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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04. 2024

MEPHISTO

메피스토, 격한 시대의 모노드라마

[MEPHISTO] MOVIE POSTER 1981.



난 시골뜨기 배우, 야망이 넘치는 이름, 헨드릭 회프겐. 검은 그녀 앞에서만 하인쯔라고 불리지. 쉿! 나를 아는 너, 이건 비밀이야! 언제나 나를 자랑스러운 ‘헨드릭 회프겐’으로 불러 줘.


치졸한 겁쟁이. 가련한 광대 짓에 위축됐을까? 전혀! 하얀 양복을 입고서 하얀 빵을 먹고 하얀 여인이 뿌렸던 라벤더 향수에 취하고 있어.


난 문화적인 볼셰비키즘을 이루고 싶었어. 물론, 나치의 선동적인 색깔은 딱 질색이었지. 모든 사람들이 관련된 술집과 부둣가에서 거친 노동자의 삶을 거론하며 정치적인 책임을 지는 예술. 난 연극과 결혼한 영원한 파우스트이길 바랐어. 


오호라, 예술은 냉혹하고 위선적인 얼굴을 버리고 어린아이의 가련하고 뜨거운 동정을 받아야 하는 거야. 배부른 자여, 넌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아는가? 파산된 거리에서 번져가는 오한을? 죽은 남편을 보고 흥분으로 흐느끼는 부인의 절규를?


우리에겐 오직 공간과 벽, 움직임과 빛이 소리치고 있다. 최초의 수치심을 겪은 나는 쥐구멍에 숨 고프도록 눈부시고 강인한 빛을 사랑했었지. 지저분한 거리에 정치적인 포스터. 강렬한 문구가 적인 슬로건. 아무것도 팔지 않는 가게!


혁명적인 연극은 아마추어 배우들하고는 할 수 없는 고귀한 이상이었어. 가난한 자손이었던 나는, 순수하고 정직한 혈통을 지닌 나는, 심지어 우아한 귀족들의 저녁식사도 반항적으로 거부했었어. 조용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칼질하는 곳에서 우웩! 거칠게 토해버린 거야.


하하, 무례한 남편이라도 좋아. 병신 같은 룸펜이라 불러도 상관없어. 이데올로기가 흥미로운 정신현상이라고 까발리는 자본가의 관용이란 완전 쓰레기였으니까.


이봐, 이봐, 이봐! 우린 계란을 먹을 때 껍질을 까서 소금에 찍어먹곤 해. 유리잔에서 꺼내 여섯 조각으로 나눠 포크로 찍어먹기보다는. 순수한 나의 지평선을 만족시키는 것은 피와 이상이었지. 지루한 반복, 인간성의 말살이 아니라.


넥타이도 매지 않고 돈도 없는 비렁뱅이 불량배가 지나가네. 오, 반듯한 신사! 침을 뱉고 모독할 요량인가! 저들의 선량한 피는 아주 특별한 음료야. 감각의 깊숙한 곳에 분출하는 욕망을 억지로 가라앉히는 너희들의 가식에서 멀어져 가는 거지


황홀하고 고통스러운 쾌락. 반하기 쉬운 증오. 기분 좋은 역겨움이 괴롭게 항변하는 무대. 아, 신을 위해 몸을 내주는 우리에게 축복을!


오직 낮과 밤이 불건전한 사내의 몸으로 스며들고 있어. 수사슴의 빠른 불쾌감이 북방인의 가슴에서 퍼지고 있어. 무위와 비무위의 경계에서 격렬히 저항한 청년정신의 햄릿을 사랑하겠어. 가히 셰익스피어만이 모든 것이 굳어버린 젤 속의 통조림을 휘저을 소우주라고 불릴 신사야.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수천의 사람들. 너희는 얼마나 겁쟁이인가? 너희가 세상에 동조하더라도 난 비굴하게 몸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카바레 속의 어릿광대는 자유가 위험해지면 거리로 나서 범죄의 타락과 피의 악성을 받아들이지. 암흑도 불사하고 선을 창조하려는 손길을 일축시키며 목이 쉬게 부르짖는데!


