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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l 02. 2024

IN THE HEART OF THE COUNTRY

<더스트 DUST> 나라의 심장부에서. 신기루 없는 황야의 먼지

[DUST, Marion Hänsel 1985]  MOVIE POSTER


노란 햇살이 붑니다.

끝이 없는 황야라서 피해 갈 곳이 없습니다.

눈이 부셔서 담에 기댑니다.

그늘은 海網이 되어 나를 묶습니다.

기합도 없이 누가 나를 끌어올리는군요.

나의 이름을 지어주네요.

당신은 나의 아버지?


“뙤약볕 아래 울타리를 만들고 양을 치고 싶었어요.

그릇을 닦고 시계에 밥을 주기보다는,”


뚱뚱하고 검은 안나에게 말을 하였죠.

아버지는 식탁 앞에서 나에게 말을 건네는 적이 없었습니다.

밥을 먹고는 기둥에 기대 노을에 빛나는 아름다운 여인들을 바라보곤 했었죠.

나는 그들처럼 아름답지 못했고 그가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여인들을 한없이 부러워했습니다.

나는 남편을 어떻게 만나야 하고 즐겁게 해줘야 할지 모르는 외로운 미스였어요.

울타리에 갇힌 미스, 밥을 짓는 미스, 시종 같은 시종이 아닌 미스, 아무것도 아닌 미스.

그냥 미스. 이름은 자주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은 뒤 재혼하지도 않았고 나를 물가에 놓아주지도 않았습니다.

무표정한 마귀의 얼굴로 무릎을 꿇고서 발을 내밀었어요.

먼지 묻은 부츠나 벗기는 고개 숙인 머리를 보려 했어요.

나는 그의 부인인가요? 그의 정부인가요? 그의 시종인가요?

나는 오후가 되면 물을 끓이고 욕조에다 물을 담습니다.

해가 비치는 방이 깜깜한 수증기로 가득 찹니다.

문을 닫고 복도에 서서 먼지에 더럽혀진 아버지가 목욕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뜨거운 물이 탄탄한 아버지의 몸에서 떨어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검은 안나, 젊은 안나, 새로운 안나를 침대로 부르기 위한 목욕재계인가요?

나는 그들의 침대에 허리를 굽히는 하얀 안나가 되어야겠군요.


낮이 되던 밤이 되던 날씬하고 검은 안나를 향한 아버지의 수작은 끝이 없습니다.

나는 창 유리가 바닷물인 것처럼 고통스럽게 몸을 비빕니다.

오직 나를 벗어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러나 나를 해하는 것 밖에 되지 않네요.

나는 그에게서 사랑받지 못했어요.

이렇게 그만 보면서 살고 있는데!

나는 아버지를 닮지 못했어요, 어머니를 닮지 못했어요, 아름다운 그들의 딸인데요.

저기 복도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여자가 걸어옵니다.

안녕, 안나.

안녕하세요, 미스..


안나는 젊습니다. 올해가 지나고 내후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름답도록 젊습니다.

검은 씨를 배고 하얀 씨를 배고 해마다 색깔이 다른 아이를 번갈아 낳으면 그 아름다움도 바래겠지요.

약간은 비열해지고 단조로움에 싫증을 내는 뚱뚱하고 투박한 안나가 되겠지요.

검은 남편은 하얀 남편에게 기대 버린 안나를 보면서 배신감에 이를 갈 거예요.

다정했던 사람들은 싸움이 늘어갈 겁니다.

안나는 주름이 늘어가고 까만 눈은 생기를 잃게 되겠지요.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어요.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요.

젊은 내 아버지처럼.


그만둘까요? 나는 모든 이야기를 하려다가 못다 한 이야기 몇 조각을 꺼내놓습니다.

속옷을 입지 않고 다리를 쩍 벌려도 아무도 탐스럽게 쳐다보지 않는군요.

나는 못생긴 식인 상어가 맞나 봅니다, 이빨이 유난히 큰 못생긴 식인 상어.

낚시질이 잘못되어 뭍에 사는 아버지를 입으로 덥석 베어버린 못생긴 식인 상어.

