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ANGER, The Sun That Killed Me] 2004. 8. PHOTOGRAPH by CHRIS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던 날과 똑같던 태양. 햇볕의 뜨거움을 이기지 못해 한 걸음 다가섰다. 두통. 눈물.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
눈부신 빛의 칼날. 한 발의 총성. 짤막하고도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땀과 태양을 떨쳐버렸다. 한낮의 균형과 행복을 느끼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도 깨뜨렸다. 다시 네 방의 총성.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소리와도 같았다. 《이방인, 알베르 카뮈 L'ÉTRANGER, ALBERT CAMUS》
하늘의 태양. 언제나처럼 뜨겁고 시리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상기시킬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땐 침묵을 지키며 서 있을까. 페스트가 난무하는 도시에서 어떤 사람이 먼저 죽게 될지 궁금하다. 페스트 균은 허약한 사람은 불러들이지 않고 특히 건강한 사람만을 쓰러뜨린다고 했다. 알제리 인으로 프랑스에서 살아간다는 것. 언제나 도시 속의 이방인이었던 카뮈의 글은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보지 못하고 표면만 바라보는 잣대들이 저지르는 침묵의 살인을 생각나게 한다.
법정에서 재판관들은 한 사람의 기록을 본다. 검사가 올린 공소사실에는 피고의 잘못이 명확한 단어로 규정된 사건들과 그 안의 행위들이 즐비하다. 검사실의 검사는 수사계장이 올린 수사기록을 본다. 두터운 심문자료와 증거들. 전과기록의 나열과 사건 요약본. 너절한 폐해들. 수사계장은 경찰관들이 올린 조사자료를 본다. 초동수사에서 채취한 물증과 현장사진. 감식자료, 기초 판단서술, 사건일지, 사람들의 증언들. 경찰관들은 책상에서 전화를 받고 사건을 접수한다. 고소장에 쓰인 사실과 피해규모. 서로의 주장들. 고소인과 피고소인들의 다툼. 그리고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저질렀을 때 그 현장에 있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판단하는 걸까? 그들이 살아온 삶으로? 잘 훈련된 배움으로? 이미 쓰여있는 사전으로? 남들의 주장으로? 일상사와 다르게 사건들은 항상 분절된 시체처럼 토막 나 있다. 하나의 사건과 또 다른 사건. 사건번호 1254. 사건번호 3335. 사건번호 8763. 하지만 그게 같은 사람이 저지른 행동이었다면, 그리고 그 안에는 이유가 있었다면, 알지도 못한 채 타인의 삶을 판단하고 정의하는 행위는 그 사람의 삶도, 그 사람도 토막 내는 건 아닐까.
혼란스럽다. 긴 세월이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숫자나 단어로 말해진다는 게. 그리고 그런 이상한 세상에서 판단을 당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부조리하다. 숨 막히게 조여 오는 말들보다 그 눈초리보다 아무 이해도 하지 못하면서 이해한다고 고개 끄덕이는 것보다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 감정 또한 없다면 살아서 뭐 할까?
잠잘 수 없는 새벽.
어제의 태양. 잠을 못 자서 어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싫고 뜨거웠던 태양이 떠올라서 의문만 한가득 적어본다.
2004. 8. 28. SUNDAY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이방인, 알베르 카뮈 L'ÉTRANGER, ALBERT CAMUS》
"언제 적으려고?"
"아직은 아니야. 곧, 아니, 어쩌면 십 년."
분노의 감정까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데, 무심하고 분열한 고요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팔다리가 묶여서 두 눈만 시퍼렇게 뜨고 있다 보면 두 눈이 멀던지, 정신이 나가던지 택일을 해야 한다. 파괴의 감정이 극에 달한 채 삶의 의지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 살았던 날들이 있었다. 시간의한 소절이 뻥 뚫린 채 기억나지 않는 것은 감정인지 사실인지 알 수 없다. 목구멍에 악만 남았던 시간을 깊이 묻혀뒀다가 꺼내는 요즘은 처음보다는 몸서리침이 사라져 있다. 자각이 머리를 스치고 말들은 백지로 변해버렸다. 과거를 볼 수 없다면 내일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현재도 보고 싶고 내일로 나아가고 싶다. 그 과정으로 아무렇게나 무방비하게 존재를 살해하고 싶었던 날들로 거슬러 간다. 형상이 없는 그림자가 목표다. 무음의 총성이 머리를 스친다. 태양이 눈부시게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