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KFAST AT TIFFANY'S

<티파니에서 아침을> 내 아침식사는 달빛 흐르는 강

by CHRIS
BREAKFAST AT TIFFANY'S 1961


달빛 강이여, 일 마일보다 더 넓구나
난 너를 건너갈 거야, 멋지게 언젠가는
오, 꿈의 제작자여, 심장을 부숴버린 그대
어디든지 당신이 가는 곳에

그대를 따라가겠어

두 떠돌이, 세상을 보러 떠나자
정말 볼 것이 가득한 세상이 있어
우린 똑같은 무지개의 끝을 좇고 있어
인생은 굽이 돌아 기다리고 있어

허클베리 친구와 달빛 강과 나를


"Moon River" from Breakfast at Tiffany's by Audrey Hepbern


앤디 윌리엄스(Andy Williams)의 묵직한 음성이나, 색소폰 연주로 이뤄진 무거운 [문 리버 Moon River]보단 꿈꾸듯이 속삭이는 오드리 헵번의 가볍고 솜털 같은 음성이 좋다. 잔잔한 음성을 듣다 보면 달빛이 흐르는 듯하다. 채 마르지 않은 검은 머리카락을 흰 수건에 돌돌 감고는 다락방 창문에 걸터앉아 기타를 튕기면서 하늘을 바라본다. 그곳에 작게 쉰 듯한 목소리를 내는 거야. 나의 영원한 친구에게.

검은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진주 목걸이를 목에 휘두르곤 담뱃대를 꼬나물어본다. 커피 한잔을 들고 크루아상 빵을 뜯으며 까만 선글라스 너머로 티파니 보석의 반짝이는 은빛에 내일을 그린다. 작은 월세방에서 벗어나 화려하게 꾸민 집에서 흥겨운 파티를 벌이며 노는 그런 꿈. 기분 좋게 상상하며 집에 돌아온 방의 거울은 마스카라만 번진 눈을 따갑게 반긴다. 그래, 어느 것도 달라진 건 없어. 창문 밖의 주황색 가로등만이 열띤 시선을 보낼 뿐.

가끔은 정열의 카르멘이, 어느 날은 춤추는 카렌이 되고 싶어 하이힐을 또각거린다. 그런데 내 몸을 닮은 차락 한 소리에 머리가 홀랑 벗겨진 인간들은 음흉한 시선을 보내네. 난 말이야, 길 잃은 고양이 울음이 꼭 내가 내는 소리 같아서 음흉한 시선을 보내. 그게 너와 나의 차이지. 우리를 잇지 못하는 기나긴 달빛 강이 놓인 푸르름의 수평선.


스튜디오의 헤드라이트 등 아래 외로운 여자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빛이 둥그렇게 드리운 곳에는 소박하고 작은 꿈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티파니의 보석보다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손에 쥐고 싶었을 거야. 건너뛰는 아침식사를 달빛 강 위에서 은물결을 흘리던 한 밤의 시간으로 채워 넣고 싶었어. 로마의 휴일엔 전쟁과 평화도 없고 오직 화니 페이스만이 하오의 연정을 그려줄 거야. 가끔 샤레이드처럼 뻔한 속임수에 넘어가는 그 멍청한 사브리나도 결국 눈을 뜨니까.

지금은 그런 흔적도 없네. 남은 기억 몇 개도 아이라는 꿈을 가진 친구에게 빌려 주었거든. 기나긴 옛날 영화의 흔적처럼 계속해서 곱씹는 추억만이 검게 타버린 아침 식사가 되었다. 모든 게 잊히는 날엔 쌩쌩 달리는 택시를 타볼까 생각 중이야. 기쁨이 서린 사람들이 자리했던 거리로 달려가 스타일 한번 구긴다고 하더라도 하늘을 가로막은 우산을 내팽개치고 억수같이 내리는 비에 키스란 포옹을 날려보련다. 속절 없는 라스트 씬은 언제나 화려해야 하는 거야. 속을 빗발치는 빗소리는 터져버린 불꽃 같잖아.


2004. 10. 19. TUESDAY



숨을 돌리고 싶을 때면 영화를 봤다. 아주 옛날 영화들이나 현실과는 맞지 않는 먼 이야기들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화면에 끌릴 때도 있었고, 음악에 쏠릴 때도 있었다. 뻔하게 결말이 보이는 전형적인 플롯도 괜찮았다. 알뜰한 우리의 초창기는 언제나 구색이 빈곤하고 사색이 빈약하지 않던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이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은 한순간이다. 하류의 인간들이 상류 사회로 진입하고자 하는 열망은 문명이 열리고 가문이 생기고 계층이 나뉘던 시절부터 이어져 왔다. 삶의 지반 위아래로 하류 인생도 있고, 상류 사회도 있다. 무엇이 상류인지 하류인지 달빛은 그 구분도 나누지 않을 것이다. 넓게 퍼진 구름 너머 달빛도 숨었다. 오드리 헵번이 부르는 [문 리버 Moon River]의 음악이 귓가에서 자동으로 틀어진다. 가을 바람에 흩어지는 선율속에서 별들이 속삭인다. 달빛 흐르던 밤을 비추는 지난 시간들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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