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VE NEW WORLD REVISITED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by CHRIS
[MY UTOPIA : Brave New World Revisited] 2023. 8. 12. PHOTOGRAPH by CHRIS


"멋진 신세계"라는 단어만큼 벅차고 희망차보이는 어조가 있을까? 완전한 미지로의 세계는 도전과 용기로 가득 찬 개척정신의 향연이 될 것만 같다. "신세계"란 단어를 들으면,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3대 유통사 중 하나가 생각날 수도 있고, 액션 누아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피칠갑으로 살육전을 벌이는 무간지옥(無間道)을 차용한 영화 <신세계>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혹은, 인간의 생로병사와 암운과 반전이 가득한 곳에서 사는 사람에겐 멋지다는 수식어가 붙은 신세계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밝고 희망찬 세계!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1932》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템페스트 The Tempest》 회전체로 돌변하여 정신을 삼켜왔다. 마법과 복수가 휘몰아치는 유토피아는 바로 디스토피아로 역전되며 연애와 결혼은 전혀 필요 없이 세계정부가 만들어낸 나와 닮은 클론으로 연명하는 세계는 환상적이었다. 아쉬운 것은,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미래의 과학문명 아래 아름다운 인간들과 아름다운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아름다움과 환상은 같은 선(線) 상에 놓일 개념이 아니었다. 기쁨과 즐거움의 긍정적인 감정은 사라져 있고 회복해야 할 시간의 기억들을 안고 우주선을 탈출할 때 알파건, 베타건, 감마건, 델타건, 엡실론이건 계층이 무너진 세계는 핵폭발로 대체되는 충격 뒤에 어떤 그림을 그려낼 것인가!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Revisited 1958》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작가가 직접 설명하는 해설서이다. 헉슬리가 그리던 예언적 세계를 명석하고 냉철한 말투로 현대 문명에 빗대어 전하는 비판은 진중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 심오하고 의미로운 그의 언어를 나의 의식 체계로 정리해서 해석해 본다.



머리글

인생은 짧고 정보는 무한하다. 간결함과 간소화 사이에서 사상의 유통은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세밀하고 충분한 어조로 전달할 수 있는가. 자유와, 자유를 위협하는 적들의 주제는 단순화하여 하나의 연결된 그림으로 종합해 보면 미약하게나마 근본적인 개념의 복합적이고 방대한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세계 통치자들의 장악력을 증강시킨 무기와 기술적인 장비(Hardware), 전쟁 준비 위한 산술적인 작업들은 자유를 위협하는 기계적이고 군사적인 적들이다.



1. 인구과잉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를 집필 중이던 1931년, A.F(포드 기원) 7세기에 겪을 악몽은 27년이 더 지난 1958년에도, 그리고 93년이 더 지난 2024년 현재에도, 예정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인류의 첫 성탄절(A.D의 시작)에는 지구의 인구가 2억 5000만 명 정도였고, 16세기 지나선 인구의 수가 5억을 조금 넘었다. 1931년에는 20억에 못 미쳤다가 1958년에는 29억 명, 2024년 현재는 80억 명이다. 32 배수! 예수가 태어난 뒤 한적했던 우리의 지구는 폭발 직전이다. 페니실린과 DDT, 깨끗한 물을 통해 공공건강분야는 급격히 개선을 거듭했고, 인구가 국력이라는 세계적인 경쟁을 통해 산아 제한은 더 이상 힘을 받지 못하고 무제한 출산을 권장하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제안했듯이 20억 명에 못 미치는 세계 인구의 적정 수준은 93년 전으로 돌아가면 모를까, 이미 감지할 수 없이 개체수로 터져버린 지구라는 구체에는 어떤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다. 빠른 인구증가의 생물학적 위협은 헉슬리가 자각했던 인류의 핵심 문제이며, 이것은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한 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인 동시에, 희망이 가득한 우주시대의 전개를 의미하지 않는다. 기술적인 혁신보다 인구 과잉의 시대를 맞이한 위협을 인류는 자각해야 한다는 헉슬리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달에 정착촌을 만들든, 화성으로 이주를 하든, 인구증가 문제는 개인의 자유와 사회집단의 품위 유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저개발 국가의 폭발적인 인구증가는 경제생활의 불확실한 상황과 맞물려 사회동요를 야기하고 중앙집권적인 통제 시스템을 형성한다. 인구과잉이 사회불안을 거쳐 국가를 독재로 몰고 갈 가능성은 확실한 것이다.


2. 양과 질과 도덕성


"좋은 목적의 추구는 나쁜 수단의 채택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베타, 알파, 알파플러스 인간을 산출하는 우생학(優生學)과 적절한 소마와 보상으로 베푸는 오락에 정신이 팔려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인간을 생산하는 열생학(劣生學)으로 나뉜 세계는 인간 존재조차도 양이냐 질이냐로 분간해야 하는 도덕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만든다. 선천적인 생존 능력이 부족한 인간에게 쏟아붓는 사회복지와 의학기술은 영양불균형과 인구과밀화를 통해 인간에게 윤리적인 갈림길에 서게 한다.



