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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n 25. 2024

TESSERACT: DISGUISED HIERARCHY

테서렉트, 전략적 세계의 실존적 모순, 평화적인 구조의 방법서설.

[Crucifixión : Imitating the Form of the Tesseract Corpus Hypercubus] 2024. 5. 10. SKETCH by CHRIS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omingo Felipe Jacinto Dalí i Domènech)의 1954년 그림 〈초입방체의 십자가의 처형 Crucifixión : Corpus hypercubus>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을 그린다. 이 작품에서 십자가는 테서렉트 다면체 그물의 전개도로 만들어져 있다. 달리의 그림을 스케치적인 선으로 따라 그리면서 각들의 분할점과 선과 면들이 이뤄내는 공간의 변형에 대해 바라본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우주적이면서 심미적인 도형의 형태적인 고찰에서 비롯된 자연 물리적인 설계구조와 인문 정치사회의 현상분석을 통한 개인적인 의견이며, 다분히 심리적이면서 철학적 상상에서 비롯된 발설이기에 학계의 정립된 가설이나 확정된 사실의 형태는 아니므로, 정밀한 반박 대상은 아님을 밝혀둔다.



못 없이 정육면체 4개가 펼쳐진 24면은 각 면을 한 시간으로 설정하고 24시간으로 쪼개진 하루라고 가정했을 때, 면(Face)은 세계의 분할된 시간적 역할을 대차한다. 여기서 예수는 시간에 놓인 인간의 존재를 상징한다. 신은 공간 전개도를 접어 테서렉트의 구조를 볼 수 있으나 인간은 3차원의 전개도만을 볼 수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박힌 이유는 테서렉트 구조도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펼쳐진 시간 속에서 신의 아들의 죽음은 계속되는 변형 속에서 모아진 생의 출발을 상징한다. 생(生)과 사(死)의 반복되는 순환은 하나의 다면체적인 인생의 그물에서 반복됨을 의미한다.


달 전에 위챗(Wechat)으로 떠도는 중국의 공학도가 만들어낸 공학작품들의 동영상을 보았다. 이 테서렉스의 원리를 변용해서 다양하게 생성된 입체 도형은 끊임없이 허공을 통과하면서 인공 자연물 속에서 움직임을 환시하며 전체적인 주변 환경의 그림을 변화시켰다. 화면을 응시하고 있자니 삼차원에서 사차원으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착시가 일어났다. 요즘 세계 도처에서 과학기술의 원리와 동력의 현상을 이용하여 빛을 투사한 형태로, 소리를 변용한 울림으로, 공간감을 활용한 방식으로 과학적 실증성(實證性, La Science Positive)이 예술의 형태로 전환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 그림을 보고 있자면 기술공학이라고 해야 할지 예술작품이라고 해야 할지 의문스럽다. 자연과 환경이라는 거시적인 응집에서 세포나 분자식의 모습으로 세밀화된 조각까지 전자패널 장치를 통해 허공에 펼쳐놓고 커다란 우주의 동굴 속에 인간의 감상을 가두는 과학기술의 현재는 일전에 알고 있던 예술에 대한 관념과 의식을 방황하게 만든다. 분명 예술이라고 부르기엔 허접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 같은데, 기술적으로 접히고 펼쳐지는 반복이 인류 생성의 원리와 맞닿아 있어서 머리를 복잡하게 끌고 간다.  

 


인간이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회를 만든 이후, 존재를 보호하는 목적의 원형의 테두리는 시간의 축적에 따라 수직적인 첨탑을 형성한다. 어느 날 자신들이 갇힌 위치를 자각한 사람들은 원뿔 모양의 높아져만 가는 계급사회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그러나 위와 아래, 좌우 혹은 길이와 너비, 높이가 존재하는 삼차원 공간구조에서 계층의 형성은 자연스러운 논리이다. 이차적인 평면도 안에서는 가시적이고 개념적인 평행이동만 가능할 뿐 체험적인 수직이동은 불가능하다. 존재가 놓인 삼차원 세계에서 존재는 좌우뿐만 아니라 위아래로 움직여야 한다. 수평적 구조와 수직적 구조가 존재하는 좌표상의 거리는 사회의 실질적인 공간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4차원(Fourth Dimension)의 공간은 삼차원의 세계에 시간을 더한 시공간(TimeSpace)으로 만들 수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후반부에 나오는 테서렉트(Tesseract), 즉 정팔포체(Regular Octachoron, 8-Cell-3 Dcubes)는 4차원의 초입방체(Hypercube)로 형성되어 있다. 제4의 직교하는 축을 더한 4차원에서 4축 모두가 직각으로 교차하면 그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다만 시간적인 흐름과 공간적인 혼재로 인해 상상이 불허한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인지가 불가능하다.


