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晩秋> | 꿈속의 사랑 Love in Dreams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7년 후, 잠시 감옥 밖으로 나온 여자의 수형번호는 2537번이다. 엄마의 장례를 마친 72시간 뒤 복귀를 명령받았다. 타인과의 인연은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 차표를 빌리고 돈을 빌려주는 관계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이 시작될 수 있다. 시애틀(Seattle)로 향하는 버스에서 시간을 묻는 남자의 수작질은 지도로 종이배를 접는 여자에게 차단당한다. 더 이상 만날 필요 없는 사람의 연락처는 휴지통에 버리는 것이 관계를 끊는 정석이다. 엄마의 삼일장에서 돌아올 수 없는 아이는 이미 한 여인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아련했던 옛사랑은 떠나간다.
기분내서 갈아입은 옷과 구속의 귀걸이도 벗어던진다. 다시 원래의 버버리를 입고 머플러를 두른 여자의 하룻밤은 제비 꼬리를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의 남자를 선택한다. 그러나 표정 없는 여인에게 전혀 먹히지 않는 육체는 남자와의 짧은 놀이도 거부한다. 성격도 쿨한 남자는 누군가와의 만족하지 못한 하룻밤은 디스카운트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까지 퍼블릭 마켓을 도는 영업맨의 매너는 꽤 괜찮다. 에스코트를 원한다면 왕자처럼, 데이트나 춤을 원한다면 나쁜 남자처럼, 근사한 식사를 원한다면 좋은 남자도 될 수 있단다. 고객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남자는 자신의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면 돈은 필요 없단 소리다.
남자의 생일을 맞아 멋쩍은 남녀는 석양 속에서 잡담을 나눈다. 식사를 하고 동물원과 놀이공원을 돌아다니며 안개가 끼기 전에 따뜻한 햇살을 즐긴다. 마음을 열고 사랑을 즐기라는 운전수의 이야기에 가볍게 웃는다. 범퍼카를 타고 충돌 속의 흥분을 느껴본다. 상황극을 되뇌며 추억과 집착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그리고 기억하는 것과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두 남녀는 자신의 목소리로 연극한다.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요.
다정한 눈빛과 손길만은 돌아오길.
위로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랑 앞에서
행복은 당신의 손에 달렸어요.
잔인한 사랑.
트랙을 도는 남녀의 거리.
시간이 흐르고 멀어지는 두 사람이 있네요.
바깥세상과 감옥. 생일과 장례식. 탄생과 죽음. 좋고 나쁨(好坏)이 섞인 유령들의 시장 속에서 보이지 않는 길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할 수 있을까? 그녀의 속마음은 그녀의 모국어였다. 외국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남자는 그저 여자를 응시하며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해 추측한다.
무엇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마도 삶이 어긋난 이유는 어긋난 사랑과 어긋난 대답과 어긋난 대화와 어긋난 언어들 때문일 것이다. 고마웠던 하루에 감사의 포옹을 해 본다. 돈과 함께 한 사랑의 이별은 찌그러진 전등갓처럼 한 남자의 운명 또한 부서진 벽으로 몰고 갈 것이다. 예견된 비극 속에서도 침대 위에 놓인 손목시계 소리는 선명하게 흐른다.
한 다발의 국화꽃을 들고 장례식장 방문한 남자에게서 사랑의 엇나감과 관계의 새로움과 수식의 이상함을 배워본다. 비밀과 거짓말이 난무하는 남자들의 질투와 치사한 게임 속에서 인생의 예의와 극적인 즐거움도 배운다.
내 포크를 사용했어!
다른 사람의 것을 사용한 이기적인 자의 미안함에는 반성이 존재할까? 웃는 모습이 예쁜 여자에게 반해, 한없이 긍정적이고 웃음이 헤픈 남자가 있다. 서로에게 매료되어 헤어지는 마당에 진심 어린 남녀가 있다. 레스토랑 주인이 되고 싶어 했고 헤어살롱의 원장이 되고 싶었던 그들은 키스톤(KEYSTONE) 카페에서 돌도 뚫을 열쇠를 주고받는다.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르는 절박한 포옹과 키스 속에서 남자는 속삭인다.
"나오면 우리 만날래요?"
남자는 떠나고 여자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가느다란 손목에 남겨진 시계와 검은 아스팔트에 쏟아진 커피는 그들이 누렸던 잠깐의 휴가와 같은 미흡한 모습이었다. 휴가 중이었던 여자의 사랑은 끝나고, 남자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카페에서 갈색 커피를 마시고 갈색의 옷을 입고 겨울을 바라보는 여자는 커피 한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앞에 두고 어딘가에 있을 그 남자에게 말을 건넨다.
Hey! It's been a long time!
짙은 안개에 가려졌던 구속의 노스탤지어는 육체의 약속에서 시작되어 늦은 가을에 마무리되었다.
