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VE DECIDED, JUST DO IT

결심하면 그냥 하세요.

by CHRIS
[Desire for a Dream] CHINA. 2024. 5. 19. PHOTOGRAPH by CHRIS


'일어나야지' '학교 가야지' '공부해야지' '합격해야지' '잘 살아야지' '여행 가야지' '연애해야지' '결혼해야지' '사랑해야지' '돈 벌어야지' '승진해야지' '유명해야지' '예뻐져야지' '건강해야지' '시작해야지' '전화해야지' '작업해야지' '기도해야지' '운동해야지' '사과해야지' '친절해야지' '성공해야지'


마음속의 수많은 '해야지'는 바로 '하기 싫다'는 의미라고 한다. 문제가 닥쳤을 때 스스로 결심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 당위성에 불구하고 인생 종착역까지 매진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머리에 떠오를 때 '바로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와도 '그냥 하기'

안 될 땐 '다시 하기'

안 돼도 '후회하지 말기'


"결심하면 그냥 하세요."



생각이 많고 변덕이 급격한 자를 위한 명언이다. 결심하면 그냥 하면 되는데 항상 결심까지의 순간이 길다. 무슨 일이든 가볍게 시도되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짓거나, 기로에 막힐 때 적절한 응대가 힘들다거나, 시작에 있어 부담감이 있는 상태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잘하려는 욕심만이 앞서 있다던지, 혹은 현재 가진 것이나 위치한 곳에 대한 감정과 애착이 생겼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떤 일에 대해 행동을 결심하기 전, 모든 발생 가능성을 살피는 탐색에 몰두하는 것은 자원이 부족한 사람에게 선택불가결한 선행 조건이다. 갈 길이 다양하게 펼쳐지지 않은 자에게는 차분한 마음가짐과 효율적인 두뇌와 비난과 역경에도 상처받지 않는 굳건한 행동이 필수이다. 편집증적 강박이 적당한 수위를 넘어있던 시절엔 바깥 상황에 휘둘리고 의지가 꺾이는 현실을 참을 수 없었다. 수십 번 반복된 실패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가는 일은 실패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아름다움은 현상에서 존재하지 않기에 아름답게 만드는 작업이 존재한다. 진실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기에 진실하게 만드는 작업이 존재한다. 완벽함은 현재에서 존재하지 않기에 완벽하게 만드는 작업이 존재한다. 스스로 결정한 일들이 실패를 하거나 그 일이 지금은 실망스럽더라도 계속해야 한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장거리를 뛸 수 있을지는 사물과 현상에 대한 응시 훈련이 생존에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던 지난 시간들이 증명해 줄 것이다.



"인스타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며칠 전 술자리에서 들었던 이야기에 솔깃했다. 지인이 인스타그램에 시들해진 계기였다. 그는 먹는 음식, 읽은 책, 취재한 장소, 만난 사람, 가족들 모임, 일상의 소소한 삶을 기자적인 마인드로 담백하게 올렸다. 기업과 고객의 관계망을 연결하는 다양한 서술적인 영업을 하고 있으니 찐 팬은 당연히 많았고 '좋아요' 숫자도 올리는 한 피드당 상당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일상에 의문을 던지는 걸 보고 통렬한 자각이 들었다고 했다.


"오늘 ㅇㅇ 하는 날 아닌가요?"


자신은 그 사람을 모르는데 타인은 삶의 패턴을 들여다보듯이 자신의 행동을 속속들이 아는 것에 기분이 섬찟해지면서 '왜 이것을 하는가'란 회의가 들었다는 것이다. 자각할 줄 아는 사람이 자잘한 인기나 외부적인 명성을 얻은 듯한 도취적인 기분에 몰입되면 무의식적으로 행위에 빠져들다가 타자의 발언이 목을 죄여올 때 그 행위에 대한 본질적인 의심으로 인해 한방에 모든 것을 그만두는 자폭의 수도 생길 수 있다. 정기적 시간에 모닝콜처럼 울려 퍼지는 알람처럼 무엇인가 하라는 기계적인 알림이나 누군가 해달라고 해서 해줘야 하는 반의무적 통보 상태는 내부의 적극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자성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의한 행위적 실행은 자아가 강한 사람들에겐 독이다.



