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내 인생> 오지 않을 그 옛날의 동화
속 시원해지고 싶거나 인생을 타박하고 싶을 땐 욕을 한다.
"개 같은 내 인생! 정말 개 같지 뭐야. 왈왈."
항상 책을 끼고 사는 엄마. 고함지르는 것까지 아리땁다. 아름다운 엄마의 손을 잡고 파란 해변에서 놀고 싶다. 우아한 그녀 앞에서 나는 장난꾸러기가 된다. 기찻길 콘크리트 구멍에서 소녀와 발가벗고 소꿉장난을 할까? 우리들은 호기심이 많잖아. 나의 밋밋한 가슴과 너의 보드라운 가슴을 마주해 보자. 아이를 어떻게 만드는 지도 알고 싶고 사소한 부주의에 의해 불길이 번져가는 메마른 땅도 보고 싶다. 쏟아낼 것 많은 이야기. 엄마가 객혈을 시작하고 아파하면 소년은 밖으로 내몰린다.
“이제 책을 읽으면 안 될까?”
말귀를 알아듣기에는 어린 나이인데, 저리도 완곡하게 이야기하면 모호한 수수께끼나 다름이 없다.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정말 어려운 문법이다. 차라리 욕을 좀 해봐.
“이런, 개 같은 내 인생!”
옛날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면 과연 저 시절,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나 싶다. 나름대로 고민도 많고 하루를 보내는 괴로움도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콩닥거리며 마음도 설레고 가까운 이가 떠나가면 떨어지고 싶지 않아 슬퍼했다. 이유 없이 죽음에 대한 공포로 잠 못 이루었는데, 어째서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난쟁이처럼 여기고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가정하는 것일까?
철없는 아이는 세상을 응시한다. 아버지의 부재, 형과의 장난, 병에 걸린 엄마. 그리운 풍선은 둥둥. 소년은 엄마에게 활기를 불어넣고 싶다. 잠시 떠났던 곳에는 초록색 머리칼의 친구가 있다. 그 아이의 할아버지가 띄운 비행선, 지붕 위 프란손, 모습도 다양한 유리공장 사람들, 누드를 조각하는 미술가, 병석에 누운 할아버지의 숨죽인 욕망. 복작복작 살아가는 삼촌 내외. 조용한 얼굴의 엄마에게 모험담을 들려주면 분명 기뻐하겠지?
사물을 볼 때는 비교가 필요하다. 하늘의 별과 침묵 서린 거리를 바라본다면 더욱. 엄마가 없어서 까맣게 타들어가는 빵, 저절로 빵의 앞 뒷면이 뒤집혀 나오는 신기한 토스터기. 부엌에서 일하기 힘든 엄마를 위해서 소년이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나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엄마, 이걸 보면 좋아하시겠지?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를 부르는 조용한 목소리. 혼자서 잠시 볼까?
라세 할스트롬(Lasse Hallström)의 시선은 멀찍하다. 가까운 대상을 비추어도 그건 먼 대상으로서의 응시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립할 수 있도록 차분한 거리를 갖고자 한다.
“인생은 때론 힘들어. 혼자 남겨지는 것은 힘들지.”
누구를 위하여 전할 수 없는 은색 토스터기만 남겨져도 그렇다. 맥이 빠진다.
"시간은 상처를 치유한다."
귓가를 울리며 두고두고 쓴웃음을 짓게 한 소년의 내레이션이었다. 아비드손 할머니의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나와 함께 들판을 달리고 엄마의 침대 밑에 숨어 키득 대던 강아지, 시칸과 내 어린 시절의 종말을 은유적으로 암시한 것이다.
“난 안 죽였다고 말해줘요.”
얼음을 녹이는 것은 불이요. 모래를 태우는 것도 불이다. 유리의 매끄러운 표면에는 모래의 껄끄러운 입자가 배겨있다.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서로의 얼굴을 맞댄 따가운 수염이 선인장 가시처럼 허허벌판의 가슴을 찌른다. 냉정한 겨울밤을 넘기기 위해 소란스러운 웃음을 지어본다. 보수가 필요한 헌 집들. 엄마와 함께 한 어느 날 여름을 말끔히 태우기 위해 유리공장에서 녹였던 겨울의 눈물. 슬프면 빨리 달리고 기쁘면 해맑게 웃어야겠지.
성장영화, 성장소설. 이 꾸준한 연구는 자신의 어린 날을 잊고 몸만 훌쩍 커버린 어른들의 앞치마에 계속해서 레퍼토리를 틀어댈 것이다. 그것이 누구이든지, 어떤 내용이든지 나를 끊임없이 상기하도록 종용하겠지? 하늘이 높아졌고 해가 은은해졌다. 생각나는 모든 것이 뿌옇다.
2005. 10. 24. MONDAY
초침 소리가 덩그러니 굵어진다. 하루종일 컴퓨터와 마주하고 있는 얼굴 위로 피곤이 서린다. 바삭거리는 손을 들어 건조한 얼굴을 쓸어내린다. 뭐 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무엇을 찾아가고 있는가.
"개 같네."
무참한 현실이 가득하게 눈앞에 펼쳐지고 기분이 저조하게 가라앉을 때면, 변하지 않는 삶의 줄기들을 밑바닥부터 끌어당기는 손아귀를 발견한다. 안간힘을 다해보아도 뿌리는 뽑히지 않고 누렇게 시든 줄기는 손목을 휘감고 내려 놓아지지 않는다. 쓸데없이 힘을 쓴 관자놀이에는 터져 나올 듯이 파란 힘줄이 솟아있다. 동화가 일찍 끝나버리면 동심은 진흙탕을 구른다.
익살맞은 얼굴들을 보면 침울함을 거두고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현실에서 가시적인 그 모든 것을 잃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내 안의 모든 것은 잃어야 했던 시간들. 올해는 전환이 필요하다. 그 옛날의 기억들을 한편에 갈무리하고 다시 쏟아낼 순간을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