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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n 26. 2024

IMAGE MENTALE, L'EAU, L'HEURE

로베르 드와노 | 심상(心像), 물(Water), 시간(l'Heure)

[心像, Water, l'Heure, Robert Doisneau] PHOTO IMAGE COLLAGES by CHRIS


"물은 무척이나 내 관심을 끄는 물질이다. 끊임없이 흐르고 반사하며 동시에 감추기도 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만져봐야 하는 모종의 비밀을 가진 신비로운 거울이다."  


로베르 드와노(Robert Doisneau)



흑백 사진을 좋아한다. 잘 바래서 누렇게 귀퉁이가 닳으면 더 좋다. 음식국물 묻은 자리가 퇴색되고 빳빳한 사진이 너덜하면 마음이 덜컹댄다. 일부러 헐게 만들 필요는 없다.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 삶이 들어있으면 되니까. 한동안 사진을 열렬히 들여다보았다. 잡식(雜食). 기운이 넘치는 대신 꾸준하지 못한 게 단점이다. 놀 시간이 줄어들면서 과거의 행적을 돌아보니 이리저리 쑤셔댄 총알구멍이 산발이다. 며칠 뒤를 준비하려 서류뭉치를 찾다가 쌓아뒀던 책을 쏟았다. 어지럽게 튀어나온 로베르 드와노 (Robert Doisneau)의 사진들에 눈길이 갔다.

빛을 잡아먹고는 암흑상자에 기억을 전하여 저장하는 오브제 (Objet). 나는 주체 (Sujet)가 될 수 있을까? 0°-180°-360° 회전하는 줄만 알고 있던 시간이 애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카메라와 사진은 사라진 기억과 시간을 감지하는 기능을 보충해 주었다. 사진작가의 이웃들, 흑백의 현기증 뒤에 숨겨진 일상에서의 행복을 엿보았다. 응시와 인쇄. 투사와 전복. 마네킹과 상점. 시각적인 명확성과 화학적인 성분구성. 빛에 대한 감각. 이미지를 뒤집어 보는 사진조각가인 로베르는 실뱅과의 대담에서 자신의 사진이 무섭다고 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있으면 오래된 가족 앨범을 들추듯이 갑작스레 닥쳐온 노쇠와 함께 시간에 대한 느낌을 갖게 한다."

소시민적 분위기를 풍기며 각진 언어를 구사하는 그를 읽는 건 뜻밖에도 몇 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 개인적으로 관계가 있던가? 아니. 시간을 건너뛴 관찰자와 작가의 관계인데 무엇이 우리를 이어주던가. 물가에 반사된 햇빛을 보며 심약한 연상을 했다. 나는 사진색상과 흡사한 어두운 상자에 있었다. 우리는 뒤집힌 창가에서 서로를 보았다. 나만 보았을까? 반투명 유리로 그는 보지 못하고. 그럼에도 어떻게 로베르는 나의 혀를 갖고 있을까? 무게가 느껴지지 않게 어깨에 앉아 귓속말을 떠든다.

"삶에는 뚫고 들어가서는 안될 은밀한 영역이 있다. 세상이 험할수록 사건이 많고 사진기자들이 많이 있는 곳엔 분명히 별로 대단치 않은 사진만 있다."

진실의 문이 좁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출산물이 가득함에도 낚시 바늘을 피해 가는 은빛 고기들. 에로티시즘과 시각적 최면 현상에 맛 들인 내셔널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좀 더 단순한 맛을 찾고 싶다. 시간이 급할 땐 스냅사진은 긴요하다. 화장터로 달려가기 전 메이크업을 고치며 이별을 고할 자화상을 그려주니까.


대상을 보는 눈을 지그시 가져본 적 없었다.

불 같은 성격상 지켜볼 여유가 없었다.
오래 관찰을 했고
말을 삼갔으며
분석하지 않으려 했지만
근 몇 달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한 번도 시원히 흘리지 못한 눈물을 참을 수 없었고
어둡던 밝던 생각을 멈추지 않기 위해 적었다.
허리를 펴고 일어날 수 없게 추가 무겁다.
잠시 멈춘다. 心像을 뒤지러.

약하게 노니는 심장을 꺼내봐야겠다.


2005. 1. 25. TUESDAY




말랑하고 다정한 언어들은 소실되었다.

달빛 받은 하얀 처녀의 서늘한 눈길로

검게 달아오른 커다란 눈망울.

우울한 몽상의 손으로 마른 얼굴을 비빈다.


기분에 취했던 어젯밤에는 단막극이 어울렸지.

오늘처럼 사실적인 밤에는 가로등 선명하네.

잠 못 드는 새벽이 되면 희미한 셔터 소리

더 이상 오지 않을 빛 잃은 그리운 것들.



빛이 그린 그림보다 더 황홀하고 풍부한 맛을 가진 이야기가 온몸에 자리하고 있었을 땐 용기로운 마음은 자만하였다. 머리에 길게 잡아둔 기억의 편린들이 갓 잡은 물고기의 날카로운 비늘처럼 소름 끼치게 지나간 순간까지 정곡을 찌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그림들이 한순간 예상치 못한 홍수를 만난 듯이 뇌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을 때, 삶의 바닥 위로 폐허만이 남아서 죽음로 잠든 총알 뒤로 무거운 감정의 탄피만이 흩어진 것을 보았다. 그렇게 철없이 흘러간 시간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은 오지 않을 순간들까지도.



  

[Le Baiser de l'Hôtel de Ville, Robert Doisneau 1950] Eldis Regent Hotel. 2019. PHOTOGRAPHY by CHRIS


2019년 9월 1일 일요일 아침, 하늘과 가까운 고층의 호텔 테라스에서 한적한 거리를 배경 삼아 1950년대 방식의 열정적인 입맞춤을 감상했다. 선선한 공기에 느껴지는 이별은 낭만적이었다. 일주일 전에 숙소에 들어섰을 때 로베르 드와노의 사진을 발견하고서 피식 웃었다. 숙소에 들어설 때면 연인들에게 눈 인사했다.


"잘 지냈어? Ça va?" 


작가가 의도해서 만들어냈든, 시간이 흘러 다른 곳에 놓였든 간에 액자식 구조가 어울리는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전시 일정이 종료되는 휴일의 시작은 센스 있게 마무리되었다. 남녀의 연출된 키스 앞에서 잠시 시간의 구경꾼이 되어봤다. 로베르의 큐 사인이 떨어질 때까지.



"사진의 비밀은 현재의 순간을 잡아내고, 빠져나가는 감정을 포착하고, 덧없는 것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The secret of photography is to seize the present moment, capture the escaping emotion, and freeze the ephemeral."


"Le secret de la photographie, c'est de saisir l'instant présent, de capturer l'émotion qui s'échappe, de figer l'éphémère."

<Robert Doisn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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