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XICATED BUT CONSCIOUS

만취상태의 또렷한 불취, 끝없는 주정부림

by CHRIS
[快扶我起来,我还能喝!] 2020. 01. 04. CHINA. PHOTOGRAPH by CHRIS


快扶我起来,我还能喝!

얼른 나 좀 일으켜 봐. 아직 더 마실 수 있다고!


喝醉了. 算了吧!

취했군. 됐어!




만취


아스팔트가 말을 걸었지

지각 스프링장치라도 달렸는지

냉정하게 갈 곳 없는 자, 튕겨내던 흑요석 장판.

오늘은 뭔 일인가 자꾸만 다가와서 입을 맞추네.

갈길 바쁜데 한바탕 놀자는 구만.

허허, 이 양반 살결 한번 껄끄러운 지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땅끝에다 퍽, 놓았다가 하늘 위로 솟, 띄우는데

얼마나 힘이 센 지 정신을 차릴 수 없어.

대자로 발랑 누웠다가 벌떡 일어났다가

번듯한 차림새 넝마 되어서 쿵쿵쿠다당

새들 먹은 복근과 허벅다리와 모가지에도

사정없이 애정을 퍼부으니

여보시오, 나를 말아 잡수쇼!


그러나 그 널찍한 기분만큼은

이 몸에서 사라질 때까지 정말 좋은 것이었다.

엿 같지 않은 기분이라면.


2005. 7. 15. FRIDAY





오늘과 어제가 길게 흐를 때
Photograph by an Unknown Photographer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바람이 분다] 이소라



이소라의 노래는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데,

길가에서 그녀의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맴도는 노래 한 구절로 인해

술 한잔 걸치게 된다.


나는, 세상을 오늘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궁금함에 들었던 노래가사를 찾아봤는데

분명 ‘오늘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그리 알았지만

‘세상은 어제와 같다’고 적혀있었다.

벗겨진 기억과 짧은 기울임.


오늘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난 오늘이 어제와 같을 때 괴롭다.

같다는 것.

매일이 같진 않겠지만

흐름이 현재보다 더 클 때 같아 보이는 게 아닐까.

일상의 진행이 반갑지 않다니

퇴보보다 더 어리석은 굴레겠거니 싶어서,

편안한 이야기를 짓고 들으며

사람들은 내가 이리도 어렵게 느끼는 삶을

손쉽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울적해진다.


흩어져가는 시간의 아쉬움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그만 실수 하나로

고쳐지지 않는 긴 세월을

흘려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길어진 머리칼을 만지며

소원도 없이 생각만 길어진다.


2005. 3. 10. THURSDAY





水曜日의 刑
[Wednesday's Punishment] 2005. 3. 5. NOTEPAD. MEMENTO SKETCH by CHRIS


인정 없는 화로엔 불 꺼지고

거리엔 바람만 차게 빛난다


사색이 결여된 탁자 위에서

부었던 젊음은 가없구나


황혼은 말없이 오고 가는데

위해한 승리가 뭔 기쁨인가


나눌 수 없는 刑 무엇인 거며

나눌 수 있는 罪 무엇이겠니


찻잔을 넘기다 마음을 밟고

즐겁게 웃다가 술잔 비운다


길었던 하늘에는 새벽이 온다

내 갈 길 아닌 곳 아침이 온다

주섬하게 문 짚고 창밖을 보니

싸늘한 계단 위로 그늘이 졌다


2005. 3. 5. WEDNESDAY





DRINKING : Intoxicated in a humdrum life 단조로운 삶에 취해
[Self-Portrait] Artist: 潘玉良 Pan Yuliang (Chinese, 1895-1977)


