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LIKE YOU

당신을 닮은 상자

by CHRIS
[붉은 카펫 위의 아이보리색 상자, Ingmar Bergman의 色]


상자만 보면 카메라를 들이대는 별난 습성을 기억하고 있던 아이보리색 상자는 붉은 카펫 위에 대자로 누워있었다. 이상한 세계로 날아가려고 그곳에서 나를 기다린 것이다. 떨쳐낼 수 없는 이끌림에 다가갔더니 그 속엔 푸른 눈의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닮은 꼴의 너를 생각했다. 주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에 여행을 내일로 돌리려 물러섰는데 돌아와 보니 상자는 누군가에 의해 철거되었다. 그리 마술은 짧고 굼뜬 습관은 길었다.




[노란 상자 속에 담긴 너]


내가, 상자를 타면 그리던 세계로 날아가지 않을까?

꿈이, 가득한 네가 선사한 네모난 상자 속 미래여행

문을, 열면 다른 세상이 있을까 두려움이 밀려와도

정말, 모험할 것 같은 에너지가 샘솟아, 난 꿈을 꿔.


안녕, 오후 내내 하늘엔 돌풍이 불었어. 이 봄은 역시나 변덕스러워. 따뜻한가 싶어 고개를 세우면 코끝을 쥐고 가는 독한 바람은 어쩌면 톡톡 튀는 너와 붕어빵인지 몰라. 요즘엔 편지를 쓰다 보면 어조가 소사나무껍질처럼 딱딱해지거나 병상에 누운 노인네가 며느리를 부려먹는 것처럼 심술 맞게 변해버려. 불특정 다수에게 던져지는 메아리처럼 누구나 듣더라도 한눈에 못 알아보게 배배 꼬는데 그래도 당신은 알아보겠지. 발랄한 신호를 지른다.


변화무쌍한 봄날이 좋아지려고 그래. 길을 쪼록쪼록 걷다가 상자를 쳤거든. 코를 다친 얼굴이 있었어. 재미있는 인상, 정말! 눈도 있고 코도 있고 귀도 있더라. 상자는 말이 없어서 가까이 다가가야 했는데 그 눈엔 아름다운 세상이 자리했었지. 너와 내가 꿈꾸던 작은 오솔길, 목마른 구름조차 없었던. 참, 너에게도 보여주려고 찍어봤거든. 그런데 집에 와선 알아버렸다. 그 얼굴 너와 닮아서 난 정겨운 흔들림에 끌려간 거야. 당신은 내 발길을 비껴서 앉았더구나. 보고 싶었어.


2005. 3. 9. WEDNESDAY



아무도 읽지 않은 것, 보지 않은 것, 느끼지 않은 것, 사랑하지 않은 것에 관심이 가는 것은 천성인가 보다. 빳빳하게 얼굴을 들어도 애써 훔쳐보지 않는 서랍은 너무도 많다. 오늘은 눈이 내렸다가 해가 밝았다가 돌풍이 불었다. 서울에 검은 눈이 내렸다는데 금세 녹아버려서 확인불가능이다. 먼지 가득한 세상에 머리가 띵하도록 차가운 바람이 정신을 깨운다. 겨울 옷을 여전히 입고 있는 변덕스러운 봄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FREIE SEE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