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set Boulevard, A Holywood Story, Billy Wilder 1950] Photo Collages by CHRIS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우연히 할리우드 영화 명장면을 모아 논 흑백 화보집을 손에 넣었다.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오손 웰즈(Orson Welles), 베티 데이비스(Bette Davis),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 비비안 리(Vivien Leigh), 오드리 헵번(Audrey Kathleen Hepburn), 글로리아 스완슨(Gloria Swanson)… 아름답고 멋진 스타들의 클로즈업된 감정, 격정적인 포옹, 포화된 거리, 적막한 공기. 다양하게 책장을 장식하던 한 컷 한 컷은 어둠의 상자에 이국적인 상상을 초대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지금의 스타들은 가공미를 잘 엮을 돈, 연기를 향상할 파워풀한 노력, 개성이란 양념, 적당하게 붙을 요령이 풍부하다면 스크린에서 활약하는 데 별 장애가 없지만, 예전의 배우들은 선천적인 끼와 타고난 미모는 필수였고, 사람들이 환호하는 은막의 존재에 부합하는 신비함을 갖추기 위해 제작사와 매니저의 요구에 맞춘 조작된 생활과 엄격한 자기 통제를 감당해야 했다. 물론, 지금의 배우들도 유명함을 위해 스스로 영광의 짐을 떠맡는 수고를 무릅쓴다. 어쩌면 이전과 현재는 그다지 다르지는 않을지 모른다. 한마디로 딱딱한 떡이 목에 들러붙은 체기가 되어 목구멍을 틀어쥐면 숨쉬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내부적인 번뇌가 더 많이 쌓일 수 있다. 잘 볼 수 없음. 만나는 데에 들이는 노력. 뜸하게 찾아오는 기회. 그래서 지나간 것이든 현재의 숨겨진 보물이든 희귀한 형상은 궁금함을 자아내고 자극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동쪽 하늘에 해가 뜬다. 창문으로 파고드는 햇살의 인사. 다양한 색으로 가득해서 세상이 찬란한 붓터치로 한바탕 몸살을 앓은 것만 같은 착각도 든다. 하지만 그 마술도 잠시, 해는 돌아가는 원의 반대편으로 숨어버린다. 크리스털 방향으로 부서지던 입자들은 활동을 멈추고 검은 커튼 뒤의 이야기는 강한 어감을 전한다. 커튼콜이 내려진 무대의 뒤, 기대감에 찬 박수가 무거운 커튼을 올리면 조명이 비춘 세트가 눈을 반긴다. 연출가의 큐 사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대 위의 배우는 작가가 지은 실 줄로 교태스럽게 춤을 춘다. 작은 무대를 벗 삼아 인생을 논하고 생각을 말하며 행동을 가하고 감정을 늘어놓는다. 단상 아래의 사람들. 인형 놀이에 푹 빠져 자신을 떠올리고 한 인생을 좇는다. 한 장의 이야기를 짓기 위해 어수선함이 감도는 무대 뒤의 소란은 분주히 선셋대로를 달리는데도 무대 위로 끈을 부여잡고 팔을 흔드느라 겨드랑이에 솟는 땀과 연기를 뿌리려 숨죽여 달려가는 헐떡임과 눈물 가루와 물줄기를 마련하느라 비비는 손은 볼 수가 없다. 웃고 우는 감정에 자신을 놓아버린다. 해피 앤딩이길 바라는 일 방향의 기대는 어디로 갔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낙화가 된 을씨년스러운 죽음에도 무심하게 지나가는 계절의 접근처럼 물에 띄운 죽음은 화이트 플래시(White Flash)를 찍으며 베일 속에 사라져 간다.
이런 무대 뒤의 이야기가 있었다. 잊혀진 무성영화의 겉장이 되어버린 늙은 여배우와 수영장에서 차가운 아침을 맞았던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간막극. 찬란한 노을 뒤로 어둠이 내려앉은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의 비극적인 경치를 뿜어낸다. 잠시 휴식했으나 다시는 올라가지 않을 커튼만 무겁게 내려버린다.
나는 한 때 은막을 누비는 여사제였지. 화려한 얼굴 위로 드라마틱한 몸짓과 조용한 열기를 뿜어내면 사람들은 뜨거운 시선을 멈추지 못했다. 모든 이들이 숭배의 키스를 하고 경배를 읊었다. 그들의 환호성을 관리할 한 남자를 곁에 두기도 했어. 호피무늬의 점선을 따라 지겹도록 나를 달려 보냈지. 어느 날이었다. 아, 목소리! 이게 작은 상자에 녹음되기 시작했어. 사람들의 마음은 전율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현란하게 춤을 추는 몸은 보이지 않는 것에 가려졌다. 두꺼운 백분으로 눈을 가려도 늙어가는 허스키한 음성은 감출 수 없었다. 하나, 둘 나에게 걸려오는 전화 횟수는 줄어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출연할 배역도 사라져 갔다. 난 모든 전화선과 차단된 거야. 주름만 져가는 구멍 난 천은 거미줄이 되어 신경을 엄습했고 쇠약해져 가는 나는 사방을 검은 커튼으로 휘감고 몇 겹의 장막을 쳤다. 어둠에선 야광의 눈만이 빛을 발하니까. 다시 조용해진 주위에서 안심하며 깊은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검은 비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날. 내가 누워있는 곳과 비슷한 온기가 살을 감싼 날. 한 남자가 클락션을 누르며 나를 깨웠다. 어두웠던 나의 관은 소리를 내며 반겼다. 오, 맞아! 나는 한 남자를 원해! 그의 하얀 피로 회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시 정열의 살로메가 될 거야. 소리 없이 춤을 출 수 있겠지. 나는 생의 의미를 알게 될 거야. 성냥갑에서 일어나 질시에 찬 시선을 불태울 거야. 그의 도움을 얻어볼까? 방랑을 시작한 그의 목을 끌며 미치도록 달리고 싶어. 순결한 한 여자가 그의 마음을 빼앗고 있지만 뭐 어때. 우리는 한 몸인 것을. 아쉽게도 그는 순순하지 않아. 떠날 마차를 빼앗길 수 없데. 쫓기는 신세인가.
