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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SYMPHONIE PASTORALE

앙드레 지드 <전원교향곡> | 길가의 한 송이 꽃에게

by CHRIS
[LA SYMPHONIE PASTORALE, 1946]


눈을 감고 있는 소녀.
마리아와 같은 자태.
내버려 두지 않는 인간의 손길.
문명의 문화를 인식시키지 않았다면
그녀는 사랑 속에 머물러있었을 것을.

성스러움을 믿고 있는 그대.
그대는 완전하고 깨끗한 세상에 서 있는가.
올바른 길 위에서 비틀린 길을 정리하는가.
그대처럼 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믿음이
다른 이의 슬픔을 불러오지 않던가.

그대의 손길 따라 눈을 뜬 처녀.
마음의 눈을 감아버리고
마음의 창을 닫아버리고
허욕과 영화에 스스로를 소진시키니
남은 것이란 후회밖에 없어라.

<전원교향곡, La Symphonie Pastorale 田園交響曲>은 글을 읽거나 노래를 듣거나 그림을 보거나 기사를 읽거나 궁금증이 새록새록 돋으면 관련된 영화를 찾던 시절, 오래된 흑백 영화가 좋았을 때 접했다. 여물지 않은 머리로 책에서든 영화에서든 "저 사람들 왜 저럴까. 왜 저럴까"를 되뇌었는데 지금도 그 마음은 마찬가지다. 그 작은 시절과 같이 중얼거리고 있다.


세상을 바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
악을 흡수하는 자에게서 눈이 멀다니
빗나간 허상을 탄식하지만 시간은 흘러간다.
하지만 애타하는 이 모든 것도 허구일 뿐
슬퍼할 의미가 없다.
가치 있는 건 성경 몇 구절일 뿐.


“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일지라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입지 못하였다.”


꽃은 환전한 형상이고 자연이다.

그의 의지는 누구도 꺾지 못할 강인한 것

누가 꽃의 개화를 저지하고 시들게 한단 말인가.

이미 이루어져 있는 형상으로

꽃은 순리대로 그 본성을 키워왔다.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인위적인 껍질과

미천한 욕망을 끼우려는 몸치장이

허공에 부유하는 먼지보다 가치 있을까.

저 길가의 한 송이 꽃만이 그 의미를 알겠지.


2004. 9. 1. WEDNESDAY



앙드레 지드(André Paul Guillaume Gide)의 1919년 소설 전원교향곡 (전원교향악) LA SYMPHONIE PASTORALE》을 스크린에 담은 영화 <전원교향곡 1946>은 있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인데, 기묘한 상황에 놓이면 있을 법한 이야기여서 그 가정법(假定法)이 충격적이었다. 성직자와 신성은 이름과 달리 같은 길을 걷지 않고 순수와는 멀어져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6번 [전원 교향곡 Pastoral Symphony, Op. 68, 1808]의 선율이 그리듯이, 자연에 놓여있던 아름답고 평온한 눈을 뜨지 못한 미완의 세계가 사물을 바라보는 눈으로 만개할 때, 사랑의 이름으로 눈을 찌르는 전율은 전능한 불멸을 계승한 대리자의 탐욕적인 소유와 일그러진 욕망의 얼굴을 몰고 온다. 이야기의 결말은 모든 것들의 평화를 위하여 깨어있던 태초의 기쁨이 선사하는 영원한 암흑으로 내달린다.


세상의 모든 서사들은 가정(假定)들의 가정(假定)이다. 이프 온니(If only)를 꿈꾸는 사람들.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빌어봐도 바람만큼 이뤄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욕망이 커지면 선의는 타오르는 갈증과 한 여름의 열기에 시큼하게 쉬어 버린다. 사랑이 갇힌 소유가 되고 아름다움은 하얗게 탈색된다. 한번 움켜쥐면 쉽게 놔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알 수 없는 것도 너의 마음이다.


아름다운 꽃은

말없이 저버렸네

열렬 당신의 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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