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 May 03. 2024

THE DA VINCI CODE

다빈치 코드, 예술가의 시간적 암호들

[Vitruvian Man] Leonardo Da Vinci Airport(Fiumicino) Rome. 2018. 5. 11 PHOTOGRAPH by CHRIS


Whoever became a Renaissance Man.


레오나르도 다 빈치 박물관(The World of Leonardo Da Vinci Museum)은 이탈리아에 출장 갔던 2017년 5월 중순, 우연히 들리게 되었다. 이른 조식을 마치고 밀라노 외곽에서 아침 일찍 베르가모(BERGAMO)로 직행했다. 업체관계자와 미팅 후 염색공장에서 실사를 했다. 전체적인 스케줄을 조율하고 조색 관련 후처리 작업을 지시한 뒤 시계를 보니 생각보다 일정을 빨리 마무리했다. 다음날 이동 전까지 여유가 있어 반나절 밀라노를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베르가모 역에서 전철을 타고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Duomo di Milano)으로 향했다. 전체적으로 낙후된 지하철 시설과 지하철 맵은 우리나라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차체도 1990년대 타고 다니던 1호선 분위기가 한껏 풍겼다. 지하철 내부는 물 건너온 색색깔의 이민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열아홉의 기억 속에 남겨진 그리스의 풍경이 발칸반도에서 넘어왔던 알바니아 이민자들로 혼재되었던 것처럼, 순혈을 보장할 수 없는 이탈리아의 색은 이후 어떤 색상으로 변할지, 실재보다 황량하고 인종이 뒤섞인 이탈리아의 모습에 침잠해졌다.



두오모(DUOMO) 역에 도착한 뒤, 지하철 역사 내 식당을 겸하는 슈퍼에서 물 하나를 사며 정보도 얻을 겸 화장실을 쓰려했다. 가게를 운영하는 아랍계 주인이 설명하기를, 지하철 역사 내부엔 화장실이 별도로 준비 안 되어있고 광장 사이드로 나가야 한다고 해서 소득 없이 지상으로 올라갔다. 화장실 비용이나 물값이나 같았다. 단체 손님이 가득한 두오모 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내부의 교회당에도 들어갔다. 벗겨진 자신의 살 껍질을 토가(toga)처럼 두른 사도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 the Apostle)의 모습은 고대 중국의 참형 중 하나이자, 뼈와 살을 바르는 인간 회 뜨기인 능지형(陵遲刑)을 연상케 했다. 초기 기독교의 형성과정에서 보이는 인간들의 잔인성이나 시대를 막론하고 형벌을 실행하는 인간들의 잔혹성은 창궐하는 아귀들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성당 실내의 나무 벤치에 높은 천장과 다채로운 스테인드글라스의 문양을 바라보았다. 귓가에 들려오는 신비로운 음악을 들으며 잠시 앉아 있었다. 시원한 기운을 안고 옆 계단을 따라 첨탑까지 천천히 올라갔다. 바글대는 사람들을 피해서 첨탑 꼭대기 옆 아무도 없는 곳에서 뜨거운 태양 아래 밀라노 시내를 십분 정도 바라보았다. 태양과 좀 가까워졌다고 햇볕 알레르기가 있던 피부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마가 간지럽기 시작했다. 목도 따가웠고 팔도 붉어지고 있었다. 색종이를 삼각형으로 연속하여 접은 뒤 펼치면 가운데에서 퍼져나가는 방사형(放射形 Radiating) 실선처럼, 거미줄처럼 펼쳐진 아래의 풍경 계속 보고 싶었는데 따가운 햇살에 피부가 아려와서 내려가야 했다.



광장에 앉아서 느릿하게 오후를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관광객과 흑인 이민자로 가득 찬 광장이 답답해 보였다. 홀린 듯이 첨탑에서 점찍어둔 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밀라노를 패션의 거리라고 하기엔 SPA가 점령한 메인 상권은 별로 볼 게 없었다. 두오모 성당에서 팔방형으로 전개된 거리를 십 분 못 되게 걸으면 콰드릴라테로 델라 모다(Quadrilatero della moda)를 형성하는 평행사변형 모양의 거리로 접어든다.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Via Monte Napoleone), 스피가 거리(Via Della Spiga), 산탄드레아 거리(Via Sant'Andrea), 만조니 거리(Via Manzoni)가 에워싼 사각형 거리는 좌우 일렬로 명품샵들과 팝업스토어, 편집샵, 작은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제품을 만드는 생산자의 입장에서 굳이 돈 들여가면서 타인의 것들을 살 필요가 없었기에 눈으로 천천히 한번 훑어본 뒤 산책하며 길을 었다.


