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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18. 2024

LA FEMME D'à CôTé

프랑수아 트뤼포 <이웃집 여인> | 나 오늘 그대 옆집으로 이사한다.

[LA FEMME D'à CôTé] SELF-PORTRAIT. 2024. 3. 8. PHOTOGRAPH by CHRIS


당신은 예쁜 아내와 귀여운 아들과 조용히 살고 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게 시골마을에 안착했다. 아침이면 그대를 배웅하는 아내에게 익숙한 키스를 하고 바쁜 걸음으로 하루를 꾸릴 직장에 발 옮긴다. 참 고요한 생활이다. 집에 돌아오면 돈 벌려고 고됐던 하루와 거둬 먹일 아이들의 일상과 바삐 시간을 쪼개며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가족과 담소를 나눈다. 촛불도 켜놓고 온화하고 따뜻한 만찬을 즐긴다.

즐겁지. 그런데 말이야. 괜찮은 생활이었는데 어느 날 당신이 잠자는 침실 밖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 하품을 연신 해대곤 침대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끌어봐. 졸린 눈을 비비며 창가의 커튼을 걷어 젖기지.


어..?


아무도 안 살았던, 사선으로 보이는 옆집에 누가 이사를 온 거야. 아이들은 호기심이 너무 많군. 내 아들 녀석이 예쁜 여잘 발견한 모양이야. 어린놈이 벌써부터 밝히긴. 얼른 가서 말리는 게 좋겠어.

슈트케이스를 낑낑대며 여자의 집에 들어가 버린 아이를 쫓아간다. 후- 실내가 불을 꺼놓아서 침침하기만 해. 뒤로 돌아서있는 한 여인이 있군. 뒷모습이 매력적인 걸. 선도 잘 빠지고 호리호리한 게 입맛 당기네. 그래도 잠시 점잔 떨어야지. 자식 앞에서 체면 구길 순 없지. 크흠, 헛기침하고,


"저기 새로 오셨나 보죠?"


어깨를 씰룩이며 여자가 움찔하는데, 내 목소리 괜찮았나? 뭐 이리 굼뜬 거야. 야, 빨리 얼굴 좀 보자.


그래, 그 여자, 초초한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천천히 얼굴 돌린다. 그리고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은 그 여자를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아니, 빛이 어려서 잠시 눈을 감았다 떠야 해. 그리고 봐.


아.. 주위는 왜 이렇게 밝지?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 그녀. 당신은 말을 할 수가 없다. 갑자기 벅차서. 잊었던 옛날이 물살 되면서 한달음에 당신을 삼켜버리거든. 아, 그녀잖아. 이젠 지웠다고 생각한 그녀!



죽을 때까지 미치도록 사랑할 수 있을까? 잊지 않고서 솜사탕 같은 포근함에 이 몸을 누일 수 있을까? 매 순간을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라는 말로는 채울 수 있겠지만 정말 그 마음처럼 살 수 있을까. 지속적으로 심박을 하이톤으로 두들겨 대다간 얼마 못 가서 하얗게 질려 심장마비에 걸릴 것이다.


프랑수아 트뤼포(François Truffaut) 감독이 그려내는 영화 <이웃집 여인 La Femme D'à CôTé 1981>의 결말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너무 사랑하면 죽음이야!

사람들을 보면 이상한 게 거짓에 둘러싸여 있다는 거다. 튀어나오는 것마다 거짓말이다. 삼시 세끼 밥 먹듯이 한다. 내 입에 그 맛없는 숟가락을 들이민다. ‘사랑’ 이 흔해빠진 단어를 두고도 입발린 허욕에 허우적거리면서 겉으론 사랑한다고 부르짖는 거야. 이런. 뻥쟁이! 너 정말 그래? 이런 리서치도 있었잖아. 사람들은 평균 8분마다 거짓말을 한다는 적나라한 수치들. 평균값 내는 거 싫어서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려고 노력은 한다. 그게 잘 안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

거짓말로 둘러싸인 홍수 같은 세상에서 나이가 들면 거짓말하지 않는가? 아니, 계속한다. 더 교묘한 위장술로 변화무쌍한 카멜레온이 되어간다. 그렇게 딱딱한 껍질 속에서 영원히 잠들지 못할 코쿤이 되어간다. 우주로 날려 보내 줘야 할까? 이런 영원을 바라는 늙은이들을?


