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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l 03. 2024

ARAKI NOBUYOSHI, YOKO MY LOVE

아라키 노부요시, 《내 사랑 요코 わが愛、陽子》

[Yoko My Love, わが愛、陽子 | 荒木經惟 ARAKI NOBUYOSHI. 1978]



아내가 죽은 후,

방 안에서 하늘만 찍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방에서 발코니로 나와

발코니에서, 하늘, 바람, 빛,

옆집 감나무나, 테라스에 휘감긴 담쟁이나,

발코니 구석에 잊고 있었던 물건이나,

발코니를 스튜디오로, 요코가 좋아했던 글라스에

맥주를 따르고 그 광선이나 그림자나,

시들어가는 꽃이나, 작은 새가 쪼아 먹던 사과나,

도마뱀의 미이라나,

요코와 나의 조깅화를 나란히 놓고

찍기도 했다. 치로와 함께.

 

荒木經惟(あらきのぶよし 아라키 노부요시) 1991. 4 – 데자뷔 제4호 近景에서

 


센티멘탈한 여행에서 돌아와서 흩어진 필름을 정리한다. 어지러이 나열된 사진 속 숫자만이 스냅 한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허무하게 취해버린 내 옆에는 예쁘게 웃는 그녀가 있다. 익살맞은 농담들이 흐르던 겨울행 열차. 생기를 흡입해 버린 아버지, 어머니, 나의 요코... 창 밖에는 목련꽃이 반 밖에 피지를 않았는데 다들 어디로 도망간 걸까. 우리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고 농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다신 돌아갈 수 없는 그 길에서... 난 알몸이나 다를 바 없다. 도쿄 럭키홀에서 연신 외로운 사내들을 음주하는 창녀들의 벌어진 허벅지를 본다. 내 마음은 그물스타킹을 신지 않았고 하이힐도 벗어버렸다. 오직 나를 장식한 것이라곤 어제 엄지발톱에 분연히 칠했던 분홍색 매니큐어. 콤팩트한 일기장에 당신의 얼굴이 떠오르는 하늘만을 적다가 아, 쓸쓸해서 감나무도 하나 그려 넣고 담쟁이도 새겨 넣고 꽃도 매달고 도마뱀의 미이라도 갖다 놓는다. “아내가 죽고 나는 하늘만 찍고 있다.” 그랬지.

  



그랬어...

바람이 불고... 옷깃을 파고드는 추위가

망연하게 슬플 때가 있다.

어느 겨울이 생각나면

점점 멀어져 간 겨울이 떠오르면...

그러나 계속되는 기다림 속에

빈 방에 채워둘 것은 그다지 생각나지 않는다.    


2005. 11. 23. WEDNESDAY



인생을 수놓던 한동안의 겨울은 웅크림을 반복했다. 구속에 익숙했던 자에게 갑작스러운 자유는 평안함을 선사하지 못한다. 저리도 신선한 계절에 어쩌면 이리도 목메는 그리움이 가득할까. 오래전에 메말라버린 거울을 닦아본다. 아ㅡ 희뿌연 안개는 여전하다. 어두운 이야기는 은밀하고 애처롭다.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상상을 동반한 비밀한 호기심과 어쩐지 그 속을 알 것 같은 안타까움 때문이리라.


2013. 11. 20. WEDNESDAY



떠나간 사람이 남긴 잔상은 시간에 따라 모종의 흔적을 남긴다. 오직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만 시냇물이 되었다가 강물이 된다. 바다로 넘어가면 하나 남은 매듭까지 휩쓸어버릴 것이다. 천천히 시간이 흘러가는 듯했다가 어린 나는 어느덧 나이가 들어버렸다. 의식의 밀물이 밀려오면 지나간 밀봉된 순간까지 자박하게 침범한다. 삶과 죽음이 벗어날 수 없는 하나라면 이렇게 태어났듯이 그렇게 저물어갈 것이다. 담담하게 살아가는 오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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