3. 과잉 조직화


"관리불가한 다양성을 이해하기 쉬운 단일성으로 이론상 간소하는 작업은 인간의 다양성을 인간 이하의 획일성으로, 자유를 노예근성으로 바꾸는 실질적인 축소변형의 형태가 된다. 자유의 구축적인 의미는 자율적 공동체 안에서 개인들이 자유롭게 활동해야기 때문에 조직화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과도한 조직화는 인간을 자동인형으로 바꿔놓아서 창의적인 정신을 말살시키고 자유의 가능성을 파괴한다. 안전한 길은 오직 중간에, 저울의 한쪽에는 자유방임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철저한 통제라는 양극이 균형을 잡는 곳에 위치한다. 기술발전이 가져온 조직화, 그리고 능률적인 기계설비의 조직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개인은 비개성화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과도한 조직화의 결과로 빚어진 비인간화 현상은 인구과잉의 비인간화 효과로 인해 심화되었다. 사람들은 상호 간에 관계를 맺을 때 총체적 인격으로서가 아닌 경제적인 기능의 상징으로, 직장에서 일을 하지 않을 때 오락을 추구하는 무책임한 집단으로 존재하기에, 이런 종류의 삶에 종속된 개인들은 무의미한 존재로서 외로움을 느끼고, 그들의 존재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나 목적을 가지 못한다."


《멋진 신세계》의 악몽은 과잉 인구와 인간의 숫자가 증가하는 현상의 가속화에 의거한다. 무정부 상태와 전체주의적 통제 사이에서 양자택일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자유의 증대와 자본의 증가는 무정부로 귀결될 것이고 가난의 극대화는 전체주의적 국가로 귀속될 것이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세계에선 핵심권력(Power Elite) 집단이 생산을 통제하고 소비를 장악하며 대량 소통의 매체를 소유함으로써 인간의 사고방식과 정서와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정치 경제적 권력의 집중을 가져왔고 비대한 기업과 정부에 의해 통제받는 사회가 발달하도록 유도해 왔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지적했듯이 "인간적인 실패에 대한 대가를 쾌락과 일에 대한 광란적 충동 속에 숨겨진 절망과 정신병으로 치르는 자동인형으로 바꾸어 놓는 경향"은 비단 서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독특한 개성의 인간들을 담는 문화권은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해, 또는 정치적이거나 종교적 신조의 이름으로 인간 개체를 표준화하는 방법을 찾으려 하고,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을 거역하는 폭력을 저지른다. "과학은 다양성을 단순성으로 추려내는 행위"라고 단언하는 헉슬리는 특이한 결과들의 개별적인 독특함을 무시하고 개성들이 공통적으로 보유한 양상을 집중 관찰하여 만유인력처럼 어떤 '법칙'을 도출하는 것은 한없이 다양한 자연의 현상들을 설명하려는 인간의지로 해석한다. 더불어 자신의 상상과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다양성과 독특성을 종합하여 문학적이거나 음악적이거나 조형적인 형식미를 부여하고 혼란을 질서로 정리하고 부조화의 불협화음에서 조화를 이끌어내고 다양성에서 단일성을 찾아내는 욕구는 인간의 지적인 본능인 동시에 이성이 지닌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충동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불량한 사상체계가 인간에게 그다지 해가 없는 반면, 질서를 잡으려는 의지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정치와 경제의 영역, 즉, 사회적인 분야라고 짚어낸다. 정치적으로는 전체주의적인 독재이며, 경제에서는 예술작품에 해당하는 개념이 노동자가 기계에 완벽하게 적응한 상태에서 운영되는 공장이 되어, 질서 정연함의 아름다움이란 개념은 전제 정치를 정당화하는데 동원된다. 대도시로 집중되는 팽창산업은 책임감을 수반한 자유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하고 도시 생활은 개성 없는 익명성을 지니며 추상적인 면모를 띤다.


윌리엄 화이트(William Hollingsworth "holy" Whyte)가 《조직인 The Organization Man》에서 지적했듯이 단체 윤리(Social Ethic)는 개인이 우선인 전통적인 윤리 체제를 밀어내려고 한다. 적응, 화합, 소속감, 집단적 행동양식, 집단적 기술의 획득, 단체 활동, 집단생활, 집단에 대한 충성, 집단의 역학, 집단적인 사고방식, 집단적 창조성처럼 이런 모든 집단 윤리의식이 기초로 삼는 전제 조건은 인권(The right of Man)의 개념보다 집단의 권리가 우선한다. 단체 속의 이상적 인간은 단체 윤리에 따라 충돌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개념을 미화시키고 과잉 조직화로 인해 발생할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들을 정당화하는 노골적인 수단으로 전락한다. 사람보다 조직을 우선시하는 행위는 목적을 수단에 종속시키는 격이며, 21세기 멋진 신세계에는 과학적 신분 제도의 시대, 세계 통제관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개인들은 서정적인 중세 시대나 지금이나 프로크루스테스 (Prokrustes) 침대에 정신을 맞출 수밖에 없다. 인구 과잉과 과잉 조직화라는 비인간적인 힘, 이런 힘을 장악하려고 획책하는 사회 공학자들은 사회구조에서 상승하기 불가능한 가혹적인 수직적 계급체계의 만성적인 좌절감과 모진 불행 속으로 다수의 남자와 여자들을 유아기적인 훈련을 통해 쾌적한 황홀경 속으로 몰고 가서 노예생활 속으로 젖어들게 한다.