원래 그곳이네?


한 바퀴 돌아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지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선 크게 한 바퀴 돌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망연히 길에서 젤라토를 하나씩 손에 든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떤 맛일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던 중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박물관(The World of Leonardo Da Vinci Museum)' 전시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웬 호재인가 싶어 소극장과도 같은 전시장에 들어갔다. 소규모의 전시관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보다는 그의 습작노트, 다양한 생활 속의 기계들, 하늘을 날고 싶은 구상 모빌이나 스케치와 같은 흔적들이 있었다. 문 닫을 시간이 다가와선지 실내를 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거장이라는 간판은 떼고 옆집 아저씨의 작업 노트를 구경한 느낌에 소소한 감상이 편안했다.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를 어떤 인물로 기억하는가? 보통 <모나리자 Gioconda, Monna Lisa 1503>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 1498>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 Vitruvian Man: Canon of Proportions> 을 그린 화가로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화가, 조각가, 발명가, 과학자, 문학가, 의사, 해부학자, 지리학자, 지질학자, 역사가, 작가, 기술자, 요리사, 수학자, 공학자 등등, 관심사가 문어발을 넘어 용수염처럼 뻗친 잡학다식의 대가였다. 다재다능함과 창의적인 발상에 우리는 그를 르네상스 시기에 가장 적합한 르네상스맨(Renaissance Man)으로 기억하며, 그의 확장된 사고와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박물관에서 발견한 있다. '사람은 나처럼 완전 호기심이 많네' 이런 감상이었다. 잡다한 관심사를 바로 이행할 있는 적극성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그 또한 마무리 못 지은 것들도 많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깊게 하나만 파고드는 것도 좋지만 넓고 다양하게 하는 것도 좋다. 인생의 정답은 없는 것이다.




[The Madonnina Statue of Milan Duomo] Italy. 2017. 5. 15. PHOTOGRAPH by CHRIS



MY WAY, 기나긴 휴식이 올 때까지


톡 까놓고 나는 예술이 뭔지는 모른다. 솔직한 마음으로 말만으로도 듣기 좋은 예술적인 일을 하고 싶긴 하다. 그런데, 사회에서 살아가는 독립적인 인간이라면 예술이건 뭐건 간에 자립적으로 생활을 꾸려야 하는 게 맞다. 안팎으로 돌볼 사람이 많은 나로선, 나만의 예술 여행은 미정(未定)이다. 다른 사람들과 작업 먼저 하고 개인적인 예술은 천천히 하기로 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을 추슬렀다. 엉뚱한 나의 상상이 불안을 야기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요지는 감성만이 아니라 머리를 써서 소탈하고 저렴하게 꾸준히 해보자는 취지였다먼저 흙부스러기 같은 내 삶을 예술적으로 만들기 위해 나의 순간들을 기록해 본다. 기회가 되면 놓치지 않고 순간을 빚을 준비해야겠다. 


현재 나에겐, 만약 여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육체적 즐거움보다 심리적 휴식이 먼저이다. 반면에, 휴식은 죽음과 비슷한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여행을 가고 기분전환을 하고 영감을 받고 즐거움을 얻는 과정을 보통 사람들은 쉰다고 한다. 휴식(REST). 난 이 단어를 연상하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삶에서의 휴식은 도피로 보인다. 주변 사람들이 언제 쉬냐고 물을 때 답을 할 수 없다. 쉰다. 숨을 쉰다. 호흡이 길어지고 눈을 감아야 할 것 같은 어두움이 밀려온다. 한때 나를 밝은 빛의 아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누구보다도 즐거웠고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폭풍처럼 감쌌던 삶의 태도가 구체적으로 일그러졌을 때 나는 어둠이 어울렸다. 검은 오간자(Organza)처럼 바스락거리는 부풀림으로 화려하게 상대까지도 폭 깊은 우울로 감쌌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보는 여행상품도 있고 산티아고 순례길 패키지도 있고 단체 성지순례도 있지만, 바다를 가거나 산을 오르거나 호캉스를 누리거나 해외의 휴양지에 가서 일을 하거나 예술작품을 보는 것까지,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는 조건이 붙으면 일말의 부담을 느낀다. '누군가와 함께'가 망설여지는 이유는 이미 같이 살고 있는 순간에 또 하나의 새로운 행위(Action)를 덧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행위는 굉장히 의도적이며 자기중심적이 되곤 한다. 타인을 배려해야 하는 시간은 나에게 휴식이 아니다. 그냥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혹은 나의 일에 몰두할 때처럼 편치 않고, 타인에 대해 자각하면 알게 모르게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시간과 공간공유는 단순히 양쪽이 비슷하다고 묶을 수 있는 교집합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이 생각하듯이 같이 살아가고 나눈다는 의미는, 서로 간에 생각의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을 땐 어려운 문제다.