테서렉트의 구성요소는 8개의 세포(Cell), 16개의 꼭짓점(Vertices), 24개의 면(Faces)과 32개의 모서리(Edges)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의 끊임없는 분열과 화합은 인간이란 존재를 형성하고 쇠퇴하게 만드는 화학적이고 유기적인 세포의 생성과 소멸의 형태와 유사하다. 또한, 우주적인 원자의 분열과 쇠퇴를 형성하는 원형과 닮아있다. 뫼비우스의 형태를 투사한 숫자 '8'이 상징하듯이 끊임없는 회전체의 모습인 8개의 세포(Cell)는 3차원의 정육면체로 구성되며, 4차원의 테서렉트는 이 8개의 정육면체로 구성된다. 각 차원에서 꼭짓점(Vertices)의 수는 2의 제곱수이며, 4차원이므로 16이다. 각 정육면체에는 6개의 면(Faces)이 있고, 4차원이므로 24이다. 각 꼭짓점에서 차원의 수만큼 모서리(Edges)가 뻗어나가 4차원이므로 32이다. 이런 숫적인 연관관계는 더 높은 차원의 정다포체(Hyperpolytope)에 대해서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TIME TO CHOOSE 선택의 시간

일상에서 어떠한 사건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양갈래의 선택에 놓이게 된다. 맞서거나 피하거나를 골라야 한다. 나는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책임질 다른 누군가를 찾는 시간에 먼저 현실을 파악하고 정면승부를 선택해 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책임을 지는 위치에서 해결에 대한 방향성을 지시하는 것은 내 몫이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쌈닭처럼 전투적이고 호전적인 줄 아는데, 조용히 는 게 취미이다. 전쟁이 없는 세계는 바라는 바다. 만약 타자와 대상과의 접촉형태가 어떤 모습이 되었든 간에 앞으로 다가올 충돌의 시점과 규모, 그 영향력을 예측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부딪힘이 발생한 기원을 살펴보고 격돌의 상황이 밀려올 때 그 운동방향까지 해소할 수 있다면, 현상에 놓인 존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 충실한 인간들은 오늘을 해석하기에도 바쁘고 내일을 염려하기에는 어지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 갑자기 충격이 밀려들어오면 분석은커녕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처리하고 난 뒤에 평온이 밀려온다고 하더라도 재발에 대한 불안함은 신경질적인 경기처럼 가시지 않는다. 현재의 처리 결과 또한 누군가의 희생이 들어가고, 아무도 그 힘든 고생에 대해 자각 없이 반복의 길을 간다면 재편된 모습 또한 만족스럽지 않다.

  

실질적 전쟁의 도구가 되지 않으면 상단에 서야 한다. 장기말이 될 것이 아니라 장기말을 다루는 사람이 돼야 한다. 나는 대략적인 삶과 존재가 놓인 공간의 미래 설계 전략을 짠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엄청 정교한 전방위 공격형 프라모델을 모델링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기본적으로 세상의 변화가 제시하는 흐름을 보고, 앞으로 갈 체력을 기른다. 구체적인 무기의 형태나 진법의 설계는 대상에 대한 파악을 끝낸 뒤 진행한다. 상대와 만날 지형과 형세, 시대의 구조적 흐름과 장애 요소, 유리한 위치들을 파악하면 좋다. 그런 모든 것을 보려면 지금 위치한 곳에서의 확실한 자세가 필요하다. 다만, 나는 일이 발생할 때는 책임을 지는 위치이긴 한데 평소에 권위는 별로 없다. 가끔씩 발동하는 권력자에 대한 실소나 냉소적 태도 때문에 나보다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이 큰 소리를 치기도 한다. 결국 실력을 발휘하는 순간이 다가오면 준비된 자는 가면을 벗고 얼굴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육탄전에 강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렸을 때 대다수의 놀이는 장난감 총과 나무칼이 난무했다. 얌전할 수 없는 기질이 내재되어 있었나 보다. 기본 생활이 흙바닥에 구르던 차에 신체적 민감함이 제로인 상태로 계속 몸이 다쳤다. 결국 육체적 한계를 느끼고 정신으로의 탈환을 시도한 여섯 살, 손에는 책이 쥐어졌다. 머리싸움은 재미있었다. 크게 한 번씩 다쳐오면 다들 기겁했다. 깁스를 하거나 목발을 짚으면서 글을 읽었다. 《삼국지 三國志에서 도원결의(桃園結義)를 실행하는 삼총사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보단 한 마리 고고한 학, 제갈량(諸葛亮)이 괜찮아 보였다. 싸움질하라고 손가락에 붙으라는데 안 가겠다고 버팅기는 자세는 애들 싸움에 끼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다만, 제갈량 또한 삼고초려(三顧草廬)에 무너지다니 인간의 의지는 다른 이의 의지를 덮치기도 한다. 철천지 원수지간의 오나라와 월나라 간의 전략적 밀월관계를 만들어낸 오월동주(吳越同舟)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책략가 범려(范蠡)도 눈에 띄었다. 물론 권력의 장악 후 변질되는 협업관계는 충절의 전략가조차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명언을 남기며 속세를 떠나게 만들기도 한다.


