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LIT SELF : COMMERCIAL AND ART] PHOTO COLLAGES by CHRIS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는 상품과 예술품의 관계와 비슷하게 보인다. 피사체로서 각자의 외형적인 특질을 가지고 있지만, 제작된 목적이나 표현된 스타일, 제작방식에서 대상에 대한 경험을 전달하는데 현격한 차이를 나타낸다.
상업영화(Commercial Film)는 팝콘과 콜라처럼 일률적인 시스템을 통해 생산이 되어 대량 유통되고 대량 소비되는 과정을 거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논리로 적절한 가격에 맛은 불량스럽지만 대중을 저격할 수 있는 흥미, 일차적인 즐거움, 쉽게 손이 가는 요소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게 시대의 유희성을 가져야 하고 절대적으로 쉬워야 한다. 말랑한 로맨스와 슬랩스틱 코미디의 가벼운 주제부터 블럭버스터 액션과 SF의 스펙터클한 시공간 체험을 제공하면 시간을 때우기 좋아하는 대중들의 호응도가 높아질 것이다. 유명한 배우와 인기 감독, 특수효과와 장대한 스케일, 대규모 제작비를 통해 관객의 시선을 끌고 타겟층을 명확하게 설정하여 판매의 성공을 향해 달리는 상업 영화에는 한방이 존재한다. 한방에 죽고 한방에 산다.
예술영화(Art Film)는 보통 작가주의 작품으로 불리는데, 의미 있는 이야기와 예술적인 표현들, 풍부한 감정과 엇나간 세계의 비평들, 감독의 시선과 제작자적인 마인드를 바탕에 두고 메시지 전달에 방점을 둔다. 화자는 내면의 이야기를 외부로 발산하기 위해 새로운 장르를 도입하고 맛깔난 표현을 창작하며, 철학적이고 심오한 사회 심리학적인 태도로서 삶에 진지한 시선을 던진다. 보통 건강한 음식은 본질의 맛을 가지고 있으되 그 평범함에 먹기 싫어지듯이 삶의 본질을 추구하는 영상이나 제품은 확실히 인기 없는 장르에 속한다. 불어나는 인구만큼 서사적인 구조는 극적으로 다양화되고 있고, 기술적인 발전에 따라 대규모 메이킹이 아니어도 충분히 가벼운 매체를 통해 상상을 실험할 수 있는 무대는 폭넓어지고 있다.
사춘기 때 입이 심심하고 스트레스가 심하면 먹곤 했던 과자는 현재 거의 먹지 않는다. 피가 응고된 물컹한 선지해장국을 보면 입맛이 돌기보단 급격하게 미각의 수치가 떨어지고, 연탄불 고깃집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산화탄소에 중독될 기분이라 가지 않는 식습관의 기호처럼 상업영화나 예술영화도 한마디로 기호 차이다. 책도 그러하다. 연애소설이나 자기 개발서에서 흥미를 느끼는 사람과 그런 글에서 전혀 감흥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활자만 보면 바로 숙면에 곯아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듯이 모두 자기만의 관심과 선호에 따라 의식을 형성하게 된다.
영화를 예로 들었지만, 인간이 산출해내는 제작의 행위를 분석해보면 상업물과 예술품의 경계선은 모호하다. 상업 예술을 표방하는 포지션에서는 작품성이 있어야 제작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고, 더불어 상업성이 있어야 자력으로 지속적인 생산을 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 흑과 백의 분열된 자아처럼, 인간을 구성하는 육체와 정신처럼 상업과 예술은 어느 하나에만 치중할 수 없는 창작 논리의 경계선을 제시한다.
자의식을 관찰하면 내면에는 고독한 한 남자가 있다. 그리고 등을 돌린 외로운 한 여자도. 안타깝게도 둘 다 상업적으로 팔리는 머리와 가슴은 가지고 있지 않다. 대중성과 부합되지 않는 핸디캡을 벗어나기 위해 육체를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감각을 돌리고 있지만, 의식체계는 타인들과 세계의 서랍을 다른 형태로 쌓고 있다. 온라인 공간이 열리고 나서 상업과 예술의문턱은 얕아지고 담 높은 경계를 갖지 않는다. 암세포처럼 무한 증식으로 퍼지는 지식들과 정보의 탑 속에서 경계를 짓고 있는 모든 결계들을 헤치고 삶의 핵심을 뽑아낼 수 있는 사람만이 미래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육체는 곧 사라지겠지만, 정신은 청명한 형태로 살아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