파리가 들끓고 악취에 시달리며 복부를 관통했던 그날을 구덩이로 처넣은 올드미스.

하얀 상어를 식탁에 꺼내놓으려면 어떤 괴이함도 참아야겠지요.


그 후의 이야기입니다.

하얀 애인이 떠나자 나도 역시 검은 애인을 안고 싶었습니다.

피는 속일 수가 없는지 이제는 내가 무자비한 아버지가 되어봅니다.

턱 끝을 올리고 총을 쏘며 장군처럼 군림하려고 했습니다.

돈도 없고 희망도 없고 권력도 없이 무엇 하나 제대로 흘러가는 것은 없는 먼지의 성에서.

그런데 나는 아버지만큼 힘이 없었어요.

그래서 뜨거운 난로에 덴 개처럼 바닥에서 절절 기어야 되는 거겠죠.


오늘은 너무 지쳤습니다.

창문을 여는 일은 이제 없을 겁니다.

아버지도 없고 뚱뚱한 검은 안나도 없고 날씬한 검은 안나도 없고 안나의 검은 남편도 없는 여기는,

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버려진 먼지의 성이니까요.

자주 불려지지 않는 내 이름 앞의 빈번한 미스처럼.


눈을 뜹니다.

노란 햇살이 붑니다.

신기루도 없는 황야에 다시 섰네요.

난 여전히 아버지의 머리칼을 자르고 있습니다.

우리 둘은 웃는 얼굴입니다.

아버지만 어제보다 조금 늙었어요.


2005. 6. 1. WEDNESDAY



따갑고 먼지 낀 햇살의 추억이 밀려온다. 머리 위에 노랗게 내려앉은 분가루를 맞으며 가만히 눈을 감는다. 생활의 지루함이 시선을 방해하는 황야의 도시에서 자잘하게 끓어오르는 감정을 손 위에 얹고 싶 때가 있다. 현재의 무표정한 가면의 여자보다 과거에 갇혔던 헛간 속의 여자는 말은 거칠었어도 그 누구보다 보는 눈은 나른한 기색 없이 맹렬했으며 말끔한 혓바닥은 정직하였을 것이다. 폭력적인 아버지의 가련한 딸은 왜 작은 방에 갇혀 폐쇄공포증에 허덕이면서 숨을 쉬지 못하는가!



200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존 맥스웰 쿳시(John Maxwell Coetzee)의 1977년 소설 《나라의 심장부에서 In the Heart of the Country》를 각색한 영화 <더스트 Dust 1985>는 백인 침략자인 농장주 아버지와 진보적인 이성의 지식인으로 대변되는 딸의 내러티브적인 고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탈하는 서구문명의 가증스러운 위선과 검은 폭력들이 대치되는 위장된 야만의 세계에서 억압받는 이들이 학습된 지배적인 속성을 발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치달을 때 흑백의 해소될 수 없는 충돌은 엉망진창으로 변한다. 지난 역사를 통해 증명되듯, 황야에 펼쳐진 난잡한 현실은 깔끔한 수습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한다. 황량한 원시세계로 돌아가 과거의 유물을 그리워하는 모순적인 표정은 내면의 사유를 정확하게 직시하라고 진술적으로 토로한다. 가정과 사회의 근본적인 상하적 지배구조와 남녀의 종속적인 시대 상황의 모순, 권력적인 속성과 피지배적인 태도에 길들여진 문명의 가식, 인간의 삶과 제도적인 시선으로 가려진 인류사의 위선을 타파하는 영화와 소설의 복합적인 내러티브 구조는 역사 속에 놓인 인간의 다양한 현재를 시간을 거스르는 의식과 현재가 섞인 모호성 속에 한데 담아 간결하게 풀어놓는다. 모두가 떠나고 황야에 홀로 남겨진, 눈에 생기를 잃은 여자의 고독하고 황폐한 그림이 인간 본연의 모습인지 생각했던 과거의 회상을 보듬으며 뜨거워진 여름을 맞이해 본다.


눈을 뜹니다.

노란 햇살이 붑니다.

신기루도 없는 황야에 다시 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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