나에게 '나라'는 국(國)으로 표현되는 테두리가 아니다. 분위기마다 장소마다 사람들마다 역사마다 풍기는 기억이 다르다. 지구본을 들고 가야 할 곳을 점찍었던 시기도 다르다. 그렇게 다양한 굴림으로 다가온다. 여행이 오랜 꿈이 되어버려선지 둥그런 공을 뱅글뱅글 돌리며 가까운 사람들 속에 먼 길을 기록해 본다. 판위량(潘玉良)의 자화상을 보다 보니 상해에서 독한 술 세 병씩 마시고 말없이 얼굴이 벌갰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중국은 나에게 많은 의미였나 보다. 뜨거운 호기(豪氣)가 불어대는 중원의 대륙. 고구려 역사분쟁이 관점이 된 이 마당에 애국심이 없어서 이곳에 문을 두드리는 것은 아니다. 알고 있던 사람들, 어린 시절 그렸던 꿈들, 책장 속의 이야기들, 그림 속의 물건들, 모두가 저 여자가 마시고 있는 술처럼 발그레하게 취기를 전해준다.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서 공부하며 그림을 그렸던 여자는 술에 취해서도 웃고 있다. 술만 마시면 평소보다 더 우울하게 말이 없던 나와 대조적이란 생각이 든다. 한 때 프랑스에 가고 싶었다. 아무 데나 굴러다니며 살고 싶었다. 노숙자가 된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갈 수 없었다. 묶임. 그냥 생활에 나를 묻을 수밖에 없었던 인정. 한동안 못내 아쉬웠다. 주변인들이 그랬다.


"넌 거지는 될 수 없어. 넌 그런 놈 아니잖아."


그 말에 그냥 넘어가 버렸다. 그래, 이렇게 자존심을 내세우는 거지는 없겠지. 사람에겐 어떤 계기가 인생을 들고 엎을까? 다리 앞에서 흔들대며 지나간 물결만 담는 건 재미없는 걸.


2004. 10. 15. FRIDAY





The Day after Day Dreaming
[The Day After 1894-95, Edvard Munch 1863-1944]


마음을 잡을 수 없다.

생각 없는 나라.
절규 없는 세상.
시어 빠진 세상! 속을 잘라내고만 싶은 걸.

둘러봐도 안주할 데가 보이지 않는다.
표류하는 미치광이.
한 잔 술에 널브러진 소극적인 피에로.
저 바닥도 받아주지 않는 하루 밤의 술주정뱅이.


2004. 9. 15. WEDNESDAY





인간의 조건 : 마우스 파전
[Human Condition : Mouse Pajeon] 2004. 9. 13. NOTEPAD. MEMENTO SKETCH by CHRIS


갑자기 파전이 먹고 싶다. 지글지글 구워서 한 입.

비가 꿈꿈 하게 와서 그런가.

안주가 없어서 그런가.

마우스로 부친 파전, 정말 난잡하다.

손이 후들후들 그렇네.

엄마가 날 가졌을 때 실컷 섭취했는데

왜 지금도 먹어야 하나.

내가 소인가? 꼴베고 살지도 않으면서.

기억 되새김질이야 하지.

하기사 마늘도 먹고 쑥도 먹고 그래서 된 게 나잖아.

근데 울 엄마, 유독 파전만 먹은 건

내가 속 끝까지 인간이 덜 됐기 때문인가 보다.

그 정신없던 세상.

동화책 이야기 하나도 틀린 것 없다.

파가 다 떨어져 사람들이 소로 변한 세상.

미친놈의 세상이지. 이 눈에도 정신없는 세상.

나도 소로 변할라네.

파전이나 먹어야겠다. 마우스 파전.


2004. 9. 13. MONDAY






[SUMMER COCKTAILS] 2024. 7. PHOTOGRAPH by CHRIS


시와 그림, 책에서 등장하던 작가들의 넥타 (Nectar), 술은 예술에 대한 감흥과 문학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는 자라면 필수적으로 챙겨야 하는 도덕 같은 시절도 있었다. 흡연에 대한 작가들의 찬사는 적어도 술에 대한 찬미는 삶에 대해 이해를 높이는 각성제와 같기도 했다. 이태백과 두보, 소동파까지 적극적으로 삶을 표현하는 옛 시인들은 모두 술에서 어둠을 비추는 달과 아름다운 여인의 비밀스러운 눈동자와 친구들과 달빛 아래 뜨거운 우정을 발견하였다.


