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 Bellmer, The Doll (La Poupée), Dolls Series, 1902 - 1975]
한스 벨머(Hans Bellmer)의 사진들은 자극적으로 까끌거린다. 음식으로 묘사하자면 선짓국을 먹다가 정체 모를 머리카락 다발을 만난 불쾌감, 혀로 단백질 선을 골라내야 하는 짜증스러움, 입술 밖으로 뽑아지는 머리칼 주인에 대한 찝찝한 의문, 좀처럼 먹을 수 없는 선짓국에 대한 미련, 두고두고 기분 나쁜 상황의 회상, 만든 이에 대한 거친 분노. 이런 것들의 종합이다. 그의 인형 조각들은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껄끄럽다. 과장된 유방과 확대된 성기, 팔다리가 사라진 몸체, 착취된 원형을 상기하게 만드는 토막 난 신체, 성적 유린을 떠올리게 하는 기괴한 포즈, 페티시즘을 강조하는 무심한 표정, 표현을 상실한 자세, 목을 자르고 벗겨놓으면 몇 살인고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시체 같은 살덩어리. 저것은 무엇인가? 불모의 형태로 시선을 취합한 인형을 보며, 의지는 분산된다. 시상 하부에 남겨진 것은 감각기관이 저지른 화학반응의 여파이다. 죽음을 구도할 것이란 시들은 육체이므로 위로하라, 길 잃은 정자와 난자들을!
시대가 변해, 구체인형을 통해 돈을 버는 생산형 인형업자, 구체인형 마니아, 최상의 미를 표현하는 도구로써 각종 구체인형이 등장하였다. 따로 노는 몸뚱이, 한데 뭉쳐지면 어떤 점이 아름다운가? 인형의 모습이 상징하는 인간의 죽음. 구체인형의 원리 속에 숨겨진 시대의 분노와 작가의 의도를 볼 겨를이 있는가? Check out your Libido! 젠더(Gender)의 사상체계가 무너진다. 관절을 구부리는 참혹한 폭력을 두려워할 것.
소녀의 눈동자는 절망의 판타지 속으로 파고든다. 자궁은 부서지고 머리를 뒤덮은 가녀린 가발이 들썩거린다. 구세대의 권위가 순조로운 복종을 내친다. 암컷들은 적들의 돌진에 숨을 죽인다. 잊혀진 욕망, 반복되는 매질은 침묵을 강요하고 길 잃은 육체의 반환을 요구한다. 이 몸은 누구의 것인가? 변형만이 사는 길이니, 스포츠, 섹스, 시네마. 그렇게 거세된 욕망의 눈물이 흥청대는 밤. 초현실의 봄을 타고 태양은 어제의 비로 내렸구나.
인간의 크기로 인형을 제작한다면, 그들에게 어떤 일을 시키겠는가? 인형이 한 미모 한다면 남자들은 안심하고 섹스를 진행시킬 것이고, 인형에게 노예의무가 있다면 여자들은 가사노동을 책임지는 가정부로 삼을 것이다. 난 인형이 징그럽다. 인형은 머리를 잘라도 웃고 다리를 떼내도 팔을 끊어도 웃는다. 속으로는 울까?
독일의 실험적인 해석과 강직된 체계는 일본의 분류적인 상업성과 맞닿아있다. 인형이 본디 조각으로 조립되는 원통형임을 상기한다면, 분열된 사지가 단지 성을 위한 노리개 상품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데...
2005. 10. 14. FRIDAY
포탄이 내리치는 곳에서 인간의 육체는 가볍게 흩어진다. 부러진 팔, 잘린 다리, 그어진 목, 조각난 관절들. 정신이 돌아버린 사이코패스의 인간들은 세포들이 벌이는 극단의 전쟁으로 무엇이 무질서인지 모르는 게 아닌가 싶다. 배두나가 나오는 <공기인형 空気人形 , Air Doll 2009>을 보면서도 바람 빠진 인형의 자아 찾기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희망의 판타지가 섞인 <마네킹 Mannequin 1987>과는 다른 비참한 말로를 목격하면서 물체적 자아와 정신적 자아의 결합은 극단으로 치달아버린 현장에서는 조화되기 어렵다고 여겨진다. 작가들의 의식이 건전해야 변태적인 인간들의 의식도 정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부연 설명 없이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고발성의 작품들을 보며 경계심을 가지는 것은 아무런 성찰 없이 직관적으로 현상을 해석하여 사회 속으로 내면의 분노를 투영하는 정신 나간 인간들 때문이다. 살인도 마다하지 않고,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거친 말로 시간의 표류를 물 흐리는 자들로 인해 한 인간의 점철되는 고발성 메시지가 흐려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