지난 일들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녀요.
눈앞의 세상에 무감각해져 가네요.
실망하지 않아요.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까.
사랑은 두 사람의 기억 속에 남겠지만
외로움은 오직 나만의 몫이에요.
고마워요.
내 곁을 스쳐 지나가줘서
낯선 당신은 마치 익숙한 햇살처럼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 줬어요.
알고 보니
나는 아직도 당신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하나 봐요.
사랑은 내 마음대로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바람이 불면 물보라는 그저 사정없이 흩어질 뿐
그게 아닌 들 또 어때요.
당신에게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지 묻지 않을게요.
영원이 얼마나 짧은 순간인지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그저 당신이 내 곁에 있어주기만을 바라요.
사랑은 혼자 힘으로 거부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잘못이 있다면 당신과 내가 함께 채워나가요.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게 뭐 어때요.
늦은 가을이지만 아직 늦지 않았어요.
뭐 어때요.
[꿈속의 사랑. 汤唯]
<Late Autumn> Ending Title
2024. 5. 19. SUNDAY
오래도록 화면과 글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감정 움직임의 독해도 불가능했고 영상도 지루해졌다. 모든 사물을 습관적으로 해석하지만 그 안에 깃들여진 감정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열정이 없으면 시체라고 불러대던 열의는 어디로 갔는지 체력도 달리고 뒤늦게 찾아온 권태기처럼 많은 것들이 시큰둥했다. 자동으로 머리에서 틀어대던 영화는 필요에 의해서 보고 있다. 영상이 글로 바뀌어버려서 글을 읽고 싶을 때 영화를 본다. 어렸을 땐 영화가 히트하면 원작소설이 주목받거나 시나리오를 소설화해서 동시에 책이 출간되곤 했는데 소위 영상 세대가 장악한 지금은 영화를 감상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일인 미디어 시대에서 홍보의 일환인지 콘텐츠의 변용인지 각자 기술적인 재능을 이용하여 영화 내용을 영상으로 바로 편집, 가공한 뒤 유튜브나 숏폼으로 간략본을 내다보니 글로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모두가 창작자고 모두가 평론가인 세상. 아쉬운 것은 각자 머리털이 있으면 생각의 모양새가 앵그리 버드나 앵무새 머리 형태만 가진 것도 아닐 텐데, AI가 내놓을 법한 동시다발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오히려 원작 빼곤 볼만한 것이 없다고나 할까.
영화 <만추 Late Autumn 2011>는 심심했다. 전형적인 리메이크 형식을 따라 올드하게 보이는 구시대의 반항적인 성격의 사랑을 시애틀이라는 이국적인 도시에서 현대적인 분위기에 맞게 각색한 <만추>는 김태용 감독이 일생의 사랑을 찾아 <가족의 탄생>을 이뤄낸 작품이고 탕웨이도 스크린으로 복귀하게 된 영화라 서로에게 의미가 많을 것이니 영화평은 하지 않겠다. 다만, 이만희 감독의 <만추 Full Autumn 1966>나 김기영 감독의 <육체의 약속 Promises 1975>, 그리고 김태용 감독의 <만추 Late Autumn 2011>까지 모두 60-70년대 청춘극장에서나 볼 법한 현실 도피적인 탈주자들의 사랑에 대한 지긋지긋한 향수와 감정의 일탈로 밖에 보이지 않는 철새들의 애정관이 가득해서 타인의 시선에 정의된 사랑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동의는 못하겠다. 마음의 사랑을 반짝거리는 별들에게 물어볼 순 없지 않은가! 별도 달도 다 따주겠다는 말은 한마디로 새빨간 거짓말이듯이 말이다.
사람마다 사랑의 색도 다르듯이 각자가 지향하는 감정의 노스탤지어(鄕愁)가 그리는 그림은 다르다. 여하튼 구닥다리 같은 사랑의 형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니 그 누구도 모르는 게 사랑이라고 말해야겠다.
“심통은!"
“왜? 톡 쏘는 게 매력이라며.”
글을 읽지 않는 시간에는 의식이 늘어지고 있다. 다가가고 싶은 대상들에 대해 거리를 두어보려고 한다. 근래 뜻하지 않게 시니컬해진 기분을 발견했다.
“이성은 어디 두려고? 가슴에 바람이 난 거야?”
“그냥. 가을이 오고 있잖아.”
아침부터 비가 내리면서 갑자기 가을이 온 듯했다. 오늘이 입추(立秋)여서 그런지, 회색빛 거리에는 해가 숨어 들어가고 연무만이 가득했다. 팔월의 한복판에서 만나는 시원한 한여름의 중국 거리. 멍하니 창 밖을 보니 너울거리는 불빛조차 꿈처럼 흘러간다. 늦가을에 태어난 그녀의 노스탤지어 (Nostalgia)는 고향을 벗어난 이국에서 안개가 자욱한 심연 속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