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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18. 2024

THE POWER OF FORGIVENESS

프레드 러스킨 FRED LUSKIN |용서 FORGIVE FOR GOOD

아침에 안과 진료가 있어서 병원 방문을 했다. 순서를 기다리며 고개를 돌린 대형 TV에는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방송되고 있었다. 애국가가 4절까지 불러지고,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관료들과 생존자들과 희생된 자손들과 그들의 가족들, 증언자들이 함께 아침볕에서 그날들을 기리고 있었다. 근래 심심치 않게 다뤄지는 영화들에선 과거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신군부, 전두환정부, 박정희정권, 민주화운동, 삼일 운동의 시절 속에서 작가들 다루 문제의식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시대에 밀려다니는 기분이 든다. 어렸을 때에는 6ㆍ25 전쟁, 4ㆍ19 혁명, 항일의병, 동학혁명, 이렇게 격전의 시간이 좀 더 안으로 흘러간 이야기들이 많이 다뤄졌다.


투쟁과 혁명, 쟁취와 항쟁. 이런 과격한 용어들을 들으면 현실과 유리된 기분이 든다. 개념은 이상적이고 거룩한데, 피가 흐르는 상황은 역한 비린내가 나고 공포스러우며 소름 끼치는 감정만이 맴돈다. 목숨을 거는 개싸움은 투견들이나 하는 것이고, 죽음을 즐기는 자들은 한가로이 담배를 태운다. 인간의 신체가 경험하는 현실과 정신적인 악몽은 공포 뒤에 또 다른 분노를 낳고 반복적으로 살육을 즐기며 자극적인 종말로 치닫는다.



냉철하게 피로 이뤄진 삶에서 평화롭게 보이는 오늘날에서도 문화적인 혁명이나 혁신적인 전환을 추종하는 대중적인 정치깡패 조직은 시대를 막론하고 세뇌당한 머리로 의견 없는 투견의 모습을 보인다. 서로에 대한 대화나 합의 없이 인간을 총과 칼, 탱크와 같은 무기로 밀어붙이는 상하복종을 주창하다 보면, 전두환 식의 군부정치는 언제든지 민낯의 머리를 쳐들게 된다. 군대에서 인간이란 전력을 보충할 머릿숫자에 불과하기에, 상명하복(上命下服)이 지켜지지 않으면 군법에 의해 처단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치 시대의 사상전략가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는 극단적이고 반공적인 형태의 매카시즘(McCarthyism)을 형성하는 한편, 히틀러의 사냥개인 친위대(Schutzstaffel)를 통해 당군(黨軍)을 조직한다. <서울의 봄>을 무색케 한 신군부시절 '하나회(Group of One)' 또한 괴벨스와 같은 정치사상의 조직적인 논리를 펼쳤다. 권력의 투견으로만 형성된 군조직의 실행력은 나치의 친위대 모습과 굉장히 흡사하다. 괴벨스가 인간의 판단이나 행동을 특정의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프로파간다(Propaganda)에 집중하여, 그 모든 세간의 사람들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휘몰고 갔듯이,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서 80년대를 주름잡던 섹스(Sex),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를 통한 스페셜한 선전방식은 대중을 현실에서 망각으로 몰고 가는 최고의 게임 아이템이었다. 인간을 도파민의 도가니에서 조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대중문화의 권력자들은 인간의 숫자를 필요로 하는 정치가들과 손을 잡았다. 생각 없이 자극과 유흥에 젖어있는 이들을 위해 그림자에 몸을 숨기는 어두운 세력들은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을 제거할 준비를 하게 된 것이다.


"적들의 모든 음모의 배후세력에는 국제 유대주의(International Judaism)가 존재하며, 이 적들은 유대주의와 뿌리를 같이 하는 자본주의(Capitalism)와 볼셰비즘(Bolshevism)을 이용하여 모든 연합국들을 한데 묶어두고서 수많은 국가들과 민족을 압제하고 복종시킨다." <괴벨스 Paul Joseph Goebbels>


