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TERRA TREMA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 <흔들리는 대지>

by CHRIS
[La terra trema, Luchino Visconti 1948] PHOTOSHOP EDITED by CHRIS


네오리얼리즘(Neorealismo) 작가 군단 중에서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 감독이 좋다. 극 사실주의의 문을 연 로베르토 로셀리니 (Roberto Rossellini)의 <무방비 도시 Rome, Open City | Roma città aperta 1945>를 거쳐 격난한 세월에서 시작된 메마른 표현은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의 <흔들리는 대지 La terra trema 1948>에서도 역시, 암울하고 어둑한 그림을 그린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드리운 비극은 강건하다. 푸른 화살이 미래를 향해 달려도 밑바닥을 사는 사람의 일상이 어디 바뀐 적이 있었던가?


“내나 그렇지.”

검은 바다와 하늘, 거센 파도 앞에서 물음이 진부하였다. 나흘 간의 작업을 마치고 시실리 섬 어부들은 어선 밖으로 새벽을 깨운다.


오늘, 바다는 자비로웠다. 집을 치우며 여자들은 노동의 바다에서 건진 흔적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황량한 거리, 금이 간 벽, 오래된 집, 노인과 아이들. 그들에게 분노와 고통은 가족애로 뭉친, 시실리 방언으로 말해진다. 아치 트레차(Aci Trezza)의 하루. 뱃전을 풍성하게 장식하던 고기가 내려지면 어부들은 허전한 곡기를 달래려 담배를 꺼낸다. 값싸게 일률적으로 매겨지는 땀의 대가에 잠시 분노한다. 종일 열 두시간, 아니, 사나흘. 저 바람과 물과 싸우며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는데 아무리 일해도 입에 풀칠할 정도만 돈을 주니 어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최상층들은 고귀한 품위 유지에 여념이 없고, 중간 상인과 하층민들은 치열하게 싸움을 벌인다. 내일은 언제나 희망으로 가득 차있다. 그러나 이 열악한 마을의 하루는, 어제나 오늘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 말! 내가 자주 쓰던 말. 뼈를 간 회색의 땅에서 재를 털고 일어나기란 힘겹기에, 마음이 무거워져도 어부는 다시 바다로 나간다.


도망갈 수 없는 노예신세,

바둥거려 봤자 그물 속.

사랑 노래를 부르는 일꾼은 속이 없어.


그녀 생각을 하고 또 한다는 노랫말이 서럽다. 노래를 흥얼거리면 행복할까? 슬픈 가사, 그 속에 깃든 애수는 말없이 닫힌 창문을 두드린다.


불빛으로 고기를 유혹한다. 고기들이 내지른 은빛으로 물든 밤하늘은 어부들의 고함으로 묻혀간다. 밤새도록 까맣게. 바다가 인색할 때는 사방은 칠흑 같고 배는 가볍다. 어부의 호주머니도 가벼워진다. 어른들은 말했다. 삶의 부정을 받아들이라고. 하지만 서로 필요해서 등을 부대끼고 사는 것이 아닌가. 남을 위해 죽도록 일하기보다 강건한 자립을 도모했던 한 젊은이의 시도가 온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을 산다. 개도 웃었다. 그것은 어제의 바다가 오늘처럼 평온하지 않아서였다. 멸치를 절일 소금을 다섯 번이나 실어 날랐다던 여자의 자랑도, 스카프를 향한 여동생의 미소도, 그 자신의 사랑도 한꺼번에 떠나갔다. 오렌지 농장에서 어린아이들은 귤을 따고, 동생은 돈을 벌기 위해 가출하고, 할아버지는 병원에 실려가고, 집은 압류당하고, 일자리는 구할 수 없고 남은 것은 무엇인가. 불행의 새장에 갇혀 운명을 벗어나려고 애쓰던 얼굴은 술기운을 빌어서 슬픔과 절망을 잊는다. 가난하면 두려울 것이 많다. 최악으로 향할 때 벌레가 돌에게 말했지.


“기다려. 내가 구멍을 뚫어줄게.”


그러나 숨통은 여전히 막혔다. 벌레의 앞다리는 돌에 스쳐 부러졌고 집에 돌아가지도 못했다. 절뚝거리며 눈물 흘리네. 이건 소금맛. 희망을 절이던 소금맛. 난 마음의 소리를 들었어야 했어. 바라는 모든 것이 이뤄지려 하고, 꿈꾸던 모든 것이 잡히려 하던 날.


삶에서 절망만을 말한다거나 기쁨만을 말한다는 것은 거짓말을 남용하는 것과 같다. 가슴을 쓰라리게 만들던 눈물이 너에게는 깨달음의 안약이 될 수도 있겠지. 바위에 올라서 가족을 기다리는 까마귀들. 폭풍이 몰려온 바닷가에서, 바람과 한 목소리를 내던 여인들의 검은 옷깃이 지옥의 날개처럼 보였다. 풍랑을 만나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그들을 위해 제(祭)를 지내는 것보다는, 비참하게 구멍 난 옷을 입고 실패한 허기에 배를 잡고 움츠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을 잃고 나면 자존심은 어디로 간 것인지, 갈라진 벽에 기대서 그 틀조차 완전히 부시려는 탐욕스러운 손들과 악수를 하게 된다. 그 또한 삶이고 오늘의 연명이다. 유리 동물원에서 빵을 구걸하고 모든 걸 내주는 비참한 화해.


가난한 자여,

너의 눈물,

너의 추위.

너의 비극,

너의 슬픔,

너의 이별,

너의 회한.

영원히 풍성하리라.


2005. 10. 9. SUNDAY



턱끝까지 올라오는 일감의 가중을 느끼며 상상의 도형을 제작하려고 세계의 배열을 시작한 자는 얽힌 퍼즐을 풀어야 한다. 집중하는 귓속으로 파고드는 초침소리는 크게 울리고 잊지 않았다는 듯이 오늘의 감상을 흔들리는 과거 위에 놓는다. 숨막히는 기분이 사그러든다. 나는 격동의 시간에서 살아 남았고, 그리던 일을 시작하기로 했으니까 아무리 어지러워도 알 수 없는 내일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실제의 삶은 기대보다 훨씬 지루하고 영양가가 없다. 표현이 모호해질 때면 말이 길어진다. 일상의 사실 앞에서 명확함은 사라지고 내밀한 의미를 알아듣는 사람은 줄어든다. 말이 사라질수록 알 수 없는 공감은 늘어나니,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크게 격동한다고 해도 침묵하는 대지만은 적게 나마 진실할 것이다. 모든 것이 사라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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