관음(窺淫)의 속성은 무엇인가. 인간의 안구가 밖을 향해 있으므로 바라봄의 행위는 타인을 관찰하는 속성을 기본으로 한다. 비밀스럽게 익명을 고수하며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아가는 사적인 공간으로의 침입은 개인이 핍쇼(Peep Show)를 연출하듯이 육체적 개방을 허락하는 현대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더욱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보통 관음적인 행위는 법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만한 사생활 침해로 해석되기도 하고, 상대의 동의 없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순간을 지켜보는 행위는 상대가 인지하는 순간 불쾌감과 불안을 초래하기도 한다. 관음의 속성이 사진이나 영상처럼 순간을 잡아채는 관찰 도구를 사용하여 진행되기 때문에 흡사 아무런 제재가 존재하지 않는 투명 인간이라도 된 듯이 타인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SNS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늘어갈 수밖에 없다. 관음은 흥미롭고 자극적이지만, 개인적으로 관음의 방향은 스스로의 내부로 파고드는 시선에 쏠려있다. 일반적으로 해석되는 관음적 속성은 같지만, 관음의 방향성은 내부로 돌려있기에 관찰자와 피관찰자가 동일하다는 조건이 생성되고, 동질하게 파고드는 속도와 흥미가 가중될수록 변태적이기보다는 놀랍도록 자성적으로 변하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일을 하면서도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은 맞는 것인지 항상 묻는다. 현재의 감정을 알고 싶거나 생각을 점검하고 싶을 때, 아니면 답답한 기분이 들 때는 글을 적고 싶다. 관능적인 감각에 몰입하거나 어떤 형상에 매료될 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모든 예술적인 작업은 내 안을 완전히 꺼내서 보여주는 과정이다. 타인이 나의 내부와 부응할지는 미지수이다. 진실은 표면적인 관심과 무관함을 인식해야 한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힘든 일이다. 자신을 살펴보는 일과 거짓 없이 보이는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자신을 파고들다 보면 화려한 포장은 날아가고 벌거벗은 기분이 든다. 거창하거나 대단하거나 잘났다는 생각이 사라지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존재임을 알게 되기 때문에 타인이 말하는 상태와 자신을 비교하게 되고 현재를 직시하게 된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감정이든 결심이든 행동이든 처음 시작했던 마음을 지속하기도 쉽지 않다. 분명 내가 결정해 놓고선 마음속에서 스스로 내린 판단인지 자기 합리화인지 모를 속삭임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소곤대는 귓속말은 결심에 기대어 나약하고 달콤한 소리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가로막고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며 현재에 안주하라고 말한다. 성취에 대한 열망이 커질수록 맹렬한 분노와 좌절과 시기와 질투까지 눈앞에 펼쳐놓는다. "시작은 반이다"라는 말은 맞지만, 시작을 선택한 절반조차 그 반만 하고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것은 다짐을 펼치는 순간 타자의 간섭과 영역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호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결심 또한 작심삼일이 되고 용두사미로 마무리하는 이유 또한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불안과 타자의 평가와 시선에 기대 왔던 습관에서 비롯된다.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향해 솔직해지거나 진실해지기 어렵다. 타인의 눈치를 봐야 하고, 목표의 할당량을 채워야 하고, 스스로 만든 탑 속에서 내일의 진행에 대한 부담감에서 허덕이다 보면 자책이라는 괴물이 우울한 얼굴을 내민다. 미래가 술술 풀려서 결심대로 잘 흘러간다 싶으면 물질적인 형태에 집중하고 자아도취적인 괴물이 오만한 얼굴을 내민다. 암흑에서 바닥 위로 수평하게 형상을 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어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돌아갈 수 없다. 나는 나로서 살아간다. 하고 싶은 것은 결심이라고 느껴지지 않게 자연스럽게 작업을 이어간다. 매일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나를 향해 다가가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결심한 대로 그냥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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