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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TIGINE DELLA LISTA

《궁극의 리스트, 움베르토 에코》 목록의 현상적 질서

by CHRIS
list.jpg [The ultimate list—what's your pick?] CHINA. PHOTOGRAPH by CHRIS


공중전화를 애용하던 시절엔 옐로북이 존재했다. 관공서와 상점, 각종 업체들의 전화번호 리스트는 빼곡하게 적혀있던 '가'부터 '히'까지의 나열이었다. 핸드폰이 상용화되고부터 전화번호부는 구글링과 디지털 정보의 수집 속에 가지런히 정렬화되어 있다. 덕분에 친근한 사람들의 번호를 기억하던 뇌의 저장 기능은 방대한 양의 암호들로 뒤덮인 숫자들 속에서 퇴화되고 말았다. 《궁극의 리스트 The Ultimate List》를 찾아 핵심적인 생의 탈출전략을 짜면서 문화의 기원이자 인간 욕망이 끝없이 나열되는 출구를 따라가 본다.


호메로스에서 앤디 워홀까지 문학과 예술 속의 목록을 전개하는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우리가 조직하는 사회적인 삶과 대화들, 영화, 그림들만이 아니라 문학 작품과 일상의 내용들까지 카탈로그적인 일람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의식을 기록하고 정리하기 시작한 이래로, 이전의 글들과 현재의 상태를 비교해 가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접붙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 와중에 현재의 기대와 욕망이 반영된 리스트를 적는 것은 순서를 차후에다 두었다. 기록할 것들을 추려내는 것보다 담아내지 않을 것들을 솎아내는 게 더 어렵다. 유행처럼 번져가는 버킷리스트도 헛되게 느껴져 작성해 본 적이 없지만 정리하지 않으면 잊히는 시간 앞에서 타자가 말하는 궁극의 리스트가 과연 무엇인지 의문을 느끼며 그 목록들을 빠르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호메로스가 묘사하던 아킬레우스의 방패는 형태에 대한 에피파니(epiphany: 갑작스러운 깨달음)이자 예술방법에 대한 통찰이다. 예술은 하나의 질서, 위계, 묘사된 형상과 배경의 관계를 설정하면서 조화로운 재현 작품을 구성해 간다. 미학은 하나의 형태에 대한 무한한 해석과 색다른 측면과 새로운 관계들을 발견하는 관점을 제시한다. 호메로스는 원형의 닫힌 형태를 구성하여 농경과 전사 문화를 효과적으로 반영한다.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인지와 이해를 위한 부수적인 속성의 무한함은 잠재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의 미학적인 무한함과 다르다. 주관의 거대함을 느끼게 하며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망하는 칸트가 느낀 숭고의 감정과도 차이가 있다. 실제적인 무한은 별들의 목록처럼 객관적으로 무한화될 수 없는 리스트이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가 설명하는 끝없이 나열된 신들의 원시적 문화의 전형들과도 이별해 있다. 목록은 물질적이고 영적인 우주에 대해 명확한 형태를 제시했다고 주장하는 중세와 예술의 다양한 형태가 발생한 르네상스 시대, 새로운 천문학이 제시한 화려한 바로크 시대, 근대와 포스트 모던, 그리고 우주로 향하는 현재의 기계적 시대까지 존재적 무한성에 얽매여 있다.


그림에 담긴 목록들은 배경을 이루는 무한한 거짓에 집중하게 하지 않는다. <모나리자>를 보더라도 프레임 너머의 풍경이나 정물 속의 다양한 구성, 상호 관계가 없는 사물들의 뒤섞임에 주목하는 이는 없다. 썩기 쉽고 빨리 변하는 세속적인 사물의 덧없음, 끝없는 계단 위의 하늘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세상을 은유한다. 낙원과 천사들, 악마와 마귀들, 시시한 보물들의 빈약함과 중요함은 《맥베스》에 등장하는 불길한 마녀들의 재료처럼, 음악가의 애장품인 악기의 컬렉션처럼, 악취가 짓누르는 도시들의 나열과 강박적으로 사물들을 모아 놓은 예로 화려한 이름을 더한다. 장소에 대한 축적, 고장의 이름과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을 떠나 오디세이의 바다를 유랑하며 상륙하는 이민자들의 마을과 광대하고 격동스러운 내륙 도시들을 거쳐 이야기 속의 불가해한 우주까지 날아가게 된다.


목록의 복음들과 낱말들이 배열된 호칭의 기도 속에서 목록은 굵직한 형태로 전환된다. 왕궁의 연회처럼 늘어지는 열거의 수사학은 질리도록 긴 줄을 보여주며 실낙원이 사라진 옛 여인들의 발라드를 연주한다. 신기한 것들 중에서 선택의 목록은 잔잔하게 떠오르고 진기한 것들에서 명확히 기호가 분리된다. 박물관의 수집물과 전쟁광의 전리품들은 달리 보면 수집가의 쓰레기통과 다름없이 광적인 축적에 대한 취향을 한데 모아놓은 것이다. 자연사 박물관이나 인체의 신비전은 자연적 소재와 동물적 소재의 신세계 아틀란티스를 선보인다. 속성과 본질의 분류를 나누다 보면 프랑수아 라블레의 과잉에 직면한다. 편집증적인 열거도 통일성을 보여주는 일관성 있는 과잉이랄 수 있다. 달리의 초현실적인 캐비닛을 머리만이 아니라 온몸에 장착하고 <One and Many>를 <옴마니 반메홈>으로 바꿔 불러본다.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과 예술, 철학과 신학을 파고드는 집요한 나열은 신경질적인 집착과 경이를 불러온다. 조르주 페렉의 《나는 기억한다》를 무수하게 붙이며 "나는 기억한다, 내가 아니었던 내가 살아있던 시절을" 외쳐본다. 롤랑 바르트의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구분해 본다. 대상에 제목을 짓기 어렵다면 모두 《무제》로 통틀어도 분류가 가능할 것이다. 반복되는 점묘법, 순서대로 배열되는 기호들, 기다랗게 응결되는 운율과 똑같은 모자를 쓴 형제들, 역동적인 그림 문자와 매스미디어 목록은 현기증 나는 수학을 환기시키며 형이상학적인 세계로 인도한다. 글들이 지루해질 때 실용성을 주목하며 시적인 언어로 변화시키는 일은 흥미롭다. 책 목록의 취향과 영화 목록의 나열, 그림 목록의 편집과 사진 목록의 배치는 동물적 야만성을 무자비하게 드러내며 흉측한 혼란을 자초하는 봄이 아직 먼 어느 겨울밤에 질서의 극치에서 벗어나 일체의 논리적인 구조를 얻는 최후의 보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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