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클로 XÍCH LÔ> 기울어진 삼륜차의 가냘픈 꿈
어린 시절의 연
창공에 걸린 가냘픈 희망
아무도 소외되지 않은 세상에서
인간은 마음을 열고 안주한다
<CYCLO, 시인의 독백 중에서>
한가득 쏟아내는 입김이 겨울비를 재촉한다. 추위에 약해진 어느 날부터 땅의 습기를 빨아들인 하늘의 시린 방문은 참기가 힘들다. 두텁게 옷으로 감쌌는데도 으슬으슬한 기온은 몸을 안으로 둥글게 말아버린다. 일 때문에 바짝 긴장한 것인가. 아님 살갗의 실린더가 제정신을 잃은 것인가. 버스에 올라타 구석에 웅크리고 자리를 잡은 순간 멍하니 바깥을 바라본 것도 잠시, 사람들이 내뿜는 숨결에 뿌옇게 흐려진 창은 안개 낀 새벽 같았던 오후를 어둠으로 숨겨갔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대화와 시끄러운 길가의 소음조차 자장가처럼 들어버린 한낮의 시달림. 꿈을 꿨을까. 자전거를 타고 푸른 들판을 달렸다. 초록빛으로 물든 언덕 위에는 넝쿨처럼 타래진 긴 머리칼만이 물결 졌지만 시원한 흩날림만으로도 달리고 있음을 알았다. 앞으로 갈수록 끝없이 짙어가는 물속으로 빠져들며 행복했었다. 덜컹, 암초 같은 차의 급정거에 모든 감상은 조각되어 날아갔지만. 달아나버린 환상 속에서 네모난 건물 저편의 풍경을 하염없이 보고 있자니 회색의 성냥갑이 눈을 갑갑하게 막았다. 그래도 불타는 꿈은 그대로 인 듯했다. 퍼렇게 변한 붉은색 꿈이 어른거렸다.
따스한 남쪽 어느 동네,
해맑은 웃음 지으며 씨클로를 모는 빈민가의 아이.
가족들의 곤궁함을 메우는 임시 가장이지만
매연만이 가득한 도시에서
나만의 작은 집을 가질 거고
사랑하는 사람과 오붓이 살 거라는 순수한 꿈을 꾼다.
꿈은 꿈일 뿐일까.
골목길에서 지켜선 불행의 손아귀는 컸다.
눈앞에서 현란하게 카드 패를 돌리며
주머니를 터는 가혹한 속임수의 세상.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만이 아니라
터질 듯이 열정을 바치던 사랑까지 흡수해 버린다.
하얀 아오자이 밖으로 수줍게 흐르던 검은 긴 머리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손 내미는 貧者들에게
매듭진 밧줄을 내릴 수 있을까.
먹구름이 가득한 도시의 하수구는
악몽으로 발버둥 치는 아이를 그대로 삼켜버리고
미래를 위해 남겨둔 한 방울의 피조차
표정 없는 화염에 불 지른다.
미래를 위해 달려가던 몇 개의 바퀴에
백색의 망상을 싣는다.
청명하고 달콤한 웃음이 숨 쉬는 거리에
안무하는 폭력, 차가운 시선을 던진다.
석연치 않은 접촉은 물에 젖은 화약창고로 아이를 내몬다.
샛노랗고 파란 물감은 가난한 아이의 옷감.
사회에서 일찍 숨을 거둔 시인은
잃어버린 순수에 향수 어린 미소를 흘리지만
강이 되어 흐르는 오염은 끝이 없고
꼬리가 잘려도 홀로 길 떠나지 못한 도마뱀은
둥근 눈 안에다 요동치는 악의 혀를 담는다.
지붕 위로 올라가고 싶은 불구의 전사여.
영원히 판정되지 않을 싸움에서
어린아이의 장난감 병정은
너털거리는 만족을 반달 지으며
저수지에 사는 개들의 귀를 성큼 잘라버리겠지.
불타지도 못할 재로 만들려
아버지도 없는 미래에 오래된 인사만을 건네겠지.
밟을 수도 없는 전차의 쇳물을 헛되이 녹이려고 말일세.
영화 <씨클로 XÍCH LÔ>는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을 떠올리게 한다. 행복은 한길이나 불행은 갖가지 표정으로 몰래 다가온다. [Creep]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노래는 우울한 영상에 느릿하게 기대 있다.
그날 저녁 그대를 위해 춤을 췄어
당신이 푸른 절망을 들이댈 때 웃었지
벽에 기대서 애써 눈감은 그대는 봤을까
당신이 모르는 사람에게 열쇠를 건넸을 때
흐느적거리는 리듬을 타며 울고 있었다는 걸
비참한 환영이 아름답게 물 흐를 때
바닥에 가라앉은 진흙은 묽어지네
당신을 낱낱이 파편으로 갈라놓고
끈끈한 불꽃을 가슴에 칠해가네
2004. 12. 16. THURSDAY
쓰레기 같고 이상한 존재는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아. 천사 같은 너, 비단결 같은 머리, 윤기 흐르는 매끄러운 살결, 아름다운 세계에 놓인 깃털 같은 너와 괴짜 같고 버러지 같은 나. 넌 너무 특별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고 완벽한 영혼과 완벽한 모습으로 당신의 시선을 받고 싶어. 난 생각도 까맣고 마음도 까맣고 한 줌의 재로 까맣게 썩은 몸이야. 나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 문 밖으로 도망쳐. 달아나.
중독적이고 늘어지는 음악 속에서 생을 굴리려고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자전거 바퀴와 생기가 만발한 밝은 웃음, 모든 것이 도둑맞은 뒤 긴장감이 가득한 만남, 곧 기대감이 흘러내리는 빗줄기와 검게 타버린 소년의 얼굴, 기묘하게 얽힌 남자와 여자, 섞일 수 없는 오해의 시간, 질투와 후회의 화염에 휩싸인 남자, 미소를 잃어버린 여자, 회복될 수 없는 세계의 엇나간 장면이 수십 년이 지난 현재에도 플래시백으로 교차된다. 혼란한 삶의 정체성과 이해 불가능한 사랑의 관계, 모든 것이 무너진 사회적 절망감을 담아낸 영화는 음악이 설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눈이 비로 바뀐 하늘을 보며 봄인가 겨울인가 의심스러웠다. 라디오헤드의 [Creep]은 떼어낼 수 없는 끈적한 습기로 가득한 공간에 어울리지만 라디오 머리맡에서 팝업처럼 자조적이고 중독적인 목소리가 흐르면 계절을 망각하고 음울한 선율을 타게 된다. 실패한 어제와 불확실한 내일, 불발된 만남이 가득한 오늘 사이로 조용히 가사를 음미해 본다.
When you were here before,
Couldn't look you in the eye.
You're just like an angel,
Your skin makes me cry.
You float like a feather in a beautiful world
I wish I was special,
You're so fucking special.
But I'm a creep, I'm a weirdo.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I don't belong here.
I don't care if it hurts,
I want to have control.
I want a perfect body,
I want a perfect soul.
I want you to notice,
When I'm not around.
You're so fucking special,
I wish I was special.
But I'm a creep, I'm a weirdo.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I don't belong here.
She's running out the door,
She's running,
She run, run, run, run, r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