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박물관, 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예술
"감각을 즐기는 방식은 문화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지만, 감각을 이용하는 방식은 정확히 똑같다. 감각은 우리를 과거와 밀접하게 이어주는데 이는 아무리 주요한 사상도 수행할 수 없는 일이다."
《감각의 박물관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의 서문에서 저자 다이앤 애커만(Diane Ackerman)은 감각의 효용과 중요성에 관해 언급한다. 후각, 미각, 촉각, 청각, 시각, 그리고 공감각은 인간의 몸과 결합되어 일상생활과 부딪히며 일어나는 삶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우리의 머리를 휘감는 마음은 단순히 뇌의 지적인 해석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호르몬과 효소를 따라 몸 전체를 여행한다. 감각의 다양성과 기원, 그 진화과정과 문화적 요소들, 과학과 민속, 언어적인 요소들이 어우러진 자연의 선물이 주는 삶의 축제 속으로 들어가 본다.
01. 후각 SMELL
엘리베이터를 나선다. 현관 자동문이 열리고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찌른다. 몸을 움츠리고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하늘을 본다. 사람 없는 거리에 퍼지는 익숙한 빛의 눈부심과 불어오는 시간의 향기. 말없이 어린 시절로 이끄는 수만 수천 가지의 냄새가 밀려든다. 몸속에서 군불을 때며 한없이 익어버린 공기는 비말한 콧속으로 직진하여 머리를 휘감으면서 세상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두 눈 속에서 불투명한 과거를 쏟아낸다. 삶을 시작하는 공기의 흡입과 삶이 끝나는 공기의 분출 사이에서 항상 쌍으로 이루어지는 호흡은 언어의 수채화를 감지하기 전에 당신을 열렬하게 감싸고 당신을 거세게 뒤덮고 당신을 철저하게 무너뜨리며 수수께끼의 말들을 침묵시킨다.
코를 찌르지만 영원하지 않고,
달콤하지만 오래가지 않는,
그 향기, 순간의 애원
언어의 마술사 셰익스피어가 표현한 제비꽃의 향기는 조세핀의 체취를 맡고 싶어 하던 나폴레옹의 유명한 편지의 구절을 떠올리게 하거나 유전적인 후열에 발맞춰 진한 황갈색을 띠는 예민한 고양이의 후각을 따라 스무 살에 맡았던 싱그러운 오월의 향기를 끌고 올 수도 있다. 중력이 없는 상태에서 휘발성 입자들이 운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주인들이 맛과 냄새를 잃어버린다는 사실은 미래로 나아가는 현재의 시점에서 하나를 내어주고 두 개를 잃어버리는 기억의 불합리한 장사로 생각될 수 있다. 냄새에 대한 감각은 과거와 연결된 자물쇠를 열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열쇠이기도 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냄새에 관한 인간의 생식적인 삶의 기원을 자극한다. 인간의 체취가 주는 직접적인 흥분만이 아니라 다락방 어딘가 놓고 말았던 쿰쿰하게 썩어버린 비밀들과 누군가 쏟아버린 피가 까맣게 변해버린 자국들은 경험의 파도를 회오리치며 지난 기억을 몰고 온다. 소금 바다에서 태어난 인간들의 생식기에서는 청어 냄새가 난다. 하얗게 말라버린 짜디짠 땀들과 속이 허한 냄새들로 채워진 악취들은 과거와 결합되면 벗어버리고 싶지 않은 탐욕스러운 향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분자들의 재치기는 기억의 뇌관을 건드리며 추억의 향기를 따끔하게 건드린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숨결은 여성에 비해 더 강하고 더 생생하며 더 다양하다. 젊은 남자의 냄새에는 자연을 상기시키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은 불이고 폭풍이며 바다의 소금과 같다. 그것은 활기와 욕망으로 고통 친다. 그것은 강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모든 것을 암시한다.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육체적 행복을 느낀다."
오감의 층위 중에서 생의 향기가 나는 책갈피를 해독했던 헬렌 켈러는 인간 체취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보여준다. 그녀가 표현하는 섬세함은 보이지 않는 눈과 들리지 않는 귀, 말할 수 없는 혀를 내어주고 공감각을 얻었던 암흑의 거래였을 것이다. 감각적이고 퇴폐적인 생의 화음 속에서 향수를 뿌리지 않은 지는 십 년도 더 되었다. 그래도 머리칼에선 화학적으로 시원한 재스민의 향기가, 살갗에선 신경을 안정시키는 카모마일의 향이 페로몬보다 더한 식물의 번식 본성을 야기하며 콧속으로 밀려든다. 시간과 동행하는 향기는 머리의 상상과 적극적으로 열매를 맺고 생명력을 표출하며 젊음의 개화를 끌어당긴다.