4. 민주 사회의 선전

민주적인 기구와 체제들은 개인의 자유나 독창성을 사회적인 질서와 화합시키고 국가의 통치자들이 장악한 직접적인 권력을 피지배자들의 궁극적인 세력에 종속시키기 위한 장치다. 독재자의 통치를 받는 노예 상태의 국가에서 정치적 해방을 얻어 갑작스레 독립국가로 변한다던지, 불안정한 경제적 여건 속에서는 민주적인 자치를 수행할 정당한 기회를 누리지 못한다. 인구과잉과 과잉 조직화는 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정상적인 기회를 박탈하는 두 가지 요건이다. 이성과 진리에 반응하는 힘은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지만 반사적으로 비이성과 거짓에 반응하는 성향도 존재한다. 엄숙한 세계에 한번 있는 성탄절이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쉼 없는 오락은 인간이 사회적 정치적 상황과 같은 현실에 관심을 쏟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정책적인 도구로 동원된다. 종교 또한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으로 마르크스의 표현 그대로 "인민들의 아편"으로써 자유를 위협한다. 운동경기와 연속극, 신화와 형이상학으로 보내는 세계에 대한 비판은 과거 히틀러 시대나 우리의 독재군사정권의 이야기와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헉슬리는 넘치는 오락이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존속을 위한 기본 개념들을 사장시킬 기세라고 걱정한다.



5. 독재 국가의 선전


"히틀러는 천주교와 예수회에 대해서 깊은 존경심을 느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의 교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치밀하게 수립하고 통제하던 '조직'과 위계질서, 지극히 교활한 전술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 신자들을 지배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약점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기술 때문이었다. <...> 전 국민에게 계속해서 행진을 하도록 만드는 짓은 한심한 시간 낭비와 정력의 낭비처럼 여겨졌다. 그들이 목적과 수단을 잘 판단하고 훌륭하게 조절하여 교묘하게 성취하려던 의도는 한참 더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은밀하게 드러났다. 행진은 사람들의 생각이 빗나가도록 유도한다. 행진은 생각을 죽여 없앤다. 행진은 인간의 개성을 종식시킨다. 행진은 사람들에게 기계적인 사이비 종교 예식이 제2의 본성처럼 익숙해지도록 길들이기 위해 행하는 필수적인 마술이다." <헤르만 라우슈닝 Hermann Rauschning>


히틀러가 라디오 확성기와 같은 기술적인 장치와 설비로 독일의 8000만 국민들의 독자적인 사고 능력을 박탈했듯이 《멋진 신세계》에선 히틀러 시대보다 더 크게 발전한 기술 수준으로 인해 명령을 수행하는 자들은 히틀러의 부하들보다 비판력이 약해졌고 명령을 내리는 소수 세력에 순종하도록 길이 들어간다. 게다가 유전적으로 표준화된 사람들은 기계처럼 예측 가능한 종속적인 기능을 수행하도록 순응하게 되었고, 이들은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공산주의 독재국가에서 보이는 육체와 정신의 종속적 형태와 결이 비슷하다. 라디오, 확성기, 영화 촬영기, 윤전기, 텔레비전의 발달에서 뛰어넘어 빅데이터로 빅 브라더를 실행하는 현대 사회는 심리를 통제하는 기술이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히틀러의 인간본성 이론은 역사와 섭리, 인종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선 횡설수설의 수준이지만 독일 민중을 이끌고 지배하려는 목적을 설명할 땐 문체의 직관이 번뜩이고 명석한 논리로 자신의 체험을 설명해 냈다. 히틀러는 민중을 철저하게 경멸할 집단으로 판단하고, 민중은 추상적 사고를 할 능력이 없고 눈앞의 현실을 분간하는 능력도 없다고 생각했다. 민중의 행동을 결정짓는 요인은 지식이나 이성이 아닌 감정과 무의식한 충동으로, 선전활동을 하는 자가 성공하려면 이런 민중의 충동과 감정 속에 긍정과 부정의 요소를 파악하여 정서와 본능을 조정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여기면서 무의식을 조정하는 열쇠를 찾는데 집중하였다. 군중 속의 민중은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힘과 도덕적인 선택의 능력을 상실하여 흥분하기 쉽고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책임감을 모두 상실하고 급격한 분노와 열광과 공포에 휘말리는 속성을 드러낸다. 즉, 무더기 중독(Herd Poisoning)에 휘말린 개인은 책임감과 지성과 도덕을 벗어던지고 이성이 부재하는 동물적 광란 상태로 빠져든다. 글 쓰는 이보다 웅변술에 능한 이들이 무더기 중독으로 감정이 고조된 개인들인 집단을 상대하게 되며 이들은 본능이 최우선이고 본능에서 신뢰가 생겨나는 군중의 기억 속에 판에 박힌 공식을 끝없이 주입시켜 죄악과 우매함으로 인간의 개성을 종식시키는 행진을 반복하게 만든다. 끔찍한 일을 저지른 히틀러의 인간본성에 대한 판단은 완전히 옳은 것이며, 기계화된 집단이나 군중의 구성원을 간과한 사람들은 과잉 인구와 과잉 조직이 가속화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고결함을 간직하고 인간 개인의 가치를 다시 주장할 것인가?



