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RTISTS' LETTERS

《예술가의 편지》 마이클 버드(MICHAEL BIRD) 고전적인 작업취향

by CHRIS
[ARTISTS' LETTERS, MICHAEL BIRD] PHOTOGRAPH by CHRIS


감성이 가득한 글보다 논리적이고 정리된 글은 에로틱하다. 편지도 그렇다. 말로 전하는 것보다 진실해 보이고 생각이 다듬어져 있다. 손으로 쓴 것은 감정이 묻어 있다. 어렸을 땐 편지를 자주 썼다. 모든 일상이 일이 되면서 편지 쓰는 것을 놓은 지는 꽤 되었다. 카톡이나 각종 SNS, 문자나 이메일에 상대방이 파악할 수 있도록 요점을 쓰는 게 예의가 된 시대. 명확한 주제 의식은 생략한 채 다정한 표정으로 갓 알게 된 연인에게 전하듯이 길게 써 보내는 것도 시대에 걸맞은 발상은 아니다. 모두가 지나가는 삶에, 그리고 잊혀질 시간에 지나칠 정도로 힘을 쏟는 것은 포인트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처리를 깔끔하게 하고, 타인이 알아먹게 끔 살아가는 서술적인 태도까지 매끄럽게 정리하는 자체가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상태로 전락할 땐 정착할 곳 없는 마음은 허전해지고 쌓여만 가는 오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그냥 누가 뭐라고 하든, 원하는 대로 쓰겠다고 생각한다. 점차 보내지 못한 편지는 쌓여만 간다. 일전의 편지들을 읽어보면 그저 사소한 일기 같다. 답답함을 토로하는 하소연이거나, 냉정을 가장한 질투 섞인 감정의 집합체이었고, 어린아이처럼 투정 어린 목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예술가들의 편지'는 다를까? 예술가들에게 목소리를 대체하는 것은 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목소리 VOICE

울림이 좋은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어두움이 깔린다. 소리에 감촉이 있다. 실크처럼 부드럽다. 그의 숨결도 뜨거운 소리를 낸다.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얼굴과 귓가가 달아오른다. 나의 페티시는 너의 목소리인가.


손 HAND

손을 본다. 가끔 상대방의 손이 움직일 때 눈을 뗄 수 없다. 물체를 잡고 있는 손등의 힘줄과 근육의 긴장에 목을 감싸는 것처럼 열기가 뻗친다. 펜을 굴리거나 붓을 잡거나 칼을 집을 때 재료를 만지는 손을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올 때가 있다. 마르고 긴 손가락. 깨끗하게 정리된 손톱은 시각을 자극한다. 아는 사이여도 모르는 사이여도 뜬금없이 분출하는 자극은 환기를 필요로 한다. 당황스러울 땐 사람 속에 둘러싸인 그를 외면한다. 낯선 여인의 비스듬한 시선은 당신의 손에 여전히 머물러있다.


개인적으로 억제된 취향과 은밀한 기호들을 떠올리며 《예술가의 편지》를 읽었다. 기대보단 심심했다. 사람마다 생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할 테니까. 오귀스트 로뎅과 카미유 클로델의 사랑 편지도 그다지 와닿지 않았고,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편지도 밋밋했다. 예술가들에게 문학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예술적 격정은 따로 준비되어 있는가 싶기도 하다. 그중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폴 고갱에게 회답한 편지는 동지에게 보내는 글이라기보다 연인에게 쓴 듯한 서정적인 감성이 있었고, 폴 세잔이 에밀 베르나르에게 쓴 죽음 직전의 편지는 늙음의 거부할 수 없는 불안, 납 같은 무기력이 다가올 때 오랜 세월 노력했던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 반문하는 예술가의 고독이 묻어 있었다. 수많은 편지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편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30살 동갑내기 밀라노의 통치자 루도비코 스포르차에게 쓴 지원서였다. 스포르차에게 일자리를 얻기 위해 고향 피렌체에서 밀라노로 이주한 다 빈치는 군사적 야망이 가득한 스포르차에게 진심으로 어필하기 위해 전문 필경사에게 의뢰해서 자신의 엔지니어적인 재능을 나열함과 동시에 누구 못지않은 훌륭한 예술가임을 덧붙이는 센스를 잊지 않는다. 결국 그는 스포르차 궁정에 '엔지니어 겸 화가'로 임명되어 1500년까지 밀라노에 체류한다.


Leonardo da Vinci's Letter to Ludovico Sforza (c. 1482)


제게 가장 빛나는 각하,


전쟁 도구의 대가와 장인을 자처하는 모든 이들의 업적을 충분히 보고 생각했사온데 어느 누구에게도 누가 되지 않도록, 마땅히 각하께 저의 비밀을 풀어헤쳐 저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데 진력해야 할 것입니다.


1. 적을 추격하거나 적에게서 도망칠 때 쓸 매우 가볍고 튼튼한 이동식 다리 설계도가 있습니다.

2. 어떤 지역 포위 공격 시, 해자의 물을 빼는 방법과 다리, 멘틀리트(Mantlets: 발사체를 멈추는 데 사용되는 큰 방패), 가파른 곳을 오르는 사다리를 무한정 만드는 방법을 압니다.

3, 어떤 지역 포위 공격 시, 요새 경사면의 높이 때문이든 상황과 위치의 강점 때문이든 폭격에 의한 전진이 불가능할 때, 모든 요새를 부술 방안이 있습니다.

4. 작은 돌들을 우박처럼 퍼붓는, 매우 편리하고 휴대 용이한 여러 종류의 대포들이 있습니다.

5. 갱도와 비밀 우회 동로를 통해 목표점에 도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6. 적과 그들의 대표를 관통하는 난공불락의 안정한 유개 차량을 만들 것입니다.