02. 촉각 TOUCH
타인과의 관계에서 촉각은 존재의 현재와 밀접한 산물이다. 가깝지만 먼 그대는 바라만 보고 만질 수 없다. 지나간 시간은 잡을 수 없고 사라진 당신은 안을 수 없다. 성적 매력을 내포하는 매끄러운 피부와 가느다란 털, 주름이 가득한 표피들, 함몰되고 튀어나온 오브제, 혀의 돌기는 일촉 즉발로 점화되는 감각으로 세상과의 접촉을 선언한다.
"모든 동물은 만지고 쓰다듬고 찌르는 것에 반응한다. 어떤 경우에든 생명 그 자체는 신체 접촉, 즉 서로를 접촉하고 관계를 맺게 해주는 화학물질 없이는 진화할 수 없다."
햇볕만큼 중요한 신체 접촉은 엄마의 자궁과 단단하게 감싸 안은 요람의 안락함을 제공한다. 필라멘트 가지처럼 둥글게 말린 신경말단 조직인 마이스너 소체는 두꺼운 양파 모양의 감지기인 파치니 소체와 함께 뇌에 다양한 감각에 대해 메시지를 전한다. 생명을 상징하는 머리칼, 긴 속눈썹, 피부를 채운 체모들과 가느다란 솜털들은 산들바람의 흔들림으로 수많은 감각들의 눈을 대신한다. 고통의 촉수, 인장, 화염과 같은 텍스트적인 기록들은 촉각과 고통의 관계에 대해 욕망을 향한 감각의 순례로 포장하거나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못했던 에덴동산의 원죄를 끌고 오기도 한다. 키스로 봉한 말없는 계약서, 행동적인 관계의 시작을 상징하는 손의 접촉 속에서 나는 자유롭게 엄마의 바다를 헤엄치던 시간을 꿈꾸고 있다.
03. 미각 TASTE
"사랑을 얻지 못한 남자는 모두 야수다."
<미녀와 야수>
단순히 먹는 것만으로 삶의 허기를 잠재울 수 없다. 사회적 감각의 한 끼. 가까운 사람들과의 소박한 모임 속에서 하루를 연명하기 위해 때웠던 차가운 샌드위치의 껄끄러운 돌덩이를 뱉어낸다. 명절이나 제사, 기념일과 축제일, 관혼상제만이 아니라 특별한 모임에는 음식이 함께 한다. 생의 탄생과 죽음의 고별까지도 생명을 지속시키고 살찌우는 식사 행위를 동반하는 것이다. 생식기를 연상시키는 음식들과 마술적인 최음제도 있지만 세계 최고의 최음제는 상상력이다. 식물과 동물은 생식 활동을 통해 먹을 것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음식을 바라보며 성적으로 느낀다. 먹는다는 말이 가끔 강하게 머리를 파고들 때가 있다. 뉴기니의 식인 의식에서 발생하는 신의 살해와 죽음, 구원자를 음식으로 삼는 원형적 행위의 반복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 가톨릭교회의 성체 의식과도 같을 수 있다는 이론은 설득력이 있다. 먹고 먹히는 사회의 순환 가설을 대입해 본다면 미뢰를 자극하는 일차적 감각에 사로잡혀 대규모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살상하며 먹지도 못할 시체를 내버려 둔 채 또다시 먹방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허기져서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인가.
04. 청각 HEARING
아랍어로 어리석음은 귀 기울이지 못함을 뜻한다는 서두에서 잠시 멈춰 섰다. 듣는다는 것. 듣는 것. 일상의 교류와 차단하는 귀 막음은 주변의 세계를 해석하고 세계와 소통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들을 포기하는 것이다. 공기 분자의 진동에서 시작된 소리는 의식의 파동을 넘어서 욕망의 메트로놈 위에서 특유의 박자를 친다. 구슬픈 울음과 소란스러운 중얼거림. 고막이 두꺼워지고 주파수가 높은 소리에 둔감해지면 소리에 민감하던 젊은 날과는 이별한 것이다. 아무리 상실된 청력을 대신해 뇌가 신호와 전파의 움직임을 흥미롭게 전한다고 해도 들리지 않는다면 상상이 반감될 것이다. 물고기가 느끼는 물의 파동이 펼치는 세기로 고래의 노래를 듣고 싶다. 흘러 다니는 모래가 부비트랩으로 변하는 스릴을 느끼고 싶다. 가녀린 여체를 닮은 바이올린과 가느다란 손가락이 리듬을 부리는 플루트와 피리,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하모니를 듣는다면 행복하고 고요한 추억과 고통으로 가득 찬 격렬한 기억에서 노닐 것이다. 추상적인 음악들은 이름을 상실한 감정으로 구조와 균형과 시간에 대한 집착이며 내면의 풍경이다. 뇌의 좌반구를 흥분시키는 독서와 뇌의 우반구를 흥분시키는 음악 사이에서 우주의 공용어를 추구한다면 시간 속에 펼쳐지는 시간 예술인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며 잠을 청해야겠다.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언어를 이끌어내고 생각을 불러일으켜 인간을 지적인 집단 속에 있게 해주는 목소리의 상실을 의미한다."
