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MUSIC ] CHINA. 2024. 3. 8. PHOTOGRAPH by CHRIS
십 대에는 라디오와 전축 속의 음악을 마음에 담았다. 일방적으로 주입식 교육을 전달하는 선생님들에게 콧방귀를 뀌어대는 오만한 태도로 그 누구보다 흩어진 삶의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던 나는 밤새 작가들과 대화를 했고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상상의 나래를 휘저으며 자유롭게 헤엄을 쳤다. 그리고 그 여행에는 항상 음악이 있었다. 잠으로 빠져들지 못했던 것은 책과 그림 때문이었을까, 아님 공상때문이었을까? 한편으론 숨겨진 의식으로 이끌었던 것은 친구 같던 음악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카세트테이프와 회전하는 음반으로 흐르는 세상의 소리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보이지 않는 내용물을 담았다가 손쉽게 지울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한 마술상자를 든 기분이었다. 락과 함께 하는 젊음. 단단한 돌덩이 속에 영혼이 웅크리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학교라는 답답한 생활에서 락이 풍기는 반항적인 태도도 마음에 들었고 억압된 사회와 비효율적인 제도권과 모순된 삶에 대한 비판을 공감했다. 거칠게 내뱉고 싶은 절규와 건들대는 몸짓을 사랑했다. 저항이라는 단어도 애정했다. 순응은 포기처럼 들렸다.
그리고 이십 대. 십 대 후반부터 휘몰아친 우물 속 세상에서 참기 힘들었다. 감미로운 음악 선율과 부드러운 세상 이야기는 괴로움이었다. 뒤늦게 사춘기가 온 것처럼 광풍 앞에 누워버린 풀잎이 되어 바닥에 납작 엎드려야 했다. 평범하게 살 수 없고 일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잠을 잘 수 없었다. 적막에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싶었다. 보고 싶지 않은 그 모든 것을 또 봐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울지도 못하는 눈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목에선 피가 쏟아졌다. 귀에서도 진물이 흘렀다. 눈 안은 건조한 돌멩이가 돌아다니며 각막을 찔러댔다. 머리를 엄습하는 두통은 멈추지 않았다. 삶의 인연을 다 끊어버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살고자 미친 듯이 바둥대는 스스로에게 연민이 들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결심했다. 여기서 탈출한다면 살아남은 기념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할 거라고 말이다.
서른 전후로 들었던 노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그의 텃텃한 음색에 비해 끌리지 않았다. 김광석 노래를 많이 부르던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노래는 와닿지 않았다. 삼십 대의 삶에선 노래 속에서 찾던 청춘을 회상할 게 없었다. 사람들이 외롭다고 할 때 사랑을 애타게 부르지도 않았다. 사랑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나는 언제나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 수 없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이곳을 떠났고, 나를 찾아 돌아다녔다. 거기엔 다른 언어만이 있었다. 방황하는 발걸음 속에서 나를 멈춰 세우는 것을 발견했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마흔 살에 들었던 양희은의 [내 나이 마흔 살에는], 역시 이때에도 음악이 그다지 다가오지 않았다. 흘러간 것을 잡을 게 많아서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만 들었다. 먹고살아야 했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뭐든 만드는 것인데 일정하게 시간을 쓸 수 없는 나로선 누군가가 만든 공간으로 들어갈 생각은 아예 접어두었다. 상상하는 세계를 만들어서 그걸로 돈도 벌고 자유를 찾고 싶었다. 남들 앞에 바짝 엎드리는 굴욕과 뻣뻣한 자존심이 뭔 상관인가. 죽고 싶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살기 위해서 뭐든지 못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지금에 와 있다.
우리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 한다. 돌아보면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래서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들을 보면 입가에 쓴웃음만 짓게 된다.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라고 회상되는 거짓 속에서 영혼의 그림자는 어두움에 싸여 있다. 힘겨울 땐 시간이 느리게 간다. 모든 감정과 경험이 온몸에 날카롭게 새겨진다. 무엇인가를 적을 때는 행복한 순간이 떠오르지 않는다. 슬프고 힘들고 죽고 싶었던 순간만이 생각난다. 나머지는 그다지 다가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