은 옹고집 뒤에 털털한 신수를 풍기는 죽사(竹史)인 줄만 알았는데 말없는 그는 글도 썩 잘 지었다. 숲 깊은 곳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일찍이 관조했던 그는 사군자에다 젊은 날의 성난 기분을 풀었다. 봄, 농가, 황량한 억새 강변, 삼각산, 남산 공원, 市場, 양 색시가 지나가는 거리 풍경엔 갓을 벗어던진 정갈한 학도가 있었다. 배우고 찾는 과정들에서 귀밑머리가 약간 흩어졌는가. 초창기 그의 작품 중에서 열 폭 외금강 산수가 좋았는데 이유는 이랬다.


거나하게 취한 산의 트림, 홍수처럼 밀려와 미끄럼틀 자락이 솟구치는 듯.


기존의 것을 습득하고 스스로의 것을 발견하는 시기에는 군자의 매끄러움이 질박함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 그 낌새는 짙었으니 그림에 정착하던 첫 발자국은 발현이라 불러본다.

          늙은 용의 붓 연지 마를 때
          먹 맑은 물결 숲 바람 되어


2. 확산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이응노는 뿌리가 튼튼했고 나뭇가지와 잎도 무성했다. 처음부터 감지했지만 그는 그림을 보는 눈이 달랐다. 인간을 알아봤다. 거기에 내부적인 힘이 넘쳤다. 정말 ‘힘이 넘친다!’ 실사를 포기하고 점차 붓 끝에다 혼을 담기 시작한 때부터 먹물은 하늘로 날았다. 귀족의 오만함과 정결함을 버리고 민간전승으로 내려오는 민화로 발을 돌려 익살과 해학을 담아냈다.

필선 안팎으로 번지는 濃淡과 담채의 은은함은 창호지에 비친 달빛 되어 보는 이의 마음에 자리한다. 醉夜, 거리의 악사, 꽃장수, 행상, 영차 영차, 비조, 원숭이, 경주금강역사, 한 사람 등 사람 표정에서 미묘한 순간을 포착한 것인지 어느 순간 구성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데, 생맥으로 번져가는 물의 궤적은 잭슨 폴락의 액션페인팅처럼 물의 염원과도 닮아 보였다. 갈무리되기 전 단계에 치르는 의식이었을까? 필력 안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과정에 서 있지만 자괴 분열은 아니었으므로 정녕 ‘확산’의 순간이리라.


3. 응집

‘濕은 氷로 火한다’ 고암의 미래는 한때 겨울을 맞았다. 예술이 시대를 넘어 그를 이해시키기 위해선 살아남아야 했다. 1967년 동백림 사건, 간첩으로 오인받아 압박, 묵인 아래서 구속된 뒤 사형 선고. 왜 그는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을까? 투옥 전후 10년간 불안을 강력하게 집약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뜯고 재구성하고 붙이고 형상화하는 Collages. 선이 막힌 글자로 추상 속에 현상을 막아두려 했는가. 한지, 나무, 태피스트리, 도자기, 담요, 천, 솜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한 재료에다 분풀이를 던져야겠지. 슬프고 외로울 때 속상하고 울분이 쌓일 때 일을 더 많이 하게 된다고 말하던 그 사람. 나도 그랬다. 한 분야에서 세상이 인정한 그와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내게 쏠리는 사회의 평가는 천지차이겠지만 비좁고 억눌린 상황에서 그는 손을 쓰되 들 수 있고 나는 손을 쓰되 놓아야만 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한 때 집중과 몰두를 거듭하며 하얗게 지새운 고민을 흘려 보았던 나로선 그의 칩거에 고개를 끄덕였다.

속을 풀지 않는다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나와 함께 발 떼는 사람의 움직임도 알 수 없다. 살면서 영원한 어둠에 빠지는 것은 진정 고통이다. 테두리를 그리고 캐릭터에서 사람을 발견해야 한다.

눈물로 찢어 말리고 깨고 부수고 구성하면서 그는 인간을 발견하였을까? 부피감이 느껴지는 경계에는 내일에선 벽을 넘어 놀이가 시작되리라는 여운이, 나무에도 청동에도 천에도 감포장지에도 감돌았다.