6. 상술


"민주주의의 생존여부는 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정보에 입각하여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능력에 따라서 좌우된다. 반면, 독재 체제는 사실들을 검열하거나 왜곡하고 자신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깨우친 이성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 무의식의 차원에 존재하는 강력한 힘, "숨은 세력"이라고 히틀러가 정의한 과격함과 편견에 호소함으로써 명맥을 유지해 나간다. 민주주의에서의 광고 업무의 책임자들은 비이성적이기 때문에 하이드 씨(Mr. Hyde)가 되었고, 편집국의 책임자는 민주적인 지킬 박사(Dr. Jekyll)의 모습을 갖춘다. 하이드는 여러 행동의 동기를 분석하여 인간의 약점과 단점을 연구하고 사람들의 의식적인 사고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무의식적인 욕망과 두려움을 알아내는데 집중한다. 자본주의는 죽었고 소비주의(Consumerism)가 왕인 세상에서 자유기업 체제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업적인 선전 활동이 절대적인 필수 사항이다. 분노와 증오는 패배를 자초하는 감정이다. 그런 감정이 심리적인 형태에서 많은 양의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을 분비하기 때문에 국민들은 처음엔 폭군들에 반발하는 편견에서 출발하지만, 현재 또는 미래의 폭군이 적들의 사악한 면을 들춰 아드레날린을 발산하는 선전 책동을 달구면 그들은 당장 열광하며 독재자의 뒤를 따르게 된다. 극도의 강렬한 감정은 전염이 잘 된다. 악의에 찬 웅변가의 발광상태에 오염된 청중은 무제한의 거침없는 격정을 통해 황홀경에 빠져 신음을 하고 흐느껴 울고 비명을 지른다. 우리는 대부분 평화나 자유를 갈구하지만 그와 관련된 생각이나 감정, 행동에 대해서는 극소수만이 크게 열광하는 반면, 독재나 전쟁을 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으나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전쟁이나 폭정과 관련된 생각, 감정, 행동으로부터 강렬한 쾌감을 경험한다. 따라서 광고인은 조용한 형태의 비이성적인 수단을 구사해 가면서 합리적인 선전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화장품은 면양의 털에서 추출한 기름을 물과 섞어 유탁액 상태가 된 라놀린(Lanolin)으로 만들지만, 상업 선전가들은 유탁액의 살균 효과와 피부침투 효과에 대해 설명하기보단 육감적인 그림과 여성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황홀하고도 엉뚱한 미사여구를 늘어놓고 탐스러운 금발미녀를 보여주면서 아름다워지리라는 희망을 판다. 오렌지를 사는 것이 아니라 활력을 산다던지, 자동차를 사는 것이 아니라 품위를 산다는 식이다. 치약에서도 단순히 닦아내고 살균하는 물건이 아닌, 성적으로 역겨운 존재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착각을 구입한다. 보드카와 위스키에서도 다정함과 우정, 인어주점의 재기 발랄함을 구입하고, 대변촉진제에선 그리스 신으로부터 건강과 디아나(Diana)를 모시는 요정의 찬란함을 구입한다. 이달의 인기소설을 구입하면 교양을 갖추어 문학적 소양이 낮은 이웃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지적인 집단으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상징들은 균형에 맞지 않는 인상을 줌으로써 나름대로 사람을 홀리는 매혹의 효과를 거둔다. 정치와 신학 차원에서 폭군의 전제 정치나 터무니없는 말장난과 아름다움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하프의 명수인 오르페우스(Orpheus)가 러시아의 생리학자 파블로프(Ivan Petrovich Pavlov)와 동맹을 맞으면 소리의 힘은 조건반사와 힘을 합친다. 헉슬리는 인간이 글로 써놓거나 말하거나 들을 때 노래의 선전을 믿고 싶어 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성향으로부터 벗어나 진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듣는 순수한 즐거움을 식별할 능력이 있을지 회의적이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대중 미디어로 인해 제대로 교육받거나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한 성인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무지하고 의심할 줄 모르는 아이들처럼 총알받이(Cannon Fodder)가 되거나 '돌격, 앞으로'라는 구호를 듣기만 하면 반사적으로 전진하게 훈련받은 병사들처럼 통치자의 선전책들이 마음에 심어놓았던 구호에 즉각 반응하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거치는 중이라고 비판한다.


