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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n 28. 2024

TIME IN A FORMALIN BOTTLE

포르말린 약병 속의 시간. 지나간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

[Hospital Prison, Memories of The Old Days] 2004. 09. NOTEPAD. MEMENTO SKETCH by CHRIS


병원.

그곳만 들어서면 항상 코를 찌푸리고 있다.

머리를 감으면 반응이 나아질까.

희미한 기억만 남았을 뿐 냄새도 안 나는데 

습관적으로 코를 찡긋하는 건 왜일까.

자주 가서 그런가?

병원은 정신을 말아먹는다.

갔다 오면 잠이 쏟아진다.

허기진 잠은 유쾌하지 않다.

피곤에 절어 쉬려고 하면

일 벌여놓은 사람들 전화 때문에 나가고

하루를 버리는 게 아깝다.

점점 무감해져 가고 있다.

포르말린 약병 속에 갇힌 사람들.

그 안의 시간들.

언제 그만둘 수 있을까.


2004. 9. 3. FRIDAY



몸이 다치거나 불편해서 병원을 가면 통각이 떠도는 현실로 인해 감정을 느낄 새가 없었다. 아픔에 시간을 고정시키거나 그 아픔도 미미할 땐 공간에 대한 감상으로 빠져버리는 특징으로 인해 병원은 유약한 감성 탈출의 대상이었다. 병원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던 시절엔 병원에 대한 인상은 좋지 않았다. 그곳에 다녀오면 피곤했다. 한두 시간 쓰러져 눈을 감고 누워있어야 했다. 어제는 의연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긴장이 풀어져버렸다.


알코올, 표백제, 살균제, 소독약, 항생제, 소염제, 연고, 약품, 화학물질, 장갑, 튜브, 마스크, 밴드, 고무 재질 연결제, 혼재된 음식, 토사물, 비닐, 내부가 열린 인간의 체취, 썩어가는 살들과 고름과 피, 체액과 배설물, 핀셋과 바늘, 칼과 가위, 전기 자극 기계들과 각종 음파 소리, 흩어진 금속의 비린내.


냄새에 민감했던 스무 살엔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 매일 머리를 감았다. 고기불판에서 피어오른 산발적인 고기향처럼 온몸에 달라붙는 죽음과 상처의 냄새는 존재가 어디에 놓여있는지를 강하게 자각하게 만들었다. 상상을 불허하는 음침함을 떨궈버리려는 듯이 샤워를 하고선 내일 다시 존재를 인식하게 만드는 옷을 입으러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기 위한 망연한 위안거리를 찾았다. 잠을 잘 수 없었고 벌겋게 눈을 뜨고서 하루를 보냈다.


친숙한 사람과 이렇게 허무하게 헤어질 있다는 사실을 운전대를 잡고 텅 빈 거리를 달리며 느꼈다. 뇌리에 소름이 돋았다. 예측할 없는 이별의 순간은 다. 사람들과의 부대낌 속에서 헤어짐에 단련된 알았던 자만은 여지없이 깨졌다. 감정이 뒤늦게 반응하고 있다.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입장이 무표정한 얼굴을 만들어도 철판 아래 묻어둔 소스라침까지 묻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타인을 통해 현실에서 감지하던 상대적인 괴리감이나 내부적인 자괴감은 아무런 의미를 발휘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삶과 죽음에 대해 알게 되는 거친 반성은 온통 내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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