하ㅡ 그 마음을 알아. 나도 항상 그래왔지. 몸에 꽂힌 시선. 보이지 않는 얼굴. 그는 두려울까? 커다란 관의 일부를 열어 그를 눕히고 안아 줄 거야. 인형처럼 옷을 입히고 내가 뿜는 연기와 같은 냄새를 선물하겠어. 그럼 나를 사랑할까? 아...! 아니라는 군. 손목이라도 그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해야 할까? 저 수많은 군중이 주었던 붉은 선혈로 확인 서약을 해야 할까? 그래, 그는 돌아오네. 나에게도 희망찬 소식이 들려와. 나는 다시 무대의 주인공. 화장을 진하게 하고 오래된 군마를 몰고 간다. 당당한 목소리로 수위의 환호도 받고 지난 모습에 연민을 품은 이들에게 나의 흔적을 남기지. 하지만 이상하군.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 모두 내가 몰고 간 군마의 소리가 너무도 활기찬 지 몰래 토닥일 뿐 나의 음성은 듣지 않아. 그들은 나를 사랑한 게 아닌가? 나를 원하는 게 아니야? 다시 잊혀지는 거울이 돼야 되는가. 슬픔. 슬픔. 그래, 더 짙은 적의가 내린다. 외톨이 신세를 비웃듯이 나의 사랑은 절대적 행위에만 마음을 준다. 나는 소외시키고 즐겁게 웃는다. 내가 너를 내보내 줄까 봐? 아니. 우린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고 무대 뒤로 숨을 거야. 해가 떠오르면 달려오는 무리들을 향해 우리의 사랑을 노래할 거야. 자! 한 컷 찍자. 너와 나의 마지막 음성. 젊은 금속성의 세례를!
영화에선 남자가 화자(話者)였지만 난 여자를 화자(話者)로 설정했다. 사실 작중화자가 뒤바뀌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가버린 자는 말이 없지만, 남겨진 자도 이미 죽어버린 걸.
저물어가는 여인, 홀로 내버려진 신세.
외로움은 독백의 강으로 흘러간다.
절망의 그녀가 품에 안은 것은 살로메의 대본.
무언(無言)의 춤을 추면서 벙어리가 되어버린 자신을 위로하는 것일까? 땀의 화기로써 회생(回生)의 음악을 연주하려 한 것일까?
생을 거스르는 몸짓을 눈 감아버린 복종자. 그를 맞이한 건 질투의 총구에서 뿜어 나온 외발의 비명뿐. 떠도는 하늘에 꽃잎이 되어 흩어진 것은 검은 선혈이어라.
2004. 11. 10. WEDNESDAY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변화하면서 목소리는 중요한 전달체가 되었다. 유선 전화기가 무선 핸드폰이 되어 온몸에 들러붙은 이제는 목소리만이 아니라 각종 디지털 코드가 개인을 대변하는 하나의 존재적 집합체로상징하는 시대가 되었다. 싱싱하지만 영광을 한 번도 못 누린 생활고가 절망일까, 쇠락하여 영광을 누리다가 추락한 어두움이 절망일까?
많은 사람들이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자극받지만, 나는 시각적인 형태만이 아니라 청각적인 목소리에 강렬한 자극을 받는다. 내면이 울리는 듯한 개성적인 목소리도 좋아한다. 실제적인 것이 합치되면 더 좋을 것이다. 한마디로 보이스 페티시스트(Voice fetishist)이긴 한데, 노마 데스몬드의 자글거리고 거슬리는 듯한 목소리에 상념이 떠나지 않았다. 악마적인 음성에 매료되어서라기보다, 시절에 묻힌 낡음, 다시는 올 수 없는 영광스러운 날들과 거짓된 사랑에 매달린 광기의 집착이 이해될 듯 이해할 수 없는 뜨거운 방황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늙는다는 사실과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미쳐버릴 수 있다는 자각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그녀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귓가를 사포로 문지르는 자글자글한 거칠음이 스쳐간다.
<선셋 대로>를 보면서 대중이 선망하는 화려함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기적인 젊음도 좋아 보이지 않았고, 뒷방에 수그린 늙음도 연민 이상을 주지 못했다. 자기를 놓지 못하는 사람에게 정신 이상은 불시에 찾아오는 손님이 될 수 있다. 광기에 절어 있던 시나리오는 인상적이었고, 찌푸린 이마 위로 저물어가는 해가 반기지 않는 황혼의 거리 위에서 미련스럽게도 길게 늘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