아, 그래. 나는 안다. 고결한 파우스트의 영혼만 갖고 있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나약한 악수를 버리기로 한다. 악수가 무슨 의미이냐고? 파괴된 영혼이자 너와 나의 접촉!


난 힘을 원해. 허약한 간교함을 버리고 인격이 환호하길 원해. 시적인 내가 악마와 거리가 있다고? 무대에서 매 순간 변하는 나의 얼굴?


이유 없이 거칠고 이유 없이 빠른 이 세상에서, 놀랍고 예측 불가능한 삶이란 없어. 그저 긴 호흡이 중요할 뿐이야. 처음의 반항적이고 위험한 언어는 잊힌 채로 나쁘다와 성급함을 묻지 말아라. 상의하고 사귀어야 하는 체제에서는 난 관중의 새인 거야. 


눈빛이 흐리멍덩해진 피에로. 입술만 바쁘게 움직이면서 카페의 저항자는 고개를 숙이지. 이 시대는 행동을 원하지 생각이나 성찰을 원하던가? 비극은 어디에서나 등장해. 잘못된 것은 알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하면 되는 거야.


눈부신 빛과 어둠에 선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아프도록 따갑다. 주먹으로 눈을 훔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는가! 꼭두각시로 패배해 버린 원형 경기장에서 싸울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칼은 왜 들고 있었지?


나는 맨손으로 소리쳤어.


넌, 나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난 그저 배우일 뿐인데!


난 눈물을 흘렸어.


격한 시대에서 살아남은 자를 위한 모노드라마는 그렇게 끝을 내렸지.


2005. 4. 5. TUESDAY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소설은 몇 편 읽고 영화화된 작품도 보았다. 20세기 독일 문학의 최고봉답게 그의 아들, 클라우스의 만(Klaus Heinrich Thomas Mann)의 《메피스토 Mephisto》는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잊지 않는다. 영화 <메피스토> 독일과 헝가리 합작영화로, 이스트반 자보(István Szabó ) 감독에 의해 1981년 스크린에 출시되었고, 1982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과 1981년 깐느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다. 주인공 헨드릭 회프겐(Hendrik Höfgen)의 출세와 관계를 향한 이중적인 심리가 나치가 장악하여 미쳐 돌아가는 세상과 걸맞춰서 변질되어 가는 모습은, 연극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게 광기로 혼란해진 배우의 모습 속에 오롯하게 담겨있다.


메피스토(Mephisto)는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의 줄임말로,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희곡 《파우스트 Faust》에 등장하는 악마이다. 그는 파우스트 박사를 유혹하여 부와 권력을 제공하고 파우스트의 영혼을 취한다. 영화 <메피스토>는 시대의 악(惡)에 사로잡힌 회프겐이 그의 양심을 버린 채로 사회적으로 권력을 취하고, 최고의 예술가라는 화려한 지위를 얻기 위해 나치와 동일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치의 문화적 제약과 잔인한 수단에 결탁하여 악과의 타협을 서슴지 않는 그는, 나치 정부에 의해 제거될 위험이 있는 친구를 는 이중적 모순에 둘러싸여 있다.


검고 붉은 색감의 무대와 꼭두각시처럼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로 연극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목적인지 나치당에 충성하는 것이 목적인지 알 수 없도록, 혼란스럽게 의식이 돌아가는 주인공 회프겐은 꼭 편협된 나치 시대에서만 보이는 모습은 아니다. 연극배우로서의 최고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 최고의 배역으로 대중에게 다가가야 하는 회프겐은, 결국 생의 꿈을 위해 권력과 불의와 욕망에 자신의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 박사로 전락하고 만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신을 놓아버린 혼란한 외침과 기괴하도록 창백하게 질린 분장은 아직도 선하다. 그의 모습은 분열된 정신으로 사회로 터져나가기 전, 현대판 조커(Joker)의 원형으로 보인다.

 

"날더러 뭘 어쩌라는 거지? 난 그저 예술가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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