국가적으로는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난 나는 개인적인 단위의 혼란과 심리적인 내전을 겪었지만, 문학적인 전략가를 좋아한다. 칼과 펜은 함께 양립할 수 있는가? 전략설계의 세계에서 최소공배수적인 희생은 필수적이다. 일터가 위치한 압구정의 이름은 한명회(韓明澮)의 호(號)를 따른다. 압구정(狎鷗亭)에는 갈매기와 스스럼없이 벗할 만한 한가로운 정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한명회의 초창기 조선왕조 설계구조는 충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좋게 비치지 않고 있다. 전쟁의 시기, 역사적인 전략가들의 행위를 살펴보면 관계의 재편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상대를 제압할 때 평화로운 방법을 쓰지 않는다. 그것이 일반인에겐 잔인해 보여도 머리와 핵심을 제거하는 것이 살상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PEACE STRATEGY 분열과 화합의 전략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는 각자의 의견으로 분열되어 있다. 국민의 열망과 지도자의 합의는 다르다. 개인적인 영달을 추구하는 권력자는 통합보다는 분열이 사회를 통제하기에 효과적이다.


조지아(Giorgia) 의회는 2023년 2월 인민의 힘(People’s Power)이 내세운 외세투명성법 (On Transparency of Foreign Influence)의 발의를 받아들인다. [외국지원단체법], [외국요원법], [러시아법]으로 불리는 [외국지원단체법 Foreign Agent Law]은 러시아가 2012년부터 시행 중인 [외국대리인법 Foreign Agents Law]과 유사하다. 2012년 러시아가 외국대리인법을 공표했을 당시에는, 오직 외국의 영향을 받는 정치 조직만 이 법의 영향을 받았지만, 2022년에는 방식이나 형태와 무관하게 외국의 지원을 받는 모든 개인과 법인을 규제하는 법이 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러시아 정부를 비판하는 모든 대상이 이 법의 규제 대상이 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조지아는 발의된 법안에 대해 정부에서 반대의 입장을 밝혔고 이에 대해 유럽연합(EU)은 주라비슈빌리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의지를 지지하면서 조지아가 EU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EU가 제시한 12가지 가치를 확보해야 하는데, 민주주의의 핵심은 언론 자유 보장과 시민 사회를 양성할 수 있는지가 그 덕목에 포함된다고 보았다.


현재 다문화권인 미국에 비해서 잘게 분열된 유럽은 통합을 원하지만, 유럽연합(EU)에 귀속되지 못한 나라들은 러시아권이나 서구 유럽에 속하는 가치를 선택해야만 하는 중간 지점에 서 있다. 조지아 의회 기습적으로 [외국지원단체법] 법안을 통과시킨 2023년 3월, 조지아의 곳곳에서는 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이 법안을 발의한 조지아의 꿈을 원하는 인민의 힘(People’s Power)은 무조건적인 법안 폐기를 약속했다. 러시아 또한 법안과의 관련성을 부인하며 잠잠해지는 듯했으나, 현재 법안은 계속적인 지체를 통해 현재까지 폐지되지 않았고 이제 실효를 앞두고 있다. 조지아의 국민은 유럽연합(EU)에 가입하여, 유럽시민으로서의 권익을 보장받기를 원하지만, 정치적 입장에서는 냉전의 시기처럼 과거의 정체적인 형태로 남아있기를 원한다.