<이웃집 여인> 속에는 여러 사랑의 유형이 등장한다. 나이 든 사람, 중간인 사람, 어설픈 사람. 참 다를 것 같은데 다들 같은 모습이다. 잊고자 하나 잊지 못하고 지우고자 하나 지우지 못한다. 각각 짊어진 행복이 그리 유쾌하지 않으면서 테니스 공을 날리며 잔디에 누운 그 사람을 떠올리고, 소소히 커피를 마시면서 지식을 탐하지만 삼켜진 물 잔 속엔 추스르지도 못한 그리움만이 가득하다.

그래, 다시 사랑을 한다. 내가 버려버렸던 사랑을 해묵은 옷장 속에서 꺼내 입어본다. 먼지도 털어보고 다림질도 해대면서 빛바랜 얼룩들을 하늘거리는 스카프로 감싸본다. 하지만 옷감 상하지 말라고 넣어두었던 나프탈렌 냄새만이 코를 찌를 뿐 내 사랑의 흔적은 없다. 다 지나가 버렸거든. 다시 오라고 손짓하더라도 나를 심히 때리는 아픔 밖에 없는 것이거든. 그게 이웃집 여인이 남긴 철없는 노크가 되어버렸지.


나, 당신 옆으로 이사 가도 될까?


2004. 10. 13. WED.




사랑만큼 오묘한 단어가 있을까? 옛날 영화를 보면 한 세상 다 산 것 같았다. 사는 게 뭐 이렇게 복잡한가 싶었다. 사랑에 미련이 덕지덕지 붙은 사람들이 꽤 많다. 결혼해서 안정적이고 편안한 공간에 집중하는 듯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극적이고 신선한 만남에 매료되는 것이 인간의 본심이다. 비극의 주인공이 된 듯한 애절함을 선사하고 어린 시절의 뜨거웠던 열정을 꺼내며 못 다 이룬 순수한 시절로의 복귀감을 주는 것이 사랑의 호르몬이 주는 자극일 것이다.  


사랑에 관해선 극단적 선택이 많긴 하다. 사랑에 상처받고선 문을 닫고 자기 안으로 들어가거나,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무조건 상대를 처단하고 상처 주는 사람들도 많다. 미친 듯한 사랑은 누구나 꿈꾸는 이상인가? 하지만 샘물 솟는 듯한 사랑은 인생에 없다. 육체와 정신에 몰두하는 섬세하고 복선적인 감정선은 둘 사이에 사춘기적인 열정과 뜨거움이 살아있을 가능하다. 물론 생활의 지루함에 가득 차서 동화 속 환상을 꿈꾸는 남녀들에게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막장드라마를 형성하는 치정극은 살벌하게 유효하다.


손을 내밀면 모두 다 버리고 달려올 사람들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결말이 보이지 않은가? 우린 사랑만으로 살 수 있을까? 그렇다고 현실과 타협할 필요도 없겠지만, 불륜은 모두에게 상처다. 우리 사회가 여러 남녀 거느리는 폴리가미(Polygamy)도 아니고, 마음에서 생성되는 독점욕은 육체적 만족으로만 정리되기 어렵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던데, 인간사에 감정이 들어가면 정말 난해해진다.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 어긋난 사랑의 모습 같다.




[감독스트립] 트뤼포의 애정방정식

자동차 클락션처럼
권투선수 펀치처럼
빵빵대며 쏘아대는
경쾌한 사랑의 환호성.

시간이 흐르면
용암처럼 진한 피로
몸을 태운다.
육신을 녹여버린다.

세상사에 이리 받치고 저리 받친다.
아, 메뚜기처럼 다시 뛰어오를까?

푸른 멍이 장식된 얼굴의 반점은
늙는다고 쉬 치유되지는 않는다.
깊은 칼질에 짜릿하게 몸 누이고
잠든 너를 밀어넣는 총알이 된다.

삶을 보는 시선들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누구나 동일한 것일까.
그대와 다른 집에서 살고 있는데도.


**400**
내가 본 트뤼포의 영화들이 그랬다.
시간 가며 달라져 갔다.
젊은 날의 웃음도 하늘에다 날렸다.
한 발의 총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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