술은 궁금한 액체였다. 중학교 졸업 무렵 혼술의 방식으로 술을 처음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험 친 날, 부모님이 외출한 틈을 타서 장식장에 놓여있던 시바스 리갈을 땄다. 음미라는 것은 전혀 없이 음료수를 들이켜듯 한 병 홀랑 마시고는 같은 색상의 보리차를 채워두었다. 첫 술 치고는 아주 멀쩡했다. 물배만 가득 차서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보니 화장실에 술 냄새가 진동했다. 보리차 한 주전자를 마시곤 속을 씻어내기로 했다.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투하되는 술은 시원섭섭했다. 취하는 기분을 몰라서 취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집에서는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어서 병 속의 술이 보리차라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술맛을 알고 나서 틈틈이 술과 관련된 기인들의 일화나 문인들의 시와 소설을 살펴보았다. 음주에 빠진 예술가들에 대해서도 관찰했다. 관찰일기에 의하면 미치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것인지 술을 마셔서 미친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고흐 (Vincent van Gogh)와 압생트 (Absinthe)의 상관관계에 대해 살펴보다가 술은 혼미한 자아를 산출하는 영감의 매개체인가 싶기도 했다. 술을 마셔도 정신이 말짱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고민스럽기도 했다. 뇌가 부서지도록 마시는 것은 아닌 듯했다. 아무리 걸작을 만들어내도 전두엽 손상으로 인해 인성이 폭력적으로 변한다던지, 정신병원에 가기 좋게 망각으로 치닫거나, 지각활동이 안 돼서 히마리 없이 남에게 의존하며 살기는 싫었다. 술은 왜 좋은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지금은 고인이 된 이외수의 에세이 《술》을 챙겨보기도 했다. 어느 날 뜬금없이 이외수를 TV 예능에서 보고 하나둘씩 기어 나오는 패잔병들의 정신적 만취상태를 감지했다. 알코올 중독자의 현실 외면에 대한 망각 대화법,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 Vegas>를 보면서 절망에 빠진 시나리오 작가와 아름다운 밤거리의 여자라는 조합이 지루했다. 술이 강이 되어 흐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감, 현실의 괴로움이 주는 소외 속에서 상대가 죽음으로의 항해를 막으면 헤어지겠다는 조건을 말해버린 나약하고 이기적인 사랑에 대해서는 이해 불가였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에 대해 아무리 멋있게 감정적으로 포장한다고 할지라도 오직 이별이 예감된 남녀의 사이에 흐르는 음악만이 의미로움을 알려주었다. 술에 젖은 감성의 소진은 슬픔의 결정을 함축한다 해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고통의 흔적에서 아련함만을 발견한다. 점차 술이 필요치 않는 시간에 서 있다.


술을 사야 하는 입장이면 술에 대한 관용도는 좁아진다. 타인을 챙겨줘야 하고 접대한다는 의미를 갖는 음주의 현장은 타인의 기분까지 배려해야 한다는 면에서 평소보다 조용해지는 묵상(默想)의 대접거리가 되고 만다. 술에 관대한 한국적 분위기에 맞춰본다. 대면대면한 사람들은 술 한잔 걸쳐야 친밀감을 갖는다. 누군가가 술자리를 청할 때도 멀쩡한 상태에서 술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얼굴만 다르고 행동은 똑같은 인물들을 되감기 버튼 위에 올려놓고 공동결혼식 테이프를 보는 듯한 기분을 끌고 들어온다.


