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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BULLSHIT

《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개소리와 진실, 침묵 사이에서

by CHRIS
《ON BULLSHIT, Harry G. Frankfurt》PHOTOGRAPH by CHRIS


화가 나도 욕은 안 하는 편인데, 상대들은 표정을 내리깔고 조곤조곤 냉정하게 말하는 게 욕보다 더 심한 질책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급 떨어지게 욕은 할 수 없고, 개소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앞에 대고 "개소리!"라고 말하기보다 우아하고 논리적으로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지극히 문명인다운 대응이 아닌가?


개소리는 많이 들어도 개소리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건 상스럽다고 배운 사람이 문화적으로 개소리는 무엇인지, 개소리의 기능과 개소리가 많은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개소리가 만연한 사회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는 책에 끌리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개소리에 대하여》 말하는 <개소리에 관한 이론>은 그럴싸하다. 개소리에 대한 본질과 개소리의 개념적 구조를 설명하는 접근은 일반적으로 수사학적인 접근이나 글자 그대로 단순한 욕설을 가리키는 용어적인 굴레를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저자 해리 프랭크퍼트 (Harry G. Frankfurt)는 맥스 블랙(Max Black)의 《협잡의 만연 The Prevalence of Humbug》을 인용하며 'Bull'보다 정중하고 덜 강렬한 '협잡(Humbug)'의 형식적 정의를 제안한다.


협잡: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 느낌 또는 태도에 대해 특히 허세를 부리는 말 또는 행동을 통해 기만적으로 부정확하게 진술하는 것으로 거짓말에는 미치지 못함


의도적인 부정확한 진술인 협잡은 기만적인 부정확한 진술이라고 말하기엔 불필요한 군더더기라고 말한다. 거짓말에 미치지 못하는, 명시적인 주장도 아닌, 협잡은 '허세 부리는 개소리'에 가깝다.


더 오래전 예술의 시대에는

건축가들이 최고의 세심함을 기울여 공들여 만들었지

매 순간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신들이 모든 곳에 계셨으므로.

《The Builders, Henry Wadsworth Longfellow》


부주의하게 만든 조잡한 물건들이 개소리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웃음이 터졌다. 예술가라면 자신이 만드는 작품을 신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창조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세한 부분까지도 공들였다는 점에서 장인 정신과 신앙이 결합된 예술의 특징을 보여주는 이전의 진심 어린 태도와, 대충 대중적인 기호에 맞춰 만드는 오늘날의 기술적이고 건성으로 제조적인 예술 형태는 개수작(Bullshit)이라는 말은 합당한 지적으로 들렸다. 광고와 홍보, 정치는 내적 긴장을 수반한 세심하게 만든 개소리의 사례들이라니, 우리의 문화에 대해 욕도 아닌 것이 칭찬도 아닌 정말 부정확하고 포괄적인 진술이다. 똥(Shit)은 설계되거나 수공예로 만드는 것이 아닌, 소화적 현상에 의해 자동적으로 싸거나 누는, 공들여만든 것이 아닌 것이라는 말은 심히 공감이 된다. 나아가 철학자 프랭크퍼트는 대변은 영양가 있는 모든 게 제거된 물질로, 우리 자신이 만드는 죽음의 재현이라고 선언한다. 똥이 죽음과 친숙하고 닮아있기에 똥을 혐오스러워한다니, 생각해 볼 문제다.


책에는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이 자주 등장한다. 프랭크퍼트는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철학적 역량을 은밀하고 파괴적인 형태의 헛소리(Nonsense)라고 간주하는 것들을 규명하고 방지하는 데 사용했다며 한 일화를 제시한다. 그의 러시아어 가정교사 파스칼이 편도선을 제거하고 혼자 누워있을 때 병문안 온 비트겐슈타인에게 "마치 차에 치인 개가 된 느낌이에요."라고 죽는 소리를 하자, 그는 대번에 혐오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며 "당신은 차에 치인 개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 수 없소."라고 말한다. 프랑크퍼트는 비트겐슈타인의 엄격한 태도가 파스칼의 진술이 참이라는 믿음에 근거하지 않으며 진리에 대한 관심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 즉 '생각 없음'이며,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 지에 대한 무관심이기에, 이것이 바로 개소리의 본질이라고 본다.