자치(自治)에 대한 고찰도 흥미롭다. 선거구가 커지면 커질수록 모든 개별 투표자의 가치가 적어지는 현상, 즉 숫자에 역비례하는 자치는 이론적으로는 공직자들이 국민의 종복이지만 이 종복들이 명령을 내리고 거대한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위치한 시민들은 명령에 복종하는 양적 무시를 양산한다. 인구 증가와 기술의 발전으로 조직의 숫자와 복잡한 구조가 심화되고 중앙 집권된 권력의 크기가 증가하면서 그와 역비례하여 투표자들의 통제력 행사가 축소되었고 민주적 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감소한 현대 세계에서 민주적인 기구들은 정치가와 선전가들에게 내부로부터 침식을 당하는 중이라는 분석은 놀랍도록 정확하다. 민주적인 기구들은 관계자들이 지식적인 합리성을 도모하려고 최선을 기울일 때만 제 기능을 발휘하지만 정치적 판촉 전문가들은 유권자의 약점만을 노린다. 선거 시기 무의식적인 두려움과 희망사항을 상징적으로나마 만족시키고 두려움을 완화시키거나 더 자극하도록 다듬은 글과 영상자료는 선택된 독자와 시청자를 대상으로 효과를 측정하고 후보자들의 개성과 인물상은 연기지도를 통해 다듬어지고 연예인처럼 바꾸어진다. 짧고 어리석고 명쾌한 연설들은 정치가와 성직자들이 복잡한 문제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경향과 맞물려 진실을 가리고 숏폼처럼 장시간 지적활동의 부담을 덜어낸 채 한눈을 파는 청중들을 소집한다.



7. 세뇌


"독재자들과 광고선전가들이 구사하는 심리조정술에서 나아가 개별적인 인간을 조정하는데 몇 가지 기술이 있다. 이반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에서 보이듯이 육체적이거나 심리적 시련에 장기간 처하면 실험실의 동물들은 온갖 신경쇠약의 증상을 드러낸다.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더 이상 대처하길 거부하면서 두뇌는 일종의 파업에 돌입한다. 개들로 말하면 의식을 잃는 방식으로 일을 전혀 하지 않거나 비현실적인 행동을 한다던지 인간으로 치자면 발작과 같은 신체적인 징후로 태업이나 파괴행위로 전향한다. 강한 흥분성(Excitatory)의 체질을 보유한 개들은 단순히 활발한 성격의 개보다 훨씬 더 빨리 무너진다. 억제성(Inhibitory)이 약한 개들은 쉽게 동요하지 않고 차분한 개들보다 훨씬 더 빨리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다. 가장 참을성이 강한 개라고 해도 무한정 저항하기는 불가능하다. 강도가 심하거나 오래 지속되는 시련에 처하면 결국 가장 나약한 동족과 마찬가지로 비참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무너지고 만다."


세뇌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미치지 않기 위해서 잠을 떨치고 밤마다 적어대긴 했지만, 인성은 아무리 갈고닦아도 모든 것이 파괴될 공포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정신적 물리적으로 무력해진다. 일시적인 무의식 상태, 극도의 흥분감, 무기력증, 기능적 시력상실과 마비증세, 사건에 대한 비현실적 대응, 평생 유지해 온 행동양식들을 뒤엎는 이상한 반전은 포탄충격(Shell Shock)과 전투피로증(Battle Fatigue)과 같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와 맞물린다. 대부분의 평균적인 남자들이 45일에서 50일까지를 견디지만 그 이후 모두 무너지게 되며, 역설적이지만 현대 전쟁의 긴장 상태를 무한정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은 '정신병자'라는 이야기에서 이토록 오래 버텨온 나는 정신병자인가 싶기도 하다. 정신이상인 개인의 상태는 집단적 정신이상의 결과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니, 인간 승리와도 같은 미친 실소를 머금게 한다. 이전엔 뇌적으로 균형감이 있었던 듯한데, 눈을 감고 한 다리로 서는 것이 잘 안 된다. 나의 뇌는 한쪽이 폭격을 맞아 이미 노쇠한 것인가. 두뇌가 참아내기 힘든 한계점에 이르면 새로운 행동양식을 이입시킬 수 있고 이렇게 대체된 행동양식은 근절하기 불가능하다. 압박을 받아가며 배운 습성은 그 동물의 구성체에서 필수적인 한 부분이 된다. 야간에 거행하는 대규모 집회는 자신보다 강한 의지가 지배하는 힘에 훨씬 쉽게 순응한다는 연구를 반영한다는 대목에서 밤마다 자성하는 습관은 효과가 있었음이 증명되었다. 지금도, 밤마다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멈추기 어렵다. 끊임없는 긴장과 불확실성과 심한 불안감은 암시반응을 강화하고 피로감을 증대시킨다. 연쇄적으로 자아비판적인 죄를 고백하는 반성들은 인간들을 자아의식이 없는 광신자로 개조하여 《1984》의 전통을 《멋진 신계계》의 전통으로 전환시킨다.


