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난 빨리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 거야. 어느새 어른들의 이야기를 읽고 어른들이 찍은 그림을 보고 어른들이 부른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어. 난 캐릭터일지 몰라. 배경은 현대시점에 맞춰져 있지. 현대인의 고통들에 조준을 하고 플래시를 쏘아. 그러나 드러나선 안 될 이야기는 왜 이리 많은가. 삶을 반영하고 있지만 내가 이 번잡한 도시에서 재치 있는 운동을 하고 어리석은 인생구조에 앵글을 끼운 들, 책 속에서 소리치고 있는 거야. 어른이 되어서 종이에서 웅얼웅얼. 실천은 무력해."
그렇게 말한 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잠자던 아버지의 카메라를 눈뜨게 한 Son of Abelardo Morell의 먼 나라 친구.
2005. 8. 7. SUNDAY
문학적인 상상력이 카메라와 결합되면 인간의 뇌를 현실에 꺼내온 듯한 놀라운 옵스큐라 (Obscura)를 실행시킬 수 있다. 순간을 사로잡는 실행의 검은 방(Camera Obscura)이나 시간을 뱉어내는밝은 방(Camera Lucida)을 합쳐 놓은 카메라는 인간의 잠재의식을 표현한 시각적 상태를 담은 기억의 공간이다. 옵스큐라(Obscura)는 라틴어로 "어두운" 또는 "흐릿한"이라는 뜻으로 <카메라 옵스큐라 Camera Obscura>라는 용어에서 주로 사용되는데,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철학 사진에세이, 《밝은 방 La Chambre claire》과 대비되는 <어두운 방>을 의미한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 안으로 작은 구멍을 통해 외부의 빛이 들어오면서 반대편 벽에 바깥 풍경이 거꾸로 투영되는 현상을 가리키며, 이 사물의 역전된 상을 재역전시키기 위해 거울을 사용하는 하나의 기구를 의미하기도 한다. 현대 카메라의 프로토 타입으로 카메라 조리개와 영화관의 초기 형태를 이루고 있는 이 원리는 과거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보조적인 시각매체인 카메라를 몸에 매달고 다니는 현대세계에서 이미지의 본질과 의미를 탐구하는 이들은 적어지고 사진은 하나의 광고물품이나 판매를 위한 피사체가 되어 전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 활동사진으로 불리는 프레임의 연결체, 흐르는 영상이 눈을 깜빡임과 동시에 인간의 내부 인식을 장악하게 되면서 정지된 사진은 더 이상 효과적인 시간의 해석으로 사용되기 어려워 보인다. 그림보다 조금 더 쉬운 예술로 남은 흑백사진처럼 수집가들의 기호품이 되어버린 빛바랜 기억들은 타자들에게 경험의 공감을 안겨주기엔 디지털을 벗어나 복제품이 될 수 없는 하나의 아날로그 프린트에서만 간신히 그 명맥을 잇고 있다.
롤랑 바르트가 《밝은 방 La Chambre claire》에서 밝혔듯이 사진은 단순히 시각적인 전달체로서의 이미지를 넘어서 개인적인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중매자이며 기억의 증명사진과도 같다. 사진기자나 사진작가만이 아니라 일반인도 자신이 공공의 매체에 올리는 이미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한 장의 사진을 찍었을 때 왜 그런 이미지가 나오게 되었는지 고민한다면 단순히 소비하는 이미지로서의 사진은 그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롤랑 바르트의 사진 미학 개념에서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은 스투디움과 푼크툼이다. 스투디움 (Studium)으로서의 사진은 사회 문화적인 맥락으로 바라보는 일반적인 개념의 관찰이다. 사진의 표면적이고 설명적인 측면으로서의 스투디움은 사진의 내용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배경 지식이나 관심을 의미한다. 보편적이고 논리적인 시각으로 분류되는 스투디움과 반대로 푼크툼 (Punctum)은 개인에게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진 속의 특정 요소이며, 이는 개인적 감상이 발휘되는 독특하고 주관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지금은 카메라를 들지 않고 전체적으로 이미지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지만, 광학 카메라의 눈이 달린 핸드폰이 있기 때문에 작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지속적인 연습은 계속하고 있다.
