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과 거짓말>
비밀과 거짓말에 대한 이십 년 전의 글이다.
2004년도 최고 인기어 중에 하나가 비밀이었다고 하던데 2005년을 2개월 넘기니 시간은 거짓말 같다. 세상은 비밀이 될 수 없는 우묵한 그릇인데 신비로움은 존재한데도 영원한 비밀이 세상에 있을까? 미궁으로 가득 찬 치즈구멍에 오프너 한번 속히 들지 못하고 남몰래 비밀스러운 인간이 되어버린 나. 비밀을 캐는 건 이미 뜬 자리를 다시 뜨는 것이 아니라 아직 뜨지 않은 자리를 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지적한다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알고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이들에게 비밀은 어떤 작용을 하는가? 하잘 것 없는 비밀을 숨기기 위해서 온갖 거짓말을 꾸며대는 가장놀이를 시작한다. 어느 날 숨겨왔던 비밀이 드러나면 거짓말이라는 게 불쑥 등장한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 할 수 있는데, 긴장과 노출 사이의 조율에서 실패한다면 비밀은 영원히 푸대접을 받는다. 흑백의 뻔한 대결과 거울의 환영. 같은 몸체에서 나왔지만 서로를 비추는 명암으로 인해 다르게 보이는 것이 바로 비밀과 거짓말이다.
나는 이민자의 서러움이나 미혼모의 아픔이나 버려진 아이의 슬픔을 모른다. 경험이 부재한 그 이유로 그들은 내 앞에서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조금 더 들뜬 기분으로 미래를 말하기에 좀 많이 아픈 나는 당연히 나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겪는 단어의 통증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겪고 있는 성질과 다르다. 바로 망각과 거짓이다. 폭력과 법, 질병과 도덕, 무지와 도박, 이유 없는 정지,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진실, 비밀 혹은 거짓말. 하루를 그럭저럭 잘 지탱해 왔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있다. 모든 걸 덮어버릴 극한 상황에 놓였다면 그리고 그것이 오랫동안 묻어둔 비밀이었고 한순간 현실의 버팀목을 부숴버릴 파워를 지니고 있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비밀은 현재와 손을 잡고 있다. 동시에 과거와도 깊게 연결되어 있다. 미래의 나를 결정짓기도 한다. 시간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비밀을 존속시키느냐 마느냐는 거짓말의 수위에 달렸다. 많은 이가 진실과 거짓말을 대응관계로 보지만 진실과의 대응은 사실이고 거짓과의 대응은 비밀이다.
<비밀과 거짓말 Secrets & Lies>. 적은 소품과 작은 무대와 소수의 인원으로 이끌어가는 에피소드. 삶이란 에피소드 연속이다. 고통에 허덕여 온 나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나를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 홀로 사는 영화 속 누군가처럼, 굶주린 밥그릇을 내미는 사진의 아이처럼, 우아한 그림의 여인처럼, ‘처럼’을 멋들어지게 이어 보면서 가짜의 얼굴을 들고 나에게 말을 건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가면 반 정도는 거짓말이 되어있다. 오직 이것밖에 진실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거짓의 중첩은 금세 바스러져서 형태가 무너질까 봐 바짝 긴장하고 있다. 나는 별 것 아닌 나를 포장하고 정체된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거짓말의 유희에 어느새 즐거워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녀갔다. 다들 할 말이 없으므로 침묵을 지키며 과일만 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침묵을 깼다.
“네가 남 뒤치다꺼리하느라 이뤄놓은 거 하나 없다고 하는데, 그렇긴 하다만... 육십에 죽던, 칠십에 죽던, 팔십에 죽던, 다들 죽을 때 뒤돌아보니, 해놓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그러더라. 살기만 살았다고 한다. 살았던 게 맹물 같다고도 하데. 참.. 나도 젊어서 고생을 했지만 지금 그게 고맙지는 않다손 치더라도 그냥 하루하루로 살아지더라. 이제는 이렇게 애도 낳고 늦게나마 결혼도 하고. 그래도 말이다. 젊을 적에 힘든 삶의 경험, 돈주고도 사지 못하는 그런 별난 경험을 하면, 세상 보는 눈이 한결 시원하지 않겠냐. 이렇게 사는 게 지금은 당장 나쁠 수 있어도 너한텐 분명 좋은 일일거구만. 뭘 알아야 바깥을 보제.”
정석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왜 이렇게 웃음이 나올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가의 미소는 사라졌고 마음은 굳어있었다. 하여간 쥐꼬리 같은 비밀을 늘어놓을 이유도 없지만 진실은 뭔지 모르겠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비밀과 거짓말은 있어도 진실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에는 없다. 멈춰진 곳에 진실이 있다. 물도 정지하면 썩는데 멈춰진 곳에 진실이 있다니 이상할 것이다. 언제나 순결은 타락과 함께 존재하듯이 진실은 정지한 상태로 솎아가면서 보아야 한다. 부스러기를 털고 사실과 대면할 때 진실은 드러난다. 그래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적거나 말할 때 오차를 줄이려면 거짓말과 비밀을 적절히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 자칫 진실과 타락을 접목하고서 거짓말과 비밀까지 넣게 되면 복잡해진다. 엉킨 나의 인생처럼.
거짓 같은 글이 많다.
난- 바. 보. 다.
2005. 2. 18. FRIDAY
연초면 지난해를 결산하는 연말정산과 법인결산이 시작된다. 일상의 삶에서도 공동체의 공간에서도 지난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행위의 정의를 내리려는 움직임이 부산하다. 작심삼일처럼 급하게 수그러드는 지난 계획들을 못다 이룬 채 결심이 방만한 사람들은 새로운 틀을 향해 가볍게 몸을 돌린다. 요새는 기똥차게 머리를 울리는 단어가 없기도 하고 세상의 흐름에 공감을 못해서인지 누구에 대한 평가와 현상의 진단을 고집하는 것보다 나를 관찰하고 삶을 이끌며 리드미컬한 시간을 타는 것이 더 흥미롭다.
글을 쓰다가 누에처럼 비밀의 고치를 두껍게 싸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진실을 말하기엔 초라하고 거짓을 말하기엔 경멸스럽고 비밀을 말하기엔 내키지가 않다. 타인에게 문제점을 털어놓는다고 해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공상을 한가득 한다고 해서 당장의 변화는 없다.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는 반복되는 시도와 좌절을 담보한 실천 속에서 장벽에 부딪혀야 해답을 찾는 일차적인 문을 열게 된다. 물론 부딪히는 벽이 부서질지 부딪히는 자가 부서질지는 한 번의 부딪힘으로 결과를 알 수 없다. 타인의 거절에 무심해져야 진실을 말할 배짱도 생기고 거짓에도 동요하지 않고 비밀을 털어놓기 위해 조급해지지 않을 것이다.
우연을 가장한 심약한 언어와 섬세한 과장을 듣다 보면 비밀과 거짓말의 관계를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작년엔 영화를 거의 안 봤다. 책은 간간히 읽기 시작했고 개인적 취향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생각을 다듬으며 단상을 읊조렸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방편으로 연속성의 의식을 기술하였다. 손으로 낙서를 하면서 미래에 대한 스케치적 구상이 가능한지 점검해 봤다.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말과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자동적으로 손 아래에서 퍼져나갈 때까지 인생의 불을 지펴보고 싶다. 그때쯤이면 비밀도 거짓말도 사라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