"가장 높은 신분 계층의 구성원들은 새로운 상황을 맞으면 새로운 생각을 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들은 아직 야성을 지닌 구성원일 것이고, 완전히 가축처럼 길이 든 신분 계층을 훈련시키거나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다. 야성은 그들로 하여금 반항적이고 이단적인 존재가 될 가능성을 남겨놓는다."



8. 화학적인 설득


《멋진 신계계》에 등장하는 소마(Soma)는 우울증이나 기분이 저조할 때 마시면 몸에서 힘이 솟아오르고 심성에서는 용기와 기쁨과 열광적이 의욕이 가득 차 오르고 이성은 깨우침을 얻으며 영원한 삶을 즉각적으로 경험하면서 불멸성을 보장받는다. 다만 성스러운 유즙은 과다하게 복용하면 인간들은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소마의 복용은 개인적 악덕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인 제도이며 권리장전(The Bill of Rights)이 보장하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추구 정신의 본질 그 자체다. 그러나 이 권리는 동시에 독재자 무기고에 비장한 가장 강력한 통치 수단이 된다. 소마는 마르크스가 말하던 인민을 중독시키는 아편인 종교와는 다르며, 전통적인 진정제인 아편이나 믿지 못할 마약인 맥주(Beer)나 병과 중독, 가장파탄, 도덕적인 몰락, 사고들을 일으키는 즐거운 도취감을 유도하는 술과도 다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경험하는 황홀경과 사방의 무수한 벌레들이 덤벼드는 피해망상적인 환각을 경험하게 하는 위험하고 강력한 코카인과도 다르다. 암페타민(Amphetamine), 페요틀(Peyote), 하시시(Hashish), 뱅(Bhang), 키프(Kif)나 마리화나(Marihuana)로 소비되는 칸나비스 사티바(Cannabis Sativa)와 같은 항정신성 물질과 레세핀(Reserpine),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 메프로바메이트(Meprobamate)와 같은 안정제들, 리세르그산디에틸아미드(LSD-25: Lysergic Acid Deiethylamide), 우울증을 치료하는 염산염인 이프로니아지드(Iproniazid), 신경전달물질의 일종인 혈압강하제 아세틸콜린(Acetylcholine)의 생산을 증가시키는 아미노 알코올(Amino-Alcohol)인 디너(Deaner), 간질이나 천식에 사용되는 스코폴라민(Scopolamin), 진실의 혈청(The Truth Serum)이라는 별명이 붙은 전신마취제 펜토탈(Pentothal)과 하열제와 수면제로 사용되는 나트륨 아미탈(Soldium Amytal)까지 진정제나 안정제는 인간에게 안정과 환각과 자극을 제공하지만, 암시반응을 높이는 힘을 가질 수 있기에 약리학과 생화학, 신경학은 거듭되는 발전을 통해 자유와 맞서는 독재자들을 도와줄 수도 개인을 치유할 수도, 동시에 파괴할 수도 있을 것이다.



9. 잠재의식적인 설득


"순수과학은 무한정 순수한 형태로 남아있지 않는다. 순수과학은 응용과학으로 성격이 바뀌고 기술로 정착된다. 이론은 실천의 형태로 변형되고 지식은 힘이 되고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는 실험과 공식은 탈바꿈을 거쳐 수소 폭탄이 되어 나타난다."


순간의 주의력이나 기억을 측정하는 순간노출기(Tachistoscope)로 행한 실험논문을 발표한 저자 푀츨 박사(Otto Pötzl)는 1초가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노출시킨 영상을 본 실험 대상자들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요청한다. 그리고 밤에 꾼 꿈에 관심에 집중하게 하곤 그 꿈에서 나타났던 고유한 부분을 다시 그림 그리라고 했을 때, 노출시킨 영상에서 대상자가 인식하지 못한 세부요소들이 꿈을 구성하는 자료라고 잘못 등장하는 사실을 제기하며, 잠재의식 속에 기록된 것들이 의식적인 생각과 느낌,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입증했다. 텔레비전의 중독의 시대, 연속극의 전성시대, 디스크자키의 시대, 더 나아가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시대에 프로그램에 입력된 노출기에 의해 화면에서 1,000분의 1초도 안 되는 동안 섬광처럼 지나가는 구호들을 우리들은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가. 기술적인 응용이 적중한다면 푀츨의 멋지고 훌륭한 순수 과학의 한 조각은 의심 없는 마음을 조종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의식의 차원에서 마음을 조종하는 '점멸식 주입(Strobonic Injection)'은 심리적 저항이 맞은 사람에게 암시의 효과를 크게 만든다. 미래의 과학적인 독재자는 병든 사람과 아이들을 목표로 속삭이는 기계들과 잠재추출기들을 학교와 병원에 설치하고 모든 공공장소에 설치하여 새로운 믿음을 창출하고 적의를 달래며 잠재투출법으로 장악하고 명령하는 구사능력만이 아니라 잠재의식을 설득할 것이다. '연상작용에 의한 설득'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에 한 인종차별 형태인 격리(Apartheid)와 군대나 학교 등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폐지 운동인 통합(Integration)에 이르기까지 어떤 이념과도 연관을 맺는다. 행복과 분노, 고통과 피, 죽음과 같은 단어에서도 비정상적인 암시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면 지배자들은 감정의 고양을 통해 국민의 통치로 오인되는 보완적인 어휘들과 상징들로 긍정적인 의미가 가득한 연상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10. 수면학습법