프랑크퍼트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의 불 세션(Bull session)과 헌 세션(Hen session)을 정의함에 있어서도 남자 집단의 대화 또는 토론과 여성 사이의 비공식적인 대화 모두 진심으로 하는 토론이 아님을 지적한다. 불 세션의 특징적인 주제는 종교, 정치 또는 섹스처럼 매우 사적이며 감정과 결부된 생활적인 측면과 관련되어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말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다양한 생각과 태도를 시도한다. 개소리와 불 세션은 헛소리를 지껄이다 (Shooting the Bull, Shitting the bull)처럼, 혹은 개소리 타임 (Bullshit Session)과 닮은 꼴이다. 또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Bull'은 '불필요한, 틀에 박힌 일상 업무 또는 의식절차, 과도한 규율 또는 때 빼고 광내기, 불필요한 요식'이자, 일상으로 더 나아가면 '사소한, 진실하지 않은, 거짓된 말이나 글, 난센스'가 된다. 개소리는 거짓말을 한다기보다는 헛소리를 말함으로써 허세 부리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거짓말하기와 허세 부리기는 둘 다 부정확한 전달 또는 기만의 양상이지만, 거짓말은 허위성(falsity)에 근거해 참이 아닌 것을 계획적으로 퍼뜨리는 것이고, 헛소리의 일환인 개소리의 본질은 거짓이 아닌 가짜(phony)에 있다. 거짓을 말하기 위해선 진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는 거짓말이 허위를 위장의 가면 아래에 설계해야 한다는 면에서 이미 심적인 무게가 설정되어 있다.


개소리 예술가(Bullshit Artist)는 책에서 처음 들어봤는데, 개소리쟁이는 특정한 기획 의도 (Enterprise)를 통해 자신의 속셈을 부정확하게 말한다고 한다. 개소리쟁이와 거짓말쟁이 모두 진리를 전달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거짓되게 연출하지만, 개소리쟁이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으며 거짓말쟁이는 인간을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벗어나게 만들려고 꾀하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개소리의 확산은 다양한 형태의 회의주의 속에서 믿음의 상실에 대한 정확성(correctness)이라는 이념에 대한 헌신이 전혀 다른 규율로 후퇴하는 것이며, 우리가 진정성(sincerity)이라는 대안적 이념을 추구할 때 요구되는 규율이다. 인간 본성은 사실을 붙잡기 어려울 정도로 실체가 없고 덜 안정적이고 덜 본래적이기에, 진정성 또한 개소리라고 말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개소리에 대한 언어학적인 발성이 주는 쾌감은 누리되, 부정확한 사실에 대한 개소리가 바로 '개소리'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자각이 떠올랐다.


개소리건 거짓말이건 지속되면 둘 다 유쾌하긴 어렵다. 언어게임의 논리적인 조합의 달인 비트겐슈타인을 인용하면서까지 개소리에 대한 실전을 늘어놓는 해리 프랑크퍼트의 <개소리 철학>은 단순하지만은 않다. 언어적인 사회에서 하나의 혀를 절단해도 글을 통해 그림을 통해 시선을 통해 행위를 통해 거짓말은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거짓말을 해도 권력과 재력이 있으면 용서가 되는 세상에서,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늘어놓는 개소리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머리 뒤로 흐르는 웅성거림조차 숨 막히게 질리는 기분을 전해준다. 침묵이 오히려 쉼이 되는 기분은 자신의 말에 대해 무책임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강하게 부상한다. "개소리"라는 그 말만이 시원한 것은 아마도 욕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삶의 종결, 신체적 종말의 죽음이 개소리에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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