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éjà Vu Confusion] 2005. 11. PHOTOGRAPH by CHRIS
몽유병자의 걸음으로 짚어나간 흔들리는 환각통.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의 신비로운 날들. 부드러운 에로티시즘. 랄프 깁슨(RALPH GIBSON)의 오리지널 프린트를 보면서 풍요로운 데자뷔에 달아올랐다. 아쉬운 점이란 전시의 내용보다는 전시를 보여주는 방식에 있었다. 관람자의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비치는 게릴라의 폭탄같이 엄습했던 조명의 세기가 실망스러웠다. 평범한 인상을 주도록 조도를 높인 작가의 꿈. 그 틈에서 몰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Workshop 가격이 대단히 비싸서 예술적인 접근이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상업적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반성이 사라진 세계는 졸린다. 답습된 박수와 일률적인 칭찬 속에서 일상의 발걸음은 어디쯤에 머물러 있을까.
2005. 11. 7. MONDAY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고 아닌 게 있다. 카메라를 들던 시절에 타인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엽서나 사진 조각들을 가지고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타인들의 기억을 뒤집고서 어느 날의 단편들과 함께 장난감 병정처럼 병렬로, 직렬로, 중첩하여 혹은 눕혀서 펼쳐놓았다. 언젠가 본 듯한 그녀와 그 남자의 그림자 속에서 당신을 만난 듯한 기시감에 빠져 있었다.
타인들의 작품을 바라보면 의식이 떠돌면서 삶의 어떤 날을 떠올리곤 한다. 시간을 거슬러가는 순간에서 황망히 길을 잃기도 하고 스스로 내던진 말조차 어떤 연유로 흘러나왔는지 기억이 안나기도 한다. 롤랑 바르트도 그렇고 랄프 깁슨도 그렇고, 뭉그러지고 해체되는 세계에서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는 작품의 절반만을 보여줄 뿐, 나머지 절반의 완성은 각자의 정치적 추상의 지도로 대상을 해석하는 독자나 관객의 몫이라고 했다.
이 세상에 보이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살펴보다 보면 고요하고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 더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모든 추상적인 그림과 모든 구체적인 말들의 혼합은 언어의 표현을 상실하게 만든다. 간혹 테니스 공처럼 튕겨진 작가들의 감정 세례를 받으며 반절의 해석과 의미 부여를 감당해야 할 자로서 그다지 대상에 심취하지 못한 것인지, 몰입의 시선이 사라진 것인지 소통이 없는 감각적인 표현에 대해서 담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