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海, Indulge in the World] Procrate. IPAD. Drawing by CHRIS
중국에서 공부하면서, 일하면서,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타인들의 일을 해결하려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도 놓지 않았던 삶에 대한 열정은 이국에서 재정립이 필요했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5천2백만이다. 중국은 14억 2천만, 비공식 인구(黑口)까지 포함하면 16억이다. 인도는 14억 3천만인데, 공식적인 집계로 세계 최대 인구를 가진 나라이다. 미국은 3억 3천만이다. 일본은 1억 2천만이다. 우리나라보다 몇 배수의 사람들을 보면서, 시야가 좁은 한국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린 곳으로 가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사진기를 팔아 두 달 치 여비를 마련한 뒤 한국 탈출과 함께 중국행을 택했던 2007년, 원래의 계획은 중국을 거쳐 인도로 간다가 목표였다. 어쩌다가 중국을 새로운 삶의 거점으로 삼게 되었지만 말이다.
사회주의던 자본주의던 삶에 대한 기본적인 실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상적인 사고의 형태로 머물러있는 인간의 욕망은 정치적 이념 때문인지, 제도적 억제 때문인지, 사회적 욕망 때문인지, 개인적 욕구 때문인지 몰라도 생활을 영위하는 수단인 돈에 대해서는 꺼내지 않고 얌전한 듯 고상한 듯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노력해서 돈을 버는 방법이나 정상적인 수단으로 내부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고민하기보다는 잡을 수 없는 헛된 신기루와 무수한 소문과 낭설들에 귀를 기울인다. 실체는 없이 거짓말을 입발린 듯하는 사기꾼들에 질려있던 나는돈에 대해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질색팔색했다.
중국에서 눈에 불을 켜고 살아가는 각 개인들의 생존에 대한 열의를 보고 돈에 대한 증오와 열망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귀에 매일같이 들려오는 돈 이야기를 들으면 "돈이냐 똥이냐" 중얼거리며 허탈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현실을 인정하는 법도 배웠다. 돈이 있어야 산다는 것을, 밑바닥에서 살아갈 때 하루에 필요한 것은 밥 먹을 돈임을 느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비현실적이긴 하다. 현실에서 돈에 대한 궁핍이 인식되지 않을 때까지는 새로운 구상에 빠져 있다.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어서인지 타인이 만든 것을 구입하는데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제작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목에 칼이 들어오기까지는 사람들이아우성쳐도 위기로 인식이 되지 않는다. 벼락치기에 익숙했던 어릴 적 습관이 욕망과 실재를 비교함에 있어서체계적이지 않은 현재의 모순을 낳은 것 같다.
한국의 친구들은 사업하는 비율이 적다. 대학을 졸업하고 안전한 사회생활을 위해 주변인들은 거의 다 직장생활을 선택했다. 지금에서야 회사를 나와서 사업하는 친구들도 간간히 있다. 주변의 중국 친구들은 모두 사업을 한다. 한국적인 관점에서 자수성가한 친구들이 90% 이상이다. 모두 남자들이고, 진취적인 성향과 잘 맞는다. 관계확장의 이유로 사업하는 여자 친구들도 소개해주긴 하는데, 관심사가 여성향이 아니어서인지 대화거리가 없어서 별로 안 맞긴 한다. 중국 친구들 중에서 가난한 친구는 한 명, 나머지는 전부 잘 사는 기준이 만약 돈이라고 한다면 일반적인 한국부자들보다 더 잘 산다. 그런데 이들은 요새 위기감에 절어 있다. 곧 망할 것 같다면서 하루종일 일하고 하루종일 대접하고 하루종일 돈 이야기를 한다. 돈을 벌어야 다들 먹고살수 있는 실존형 인간이기 때문에 돈에 대한 궁리로 어떻게 사업을 유지하고 세태에 맞게 경영 형태를 변화시킬지 고민한다.
처음엔 '하루종일 돈-돈-돈이네' 생각했다. 체할 것 같았다. 중국에서 공부할 때 미국이나 유럽의 아이들은 어려서인지 돈에 대한 이야기보단 아이디어에 집중하고 연애도 고민하는 청춘 같은 모습이었다. 아시아권의 사람들은 고지식했다. 보통 기업연수차 온 사람이거나 법조계나 고위직 공무원들, 집안이 괜찮아서 한가락하는 어린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대기업이나 공기업 취업이나 고위직 승진처럼 기대하는 사회적 발전의 경로가 비슷했다. 타국의 아이들도 중국인들을 보고선 그랬다.
"중국에서 돈 이야기만 들었더니 귀가 아파. 중국 사람들은 돈에 미친놈들인 거 같아."