사람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특정한 사람을 만나면서 발생되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래선가, 크고 나서는 단편적이고 오래가기 어려운 관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개인적 관점에선 타인들과 함께 무리 지어 노선을 정해야 하는 자체가 의미가 없다. 생각을 그리고 나의 세계를 만들어감에 있어서 다른 사람과 같은 길을 걸을 생각이 없다. 결국 죽음으로의 종착지는 같다고 하더라도 살아갈 때만큼은 스스로의 길이 있다. 멀리 나가서도 정리가 미진했던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고민했던 어리석은 나는, 내가 짊어질 무게가 소금과 같길 바라며 강물에다 그것들을 씻고 있는 중이다.

 



[My Way, Until a Long Rest Comes] La Reggia di Caserta. Italy. 2018. 8. 5. PHOTOGRAPH by CHRIS




상대적인 시간의 심리적 거리감


열아홉 첫 배낭여행 때 홀로 하루종일 걸으면서 낯섦을 찾아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여정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나는 공간감각과 사물에 대한 기억이 남달라서, 길을 잘 찾는 편이다. 길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험난한 길은 넘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다. 그리고 끊겨있는 길은 돌아가면 되기 때문에 낯선 길에 대해서도 두려움은 없다. 어렸을 때도 뒷산을 타거나 새로운 곳을 갔을 때 남이 알지 못하는 길을 찾으려고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보통 첫 길을 걸으면 길고 두 번째 길은 그 길이가 첫 번째 길보다 상대적으로 짧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될수록, 익숙해질수록, 길의 심리적 길이감은 짧아진다. 그 익숙함을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고, 공포스럽고 짜증스럽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


일전에 여행을 하며 하루 이틀 변해가는 나의 마음을 보니, 익숙해지는 것에 대한 시간 차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선 혼란에 빠져 있었다. 눈앞에 놓인 공간은 변함이 없지만, 그 길을 앎으로 인해서, 인지함으로 인해서 시간의 길이가 점차 짧아진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아마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 시절의 그 길고 지루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찾아다니는 것은 현재가 익숙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현재의 자신의 상태가 변화가 없게 느껴지고 그 축복받은 평온함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증명일 수 있다. 편안함과 안정감을 인식하지 못하고 평범함과 지루함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욕망을 자극하고 더 강하고 더 재미있고 더 환상적인 세계로 몰입을 시도한다.


시간에 대한 감각은 다양하다. 탐험심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은 시간이 알찼다. 하루를 꽉 채워서 살았다. 삶이 가장 혼란스러웠던 성장기부터 청장년기 초기까지, 시간은 너무도 느렸다. 어서 그 길을 지나가고 싶은 마음에 비해 고통스럽고 지루한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매일의 이야기와 말들과 감정이 온몸에 새겨졌다. 히 이곳에서 벗어나기 전, 마지막 삼 년은 삶과 죽음의 장막을 찢어버리고 생육을 파괴할 만큼 인내가 불가능했다. 더 이상 인간의 서사를 받아들이기엔 나의 정신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의식의 말문이 터진 시기에 일부의 기억을 삭제했다.


광인이 되려고 했지만 이성이 강했다. 일단은 사는 게 먼저였다. 제정신을 차리고 세상으로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냥 맨몸으로 세계로 나아가기에 힘드니까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가장 가까우면서 익숙한 나라를 정했다. 언어가 아이와 같았으니 그곳에서 지식도 쌓고 일도 하고 언어도 배우자는 생각이었다. 이때에도 나는 예술을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홀로가 아니었던 나에게, 돌볼 의무가 있는 나에게, 돌아올 시간이 정해진 잠시의 휴가였을 뿐, 빠른 시일 내에 나를 되잡고 와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은 시간과 돈이 필요했기에, 둘 다 부족한 나로선 혹여 다시 돌아올 때를 대비하여 머리도 쓰고 몸도 쓰는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생활로서의 디자인, 그 두 번째 막이 열린 것이다.

