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부터 600km 떨어진 곳의 온도는 화씨 +258도와 -148도 사이에서 변동을 거듭한다. 어떤 소리도 전달되지 않으며 기압도 없고 산소도 없다. 우주에서의 생활은 불가능하다."
<Gravity Prologue>
<그래비티 Gravity>, 사람과 공간만이 놓여 있는 우주에서의 모노드라마는 불가항력의 조건 속에서 생명체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반복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생사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순간, 존재로 하여금 지상 위로 불시착하여 새삼스럽게 세상을 향해 조심스레 걷는 연습을 다시 하게 만든다.
인간은 경험치가 가진 한계에 도달하면 쉽게 나약해지면서 삶을 포기하는 환상에 젖는다. 자궁의 형태를 지닌 우주선은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간에게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근원의 질문을 쏟아낸다. 태아는 삶을 태동시키고 영양분을 공급해 주고 안락하게 보호해 주던 엄마의 자궁에서 탈출하여 세상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모체 또한 태아가 자립할 시기에 태아 스스로 분리되지 않으면 동일한 죽음의 운명에 갇히게 된다. 인간 존재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 속에서 탄생과 죽음, 나아감에 대해 생각했다. 정지와도 같은 편안한 상태에서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삶에는 중력이라는 이질적인 요소가 감각을 끌어내리며 살아가라며 압박하고 있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적막과도 같은 고요가 무섭게 느껴진다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삶의 재촉이 나쁘게 들리지 만은 않을 것이다. 신비한 대상은 간결한 껍질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극히 단순하여 사람들은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2015. 9. 10. THURSDAY
새로운 변화를 계획할 때마다 고민한다. 전부 다 때려치울지, 다시 시작할지. 그런데 끝이나 시작이나 모두 맞물려 있어서 끝을 내려면 하던 일을 계속 진행해야 하고, 하다 보면 새롭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울이 한 바퀴 돌고, 시계가 한 바퀴 돌고, 지구가 한 바퀴 돌고, 삶이 한 바퀴 돈다. 시간 위에 놓인 우리는 장애물을 만날 때나 시련 앞에 놓일 때 스스로 선택을 해야 한다. 살고자 하는 삶에 대한 의지가 강렬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마음의 출발선을 0으로 돌려놓는다. 나는 앞으로 계속 갈 것이고, 끝이 다가올 때까지 앞으로 가겠다는 선택에 따라 두 발을 버티고 살아갈 것이다. 모든 것이 0인 세상, 삶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