십 수년 넘게 교류하는 친구들은 한마디로 중상위 계급이다. 중국에서는 최상위 계급일 수 있다. 그러나 책상을 지키고 있는 우리나라 일반 기업체 사장하고는 다르다. 다들 생활에 있어선 실질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사업하는 사람들이 적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 사람 중에서 자기 사업에 대한 계획을 짜는 사람이 적다. 안정적인 삶의 루트를 생각하고 머리에 가득한 대상들과의 행복한 가정과 꿀 같은 결혼을 꿈꾼다. 아무것도 없다 보면 결국 나만의 일을 고민하고 해야 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선 드라마와 달리 재벌집 자제들과 만나서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 돈에 관해선 절대 관대하지 않은 것이 바로 돈 많은 사람들의 의식이다. 일분일초까지 벗겨먹고자 하는 것이 소위 잘 나가는 자들의 사고방식이다. 고생해서 시간을 투자한 사람들이 쉽게 돈에 대한 관념을 포기한다고 하면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돈벌이와 관련된 인간관계에 인생을 올인하는 중국 친구들 중에서 그들의 삶은 한마디로 고생스럽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을 안 간 사람이 절반 이상이다. 열여섯부터 현장 일을 배우고, 닥치는 대로 기술을 배운 기술전문직이다. 그들에겐 나도 가방끈이 긴 엘리트로 보일 수 있겠다.
바다로 뛰어드는 것은 모험이다. 신밧드의 모험처럼 보물을 캐기 위해 온갖 고초를 겪고 결국 얻는 것은 무엇이 될까? 중국에서 접한말 중에 가장 의미로웠던 단어는 도전(下海)이었다. 광활한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뛰어드는 용기! 치마로 머리를 감싸고 눈먼 아비를 위해 재물이 되어 인당수에 뛰어들면 멋지고 힘센 용왕이 희생하는 여인을 어여삐 여겨 구해주고, 심청은 용왕부인이 되어서 가족들을 살리고 용부인처럼 권세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로 뛰어드는 것은 자살이 아니었다. 어차피 죽을 건데 타인의 칼에 찔려 죽는 것보다 시원하게 짠물 먹고 죽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알 수 없는 세계로 뛰어들거나 앞날을 모르는데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는 것은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다. 사는 게 암담하고 죽고 싶었을 때 어두운 천장을 보면서 결심했다.
"이 느낌 잊지 말자. 죽을 만큼의 각오를 안고 살자."
미래에 기대하는 거창한 삶은 없다. 세상을 돌아다니며생각의 틀을 바꾸었다. 머리에서 맴돌기만 하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밥만 먹고 그림 공장에서 하루에 온종일 그림만 그리는 사람들, 밤을 새 가면서 필름을 굴리는 사람들. 돈을 되는 일이 되게 하기 위해 수백 번을 시도해 보는 사람들. 인맥을 풀어가며 관계를 새롭게 만드는 사람들. 아침 일곱 시부터 출근해서 새벽 두 시까지 일하는 사람들. 뒤엉킨 관계를 풀기 위해 정신 나가게 대접하느라 통풍에 발이 붓고 공장에서 자면서도 새벽에 일어나 일하는데 매진하는 사람들. 남들의 현재를 부러워하기 이전에 하루를 투자하는 시간이 곱절인 사람들과 이상만 가득한 사람들은 같은 삶을 영유할 수 없다. 잘 것 다 자고 먹을 것 다 먹고 남들 다 신경 쓰고 권리만을 보장받으려고 일일이 따지면 어떻게 세상으로 나아가서 부러워하던 그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는가?