우리나라는 동유럽 곳곳에서 당면한 동서냉전의 잔불씨가 터진듯한 분열상을 남한과 북한이라는 현실적인 육체의 영역에서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포탄이 터지기 전 고요처럼 전쟁의 인식은 평화로운 사람들에게 어떤 경고 장치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 1950년 6.25 전쟁은 남한과 북한 간의 갈등이 전면적인 전쟁으로 확대되어 추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과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군이 충돌하면서 초기엔 북한의 우세로 진행되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미국과 유엔의 지원을 받은 남한의 반격 뒤에 중국군이 대거 개입되어 전선이 고착되었다. 이후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휴전협상이 시작된 이후로 현재의 판문점으로 장소를 이동하여 협상이 진행되다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한국전쟁 정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정전 협정문은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Mark Wayne Clark),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남일,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怀)가 서명했다. 즉, 북한 대표와 중국 대표, 유엔 대표가 한국전쟁의 중지를 합의한 서명문에 서명한 것이, 바로 '정전협정문'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강경한 통일의 입장을 고수하여 정전의 형태를 원치 않았기에, 미국과 유엔의 정전협정 추진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국 정전협정 체결에서 한국정부는 배제되었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공식적인 평화조약 없이 정전 상태로 남아 있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남북한 관계와 국제 정치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전쟁 당사자인 한국의 영향력이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휴전선의 잠정적인 합의는 70년이 넘은 시간 동안 정지되어 있었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선언은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체결된 정전협정으로 한반도에서의 전투를 멈추고 현재의 군사적 경계를 설정했지만, 전쟁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북한은 여러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평화 협상 시도를 하였으나, 완전한 평화 협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북한의 핵 개발 문제와 이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제재와 협상이 지속되고 있다. 동안 남북은 허공에 매달린 휴전의 상태, 아직까지 전쟁이 지속된 상태로, 무엇 하나 종결되지 않은 채 각자도생을 진행했다. 냉철하게 바라보면 우리는 전쟁에서 분열 이외에는 아무런 결론이 없었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종전을 선언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한국 한국전쟁 게임판 위의 소외자였다.


종전 이후 북한은 스스로를 전쟁의 당사자인 한반도의  형님의 입장에서 전쟁의 적대적 상대를 종전협정의 대상자였던 유엔군, 정확하게는 미국으로 설정했다. 아직까지 북한이 정한 목표물의 설정방향은 변치 않아 보인다. 한국전쟁의 휴전 이후 모든 협상의 대상에서 북한은 항상 레이저 포인터 미국으로 잡았다. 트럼프 정부와의 2018 싱가포르 협상에서도 보이듯이 북한의 협상당사자는 미국이었지, 한국은 아니었다. 인민을 먹여 살리지 못하는 세습적인 북한의 정치적 주체사상은 사회주의체제의 경제적인 실패를 동반하면서 남한을 주적(主敵)인 미국으로부터 해방시키거나 남한과 동반하거나 통일한다는 이상에서는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 한국까지 주적으로 변화시켰다. 주적개념을 설립하는 정치외교적인 전략에서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김여정이 사용하는 언어폭력에 가까운 과격한 선택언어는 과거 전체주의 사상가들의 호소적인 전략을 답습한다. 백두혈통이 보여주는 경제부흥과 생존을 목표로 한 필사적인 전투 의지는 체제세습을 목표로 하는 독재정권에서만 선택할 수 있는 모습이지만, 이런 괴기한 모습은 북한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정부 또한 국방백서에 북한은 '적(敵)'이라는 개념을 1995 처음 명기하였다가, 2004 '' 대신 '직접적 군사위협'으로 완화했고, 2010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이란 표현이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 완화된 화해 제스처를 취했다가, 코로나와 함께 경제봉쇄에 맞물린 2021년,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을 '삶은 소대가리' 지칭하며 적으로 표기한 이후, 윤석렬 정부를 '천치바보' 규정한다. 우리 국방부는 2022년 국방백서에 '북한은 우리의 '이라고 완전한 문장을 통해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하면서 남과 북은 국방의 공식문서상으로 완전한 주적개념이 형성되었다. 이는 기호 문서상의 대치개념이다. 남북의 고착적인 갈등은 서류상으로 쉽게 풀어내기 어려워 보인다.  