4. 흐름

감기의 작품들과 80년대 집중적으로 이뤄진 群像連作이 같은 호실에 길게 놓인 건 시간적 순서로 본다면 어울리진 않는다.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해 보자. 군상을 발견한 이유와 결과를 한 자리에 놓고 싶은 큐레이터의 의도라고 말이다. 아님, 자유로의 의지가 始終부터 함께 존재한다고 달리 봐야 할까?

시간의 지렛대에서 미리 엿들은 속삭임은 다시 간 보기를 꺼려했지만 사람보기는 비껴가지 못했다. 한참 줄어든 화폭도 점차 커지고 필력이 피어날 무렵의 작품을 보는 건 은근히 속을 시원하게 한다. 군상 시리즈를 보다 보면 사람 포즈가 하나도 같지 않음을 보게 된다. 작가 나름대로의 자존심일까?


"난 하나만 보지 않는다. 중앙의 너를 보고 그 옆의 사람을 보고 그 뒤의 아비와 그 앞의 나를 본다."

무리를 표현하던 군상, 결국엔 하나하나 날면서 춤을 추었다. 지켜보던 나는 홍채를 가만두지 않았다. 춤은 못 추지만 춤 구경은 불놀이만큼 재미있었다. 생명을 뺏어가는 화재 현장을 즐긴다는 건 아니다. 되려 꺼지는 생명에 바람을 집어넣는 춤이며 정지한 나를 초대하는 춤이었으니까. 이리 즐거울 수가! 좁은 반경에서 이뤄지는 불의 춤은 신명 난 사람의 혼과도 닮았고 세찬 물살의 몸놀림과도 비슷하다. 그의 작품 중에서 마음에 드는 ‘춤’은 군상들을 향토색이 넘치는 찰흙에 묻혀 한 덩이로 풀어놓았다.



짧게 이응노의 작품을 대하며 생각하건대, 그는 내면에 가득했던 정열을 먼 산 위에다 크게 터트렸다. 멋진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보다 넘치던 에너지가 상처를 받아도 그림을 계속했던 한결같던 마음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가둬진 이력은 쓸모가 있었다. 무조건 물을 튀기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려니 멀리 흘러가기까지 깨달음의 세월이 필요하고 이를 지속시켜 자신의 그릇을 천천히 비워가야 한다는 것을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타국의 흙에서 이 땅을 그리워하고 되새겼으리라.


滿이 지나가면 空이 있다.

이들은 같은 강에 흐른다.
해가 지던 파란 하늘엔

송편 모양의 달이 떠 있었다.







그림을 무척 그리고 싶다

기약이 없다

행복할 때 그리는 것이 그림은 아닐 텐데

억울하고 답답하고 피날 때 그려도 될 텐데

밥도 되고 물도 되고 반찬도 될 텐데

조금 자유로워질 때 그려야 될 거야

미뤄둘 수밖에 없는 마음은 망부석

멈추지 않는 이 그리움
무엇이라 부를까
                                                                                                

I really want to draw,

With no guarantee.

It's not about drawing when happy,

But maybe when feeling unjust, stifled, or hurt,

It could be food, water, or side dish.

When I become a little more free, I should draw.

The heart that can only be postponed is frustrated,

This longing that never stops.

What should I call it?



2005. 1. 24. MONDAY




[BEHIND BARS] 2005. 11. 4. PHOTOGRAPH by CHRIS



고개를 올린다 철창 속에서

가난한 나는 부유한 눈빛으로 색칠을 한다

꿈은 졌지만 어떠하리

계단을 오르다 비스듬한 문

저 너머 태양은 따뜻하였네


I lift my head within the iron bars,

In poverty, I paint with affluent gazes,

Though dreams are lost, what of it?

Climbing the stairs to a slanted door,

Beyond it, the sun warmly shines.




친구의 집에서


아이를 향한 부름이 들리기 전까지 생각한다.

사람들의 행위는 자기 본질에 둘려져 있구나.

의미를 만들고 그 의미를 덧씌우고

재미없다가도 또다시 재미가 듬뿍 생긴다.

너희들의 눈빛에서 한숨도 젖어간다.

빛이 좋아라 네 노래도 좋아라  

슬픈 우리의 젊은 날도 좋아라


2005. 11. 4. FRIDAY




눈으로 그림을 그리면 마음은 가라앉았다.

낮에는 하얀 도화지 세상에서 그림이 그려진다.

밤에는 검은 도화지 세상에서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데도 차분해지지 않는 이 마음.

눈 감지도 못하고

무엇을 그렇게 그리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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