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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 MEMORY

기록, 자기 본위로 돌아서다.

by CHRIS
[MINE] CHINA. 2025. 1. 18. PHOTOGRAPH by CHRIS



꾸준히 한다.


‘꾸준히’라는 단어가 지루하다. 지속되는 것에서 습관이 발생하고 집착이 되고 고착이 되고 영속화의 과정을 걷게 되지만 부사가 붙은 이 행위에는 거부감을 갖게 된다. 놀이하고 사고하고 걷는 인간이란 용어가 마음에 들어도 ‘꾸준히’가 들어가면 답답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래서 고민이다. 의식을 적는다는 행위에 대해 관찰을 하고 있지만 지겨워지고 있다. 종이에 적었다면 금세 포기하고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머리가 여물고 나서 일기장이라고 생각하며 자발적으로 사본 게 공책 두세 권 정도다. 두툼하고 멋진 외장 속에 하늘하늘한 종이를 담은 특수 내장형도 사봤다. 항상 앞의 세네 장만 열심히 적어놓고 그대로 방치하곤 했다. 방학을 맞아 정직하고 충실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일간 주간 월간의 생활계획표를 다양한 색상으로 분류해서 칠하고선 눌러 적어 놓은 다짐을 금세 까까머리 그림으로만 인식했던 어린 날의 짧은 집중과 긴 변덕처럼 커서도 이 고정적인 의식은 변하지 않았다. 속은 검붉게 타오를 거면서 또 내버려 두고 싶다.


"적어서 뭔 소용이야. 항상 같은 말인데."


글을 적다 보니까 느끼는 건데 정말 모든 글이 내 본위로만 돌아가는 물레방아질이다. 나름대로 속상한 오늘을 기록하고 좋아하는 그림을 갖다 붙이고 꿈을 노래하지만, 곰곰이 살펴보니 단어만 약간 달라질 뿐 해석하면 같은 내용이다. 꽃잎을 그리면 타원을 돌아 중점으로 모이는 현상처럼 씨앗으로 회귀하는 작용과 닮았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 뭉치를 보며 꽃의 외곽선을 따라가니 동그란 원형에 시선이 모아졌다. 같은 사람을 보고 있는데 어느새 나는 다른 사람을 느끼고 있다. 그가 변한 것일까, 내가 변한 것일까? 사물과 존재의 둘레를 돌아가며 관찰하지만 본래의 기점으로 향하는 순간에선 나만의 본위로 해석하고 만다. 그런데 똑같은 결로 찢고 뜯어봐도 상관없을까? 중점의 시각을 어디에 두어야 원형의 회전을 바로 볼 수 있을까.


2004. 11. 10. WED



기록은 중요하다. 개개인의 소소한 역사적 시간은 위대한 영웅이나 인물처럼 시대사를 구성할 때 확연한 족적이 아니어도 찰나의 은하계에 한 순간의 숨결을 남긴다는 측면에서 정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기록하는 습관을 가질수록 타인의 경험과 말들은 자신과 다른 결과물을 생산하는 독자적이면서 개별적인 대상으로 변모한다. '카더라' 통신은 언어를 통해 현상을 전달되면서 본래의 사실에서 쉽게 변질된다. 실재가 왜곡되거나 부풀려지며 대상의 본모습은 확장되거나 축소된다. 자신으로서의 존재적 사고를 경험하기 두려워하는 사회는 퇴보하게 된다. 자율적인 사고의 과정이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가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의 지표나 집단적인 성과로 측정되어 그 값어치가 금전적으로 해석되고 중요도가 매겨진다면 노력하는 대상이 되는 사고는 수의적인 행위에서 불수의근의 모양으로 뒤틀리면서 자연적인 상태로 남기 어렵다.


AI와 기계적인 수치가 지배하는 시대, 직접적인 경험이 사장되고 타자의 생각이 주입되어 자신을 잃어버리는 불운과 망각의 시절이 다가올 때 스스로를 잊지 않는 방법은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기록하는 능동적인 실행으로 내면의 의식을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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