 


'재벌(財閥)'이란 비정상적인 세습 경영방식을 선망의 단어로 인식하는 오늘날, '초자본주의 대기업의 족벌정치'처럼 일당적 주체사상의 세습통치를 선택한 북한정권은 실패한 사회주의 제도의 허점을 인정한 중국처럼, 경제에서는 자본주의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체제에서는 당에게 권력이양을 승인하는 실리적인 형태를 취하지 않았다. 1980년대 말 전 세계적으로 공산주의 체제가 와해되면서 외교적으로 이전의 대립각을 세우던 공산정권들과 수교를 시도한 한국과 달리, 북한은 고난의 시기를 맞아 체제붕괴의 불안감으로 인해 봉쇄정책으로 전환했다. 동시에 동구권의 몰락을 바라보며 소련과 중국의 핵개발에 발맞춰 핵무기 기술의 독자적인 완성을 시도하던 김일성이 1994년 급작스럽게 사망한 이후, 백두왕조의 권력을 승계받은 김정일은 경제적으로 실패한 모델이 된 북한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다가 미국의 경제제재에 맞물려 전반적인 사회적 정체와 경제적인 쇠퇴를 거듭했고, 김정은과 김여정 시대에 이르러 극단의 경제봉쇄조치로 인해 비장의 무기인 핵개발에 전념한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중점을 둔 자본주의 제도가 할당된 계획경제나 절대적인 공리의 목표를 가진 사회주의보다 개인에게 적극적인 발전의 동기를 제시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북한은 획일적인 경제운용의 실패와 김일성 주체사상의 통치적 세습을 선택한 독재적인 지배구조의 한계로 인해 정치경제의 폭망과 함께 사회적 궁핍을 몰고 오며 쇄국적인 형태로 고립되게 되었다. 다만 지리적으로 북한은 미국과 양강을 이루는 중국, 러시아와 대륙을 맞닿고 있어 이들의 연대는 전쟁이 터지면 갈 곳이란 바다로 떨어질 우리의 형상보다 전투적 우방을 선택할 형세에서는 더 자유로운 이점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상대의 잘못을 집어내서 다투는 것은 이론상의 쟁점으로 시간을 보내기에 좋지만, 이것이 현실이라면 굴종 없이 폭력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생활의 사소한 모든 문제들은 거대한 시류에 휘말려서 할 말을 잊을 것이다.



정치구조의 재편이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선 두뇌 싸움을 동반한 전쟁은 필수적이다. 전쟁은 새로운 그림을 그릴 때 파괴와 생성의 원리를 이용하여 생활의 터전을 백지 만드는 방법이다. 전쟁은 인간의 신체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땅으로 끌어내린다. 전략적 사고가 가진 역설은 전쟁을 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다. 오히려 전쟁의 종식을 혈전(血戰) 없이 유도하거나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육식의 전쟁을 생산적인 삶의 형태로 전환하는 데 있다. 이 땅에 전쟁은 없어야 한다. 지금의 번영은 북한과 대립이 급격해지면 바로 종결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넘어선 최악의 잿더미를 재현할 것이며 극동아시아에서 촉발한 분쟁으로 인해 전 세계는 혼란에 사로잡힐 것이다. 아무리 한국이 군사력 세계 6위라고 해도 재래식 무기가 부족한 북한과 대립하면 우리가 선진 무기 대응하는 사이, 북한은 조잡하더라도 완성되지 않은 핵을 쓸 수밖에 없다. 북핵에 대한 위협을 빌미로 2019년, 일본은 자위대 창설 60주년을 맞아 2차 세계대전 전범의 위치에서 동결되었던 집단적 자위권 (Collective Self-Defense)을 즉각 사용하겠다고 선언했고 미국은 이를 적극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에서 윤석렬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서구권의 자유수호 의지에 동조하며 수십 년간 창고에 묵혔던 무기를 처분했다고 무기재고 판매성과를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무기가 러시아 용병으로 파견될지도 모르는 북한군의 머리 위에 떨어진다면 이것은 간접적인 동족살해이며 전략정책상 명백한 오판이다. 자유주의든 공산주의든 러시아와 중국, 미국, 일본처럼 자본화된 제국주의를 경험하고 그 틀의 원리에서 성장한 국가들은 냉전적인 분열 상황에 처해있는 국가를 동급의 우호적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자국이 이용할 방패로 인식한다. 스스로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타자를 이용하여 자국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입장은 인간이 가진 이기적인 본성과 비슷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기치를 걸고 인간의 정의와 자유의지를 수호해야 하는 국가의 기본가치를 훼손한다면 헌법에서 명시한 국가정립의 기본조차 실패한 상황으로 몰고가는 자유와 정의를 상실한 행정부인 것이며, 패배한 정치운용철학은 국제적인 비난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우리는 명확하게 국제적 정치판도를 분석하고 분명한 정세파악을 통해 1%의 착오의 가능성까지 감안하여 정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북한 내부의 변화를 이끌려고 하면 장기적인 접근방식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 이미 한반도의 혈연적 관계는 첨단시대, 개인적인 사회로 전환되면서 근본적으로 해체되었고, 생존에 몰두하는 순간 남북은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고 말았다. 평화로운 접근은 어디에서 가능할까? 왜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용하고 삶을 구성하는 의지조차 타자의 구애를 요구하고 그들의 간섭에 의존해야 하는가? 첨탑으로 올라간 지배자들이 권력욕과 소유의 욕망을 놓지 않은 이유로 인해 다수의 현재가 고통받아야 한다면, 그들을 다시 겸손하게 끌고 내려오는 방법은 무엇인가? 극단적인 다툼은 답이 없다. 사람마다 가치관과 생각이 달랐다는 것을 인정하고 합의점을 가지려면 어떻게 공존의 모형을 가져야 할까? 상대적인 장기적 침체에 이르러 지속가능한 국가발전은 어떤 의미를 가지며, 파괴가 아닌 발전이라는 형태 획득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대통령의 현충일 연설을 흘려들어서 들은 게 맞는지 모르겠으나 발걸음을 세운 문장을 듣고서 문득 고민이 됐다.