민주사회는 자주 악용되는 권력을 경계하며, 제한된 기간과 범위에서만 관리들에게 권한을 맡겨야 한다는 신념을 섬기는 사회다. 그러나 수면학습법이 권력의 도구인 경우에는 법으로 통제해야 한다. 깊이 잠든 사람에게는 암시가 전해지지 않는다. 최면치료에서 언어에 의한 암시는 대뇌 피질을 거쳐 중뇌와 뇌줄기(腦幹), 자율신경계까지 전달이 가능하다. 암시의 착상이 반복되고 잘 이뤄지면 잠든 이의 신체기능이 간섭을 받고 감각양식이 조절과 변화를 거쳐 최면 이후 명령이 하달되면 촉발신호의 어휘와 구호와 공식들이 기억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다. 개인마다 현격한 이를 보이는 암시는 극단적 저항은 드물다. 암시에 취약한 자는 성별이나 지능, 나이보단, 덜 비판적이고 의심이 적으며 자신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감정을 드러냄에 있어 수다스럽고 더 종교적이고 골반과 복부기관에 신경을 더 많이 썼다. 민주정치와 자유의 이상들은 인간의 암시 반응이라는 야만적인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게 된 것이다.



11. 자유를 위한 교육


"자유를 섬기는 교육은 사실들을 증언하고 올바른 치관을 선언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나아가서 그 가치관을 실현할 때뿐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든 사실을 무시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부정하려는 세력과 맞서 싸울 때 필요한 기술들을 개발해야 한다. 모든 개인은 다른 어떤 개인과도 다르며 생물학적으로 특이하다. 자유는 위대한 선이며, 관용은 위대한 미덕이고, 조직적인 규격화는 대단히 불행한 현상이다."


개인이 구현해 내는 사회는 사회에서 연관 맺은 지식과 정보들, 자연문화와 금기사항과 도덕적 원칙으로부터 문자로 이뤄진 문헌들과 구전으로 한데 엮어진 올바른 정보와 왜곡된 정보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인간은 생화학적, 구조적, 기질적 다양함에 있어서 큰 폭의 차이를 보인다. 강력하고 철저한 평준화에 의해 군상을 나누어도 W.H셀던 박사의 극심한 내배엽형(Endomorph), 붙임성 있는 내장형(Viscerotonic), 극심한 중배협형(Mesomorph),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신체형(Somatotonic), 극심한 외배엽형(Ectomorph), 내향적이고 과민한 두뇌형(Cerebrotonic)의 성격을 버리지 않는다.


"인구과잉과 과잉조직된 미래세계 통치자들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획일성을 아이들에게 부여할 것이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과 후손들에게 자유와 자치에 대한 교육을 지체하지 말고 시작해야 한다. 자유에 대한 교육은 모든 사실에 관한 가치관의 교육이며, 개인적인 다양성과 유전적 특성의 추론적 결과인 윤리적 자유와 관용과 상호 박애의 가치관을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한다. 인간이 동물적인 생활로부터 문명의 단계로 발달하게 도와주었듯이, 언어는 경험을 상징으로 해석함으로써 우리의 기억에 정의를 내려주고 열망이나 혐오감 또는 증오나 사랑의 직접성을 감정과 위에 관한 고정된 원칙으로 전환해 준다. 단어에 담긴 상징적 성격을 명확하게 파악하여 우리의 행동이 현실적이면서 품위를 가지도록 해야 한다. 자유의 교육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올바른 사용법을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한다."


12. 해답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은 멸종했지만 날지 못하는 새 도도(Dodo)를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새라도 구태여 날개를 사용하지 않고도 잘 먹고 살아갈 방법을 알아낸다면 비행의 특권을 아낌없이 당장 버리고 영원히 땅바닥에서 살아갈 것이다."


