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UTILITY OF NAME

이름의 효용

by CHRIS
[ INITIAL "C"] 2019. 5. 18. PHOTOGRAPH by CHRIS


"사람들은 이름을 알고 나서부터 시각의 낭비 없이 당면의 목적에서 필요한 것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로저 프라이 Roger Eliot Fry>


몇 자의 이름이 한 사람을 덩어리째 묶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무명 씨가 속 편한 것은 이름이나 명칭의 틀에 구애받지 않고 순간의 행위를 실행하는 딱딱한 몸체로서 인식되는 탈속성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몸 위에 쓰인 이름은 아련히 묻힐 것이다. 이름을 무겁게 지탱하던 어깨는 흙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 것이다. 김춘수의 꽃처럼 이름을 부름으로써 한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안겨주게 되는 상징으로서의 이름과 조직사회에서 흔히 부르게 되는 김 과장, 박 대리처럼, 호칭에 지나지 않는 직업적인 장식의 이름은 같은 효용을 전하지 않는다. 이름에 갇힌 존재로 국한되거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박제의 삶은 살지 않아야겠다.


2006. 7. 11. TUESDAY




나의 사회적인 별칭, 크리스(CHRIS)의 'C'에 의미를 부여해 본다. 창조적이고(Creative), 소통할 수 있으며(Communicative), 개인적인 요구를 반영한(Customized), 자신감이 있는(Confident) 카자(CAZA : Creative Art Zone by Artists). 제작의 본질은 스스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며 진취적인 행동을 통해 굴하지 않는 내면의 의지와 생각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존재감을 알고 있으면서도 인체라는 형태에 구속되기 싫어서 외피에 밀접하게 닿아있는 패션의 한계적인 속성에 고민했던 시간들. 현실로 나를 밀어낸 동력이 있었다면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끌고 가야만 했던 일종의 책임감이었다. "이것이 진정 원하는 모습일까?" 생각이 자리한 이후로 들어선 오래된 물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현재 시점에서 한번 더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2017. 4. 29 MONDAY




살아있는 순간에 이름을 날리는 것에 집중하거나 명예를 좇는 삶에서 멀어지겠다고 다짐한 것은 유효하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도 마음속에 묻힌 생각을 개성적인 화풍을 간직한 언어로 말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던 포기의 순간에서도 삶을 인내해 왔던 시간들과 삶에 순응하면서도 사고의 결을 유지한 지각작용은 가치가 있다. 살고 있어도 무엇인가 아쉽고, 해야 할 일을 덜 끝낸 듯한 미진한 삶은 현재진행형이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수천 년을 거치면서 20-40년에서 80-100년으로 3-4배 가까이 늘어났다. 하나로 압축해서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내뱉었던 과거의 사람들에 비해 늘어지는 초침 속에서 현대인들은 표현조차 망설이는 생존의 시간을 고민해야 한다.


냉철한 사고의 지성인을 보면 감성적인 체취를 찾던 시절, 감성적인 예술가들에게선 지적인 흔적을 발견하길 고대하였다. 균형적으로 그 모든 미덕을 갖춘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만 하기도 바쁜 세상에서 둘 다 쥐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만 파고 들어가야 하는 것을 거부하는 바람에 의식체계가 완전히 분리되어 버렸지만 계속하여 심방이 나뉜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모색해 볼 예정이다. 남이 내주는 숙제는 하기 싫다. 타성에 젖은 문제는 해결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그것에 생의 시간을 허비하기엔 삶의 이유를 알지 못할 때가 많다. 내가 낸 문제를 푸는 것은 도전해 볼 생각이 든다. 내 삶의 주체는 바로 나이기에 자신에 대한 탐구는 타인을 파고드는 것보다 가치 있다.


이름의 효용은 한 사람이나 특정 대상을 규정짓는 둘레가 되기엔 반경이 좁다. 타자에게 인식된 존재가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가운데서도 그 모든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초연해질 수 있어야 비로소 존재는 존재 그 자체로서 성립된다. 그런 면에서 이름은 존재 자체는 되지 않는 현재이며, 존재를 지칭하고 존재를 찾게 하는 도구로서의 대상이다. 이름은 해당 존재가 살아있을 때만 유용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브랜드의 영속성을 말할 때 타겟층에 대한 전략적인 효용과 매출증대에만 초점을 맞춰 내부의 정신이 말하는 바가 사라진다면 이름은 이미 죽어있는 것과 같다. 그런 면에서 살아있는 신화적인 존재로서의 이름은 현재가 인식하는 하나의 호칭이며, 유형적 형태로는 살아있지 않지만 무형적 시간에선 생명성을 획득하며, 같은 동질적인 형상의 조건에서 살아있는 모순적인 존재의 성질을 함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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