사진을 찍다 보면 마음이 요동칠 때가 있다. 누구도 눈치챌 수 없는 과거와 현재의 감정이 뭉쳐있을 땐 그 고백을 편하게 바라보기가 힘들다. 우연히 찍어낸 기록에서 절망의 어두움을 뚫고 미래의 희망이나 소망이 담긴 메시지가 튀어나올 땐 용서나 화해라는 말이 단발의 이미지에 묻어나곤 한다. 모든 시각적인 예술 매체에는 개인의 미학적인 요소와 사회 문화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아벨라르도 모렐(Abelardo Morell)은 쿠바 태생의 미국 사진작가로, 상상을 실행하는 도구로 카메라를 활용한 감각적인 재치를 구현해 낸다. 모렐은 핀홀 카메라(바늘구멍 카메라 Pinhole Camera)의 원조격인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를 사용하여 방이나 공간 전체를 거대한 카메라로 바꾸어 외부 풍경이 실내 벽에 거꾸로 투영된 이미지를 촬영한다. 즉, 시간과 공간을 전복시키는 옵스큐라 기법을 활용하여 일상적인 공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구현하면서 늘 보아오던 상상을 거꾸로 박히는 듯한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엉뚱녀 앨리스와 그녀를 상상의 세계로 이끌었던 화이트 래빗, 앨리스가 탐험했던 이상한 상상의 세계를 과감하고 초현실주의적인 시각으로 표현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1865》의 작가인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Charles Lutwidge Dodgson)은 그의 괴팍하고 은둔자적 성격을 글 속 여러 캐릭터들을 통해 드러낸다. 앨리스만이 아니라 화이트 래빗, 생쥐, 도도새, 시종 패트, 도마뱀 빌, 공작부인, 기니피그, 요리사, 트럼프 병사들, 하트 여왕, 트럼프 킹 카드, 그리핀, 가짜 거북, 바닷가재 등등.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 영화, 드라마, 책으로 친근하게 접했던 사랑스러운 명작동화다. 루이스 캐럴의 비꼬는 듯한 재치 있는 대사와 맴맴 도는 재미있는 말장난, 유치한 듯 보이는 기발한 언어유희, 박자감을 상실한 음치감, 전말이 뒤집힌 도착적인 단어들, 뜬금없는 동음이의어, 엉뚱한 신조어는 위트가 가득한 웃음을 머금게 한다.
쿠사마 야요이(草くさ間ま 彌やよ生い, Kusama Yayoi)의 물방울 도트 작품을 보았을 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일본적인 감성으로 현란하게 표현한 건가 싶었다. 현대미술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형광빛 색채감과 둥글둥글한 키치적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점박이는 영 취향이 아닌지, 섬뜩하면서 기초적이고 원형적인 그녀의 색감보다 루이스 캐럴의 톤 다운된 듯한 뒤틀리고 환상적인 서술적 묘사가 더 끌린다. 마법이 섞인 듯한 은밀하면서도 순수가 묻어 있는 캐럴만의 기괴함은 냉소적인 어투로 심장을 직격 하는 동시에 문법적이고 뇌과학적인 취향을 저격한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루이스 캐럴은 아이들을 좋아하던 독특한 유머를 가진 수학자이자 사진가이기도 했다. 안면인식장애가 있던 루이스에게 사진은 대상에 대한 기억을 지속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인물 사진에 관심 있었던 그는 아름다운 여자 아이들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특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델이었던 앨리스 플레전스 리들(Alice Pleasance Liddell)은 그의 사랑스러운 뮤즈였다. 평생 독신으로 산 루이스 캐럴, 그의 아름다운 소녀는 그냥 너무 아름다웠을 뿐! 《롤리타 Lolita 1955》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가 최고로 손꼽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나보코프가 러시아 판본을 직접 번역할 정도였으니, 루이스 캐럴의 기밀하고 특이한 상상이 나보코프에게로 전이되면서 세계 문학사를 비판적 포스트 모더니즘 세기로 뒤흔든 소아성애적 에로티시즘이 탄생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도 러시아어로 쓴 《카메라 옵스쿠라 (어둠의 웃음소리) Камера Обскура 1933》를 발간했을 만큼 루이스 캐럴과 마찬가지로 상징적인 '검은 방' 속에 갇힌 인간의 이중적인 심리와 배반적인 욕망, 파멸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카메라 옵스쿠라' 극장에 틀어박힌 안정적이고 부유한 중년의 미술평론가와 아름답고 매혹적인 젊은 여인의 치정극은 누가 환영에 조정되는 것인지 모르도록 시각적인 것에 한껏 매료된 인간의 어리석음과 부도덕한 사랑조차 이기적인 필터로 감싸면서 예술로 합리화하려는 자기기만적인 인간상에 초점을 맞춘다. 어둠의 상이 걷히면서 거꾸로 맺힌 왜곡과 전복의 공간에서 떠나는 날이 바로 자기 종말의 날임을 경고한다.
어떤 사람이든 간에 편안함에 몰입하도록 규정하는 대상이 존재한다. 나는 아이들과 상상의 수준이 비슷해서 아이들을 어른의 입장으로서 가르치거나 제도하기보단 동급의 존재로 보고 있다. 꼬꼬마 후배 아들이 처음 나를 보고는 고개를 빤히 들고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너무 무서워요."
"뭐? 어디가?"
"전부 다요."
"그래? 친절하면 안 어울리긴 해."
어린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금세 기호가 변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내리는 어른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어른이건 아이건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놀고 나서 정리도 알아서 하면 서로 공간을 같이 쓸 수 있고 못하면 바로 퇴출적 간섭이 발효된다.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는 앨리스의 모험에서 보듯이 초현실주의적이고 부조리한 세계를 독특한 상상의 서술적 옵스큐라로 구현해 낸 루이스 캐럴은 변덕적인 성격을 표출하도록 회중시계를 든 화이트 래빗을 등장시키며 어두운 방(Camera Obscura)을 떠나라고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