나치즘(Nazism)으로 대변되는 민족사회주의, 국민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의 전체주의 사상은 사회 악을 만들어낸 유대인을 학살하는 홀로코스트(The Holocaust)를 생산해 낸다. 괴벨스가 형성한 나치즘의 근본사상인 국가 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는 광란의 히틀러 시대를 만들어낸 고대 독일인의 순수성으로 돌아가는 비이기적이고 희생적인 민족의식이었다. 괴벨스의 타자에 대한 전략적인 태도를 관찰하면 그는 분노와 핍박을 인간의 내적 추동원력으로 삼는다. 생계의 기본에서 벗어나 순수성이 떨어진 자본주의의 모순에 분노하는 사람과 수전노의 발길질에 노예로 전락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억압 박는 자들의 내재된 분노가 타자(他者) 살해로 연결되기 충분했다. 이런 급진적이고 민족적인 태도는 외부에서 간섭할 수 없는 단단한 벽을 형성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사상적으로 변질되어 곪고 터져버리게 된다. 집단적인 분노는 광기로 연결되기 쉽다. 군대나 공기관처럼 탑-다운(Top-Down)이 일상화된 곳에서는 시스템상 최고 책임자의 실책은 허용하지 않는 논리로 인해, 머리가 제거된 손발들의 명령실행과 복종에 의한 살육만이 존재하게 된다. 즉, 운영상에서 민주적인 제도가 사라진 일률적인 사회에서는 책임부재와 함께, 오류에 대한 수정은커녕 문제에 대해 반성이 없는 부작용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5ㆍ18 민주화운동>이 흘린 선혈의 여파는 참혹한 시대적 감각에서 멀어진 후세들을 위해 하나의 법적이면서 역사적인 의미를 세우게 한다. 2020년 1월 5일, [5ㆍ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과  2020년 2월 6일, [5ㆍ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실행되었다. 이 두 법안은 특정 집단의 역사적 사실의 왜곡에 대한 대처방안을 수립하고,  5.18 실종자 유해발굴 지원을 명문화하는 조항을 추가 및 개정하는 한편, 관련 정보의 은닉, 변조, 조사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색출할 수 있도록 기록물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을 법조문에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런 법 개정은 유럽의 전체를 광기로 몰아간 1-2차 세계대전이 남긴 후유증인 [홀로코스트법 Holocaust law]과 [역사왜곡금지법(선동범죄처벌법)]을 참조하여 만들어졌다. 살육의 기억은 인간의 실존과 존엄성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악성이 극에 달했던 전쟁의 막바지에 남긴 유대인집단학살과 같은 인종청소인 제노사이드(Genocide)는 전쟁 당사자인 독일을 위시해 오스트리아, 벨기에, 이스라엘 등의 유럽에서 인종차별이나 종교상 편견에 의한 몰살에 대응하는 역사적인 왜곡과 편중을 경계하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기초가 되었다.  



나는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이데올로기(Ideology)를 수립함에 있어서 아무리 선의와 악의가 존재한다고 해도, 양극단에는 답이 없다고 본다. 균형점을 가지고 정중앙으로 집중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형상부터 성분류가 남긴 인류사의 숙제이긴 하다. 자연적인 인간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존재로서 가지는 자연과 사회에 대해 규정짓는 이념(理念)적인 의식의 형태이자 구체적인 사상(思想)을 뜻하는 '이데올로기(Ideology)'는 현대에서는 낯선 개념이고 현실과 상관없는 철학관념이 되었다. 금전만능주의에 집중한 자유 자본주의의 시대에선 생각을 요하는 머리로서의 철학은 쓸모없는 것이며, 무엇이 유행인지가 중요한 몸을 흔드는 대중적인 문화가 오직 갑인 상태이다. 이런 사회에 놓인 개개인의 모습을 잘 관찰하면, 괴벨스의 선동철학에 휩쓸린 머리가 제거된 광기의 인간들이며, 문화 대혁명의 이상에 집중된 홍위병들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 이데올로기는 정치경제ㆍ사회ㆍ문화를 아우르는 범사회적(社會的)인 사상적 통로로 이해되기에, 사회의 조직 운영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며 집단적인 사상으로 확장되게 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사회에선 무형으로 이성의 탑을 쌓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심도 있는 관찰과 고찰이 없기 때문에,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이데올로기 개념이 촘촘하게 정치적 경제적 그물망을 형성한 나라들이 만들어 놓은 사상적인 이념에 근거해서 자기의식이 휘둘리고 관념정립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단어의 어감만 선동적일 뿐, 내부는 순수한 철학적 명료함을 가진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현상에 민감한 알레르기(Allergy) 취급을 받는 것이 안타깝다.  



 

프레드 러스킨(Fred Luskin)의 《용서 Forgive for Good》는 북경에서 읽은 듯한데, 책장 속에 인상적인 문구만 기록해 두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과거가 현재를 가두는 감옥이어선 안 된다. 과거를 바꿀 수 없으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과거의 아픈 기억을 찾아보아야 한다. 용서는, 과거를 받아들이면서도 미래를 향해 움직일 수 있도록, 감옥문의 열쇠를 우리 손에 쥐어준다. 용서하고 나면 두려워할 일이 없어진다."


나는 내 삶을 힘들게 했던 대상을 용서했을까? 자신의 삶에서 못다 한 이상과 억울한 감정을 후대에 남겨주어선 안 된다. 울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용서의 말조차 잊을 수 있을 때 앞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울 것이다. 오늘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과거로 연결된 상념이 길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래로 가는 열쇠는 멀리 있지 않다. 과거에 묻히지 말고, 내일로 넘어갈 수 있게 'FOR' 당신을 위해 'GIVE' 마음을 내어봐야겠다. 'FORGIVE', 용서를 향해.

 



[START: FORGIVE FOR GOOD]  2007. 9. 9. PHOTOGRAPH by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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