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 그녀 머릿속의 삶, Sa vie est dans sa tête
유년의 기억이 묻어있는 길목을 멀찍이나마 창문 너머로 마주할 기회를 가진다는 사실은 무심히 시간을 접으려는 행동을 유심히 돌아보길 요구한다. 개구리밥이 떠다니던 웅덩이를 차고 놀던 기찻길에서 훌쩍 커버린 키만큼 거칠게 자란 성난 잡초를 쓸어야 한다는 말과도 비슷하다. 차분히 기적을 울리며 잘 익은 옥수수색의 벌판을 가로지르는 문산행 열차. 기적소리를 내며 달리는 뜨거운 지표면은 KTX의 기지국이 들어설 준비로 기계음이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검은 행성이 지나가는 자리 한편에는 회색과 빨간색 바둑무늬가 교차된 공장이 잘생긴 얼굴을 쳐들고 있다. "저곳에서 잠자리를 잡곤 했지. 사마귀를 잡아서 잔인하게 다리를 떼기도 했어."
철부지 소녀, 새침하게 상큼한 웃음을 짓던 로지를 떠올리게 하는 이 건물들은 매번 시선을 꽉 붙들어 맨다. 구타와 파멸의 흔적이 난무하는 가정에서 가출한 소녀를 대하며 당혹스러웠던 육 년 전을, 사춘기에 막 접어든 아이의 소박했던 소원과 꿈들이 철저하게 악몽으로 변형된 시점을 끄집어내며 아무것도 모르는 유아기로 돌아가 잠들고 싶은 후천적 기면증으로 나를 가파르게 몰아가는 것이다. 아이의 상처받은 기억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중첩된 화면구조를 통해 어느 정도 예감했지만 확인한 순간은 너무 슬퍼 한동안 우울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 삶에선 이상한 냄새가 난다. 괴로운 날들 속에서 허탈하게 웃는 기술을 깨닫게 한다. 그 누구도 친밀하게 관심을 가질 수 없게 생경한 평범함 속으로 묻히는 것이다. 침묵이 흐르는 창 밖을 바라본다. 목구멍 사이로 감정의 부피감을 한가득 몰고 오는 봄의 향기가 낯설기만 하다.
새 봄이 돌아오면 음침한 동굴 속에서 새하얀 환상을 꿈꾸는 로지가 떠오른다. 웅크린 로지. 격한 밑받침이 상실된 소녀. 거칠게 매만져진 한 시절의 혼란은 숙명이라는 인습과 예의를 그 옛날처럼 받아들이지 않도록 의식적인 뒷받침과 제도적인 명분을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의 딜레마나 개인적인 고민의 질창들이 마냥 가벼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떠나버린 것은 메아리를 남기니까. 그래도 어찌 됐든 누가 뭐라 하든지 간에 질기게 살아보자고 끈질기게 살아내자고 다짐하면서 오늘도 붉은색 바둑무늬가 선명한 공장을 바라보았다. 내 집이 아닌 집으로 오는 길, 딱딱하게 굳은 결의와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2006. 5. 4. THURSDAY
간혹 머릿속엔 육체로 묘사되는 나와 다른 존재가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상상한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내면의 목소리는 커다란 하나의 목소리에 흡수되어 은은한 공명으로 퍼진다. 영화 <로지 ROSIE>의 부제(副題)는 '그녀의 삶은 그녀 머릿속에 있다(Sa vie est dans sa tête)'이며, 다른 표현으로는 '내 머릿속의 악마(The devil in my head)'이다. 유년기를 거쳐 청년기까지 예술 영화를 보던 습관과 작가들의 목소리를 가볍게 받아 적던 손길은 지나간 시간을 떠올릴 땐 환상과 실재를 디졸브하며 하나의 새로운 기억으로 전환시킨다. 쉽게 섞일 수 없는 추억과 회한의 장면들을 한데 집어놓고 젓가락으로 훌훌 휘젓는다. 부유하는 감정들을 건져내며 보이는 삶을 어떤 언어로 표현할 것인지 기나긴 몽상에 빠진다. 청명하게 탁 소리를 내며 꿈에서 깨어나기에는 머릿속에 사는 그녀가 아직 너무 어리다.