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YSICAL AND METAPHYSICAL

바넷 뉴먼(Barnett Newman) 물리적이고 형이상적인 삶의 그림

by CHRIS
[Barnett Newman, Untitled 1905 - 1970]


"그림의 문제는 물리적이면서도 형이상학적이다. 마치 내가 삶을 물리적이면서도 형이상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The problem of a painting is physical and metaphysical, the same as I think life is physical and metaphysical." <바넷 뉴먼 Barnett Newman>



이분법으로 인생을 나누면 최소한 복잡하게 보이진 않는다. 이것 아니면 저것, 혹은 이것과 저것. 세계가 정신과 육체로 양분된다면 이들에 포함되는 영역은 서로를 찢고 아우르고 교집할 것이다.


빛은 자신을 선전할 줄 모른다

허공을 찢기만 한다

지퍼를 열고 물어봐

가로의 빛이, 혹 고개를 꺾으면

세로의 빛이 여기 있으니

신의 품을 떠나 방랑하는 오디세이 우리엘

예리코의 땅은 뒈졌는데

빛이나 긁고 있다니 한심해 참 한심해


- Everything and Everything else -


2005. 10. 30. SUNDAY



예술과 삶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상상이란 없고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현실만 존재한다면 숨이 막혔을 것이다. 간혹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울 때면 추상적인 화법을 선택한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과 속 안의 피가 흘러내리는 듯한 그림 속에서 사이비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괄사(刮痧)를 받은 듯한 시원하고 알 수 없는 기분에 숨통이 트인다. 단면을 가로지르는 선은 단순히 물리적인 형태와 색을 넘어 철학적인 언어들을 쏟아낸다. 바넷 뉴먼 (Barnett Newman)의 색면 회화(Color Field Painting)를 보면서도 그의 자랑스러운 색상을 망막에서 무채색으로 덜어낸 것은 관람자로서 강렬한 색상조차 묻혀버리는 감정 속에서 지나쳐간 깊이를 찾기 위함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머릿속에 자리한 충격적인 경험이 미니멀하게 줄어들 때가 있다. 맥시멀하게 확장되는 감정의 강도는 <비극의 인간 : 십자가의 길 The Stations of the Cross>에서 흑백의 대비를 통해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저 넓은 세상을 가녀린 모습으로 흘러내리며 침잠한 수직적인 눈물 앞에서 얇게 번져간다. 공간의 분할은 입 닫을 수 없는 어느 날을 소환한다. <숭고한 영웅적 인간 Vir Heroicus Sublimis>은 지프(Zips)의 지난 삶 속에서 얼마나 인내하며 침묵할 수 있을까? 대상의 명확함을 좋아하면서도 명확할 수 없는 수사에 매료되는 건 사회화된 성격과 본질적 기호가 만난 뜻밖의 조합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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