자유가 인구통계학적, 사회적, 정치적, 심리적인 방면으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유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현재의 비인간적인 세력을 통제할 방법은 기근과 질병과 전쟁, 혹은 산아제한이다. 조직 비대화를 막기 위해선 생산수단이 대기업과 정부의 독점적인 재산이 되는 현상을 거부하고 가능한 한 재산이 다수에게 분배되도록 조처를 취해야 하고, 단순히 기능적인 집합체에 불과한 현재 사회를 스스로 통치하고 자발적으로 협동하는 집단으로 분할하여 대기업과 큰 정부의 관료적인 체제를 벗어나 사회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도록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전체 사회와 개인의 정신적인 황폐화를 피하고 싶다면 대도시를 떠나 소규모 시골 공동체를 부활시키거나 대도시의 망상(網狀) 구조 내에서 소규모 도시모형을 이룩하여 완전한 인격으로서 개인들이 만나고 협동하는 사회를 이룩하여 대도시를 인간화시켜야 한다. 과거의 몰락한 독재자들은 백성들에게 충분한 빵과 충분한 구경거리와 충분한 기적이나 신비를 제공하지 못했다. 효과적인 정신조작의 체제를 보유하지 못했다. 과학적인 독재자 밑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예생활을 좋아하도록 훈련받으며 성장해 혁명은 절대로 꿈조차 꾸지 않을 것이다. 과학적인 독재 정부를 왜 타도해야 하는지 마땅한 이유도 없어 보인다.


"세상에는 아직 자유가 조금 남아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는 얘기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자유가 없다면 인간은 완전한 인간이 아니며, 따라서 자유가 지극히 소중하다고 믿는다. 어쩌면 지금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너무나 강력해서 아주 오랫동안 저항하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힘이 닿는 데까지 저항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의무로 남아있다."




자유에 대하여
Personal Reflections on Freedom


글을 읽는 것과 적는 것은 생각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의 차이와도 비슷해 보인다. 이전엔 글들을 속독으로 읽어 내렸다. 양질을 가리지 않고 잡식으로 섭취하는 것에 몰두했다. 마음에 드는 글이 있을 때는 잠시 멈춰서 생각을 정리하는 용도로 머리를 사용했다. 글은 쉽게 읽혔는데, 정리를 하려면 막막해진다. 생각으로는 쉬워 보였는데, 막상 실행하려면 백지가 되는 상태와 같다. 어떤 체계로 접근해야 할지, 문체는 어떤 방식을 택할지, 이성적으로 접근할지 감성으로 풀이할지, 동의하는지 반대하는지, 해결책을 제시할지 열린 결말을 부연해서 진행할지 그 모든 것은 쓰는 자의 선택에 따른다. 생계를 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생각으로만 머물던 삶을 직접 만드는 형태로 전환한 뒤 이것이 바로 원했던 일이면서도 평이한 행로가 아닌 매번 기로에 놓이는 순간이면 선택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의식하게 된다. 자유는 원하는 바였다. 자유롭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 자유 의지를 가지고 온전히 책임지는 삶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만큼, 자유를 얻는다는 것과 자유롭게 사고한다는 것, 자유로운 상태를 여전히 유지한다는 것은 현재에서 복잡한 사고를 끌고 온다. 자유는 현실을 탈피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와의 상호작용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위치한 바를 점검하고 깨달으면서 자유는 인식이 가능해진다.


헉슬리가 우려하는 인구 과잉과 과잉조직화의 문제는 외부적인 문제로만 보기엔 인간의 내부적인 욕망이나 사고체계의 연관성을 간과하는 것일 테다. 보통 정치적인 사상체계만이 아니라, 인간이 자각하게 되는 사회적인 개념들은 개인이 살아오면서 배우는 교육적인 상태와 직접적인 삶의 경험에서 개성적으로 형성되게 된다. 등급이 정해지고 권역이 분리되는 사회문화의 체계는 유한한 시간을 거치며 축적된 역사의 인간들이 만들어냈다. 지구촌에서 동일한 장소를 벗어나는 비동질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공통적인 본성을 건드리며 자각을 이끌어내는 지성이 살아있다면, 모두가 환호하는 미래에 대한 긍정만으로 무분별하게 과학적인 지식과 권위적인 행태와 물질적인 선망에 몰입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의지는 어느 순간에서도 의식적이다. 자유롭지 않아도 자유를 찾아야 하고 자유로워도 자유를 생각해야 한다. 자유는 주체자 스스로에게서 시작된다. 억압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해결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자유에 대한 의지다. 자유는 단순히 주관적인 입장에 놓여있지 않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주변을 인식하는 것만이 스스로의 자유적인 상태를 알 수 있는 상대적인 성질의 것이기도 하다. 자유와 반대적인 억압은 그 형상이 단순히 인간적인 모습으로만 남아있지 않는다. 자유와 억압 모두 인간의 것이며 인간 밖의 것이며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며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며 인간이 아닌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헉슬리가 제기하는 자유에 대한 끊임없는 자각과 저항은 우리가 풀어야 하고 고민해야 하는 영원한 숙제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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