           



The Da Vinci Code


故 김우중 씨의 말처럼 정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널린 게 일거리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괜찮은 직업을 찾는 친구들 사이로 나는 대기업 행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일이 터지면 언제든지 모든 것을 그만 둘 준비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따질 게 없었다. 한 자리에서 회사가 필요할 때 하루를 매진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되었지만, 그리고 누군가를 가르치고 돌봐줄 자질이 없는 성향임을 알았기 때문에 선생님이 될 수 있는 선택권도 있었지만, 모두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길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나의 성격과 생의 관점에 대한 단서를 가지고 다시 시작했다. 다 빈치 코드의 시간적 암호는 간단했다.


'마음의 소리를 따라갈 것'


그런데 그것이 제일 어렵다. 그 누구를 알기보다 자기 자신을 알기가 가장 어렵다. 나 또한 미지의 세계 중에서 제일 돌파하기 어려운 것은 나의 세계이다. 그 어두운 내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평생을 공들이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언젠가 내가 적은 일기 중에 시일을 써 놓고 나를 찾아 나서겠다고 적어놓은 글을 보았다. 그리고 정말, 그 시간 안에 나는 그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다시 하고 있다. 댄 브라운(Dan Brown)의 소설 빈치 코드 The Da Vinci Code》에 대해 잡다한 감상을 썼던 2005년 3월의 기록을 정리하면서, 한 예술가가 살았던 나라에서 시간을 달리해서 느꼈던 다 빈치 코드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 돌아본다.




[The Unfolded Road] La Reggia di Caserta. Italy. 2018. 6. 25. PHOTOGRAPH by CHRIS




《다빈치 코드 The Da Vinci Code》 잡식의 코드 | Did Vinci coat echo?


삼 사일 전이었다. 반찬거리도 떨어지고 살 것도 있고 해서 집 근처 마트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라디오뉴스 일부였던 것 같다. 발을 내딛는 속도만큼 다 빈치 코드에 관한 기사가 또렷하게 들렸다.


“오늘, 댄 브라운의 소설 빈치 코드가 200만 부를 넘어섰다고 ㈜ OOO만 코리아가 발표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에 감춰진 충격적인 비밀을 파헤치는 두 남녀의 행적을 그린 이 소설은 빠른 전개의 추리기법을 통해 단 시간에 독자를 사로잡았으며, 200만 부의 기록을 돌파한 기념으로 출판사 측에서는 대대적인 사은행사를 벌일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번에 이뤄질 행사 내용은…”


계단에 서서 슬며시 웃었다.


- 경기불황으로 기는 출판계에서 돌풍이 된 짬뽕문학의 선전은 기사화될 만 하지. 그런데 어쩌면 출판사에서 제공한 기사를 그대로 읊는데? 상품 목록까지 세세하게 말이야.


광고의 효과가 또다시 200만 부를 한 20만 부 늘려주겠구나 싶었다.


What is The Da Vinci Code?

모든 추리소설이 그렇지만 요즘 한창 잘 나가는 단테 클럽 The Dante Club과 마찬가지로 이 엉성한 문제작 다빈치 코드 The Da Vinci Code는, 삼장법사가 요물스런 마귀의 독에 사경을 헤매자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이 해독제를 찾아 온갖 고초를 겪고, 끝없는 모험 속에서 천축으로 가는 길을 발견한다는 사필귀정의 형상을 보여준다. 풀 수 없는 암호로 시작된 사건전개, 살인사건에 얽힌 주인공의 고난, 여정 속에서의 진실, 미궁에 담긴 인간의 본원적인 진리를 성배(聖杯)라는 철저한 비밀의 문 속에서 찾아야 하는 원형 회귀의 형태는 동서양이 추구했던 회전의 믿음까지 <모나리자>와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 <최후의 만찬>과 같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들에서 발로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통합의 오류를 안고 있다.


