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NGER THAN PARADISE

천국보다 낯선

by CHRIS
Stranger Than Paradise, Jim Jarmusch 1984


아! 새로운 곳에 와도 똑같다. 새로운 환경으로 몸을 옮기면 마음까지도 변할 거라고, 이 지겨운 상황에서 벗어날 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항상 삶이란 반복된 형태를 지니는 것. 구름을 벗어날 수 없는 것. 물가에 나온 악어의 목을 휘감듯 집구석에 놓인 진공청소기는 소리 없이 먼지로 칼칼한 목을 졸라댄다. 답답하다. 이 작은 방을 탈출해 새로운 세계로 떠날까. 신선한 뉴욕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이런! 골목의 미로도 지저분한 건 다르지 않네. 전자레인지 속에는 식어버린 핫스튜가 들어 있고 같은 언어를 쓰면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대화가 난무한다. 고물 TV를 보는 눈망울은 잠이 선하다. 지루해. 클리브랜드로 갈까? 먼저 떠나버린 그녀를 찾고 싶어. 하지만 우리는 빈둥대는 삶에 노곤해진다. 역시 세상을 아우르는 상자갑 속에서 못다 본 세상을 보고, 사색이랍시고 호숫가 주변을 어슬렁댄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바보 같은 사기를 치며 처음 보는 사람의 등골을 뺏어먹는다. 피라미 인생. 피라미 인생.


꽃의 도시 플로리다로 떠나야겠어. 천국과도 같이 영원히 지지 않을 석양의 도시에 몸을 누여야지. 따스할런가? 그러나 그녀는 없네. 삼각의 도시엔 삼각김밥만 있을 뿐 나를 가득 채울 음식이 없다. 난 왜 못내 고향을 거부했던가. 모국어도 생활 습관도 미국식으로 맞춰가도 여기에는 그녀가 없는 걸. 자신의 본성을 따라가는 뿌리는 거역할 수 없는 건가.


의미 없는 돈을 버리고 다시 그녀를 찾아 떠난다. 천국보다 낯선 곳에서 그녀를 만나러 나를 옮긴다. 아름다운 그녀의 품에서 긴 잠을 청하고 싶어서 침울한 기색으로 반짝거리는 눈 속에 카메라를 넣고 일상의 워킹을 한다. 초점도 맞지 않는 흔들리는 카메라 워크에선 황량한 공간이 화면을 채운다. 가끔 보이지 않는 너를 담기도 한다.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빈 손으로 쓸쓸한 흑백의 하늘을 바라보는 너. 그곳엔 천국이라곤 보이지 않는 회색의 도시가 떠 있다. 너무나도 낯선 삶이 길게 이어져있다.


2004. 10. 8. FRIDAY



가끔 삶의 정서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그렇게 흐름에 나이브하게 대응해도 실제로는 신세계(The New World)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삶을 만드는 것에 커다란 기대를 하지 않는다. 성가셔하는 것들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배반적인 감정과 어느 날에 머문 기억이 못내 그리워서 훌쩍 떠나는 상상에 목말라한다. 무료한 일상은 우리가 살면서 만나지 못한 천국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사실 '천국(Paradise)'만큼 이상한 단어는 없다. 모호하도록 시간을 흘러온 개념은 있는데,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고 실상은 없는 허수와 같다. 엇갈리는 시선이며, 흩어지는 이별이며, 어긋난 기대이자, 물거품이 되는 꿈이고 달지도 않고 사랑스럽지도 않은 딱딱하게 빛바랜 초콜릿이다. 황량하고 쓸쓸한 시월이 다가왔다. 나는 알 수 없는 내일에 대한 꿈을 꾼다. 천국보다 낯선 둥그런 구름 공장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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