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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23. 2024

THE MEMORY PALACE

《마테오 리치 MATTEO RICCI, 기억의 궁전》| 기억을 찾는 여행

[MATTEO RICCI, THE MEMORY PALACE] CHINA. 2008. 8. 29. PHOTOGRAPHY by CHRIS



기억을 쌓아가는 작업은 한순간 바람 불면 사라질 신기루(海市蜃楼)와 같다. 헛되어 보이지만, 인생의 꿈이 눈앞에 놓여 있기에 요란한 소음을 내며 진공청소기를 들고 인생을 흔드는 미래에 머리통부터 집어넣고 본다. 기억을 무심하게 흡수하는 삶은 내가 주체가 아니라, 살아가는 행위가 주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순간 내가 사라져 있지만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가! 인생이란 이름으로.



西琴曲意八章 中 第二曲 牧童游山 


목동이 산을 유람하네

마테오 리치 (利瑪竇)



목동이 어느 날 문득 근심을 느껴
자기가 있는 산이 싫어졌네
그래서 생각했지
저 멀리 훨씬 아름다워 보이는
저 산에 가면 근심도 씻을 수 있으리라고

牧童忽有忧

即厌此山

而远望

彼山之如美

可雪忧焉

그 산으로 향했지
하지만 가까이 가도
멀리서 보았을 때만큼 아름답지 않았다네.

至彼山

近彼山

近不若远矣.

목동이여, 목동이여
사는 곳을 바꾸면
자신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牧童牧童,

易居者

宁易己乎

사는 곳을 바꾼다고 어찌 자신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근심과 즐거움은 마음에서 비롯되니
마음이 평안하면 어디를 가도 즐겁고
마음이 어지러우면 어디를 가도 근심스러우리
먼지가 눈에 들어오기만 해도
사람은 금세 아픔을 느끼는데
하물며 마음에 파고든 송곳을 어찌 무시할런가?

汝何往而能离己乎?

忧乐由心萌

心平随处乐

心幻随处忧

微埃入目

人速疾之

而尔宽於串心之锥乎?

자기 외에 것을 바란다 해도
구하는 것은 결코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네
왜 마음을 다스리고
자기가 있는 산에서 편히 살려하지 않는가

己外尊己

固不及自得矣

奚不治本心

而永安于故山也


고금의 말씀은 모두 한 가지를 이르나니
밖으로 노닐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마음을 안에 두면 이로움이 있다는 것을


古今论皆指一耳
游外无益,
居内有利矣


<인상 깊었던 책 속의 시>



2008년 8월 말, '기억을 찾는 여행'이라는 콘셉트로 백두산을 찾아가던 길이었다. 덜컹거리는 기차간에서 펼쳐든 책이 속삭였다.


"괴로워하지 말게.

오늘 저 산이 저렇게도 푸르지 않은가!"


나는 책 읽기도 포기하고 흘러가는 세상 풍경에 시선을 놓아버렸다.

2008. 8. 29. FRIDAY



기차여행을 하면서 통일이 되어서 한국에서 출발하여 북한을 거쳐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터키,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 특급열차가 운영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까지 직행이 있음에도 돌아서만 가야 하는 여행은 분단된 현실을 체감하게 했다.


- 정면으로 보기엔 거울과 같아서 들춰보기 어려운 우리의 삶은 시간을 적시는 여행과 많이 닮았어요. 오늘 내가 걷는 길은 알지 못해서 들어섰을 수도 있고, 스스로 결정해서 만나는 것이기도 하죠. 시간은 오묘해서 작은 아이 같던 우리의 얼굴을 주름지게 만들어요. 주름 속에서 고생했던 흔적들과 함께, 순간 느꼈던 기쁨들이 어우러져 있으니까요. 가끔 나이란 내가 보낸 시간을 찬찬히 입맛 다시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적혀있는 글을 보고서 내가 적은 감상일까, 다른 이의 입을 빌린 것일까 궁금해졌다. 아무런 표기도 없이 글만 달랑 쓰여 있으니 기억이 희미한 상태에서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다. 기억의 궁전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알았지만 잊어버린 이야기, 기억했지만 놓쳐버린 이야기, 경험했지만 잃어버린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이름을 구성하는 삶을 지을 것이다. 





초벌 여행에선 짐이 많다. 재벌(?) 여행이 되면서부터 짐이 줄어든다. 다만, 여행지로 떠날 때 들고 가는 짐은 작아지고 있는데, 돌아오는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웬일인지 모르겠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건 주변과 후회스럽지 않은 이별을 할 수 있다는 말과 같겠다. 여행을 처음 했을 때와 달리 진창 가게 되는 여행은 이름도 제각각인 명찰을 달고 있다.

2013. 6. 1. SATU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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