달리 말해, 현대 사회에 뿌려진 모든 조각들이 ‘장미(Rose)’와 ‘꽃(Flower)’의 현현으로, 신비한 기독교적 발생을 가시화한다는 상상은 무척 고무적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은밀한 신성코드를 포괄하기엔 흡사 용광로에 잡다한 물질을 넣고 마술만 부리면 최고의 걸작품이 탄생한다고 믿는 엉터리 주술사의 주문을 한껏 들은 것 같아 의심스러운 눈길을 지울 수 없다.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장미의 이름 Il nome della rosa을 현대식으로 변환해 놓은 듯한 이 다빈치 클럽의 수장은, 수도원 내부의 비밀을 캐는 두 명의 남자 수사 대신에 혼돈의 결합 수식을 그럴싸하게 진척시키려는 듯이, 여자 수사관과 남자 역사학자를 적당히 버무려 놓으면서 우주적인 진리를 극적으로 돌파한다.


남성적인 기독교의 근원을 살펴보면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의 저변에서 권력을 장악하고자 했던 자들이 여성 주도의 본태적인 초기 기독교를 은폐하려 한 핍박의 역사를 볼 수 있다는 점, 진실을 보존하려는 반대파의 초(超) 저항적인 계승이 존재함으로써 이 극적인 사실들이 암흑의 세월에서 분쟁을 거듭했었고, 세상에 알려지기엔 충격적인 형(刑)이라 이를 조절하기 위해 오직 비밀에 접근할 사람들에 의해 진실이 코드화되었다는 추론은 너무 쉽게 풀리는 수수께끼였다는 생각이다. 물론, 방대한 식견처럼 보이게 하는, 약간은 겉핥기처럼 보이면서도 일전에 읽은 자료들을 슬쩍 건드리는 기억조절장치는 남녀의 결합이란 이중적인 코드의 스포이드로 동서양의 독자를 매료시킨 것 같아 기특하기도 하다.

그러나 초반의 급진적인 사건의 전개는 문화의 용광로라 불리는 미국적인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도중에 영화, 시, 역사, 미술, 종교, 정치, 사회, 문학, 과학, 철학, 암호학, 신비주의, 이집트배교 등 광포한 분야를 건드리면서 자주 급정거를 시도한다. 덕분에 여러 곳에서 나누어져 있던 글의 첨탑(尖塔) 귀퉁이는 중반 이후 중심을 잃고 표류한다. 코드가 불분명한 비행기는 거대한 사건의 한 막을 너무 쉽게 무너뜨리며 비밀의 성에 안착시킨다. 평범하고 무의미한 상태로 종지부를 찍은 이 소설은 독자를 꽤나 의식하는 듯한 시드니 셀던(Sidney Sheldon)의 능란하고 매끄러운 말투를 상기시켰다.


과연 댄 브라운(Dan Brown)은 의식의 비행 속에서 무엇을 놓친 것일까? 왜 끝까지 처음의 긴장을 간직하지 못한 것일까? 다섯 개 꽃잎이 벌어지는 모나리자 미소가 비주얼 노이즈(Visual Noise)의 변형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오각형의 별과 둥근 해, 어둠과 빛, 검은색과 흰색, 각자와 온자, 정교와 이교도의 대결과 혼성은 피보나치수열(Fibonacci numbers)과 스푸마토(Sfumato) 스타일의 의미 있는 듯 없는 듯한 불온한 등장처럼, 그저 수준 있는 농담으로 들렸다. 정말, 사상보다는 농담 같았다! 누군가 그랬다.


“왜 우리나라엔 빈치 코드 같은 책이 없는 건가?”


난 이 소설을 최고로 보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선 별 아쉬움은 없다. 그러나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낼 만큼 저자의 고생스러운 산물이 가볍다고 몰아갈 생각도 없기에 그냥 이 정도로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논박거리가 많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누가 그랬다. 그렇다면 골다공증이 심히 걸린 책은 생각이 스며들 곳이 많아서 좋은 것일까? 하여간, 책을 쓰는데 교사적인 자질로 접근한 흔적이 보여 그 점은 칭찬해주고 싶다. 건실한 학생을 문듯한 이 싱싱한 기분은 무엇인가? 영계와 함께 젊어지는 기분이긴 하다. 흔적이 빨리 잊힐 것 같아 아쉬워지긴 한다.