만약 본인이 체력이 약하고 머리도 평균적이고 의지가 부드럽다면 그 삶에 적합한 행동반경을 정하고 자신의 한계와 한정된생활 범위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 평온한 삶도 나름대로 가치 있다. 현재 기업의 입장에서는 복지와 경제를 둘 다 견인하는 것은 힘든 상황이 되었다. 지구에서 인구가 터져나가는 현재, 전 세계 경영자들의 이윤적인 계산으로는 인건비를 줄이는 게 핵심이다. 일하지 않는 날은 노동자의 쉴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주 5일제와 주 4일제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느 순간부터 복지의 의미는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공동체 의식으로 공존하는 개념이 아닌, 그저 개인적으로 쉬고 노는 워라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하지 않는 날에도 먹고 놀고 쉬는 비용을 보장해 준다는 것은 잘 생각해 보면 인간을 생각 없는 주체로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다. 유럽에 갔을 때 낮에 2-3시간씩 가게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잠을 자거나 쉬는 상황을 보면서 생각이 맴돌았다. 한쪽은 실업률을 고려하고 있고 한쪽은 자유와 쉼을 고려하고 있었다. 생활의 여유를 보장하고 인간다운 삶을 형성하기 위한 제도적인 구성은 필수적이지만, 그것이 노는 것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노는 것과 노동은 문제가 쉽고 어렵다는 대치적인 개념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자발적으로 생산하고 자발적으로 소비하는 자기 동력적인 태도이다.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는 부정적이다. 비천하거나 수고스러움의 묘사되는 노예적인 노동에서 벗어나서 스스로의 생을 영위하기 위한 땀 흘리는 노동이 있어야 자유 또한 의미롭다. 부모의 유산을 상속하거나 복권처럼 얻어걸린 횡재의 룰렛이 스스로를 빛나게 할 수 없다. 재능도 그러하다. 부모가 훌륭했던 사람치고 자식이 훌륭하기는 어렵다. 부모가 망나니라도 자식이 뛰어나면 개천에서 용 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심리적인 좌절감은 관계를 해체하고 서로에게 부담이 된다. 부모의 그늘이 넓던 좁든 간에 그 둥지를 떨치고 날아야 자신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테슬라가 올해 4월 인력의 10%를 줄이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고 발표한 이유도 어설프게 민간복지를 챙겨야 하는 현대의 자본주의 세계의 모순된 현실을 말하고 있다. 자기 이익에 몰두하는 세계에서 계속적인 인력 삭감과 스마트한 AI 세상의 도래가 머지않았다. 이후기업에는 핵심인력만이 필요할 뿐, 나머지는 기계가 대체하는 시대가 된다. 중소 대기업이라고 불리는 대형업체 빼고 우리나라의 70% 이상은 1인 기업이다. 먹고살려면 뭐든 하면 될 텐데 조건을 따지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고생을 해봐야 남들 부럽다는 이야기를 걷어찰 수 있겠구나 싶다.
세상에 괴물 같은 사람들은 가득하다. 나도 한 미침 하지만 늦게 일어선 바람에 시간을 이길 수 없다. 겉보기는 젊은 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만 젊어 보일 뿐 세상으로 나가면 이미 나이와 생각이 젊은 사람으로 세대교체는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의 일하는 지수, 혹은 지도자의 나잇대를 따지면 세계 평균값에서 벗어난 완전 고령화다. 나는 전력 달리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버겁다. 선수생활은 체질이 아닌데 말이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드라마에 빠져서 재벌들과의 연애를 부러워하거나 그에 대해 일장연설하는 사람도 많지만 돈 많은 이들을 부러워할 필요 없다. 어차피 가까운 미래에 모든 것이 재편되게 되어 있다. 일론 머스크도 인류에게 기본 복지를 제공하는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놀이에 집중하고 쉬고 싶어 하는 연약한 사람들은 미래의 세계에서 기계가 대체된 삶에서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의 형태로 놓이게 된다. 그것은 행복의 길이 아니다.
포화되어 가는 세상의 인구는 지구에 남아있기엔 이미 한계를 넘었다. 미래의 전략에서 살아남는 것은 정신의 발현이라고 본다. 이 개념은 비관적도 아니고 낙관적도 아니다. 정신적인 형태를 구체화시키고, 내부에 숨겨진 무형의 자산을 응축시킨 뒤 미래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비밀을 푸는 게 급선무이다. 실행이 가능할지는 모른다. 그냥 해본다. 지금 안 하면 언제 할 것인가? 하기로 하면 한다. 그리고 실패하면 툴툴 턴다. 이번에 계획이 완전 바보 같았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다시 한다. 모두가 나가떨어질 때까지 한다. 개인적인 기본 생의 전략이다. 잔잔한 호숫가에 조용히 놓여있던 이야기를 풀어가며 삶의 거대한 바다에 커다란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 하고 싶은 일이다.남이 억지로 떠다미는 일을 하기보단,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때 흥이 나고 시간은 의미를 상실한다. 굶주린 세월을 지나왔다면, 다시 굶주려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빈털터리로 돌아가도 무섭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도전할 때 가장 큰 위안이다.
성공의 척도는 누구나 다르다. 회사를 세우면서 십 년을 지속시킬 수 있으면 그다음 십 년을 지속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십 년 뒤에 살아남아 있다면 변화를 줄 거라고 다짐했다. 지금 변화의 기로에 있다. 사업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개인적인 작업으로 전환하기로 마음먹었다. 기한은 다가오고 있다. 한정된 시간을 설정했기 때문에 최대치를 사용하여 움직이고 있다. 행동했던 결과의 유의미함은 시간이 흘러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문을 열고 모든 것을 시작한 책임자로서 사업방향부터 변화를 주고 살아남는 것이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