- 헬렌 켈러
05. 시각 VISION
"한 영혼이 세상에서 하는 가장 위대한 일은 보는 것이다. 선명하게 본 것은 모두 시이고 예언이며 종교다."
존 러스킨, 《현대의 화가들》
날카롭게 빛을 조준한다. 공간 속에 위치를 파악하고 대상을 뒤쫓는 입체적인 쌍안경을 쓰고서 쏜살같이 사냥감에 달려든다. 빛과 어둠 속에서 빛을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의 조리개는 상을 기록하면서 회색과 유백색의 뇌 속으로 포착한 이미지를 저장한다. 소란한 하늘, 번잡한 바다, 빽빽한 땅. 푸른 시선의 추상은 어둡게 흘러넘치고 유백색 포말로 쉼 없이 부서진다. 공기, 빛, 대상, 구도, 성격, 윤곽, 양식을 포함해야 하는 예술가의 붓질에서 변질된 풍경의 의식이라든지 근시를 일으키는 왜곡의 메커니즘은 흥미로운 모험, 화려한 분노, 불타는 감정, 감미로운 소요, 지독한 욕망, 끝을 모르는 호기심을 부른다. 삶에 완전히 헌신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사르며 내가 만들어내는 작품이 이 삶을 온전하게 불러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본다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친구를 사귀는 일이 시간이 걸리는 일처럼."
- 조지아 오키프
06. 공감각 SYNESTHESIA
공감각은 그리스어의 '함께(syn)'와 '지각하다(aisthanesthai)'를 더한 말이다. 지각은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의 오감을 동시 다발로 자극하며 개념들을 짠 두꺼운 생각의 천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감각의 뒤섞임은 보는 것을 듣는 것으로, 맡는 것을 만지는 것으로, 맛보는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다양하게 활동이 전이되며 사고의 독창적인 번역을 용인한다. 육체의 산만함을 정착시킬 고독한 습관에 돛을 꼽는다. 출렁이는 세계를 바라보며 삶을 음미한다. 가슴속 떨림에 전율하며 혈관을 조이는 저항감을 내려놓는다. 침묵하는 고요한 뇌는 공감각적인 자극에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말을 하며 맛을 보고 떨림을 감지하고 당신을 느낀다.
"감각은 시간과 공간과 모든 우연한 사건을 넘어서 우리를 다른 사람들, 다른 동물들과 연결해 준다. 감각은 인간과 비인간을, 한 영혼과 그의 많은 친척들을, 개인과 우주를,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다 이어준다. 꿈을 꿀 때, 우리는 지구의 꿈이 된다."
《감각의 박물관, 다이앤 애커먼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Diane Ackerman》
예술가들이 느끼는 괴로움과 기쁨과 환희와 격정과 슬픔들은 삶이 표출하는 반응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아득한 생의 의미를 전달하며 즉각적으로 알 수 없는 생의 깊이와 다가서기 힘든 생의 굴레를 설명한다.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바라보고 맛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사물들 속에 존재한다. 직관이나 예지, 영감에 의지한 육감적인 삶은 신경학적으로 다층의 감각이 연결된 공감각과는 다른 말이다. 감각을 훈련한다고 해서 갑자기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서 외국어가 튀어나오거나 듣지 않는데 타인들과 대화가 자유롭게 되거나 노래에 흥미가 없는데 음악을 작곡하기는 어렵다. 인간마다 대상을 감지하는 영역은 차이를 보인다.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은 언어와 그림, 말과 음악, 신체와 행위, 기술적 능력과 같이 다양한 소재와 행동 방식을 통해 표현된다.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 속에서 예술은 감각적으로 부흥한다.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새기는 작업들은 인간의 의식이 규정하는 사회적 개념과 개인적 활동 사이의 부단한 마찰을 불러온다. 시간을 넘어 유기적 공간에 귀착되는 감각을 개성적인 자기 언어로 해석하는 일은 타인의 이해를 넘어서는 나만의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삶은 과거가 되지만 그것은 그늘 속에 빛의 두레박을 던져 삶을 다시 새롭게 만드는 예술의 터전이다."
- 다이앤 애커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