다빈치 코드 The Da Vinci Code엔 그나마 크로스워드(Crossword) 할 재료가 많다. 인체의 황금비율과 원 속에 담긴 생애. 수를 통해 신을 보았던 파스칼(Blaise Pascal)의 광기와 밀접한 삼각 피라미드(Triangular Pyramid).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의 사과와 이브의 사과. 그리스신화에서 오이디푸스(Oedipus Rex)를 멈추게 했던 수수께끼 사자처녀와 시온(Sion)이 감추고자 했던 처녀.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와 장 콕도(Jean Cocteau),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와 다빈치(Leonardo Da Vinch).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와 성당음악들. 문학적인 감수성과 예술의 혼. 작품 속에 길이 있다면서 서양의 온갖 걸작품들을 한 번씩 건드리는 작가의 은근한 서구 문화 사랑은 작품 하나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전달주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특히 잘 팔린다면 더욱 그 사실을 느끼게 했다.


'Did Vinci coat echo?' The Da Vinci Code》 스펠링을 가지고 한번 장난쳐 봤다. 영어가 이 순결한 세계의 열쇠인양 말하는 영어권 작가를 따라서 글자배열을 해봤는데, 그다지 절묘해 보이진 않는다. The Da Vinci Code, Did Vinci coat echo? 다빈치 코드, 다빈치가 자신의 울림을 입는 세상이 되었다. 전 세계에 여기저기로 발산된 그림이나 조각이나 각종 흔적들까지 다 다빈치 자신의 에코(Echo)이자 생각의 울림이 아니던가! 그나저나 오푸스 데이(Opus Dei)의 신자들은 너무 많이 널린 거 아닐까? 말총으로 만든 속옷을 입은 영국장관, 건실하게 국가를 지킬까? 그리고 그 비밀리의 회합을 주도하는 당신은?


2005. 3. 5. SATURDAY





정확한 시기는 기억 안 나는데, 영화 <천사와 악마 Angels & Demons>를 본 적이 있었다. 소설 《천사와 악마》는 소설 빈치 코드보다 이른 시기에 발간되었다가, <다빈치 코드>가 영화와 소설 모두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뒤늦게 각색되어 영화화되었다. 비밀결사조직 일루미나티(Illuminati)가 바티칸을 파괴하려고 할 때, 이들의 검은 음모(陰謀)를 막기 위해 종교기호학 교수 로버트와 물리학자 비토리아가 연합하여 지적인 대결을 통해 악(惡)의 요소를 제거한다는 플롯은 시간 죽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다빈치 코드와 비슷한 내용의 설계 구조이다. 보고 나면 머리에 그렇게 남는 것은 없다.


시각적인 움직임에 길들여질 때부터 개성적인 스토리라인과 다각적 사고가 들어있지 않는 블럭버스터 영화는 취향이 아니어선지 돈을 내고 보기가 아까웠다.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한국의 기획영화들은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일정한 스토리라인이 존재한다. 한마디로 대형슈퍼에 전시되는 기획형 과자처럼 화려하고 빵빵한 질소 포장의 형식을 따른다. 간혹 히트상품 중에는 스테디셀러로 남는 명작들도 있다. 그러나 일정한 포맷을 보면, 대충 껍질은 다른데 맛은 비슷한 원리로 돌아간다. 한마디로, 들인 돈에 비해 감상은 먹을 땐 좋을지 몰라도, 많이 먹으면 이빨이 썩는 사탕이나 콜라 같다. 영화적 취향 또한, 점차 사탕도 잘 안 먹고 콜라는 아예 손대지 않는 나의 식성을 닮아간다. 




[Bartholomew the Apostle] Duomo di Milano, 2017. 5. 15. PHOTOGRAPH by CHRIS


두오모 성당(Duomo di Milano)에서 만났던 사도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 the Apostle)는 영화 <천사와 악마 Angels & Demons>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보였다. 벗겨진 자신의 살가죽을 토가(Toga)처럼 감싸고 세상을 당당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전사(Warrior)와도 같았다. 처음엔 그의 조각을 보며 원로회 수장이나 정치가인줄 알았다. 그의 살껍질이 상징하는 사람들의 악랄한 행위를 비웃듯이, 벌거벗은 몸 위로 옷이 되어버린 자신의 살가죽을 자랑스럽게 걸치고선, 세상의 악에 굴하지 않는 당당한 시선은 흡사 천사와 악마를 한데 품고 있는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정직한 정면보다는 측면이나 후면에서 빛나는 진실을 보여주는 바르톨로메오를 잊기 어려워서 한 컷 해봤다. 찍을 때는 몰랐는데, 빛나는 인간의 석상이다.


작가의 이전글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