"평화와 자유는 굴종이 아닌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


그런가? 적의와 힘의 논리로, 혹은 햇볕으로 다가간 수십 년 동안 말 뿐인 '평화'라는 탁구공을 주고받으며 우왕좌왕하는 사이 모든 상황이 부러져버렸다. 힘은 키우되 타법이 완성이 되기 전에 힘의 전략적인 상황을 노출하거나 타자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겐 지식만이 아니라 지혜가 필요하다. 16년 전 단둥에서 만났던 중국의 사업가는 북한의 광물을 채취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근래 석유시추의 꿈에 부푼 한국의 정치적 현실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금덩이를 기대하면서 수십 년간 땅만 파는 어리석은 광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미 몇십 년 전부터 북한에서 개발허가권을 얻어서 북한의 자원을 중국의 민간기업들이 이용하고 있다.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러시아의 푸틴도 북한의 자원과 인력을 이용하기 위해 다가간 지금 미국, 유럽, 한국을 위시한 우 방향과 중국, 러시아, 북한을 위시한 좌 방향이 제3차 대전을 위한 새로운 연대 형성고 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이름뿐인 형제는 오물풍선 같은 구린 똥주머니나 날려대며 미국의 대응을 바라고 있다. 같은 민족의 사람은 국가의 이해관계가 첨예하여 내 땅없고 다른 민족의 사람은 이해관계가 필요해서 내 땅있다. 모순적인 세계를 바꾸기 위해선 상대에 대한 전략적인 방식부터 점검하고 우리의 내부부터 정비해야 한다. 이 지구가 억 년 이상 남아있긴 어렵겠지만, 우리의 터전인 한반도는 통일이 되어서 나의 아이들이 평화로운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날 불안 없이 살아가야 한다.



테서렉트라는 전략적인 세계의 도형을 분석하다가 현재까지 흘러와버렸다. 우리는 변형된 계급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를 점검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전개되는 사회는 일반 사람들에게 무섭게 보일 수 있다. 사기꾼들이 언급하는 '그림자 정부(Shadow Government)'는 무섭지 않다. 현상에서 그림자와 보이지 않는 순간이 실재하기 위해선, 실질적인 존재가 분명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존재가 없다면 그림자 정부도 허상이다. 따라서 두려움 이전에 세계 이면의 실체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다. 테서렉트의 도형에서 살펴보았듯이 생과 죽음은 하나의 모습이다. 그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각자 다르다. 가볍게 살아가는 와중에도 한 번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진중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생에는 정답은 없고 오직 끊임없는 변화만이 있다. 삶을 의미로운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 또한 하나의 인생을 푸는 가치 있는 방법서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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