7. 필요에 따라, 디자인이 수려하고 기능적인 대포, 박격포, 조명탄을 만들 것입니다.

8. 대포 사용이 불가능한 곳에는, 포탄, 투석기, 작은 천칭 등등 효능 좋은 기구들을 조립할 것입니다.

9. 해전을 치를 때 공격이나 방어에 적합한 많은 기구들의 샘플이 있습니다.

10. 평화 시에는 건축, 공공건물과 민간 건물의 건설, 물 공급 등의 부문에서 누구 못지않게 완전한 만족을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대리석, 청동, 점토로 조각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림처럼 어떤 분야든 누구 못지않게 잘할 수 있습니다. 위 사안들이 누군가의 눈에 불가능한 일이거나 실행 불가능해 보인다면 각하의 정원이나 제가 몸을 낮춰 받드는 각하의 마음에 드는 곳이면 어디서나, 직접 보여드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가 루도비코 스포츠차(Ludovico Sforza 1452-1508)에게 1482경 보낸 편지



요즘은 누구나 전문가의 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있다. 그러나 그 전문가들이 말하는 지식이나 이야기가 통합적인 시각을 상실한 한 분야에서의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외침이라면 그 세상은 결코 넓어질 수 없다. 아무리 한 분야에서 대가로 인정받는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항목에 대해 촘촘하게 적어놓는 열의가 담긴 지원서는 익숙한 터전을 떠나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적극성이자 생존에 필요한 태도이다. 우아하게 언어를 사용하고 화려하게 전시를 하러 다니고 대중의 찬사를 받는 사람으로 묘사되는 예술가는 현실적 모습과 확실히 다르다. 스무 살의 앤디 워홀이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에 일을 구할 때 이력이랄 것이 없는 자신에 대한 설명이 솔직했다고 해도, 서른 살의 다빈치보다는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 팝아트적인 현대인의 모습은 생동감 있는 구호와 달리, 스스로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내용이 빈약하며 반복적으로 유혹하는 광고에 더 적합해 보인다.




Andy Warhol's Letter to Russell Lynes (1949)

안녕하세요 라인즈씨 정말 고맙습니다.


인물 정보

제 인생은 관제엽서 한 장 분량도 안 됩니다.

1928년 피츠버그에서 태어났습니다.(다들 그렇듯 - 제철소에서)

카네기 공과대학을 졸업했고 지금은 뉴욕 시의 바퀴벌레가 들끓는 아파트에서 다른 아파트로 이사 중입니다.


앤디 워홀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87)이 러셀 라이즈(Russell Lynes 1910-91)에게 1949년 보낸 편지

워홀의 이력서에는 가볍게 웃음이 터지는 익살스러움과 풋풋함은 있다. 일자리를 구하는 지원자의 진정성이나 채용인의 요구와의 적합성, 사회적인 기여도에 있어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말하는 바는 건조하지만 확연하고 간절해 보인다. 인간에 대한 취향도 함께 가는지, 다 빈치와 같은 적극성을 가진 사람이 좋다. 요즘 친구들은 앤디 워홀과 비교해 볼 때 번뜩이는 재능에 있어선 실력은 못 미치고 작업적인 태도의 가벼움에선 상당히 닮아 보인다. 그러나 재능이 가득하더라도 예측할 수 없는 조울증처럼 높은 곳에서 소리를 지르는 희열을 보이다가 급격하게 세상사에 심드렁해지는 모습은 같이 작업하는 사람조차도 감정의 구렁텅이로 동반 투하하게 만들고 말 것이다. 명확한 사실은 다 빈치와 같은 사람은 한 세기에도 나올까 말까 라는 점이다. 길을 두드리면 정말 길이 보일까? 이 많은 예술가들의 편지 중에서 가장 와닿는 게 일을 구하는 태도라니, 요즘 온통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Leonardo da Vinci's Letter to Ludovico Sforza (c. 1482)


To the Most Illustrious Lord Ludovico Sforza, Duke of Milan,
Most Illustrious Lord,


Having now sufficiently seen and considered the proofs of all those who count themselves masters in the art of inventing instruments of war, and having found that their inventions do not differ in any great way from those in common use, I make bold, without prejudice to anyone else, to put myself in communication with your Excellency, in order to acquaint you with my secrets.


I have methods for constructing very light and strong bridges, capable of being carried easily, and with them to pursue, and at times flee from, the enemy. I know how, in case of a siege, to remove the water from the trenches, and make an infinite variety of scaling ladders and other instruments useful in such an enterprise.


Also, if by reason of the height of the banks or the strength of the position and its fortifications, it should be impossible, with the aid of artillery, to reduce a place, I have methods for destroying every fortress, unless it has been founded upon rock.


I also have types of cannon, most convenient and easy to carry, with which to hurl small stones, almost like a hailstorm; and yet others of great usefulness. In short, whatever your Excellency may wish to effect in the way of war, I can most readily execute.


In times of peace, I believe I can give perfect satisfaction equal to that in war, in architecture and in the construction of buildings, both public and private, and in conducting water from one place to another.


I can carry out sculpture in marble, bronze, or clay, and also I can do in painting whatever may be done, as well as any other, be he who he may. Moreover, the bronze horse may be taken in hand, which shall endow with immortal glory and eternal honor the auspicious memory of the prince, your father, and of the illustrious house of Sforza.


And if any of the above seem impossible or impracticable to anyone, I offer myself ready to make trial of them in your park or in whatever place may please your Excellency, to whom I commend myself with all possible humility.


Leonardo da Vinci

keyword
작가의 이전글ORBIT DEVIATION FOR MY PL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