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아이다, 어여쁜 그대. 향기로운 꽃은 날 황홀하게 해. 오, 나의 태양, 나의 벗. 내 생명의 광명이여. 아름다운 그대 고향의 하늘과 감미로운 공기를 다시 주고파. 그대 머리에 황관 씌우고 옥좌에 앉히고 싶네. 나의 사랑하는 아이다.
<라다메스의 아이다에 대한 연모의 시 중에서>
이집트의 영원한 태양,
아이다의 끝없는 전설을 이야기한다.
이국 땅에서 건진 영롱한 흑요석,
강한 전사의 눈을 사로잡네.
거짓으로 생을 채우진 않으리라 전우여,
일말의 타협은 없네.
돌무덤에 눌린 영원한 석상이 된다 해도
그녀와 따스함에 젖을 시간은
짧은 생의 큰 기쁨이며 소중한 의미이므로.
신의 서랍에서 내어 온 굵은 신음은
자비와 동정을 바라는 무릎을
거짓으로 꿇게 하여도
그림자가 된 死者의 신음을
암흑 속으로 잠재우지 못하며
묻어둔 형제와 버려진 강산의 울분을
황금빛 바다에 감추지 못한다.
그대 손에 다시 들어온 천하는
아침 이슬을 머금은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날 것이며
고향이란 그대에게 사랑을 주는 곳임을 알게 되는
철저하고 괴멸한 죽음이 될 것이다.
나와 그대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영원으로 향하는 피라미드가 굳게 닫힐 때
떠오르는 태양 아래 최후를 노래하는 건
사랑을 얻은 이일 테니,
불후한 세상을 모두 취했다고
기쁨에 마냥 젖어있을 수는 없다.
차례로 눈감은 이들은 두 손을 마주 잡고
암흑에서 잠을 청하리니
사랑으로 가슴 높이 걸었던 영광은
황금의 빛보다 더 반짝이리라.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통적인 사랑의 삼각구조.
한쪽 방에 불이 켜지면 다른 방엔 불이 꺼지듯, 사랑하는 이 뒤엔 언제나 슬퍼하는 이가 있다. 나의 꿈 사라지고, 내 사랑 언제나 다시 찾을까. 나의 꿈 이뤄지니, 꿈이여 영원히 깨지 말아라. 내 소원 사라지네, 하여 다시 찾으리 내 사랑을.
테베의 비극적인 연인, 라다메스와 아이다의 사랑에는 암네리스의 서늘한 질투가 서려 있다. 그들의 뜨거운 감정 속에는 엇갈린 조국의 싸움과 피 흘리는 전사들이 가득하다. 검은 대지에는 부서진 고향의 그늘이 있으며 부지깽이로 불을 쑤셔대는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과 복수, 패권의 욕망에서 타는 절규가 놓여있다. 감정이든, 모양이든, 자연이든, 이 모든 것은 모순적인 이치와 닮아 있다. 전쟁과 죽음, 승리와 절망, 슬픔과 환희가 얼룩진 세상. 그리고 그 안에 불길하게 피워지는 잿빛 사랑의 연기들. 사랑은 순백색이라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혹시 핏물이 진하게 밴 황금의 기묘한 배반은 아닐까. 온갖 세상의 만물과 빛, 수를 결합한 정점의 산물이라 말하여지는 피라미드는 사랑의 비유형을 단단한 수식의 유형으로 만들어 논 결과가 아닐지 고개를 기울여 본다. 귀한 황금을 품고서 머나먼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피라미드의 영리한 계략은 언제쯤 나에게 끝없이 펼쳐진 사랑의 다리를 접게 하고 하늘로 향한 깃발을 세우라고 명할 것인가.
2004. 12. 26. SUNDAY
평소에 간단하고 담백한 음식을 먹다가도 친한 친구들을 만나거나 정규 모임에 초대받았을 땐 구성원이 원하는 자극적인 요리와 화려한 풀코스 성찬을 먹게 된다. 오페라도 그런 종류이다. 평소에는 관심 없이 지나치다가 기회가 되어 접하게 되면 군집으로 형성된 화려한 구성과 주변적 소구를 통해 일상의 감상을 한층 풍부하게 만드는 시청각 재료이다. 2024년 12월 22일 상영된 오페라 <투란도트 : 어게인 2024 투란도트>에 관한 비판적인 기사를 보았다. 제작비 200억 원에 육박하는 세 시간 활극에 가장 고가의 티켓비가 100만 원이라면 전달하는 내용이 백만 원어치가 아깝지 않았다고 느끼도록 감상자의 머리를 치고 가야 할 것이다. 감독과 지휘자, 배우들의 조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되어야 돈값만큼 잘 보았다고 만족을 줄 수 있을까. 제작진과 스텝들의 사전 조율 부재, 표현의 부족, 성의 없는 연출, 광고와 예산의 불일치, 감상을 충분히 받쳐줄 수 없는 한정적인 관람 시스템을 기반으로 과거 명성과 영광에 기대어 무대를 펼친다면 뮤지컬이나 오페라가 활성화되지 않은 소규모 문화인구의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리기란 정말 하늘의 별따기일 것이다. 모든 프로젝트는 자금의 투입 대비 판매가 저조하여 투자금의 회수가 불가능하면 이른 종영으로 마무리된다.
시스템을 갖춘 대규모 블록버스터식 생산으로 시각적인 선동을 유도하고 고객들이 지갑을 열어대던 호시절이 지나갔다. 큰 규모의 영화관이 문을 닫고 있다. 영화 티켓값 삼천 원에서 팔천 원, 이제 만오천 원에서 이만 원 시대이다. OTT 정규구독 한 달 치가 영화 한 편 값이니 시스템을 갖춘 곳에서 데뷔하지 않으면 관객도 사라져 버린 곳에서 혼자 연극을 펼쳐야 한다. 대중적이라고 평가되던 영화관에 가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든 것처럼 오페라도 뮤지컬도 연극도 콘서트도 쏠림 현상으로 인해 일부만 간신히 명맥이 유지되고 투자 제작 규모가 축소될 것이다. 인간이 먹고 입고 자는 기본적 행위를 수반하게 하는 유통의 형태는 전쟁을 통한 시뮬레이션 기술의 발달과 인간의 편리를 대체하는 AI의 등장으로 인해 블랙홀 모양으로 응집되고 축소되고 있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간들이 고통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해 분열을 조장한다면 미래의 인간은 몸은 고정된 채 의식만 돌아다니며 살아가는 식물인간의 존재로 남을지 모르겠다.
그리스 로마 시기와 고대 중국왕조나 동아시아 제국에서 실행되던 연극적인 행위의 기원은 과거를 소급하여 현재의 정당함을 구체화하고 알 수 없는 미래를 점치던 제사 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언어가 성립되면서 하나의 단어로 구체화된 감정이 공론화되고 그 다양함을 공유하고 맛보기 위해 인간은 표현의 수단을 다채롭게 전개하였다. 권력과 계급을 통해 사고와 행위를 분리시키던 시대에서 실행자와 행위자, 그리고 감상자 모두의 위치가 동일해지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인간 본연의 사고와 행위적 실행은 자기 존재와 대체 불가능하다.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순례는 인간이 삶의 종영을 선언하기까지 필연적으로 부딪히고 경험하는 과정이다. 갈등으로 물든 세계 도처에서 거대한 파괴의 불길이 일어날 때 껍질 속의 자신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은 순간, 시스템적 사회의 종말은 표류하는 인간 앞에 그 거대하고 노쇠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