"리바이벌은 지겹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던 날과 같지 않아서 술에 취한 사람들의 길어지는 한탄과 도돌이표 같은 다짐에 인내는 살아있되 관심은 상실해 있다. 술 먹은 인간들의 정신 나간 의식을 골려주던 재미 또한 별 의미가 없어져서 술 먹는 것도 목마를 때나 혼자서 한잔씩 걸치는 게 편하다. 사람과의 관계적 유대가 필요할 때나 상대의 현재 마음 상태를 살피는 관심의 표현으로 술자리에 응하게 된다. 알코올이 들어가면 의식적인 벨트로 정신을 묶어 놓던 사람들도 이성을 놓는다. 낮술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바쁜 상태로 인해 밤이나 돼야 술향기가 퍼지게 되는데, 인간의 무의식이 활개 치는 밤이라는 특성상 성적으로 은근해지는 분위기는 술에 환장하는 흑기사들이나 사회적 코드가 근엄한 파트너가 옆에 있지 않으면 사회성을 탈피한 개인적인 밀집도가 상승하고 이성 간에 본능을 깨우는 현장으로 변하고 만다.


사회적 지위가 상승할수록 육감적으로 기어올라오는 인간들과 멀어지긴 한다. 알코올-홀릭 사랑이나 관심은 이성(理性)이 살아있으면 존재하기 힘들다고 여겨진다. 날카롭게 살아있는 이성(理性)적인 코드에 저항하고 싶은 반발 심리로 인해 술자리를 갖고자 하는 상대방의 심리를 알면서도 엉망인 상태를 경험하고 싶었던 날도 있었다. 취하지 않았으면서도 상대의 취기에 기대어 풀리지 않는 삶에 대한 울분을 묻고 싶었던 거부감은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옴을 알고선 그런 행동도 끊어버렸다.


사회적 규약을 한순간에 풀어놓는 술은 한국적인 사교만이 아니라 사업할 때 필수요소로 거론되곤 한다. 술은 영업과 사교의 꽃이자 기본자세라고 외쳤던 사람들도 주변에 즐비하긴 했다. 저녁에 감겨오는 술 한 방울에 오늘을 산다고 표현하는 애주가들의 탐음도 있었다. 타인과 술을 마시면 속도를 조절하곤 한다. 호기로운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많은 것이 이뤄진다고 하지만, 술자리에서 한 이야기는 취중진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가 철칙이다. 구토한 현실에 휘발되는 향기가 코 앞에 다가오는 것을 예감하면 취한 뒤의 인간군상의 연상이 각성제로 작용한다. 어차피 취하고자 하면 취할 것이고, 취하지 않으려면 취하지 않을 것이었다.


술은 찾아 먹지 않아도 대중적인 모임이나 정기적인 연회에서 반주로 먹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술을 잘 먹는 것이 애주 한다는 소문으로 변질돼서 조기종영으로 녹다운되는 술자리에 항상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일에 집중할 때는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도 나름 시간적인 배려인터라, 장시간이 필요한 술자리는 필요하지 않으면 제외한다. 타인에게 아예 술을 권하지 않으니 주변 사람들이 언제 술을 마실 수 있는지 묻곤 한다. 한 번씩 보는 친구들하고는 방 하나 잡아놓고 술을 먹든 잠을 자든 넋두리를 하든 책을 읽든 노래를 하든 각자 연주라서 신경 쓸 이유는 없는데, 사회적인 예의로 술자리를 정하면 고된 일이나 다름없다. 취함 없이 취한 상대방의 모든 것을 취하기 위한 업무의 연장 같아서 거북스럽다. 취하지 않으면 술자리는 재미가 없긴 하다. 바쁘다는 거절로 술자리를 형성하는 예의를 차리지 않는 걸 보니 현재 술에 미쳐있는 상태는 아닌 모양이다.


답답하고 힘든 인간의 속내를 관찰하는 물질인 알코올에서 멀어지게 된 것은 술을 먹으면 정신이 개운하지 않고 두통이 올라오는 육체적 민감함과 신체적 무력감을 동반한 체력의 저하 때문이다. 술이 몸에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정신 차리고 세상을 보고 싶다. 취할 것은 세상에 가득하다. 일을 하거나 작업하면서 한잔씩 걸치던 습관까지 방치하고 있다. 여름인가 보다. 덥지는 않은데 목이 마르다.




[Just one more Beer] 2019. 6. 9. PHOTOGRAPH by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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